이지원
대림대 교수,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 위원

3·1운동, 미래를 향한 역사

2019년은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한 뜻깊은 해이다. 3·1운동은 전국 방방곡곡뿐만 아니라 해외 한인사회까지 하나의 독립된 조국을 찾기 위한 저항의 축제였다. 그로부터 100년 뒤, 우리는 민주주의의 진전과 한반도 평화의 길을 여는 새로운 역사를 마주하고 있다. 과거 독립운동의 역사는 평화통일의 미래를 여는 디딤돌로 다가오고 있다.

3·1운동은 세계사적인 격변기에 민족의 자유를 찾기 위한 독립운동이었고, 모든 사람이 사회의 주인이 되는 미래를 희망한 실천운동이었다. ‘2·8독립선언서’는 일본의 식민지 배를 두고 ‘무단 전제이자 부정하고 불평등한 정치’라고 비판하면서 한국인에게 참정권, 집회결사의 자유, 언론출판의 자유를 허락하지 않았고, 종교의 자유와 기업의 자유를 구속했다고 주장했다.

일제 식민지로부터의 독립은 모든 사람이 자유와 평등을 누리는 민주주의 나라를 세우기 위한 것이었다. 독립운동의 역사는 민주주의 사회의 주권자가 탄생하는 과정이기도했다. 1917년 해외 독립운동가들은 중국 상하이에서 발표한 ‘대동단결선언’에서 경술국치는 융희황제의 주권포기이며, ‘제권(帝權) 소멸의 때 즉, 민권(民權) 발생의 때’라 하여민권의 시대가 시작되었다고 했다. 또한 ‘국내 동포들이 일본의 압제하에서 주권을 행사 하지 못하니 재외동포들의 국민주권을 상속받아 주권을 실질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임시정부의 수립’을 촉구했다. 1919년 3월 17일 러시아 니콜리스크(現 우스리스크)와 블라디보스토크 한인회가 발표한 ‘조선독립선언서’는 일본을 민주주의 공적이라고 비판했다. 독립운동은 과거로 되돌아가는 국권회복이 아니라 민주주의 주권을 위한 미래지향의 역사 과정이었던 것이다.

미래지향의 민주주의 주권 의식은 3·1운동 이후 1919년 4월 11일 중국 상하이에서 수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대한민국 임시헌장’에 명시되었다. ‘대한민국 임시헌장’은 3·1운동의 정신을 계승한다는 취지를 밝힌 전문과 10개조의 본문으로 구성됐다. 그것은 왕정복고를 부정하고 민주 공화제의 국가체제를 규정한다. 제1조 민주공화제 채택, 제2조 임시정부(행정부)와 임시의정원으로 통치, 제3조 남녀·귀천 및 빈부의 계급 차별 철폐의 평등, 제4조 기본권에 대한 규정, 제5조 선거권과 피선거권의 규정, 제6조 교육·납세·병역의 의무, 제7조 국제연맹에의 가입, 제8조 구황실우대, 제9조 생명형·신체형·공창제 폐지, 제10조 국토회복 후 1년 내에 국회소집 등으로 되어 있다. 조소앙이 기초한 대한민국 임시헌장은 민주공화제를 인민의 이익을 기초로 하여 정치적 권리를 균등화하고 국민을 정치에 참여시키는 가장 좋은 제도임을 밝히고 있다.

독립운동을 보는 세 가지 방점 : 대중, 연대, 미래

3·1운동은 즉각적인 독립을 이루지 못했으나, 모든 사람이 자유와 평등을 누리는 민주주의 가치를 실천하는 주체로 등장한 역사의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3·1운동은 3월 1일 하루의 운동이 아니라 적어도 두 달 넘게 이어진 만세시위였다. 도시와 농촌, 남녀노소가 동참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시위와 그 후의 구속, 고문, 감옥살이, 재판 등을 경험하며 대중들은 사회의 주체로 성장했다. 이전까지 사회세력으로 등장하지 않았던 학생들도 사회운동의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3·1운동의 시위 주동자이자 동원조직이었던 학생들은 이후 1926년 6·10만세운동과 1929년 광주학생운동에서 대중적인 시위를 이끌었다. 3·1운동의 도시 시위에 참여했던 노동자들은 노동자 조직을 만들고 전국적 조직인 조선노농총동맹, 조선노동총동맹 등을 만들어 노동운동을 시작했다. 일제의 부당한 노동정책에 항의한 1929년의 원산총파업은 그 정점이 된 사건이다.

또한 3·1운동에서 여성들은 저항의 주체이자 사회의 주체로 대두하였다. 식민지하에서 근대교육을 받았던 여학생들을 주축으로 여성 네트워크가 등장했고, 이후 여성운동이 조직적으로 실행됐다. 여자고학생상조회(女子苦學生相助會), 조선여자교육협회 등 여성단체가 결성됐고 1927년에는 전국적인 여성조직인 근우회를 탄생시켰다. 3·1운동을 거치면서 학생, 노동자, 여성 등 새로운 대중운동의 주체가 성장했고, 1920년대 학생운동, 노동운동, 여성운동, 청년운동 등 다양한 대중운동의 절정기를 맞이했다.

