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1

SPECIAL 01
북·미 재협상 타결 위한
원동력 키워나가야

불확실성의 증가, 그러나 비관할 필요 없어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도약대가 될 것이라 기대되었지만, 결과는 그렇지 못했다. 김혁철과 비건 실무 라인의 사전 협상 과정은 대체로 순조로워 보였다. 회담 일자가 다가오면서 종전 선언과 연락사무소 설치 합의에 근접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하였다. 드디어 이번 하노이 회담을 통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촉진하기 위한 실질적 발판이 마련될 수 있겠다는 기대가 커졌다.

하지만,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합의문에 서명하지 못했다. 아쉬움이 크게 남는 결과였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핵심적 이유는 북한의 비핵화 조치와 미국의 상응조치의 수준과 범위에 대한 견해차라 할 수 있다.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의 과정이 결코 간단치 않은, 험난한 과정임을 다시 한 번 보여주는 결과였다.

이번 하노이 회담 결과로 향후 한반도 정세의 불확실성이 증가하긴 했지만, 비관할 필요는 없으며 여전히 긍정적 전망이 가능하다. 교착상태가 장기화된다면, 트럼프 행정부가 대북정책 성과 부재로 인해 감내해야 하는 국내 정치적 부담이 상당할 것이다. 더욱이 2020년 미국 대선 일정이 다가오고 있다. 북한도 미국과의 타협 없이는 경제건설 총 집중 노선의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2020년은 북한의 경제발전 5개년 계획의 마지막 해이다. 양자 모두에게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북·미가 공유하는 궁극적 이득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경제발전의 토대가 되는)이라는 점이 양자 간 타협을 촉진 할 수 있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밑거름

특히 작년 6·12 싱가포르 합의의 주요 조항인 북·미 간 새로운 관계 수립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관련하여, 이번 하노이 회담에서 북·미 정상은 연락사무소의 개설과 종전선언에 관한 합의에 매우 근접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이러한 양 정상의 의견 접근은 그 자체로 향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논의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밑거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종전 선언은 평화체제 구축의 입구로써 역할을 할 수 있다.

한국전쟁의 종식에 관한 종전선언은 법적인 의미를 가지지는 않지만 중요한 정치적·상징적 의미를 가질 수 있으며, 또한 차후에 1953년 정전협정을 법적으로 대체하는 4자(남·북·미·중) 간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협상 착수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비록 공식 합의는 없었지만, 종전선언에 대한 의견 접근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분명한 진전이라 평가될 수 있다.

다음으로 평양-워싱턴 연락사무소의 개설에 대한 공감대 형성도 중요한 성과라고 할 수 있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은 북·미 간 적대관계 청산과 관계 정상화 조치의 이행을 요구하며, 관계 정상화는 결국 대사급 수교로 공식화 될 수 있다. 연락사무소의 개설은 궁극적으로 대사급 수교관계를 맺기까지의 과정에서 외교관계 형성을 위한 초기 단계 조치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미국과 베트남의 경우 1995년 1월 연락사무소가 개설된 지 불과 6개월 만인 1995년 7월 국교정상화를 이루었다. 여전히 상설적인 공식적·직접적 연락채널이 부재하다고 볼 수 있는 북·미관계에서 연락사무소의 설치는 양자 간 정상적 외교관계의 수립을 위한 첫걸음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이와 같이 이번 하노이 회담에서 북·미 정상은 합의문 서명에는 실패했지만, 몇몇 중요 의제들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하기도 했으며, 회담 기간 시종일관 서로에 대한 신뢰와 존중을 표했다. 회담 직후 합의 불발에 대한 책임을 논하는 양측의 목소리에도 서로에 대한 격한 비난이 포함되지는 않았다. 향후 대화·협상 재개 가능성을 이미 염두에 둔 자세와 태도를 양자가 모두 보이고 있다. 향후 일정한 기간 동안 교착 상태의 발생은 불가피 하지만, 협상 재개의 가능성은 상당히 높다. 물론 낙관만 할 수는 없고, 교착 장기화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협상이 가능한 이른 시일 안에 재개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그리고 이번에 재개되는 협상은 반드시 타결이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한국 정부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라 할 수 있다.