3·1운동 이후 1920년대 일제는 ‘문화정치’라는 분리통치(divide & rule) 방식으로 통치방법을 전환했다. 다양하고 치밀해진 식민지배 방식이었다. 이에 대응하여 다양한 대중운동과 사회주의운동도 등장했다. 독립운동의 방략에 사회주의 사상이 결합되면서 독립운동의 노선도 다양해지고 갈등의 양상을 빚기도 했다. 그러나 난관과 갈등 속에서도 독립이라는 공동 목표를 위해 연대와 협력을 실천했다. 1945년 8월 15일 미국과 소련이 한반도를 분할 점령한 이후 남북에 2개의 정부가 수립된 것을 기준으로, 일제강점기 독립운동도 두 개로 분열되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2개의 국가로 갈라서기 위해 독립을 바란 사람은 없었다.

세계가 함께 하는 미래지향의 평화운동

1차 세계대전 중인 1917년 사회주의 국가 소비에트 연방이 성립되자 한국의 지식인들은 미국식 자본주의만이 아니라 소련식 사회주의 방식으로 일본 제국주의를 무너뜨리고 독립을 얻는 방략을 접하게 되었다. 식민지 약소민족의 해방운동으로써 사회주의 운동이 시작된 것이다. 계급적 목적보다 민족적 목적이 우선이었다. 그래서 일제의 지배정책과 세계정세를 반영하여 1927년 신간회를 창립하고 좌우합작의 독립운동을 실천했다.

일본이 태평양전쟁을 일으키고 2차 세계대전의 전쟁범죄를 일으켰을 때 국내외 독립운동가들은 일본과 군사적 전쟁을 준비하며 정치적·이념적 차이를 넘어서는 광범위한 연대를 도모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41년 11월 28일 조소앙이 기초한 삼균주의를 채택하여 독립운동 내부의 좌우익사상을 지양, 종합하여 독립운동의 기본 방략 및 미래 조국건설의 지침으로 삼았다. 그리고 3일 뒤인 12월 10일 일제의 진주만 공습으로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자 대일 선전포고를 했다.

1942년 5월에는 김원봉(임시정부의 군무부장과 한국광복군 제1지대장 및 부사령관 등을 역임)이 주도하던 조선의용대를 광복군에 편입시켰고, 통합과 연대가 필요한 시점에는 이념을 넘어서는 통합과 연대를 실천한 독립운동의 역사가 이어졌다.

독립운동은 정치적 독립만이 아니라 평화의 보편가치를 실천했다. 안중근은 일본이 ‘동양평화론’을 내세우며 아시아 전역의 침략을 합리화한 침략적 평화의 허위를 비판하고 아시아 각국의 독립을 정당화하는 ‘동양평화론’을 주장한 바 있다. 1차 세계대전의 전후 처리를 위한 베르사이유 강화회의가 ‘파리평화회의(Peace Conference at Paris)’로 불리면서 ‘평화’는 지구촌의 새로운 희망의 언어가 되었다. 그러나 파리평화회의의 평화도 강대국들이 주도하는 협상을 통해 만드는 평화였다. 아시아의 식민지였던 조선은 평화회의의 참가권이 없었고, 평화 협상의 주권을 행사할 수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19년 한국인은 유럽이 주도하는 서양 중심의 ‘세계평화’도, 일본이 주도하는 ‘동양평화’도

아닌 세계인 모두가 평등하게 독립과 자존을 이루는 평화를 주장했다. 1919년에 발표된 ‘3·1독립선언서’, ‘대한독립 선언서’, ‘조선독립의 서’ 등에서 평화는 강자들의 특권이 아니라 세계 인류가 평화의 주체가 되는 것을 주장했다. 강대국 중심의 평화에서 누락된 평등적 평화, 약자의 평화, 동아시아의 평화를 주장한 것이다. 즉 독립운동에서 지향한 평화는 침략전쟁이 없는 평화, 강대국만이 아닌 인류 모두가 주체가 되는 평화, 인간의 자유와 행복이 구현되는 보편적 가치로서의 평화였다. 독립운동은 세계가 함께 하는 미래지향의 평화운동이었다.

한반도 평화통일의 미래, 독립운동에서 배워야

독립운동의 역사는 평화통일의 미래 비전에 많은 가르침을 주고 있다. 첫째, 과거 독립운동이 세계 평화의 길이었던 것처럼, 남북의 통일도 세계 평화의 핵심이 되는 시대의 흐름을 읽고, 통일에 대한 비전과 희망을 갖는 것이다. 지난 2018년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 이후 한반도가 세계 평화의 중심지로 부각된 것은 평화통일이 남북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 평화의 핵심이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둘째, 통일의 미래를 열기 위해서는 독립운동 당시 이념적, 정치적 차이를 극복하고 통합과 연대를 모색했던 것처럼, 정치적, 이념적으로 편협한 차이를 극복하고 통합과 연대를 실천해야 할 것이다. 셋째, 민주와 인권의 가치가 실현되는 평화통일을 지향하는 것이다. 독립운동이 모든 사람이 주체가 되는 나라를 만들기 위한 실천이었던 것처럼, 통일은 인간에 대한 민주적 배려와 인권의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오늘날 세계는 다문화사회이다. 국경을 넘어서 사는 삶이 일상화된 시대에 편협한 인종적 민족주의로는 통일을 실현할 수는 없다. 세계인의 평화 공존과 공생을 지향하며 민주와 인권을 실현하는 것이야말로 이 시대 평화통일의 진정한 가치이다. 3·1운동 100년, 독립운동의 역사를 딛고 평화통일의 미래를 열어가야 할 때이다.

이 지 원
대림대 교수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