한국정부의 주도적 역할과 남북 간 적극적 소통 필요

당면한 북·미 협상 교착 국면을 타개하고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촉진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첫째, 현재 북·미 협상 교착 국면의 타개를 위해, 2018년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형성과 진전 과정을 복기할 필요가 있다. 2017년 전쟁위기설까지 제기되었던 한반도 정세가 평화의 과정으로 전환되었던 것은 한국의 주도적 역할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평창동계올림픽을 평화올림픽으로 만들고자 했던 일관된 노력이 있었고, 특히 2017년 12월에는 한미연합훈련 연기를 능동적으로 제안하여 쌍중단을 유도하고 북·미 협상의 여건을 조성하였다. 그리고 2018년 3월 5일 대북 특사 파견으로 북한의 비핵화 의지 및 미국과 협상 의지를 확인하고 3월 8일 대미특사 파견을 통해 북·미 정상회담 개최 약속을 유도하였다. 5월 북·미 정상회담 취소 위기 상황은 남북 정상의 판문점 긴급회담을 통해 돌파했다. 9월 남북 정상회담에서는 김정은 위원장의 (미국의 상응조치를 조건으로 하는) 영변 핵시설 폐쇄 의지를 확인하고 트럼프 대통령의 제2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 약속을 유도하였다.

이처럼 한국의 능동적, 적극적 역할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추동해왔고, 또한 남북관계가 북·미 간 대화·협상과 관계 개선을 촉진해왔다. 하노이 회담 합의 실패 이후 현재의 교착 상태를 타개하기 위해서도 마찬가지로 한국의 역할이 매우 중요할 것이다. 우선 이번 합의 실패의 배경과 이유에 관한 북한과 미국의 입장을 면밀하게 파악하고 분석해야 할 것이다. 그 분석에 기초하여 가능한 중재안을 직접 만들고 제시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중재안을 위해서는 북한이 선호하는 단계적 접근안과 미국이 선호하는 것으로 보이는 일괄타결안을 모두 고려한 복수의 동시 이행 로드맵을 준비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과 미국의 입장을 면밀하게 확인하고 중재하기 위해 대북·대미 특사 파견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또한 남북 정상회담 추진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남북 정상회담은 이미 계획되었던 김정은 위원장의 답방 방식을 취하거나 또는 작년 5월 26일 판문점 긴급회담과 같은 형식을 취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노이 회담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문재인 대통령에게 김정은 위원장과의 대화를 권유하고 중재해줄 것을 요청하였다. 한국의 주도적 역할, 남북 간 적극적 소통, 그리고 대미협력을 통해 다시 한 번 북·미 교착 상황을 타개하고 핵협상을 촉진해야 할 시기라 할 수 있다.

둘째, 북·미 교착 국면 타개를 위한 노력과 동시에 한국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구체적인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만약 북·미 협상이 다시 시작되고 타결에 이른 다면, 그 타결은 곧 정치적 의미의 종전선언을 넘어서 제도화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다자간 협상, 즉 남·북·미·중 4자 간한반도 평화협정 협상의 착수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 가능성에 미리 대비하고, 구체적으로 준비해야 할 것이다.

한반도 평화체제는 전쟁의 재발을 방지하는 소극적 의미의 평화를 넘어서 전쟁 위험이 제거된 항시적인 교류·협력 상태를 지향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한반도 평화체제의 구축은 현재의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기 위한 법·제도적 장치인 평화협정의 체결, 군사적 긴장완화 및 충돌 위험 해소를 위한 군비통제의 실천, 그리고 제도적 측면을 넘어 관념적 측면에서 관계의 적대성 청산과 신뢰 구축을 요구한다. 이 중에서 특히 평화협정은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당사자들의 공약을 명문화하는 것으로서, 전쟁의 법적 종식과 안전보장을 넘어서 군비통제와 관계 정상화 등에 대한 상호 간의 책임과 의무를 명시할 수 있다. 따라서 당사자들이 한반도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이행하는 과정은 곧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과정이 될 것이다.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4자 협상이 올해 안에 시작될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아직 그와 관련한 국내외적 논의는 활발하지 못하다. 논의의 활성화와 더불어 협상 착수 및 체결을 위한 실질적 준비가 필요하다. 우선 기존 북·미 양자 간 핵 협상과 4자 간에 진행될 것으로 예상되는 평화협정 협상이 각각 어떤 의제를 다룰지 그리고 4자 협상을 위한 협의체는 어떻게 구성할 지 등에 대한 논의와 준비가 필요할 것이다. 또한 평화협정 협상에서 다루 어질 논쟁적 의제들에 대한 한국의 복안을 미리 구체적으로 마련하고 타협 방안도 준비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한반도 군축 실현 방안 그리고 평화협정 이행의 관리·감독 방안 등에 대한 구체적 준비가 필요하다.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이 합의문 발표 없이 끝났지만, 협상의 동력은 여전히 살아있고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는 지속될 수 있다. 협상의 재개, 타결, 평화과정의 촉진을 위해서 특히 한국의 능동적·적극적 역할이 매우 중요할 것이다. 우선 현재의 북·미 협상 재개 및 타결을 위한 적극적인 중재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동시에 평화체제 구축을 논의하기 위한 다자 협상 테이블의 구성과 의제 설정, 그리고 논쟁적 의제에 대한 한국의 복안과 타협안을 구체적으로 준비해야 할 것이다.

김 상 기 김 상 기
통일연구원 평화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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