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2

SPECIAL 02
비핵화와 평화체제,
선순환 과정으로 만들어야

다시 시작된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 그러나…

2018년은 한반도 평화에 있어 새로운 변화의 해였다. 평창올림픽에 북한 선수단과 대표단이 참가하고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한 단일팀이 성사된 평창올림픽은 명실상부한 평화올림픽으로 자리매김했다. 이어 한국특사단의 평양 방문 이후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이라는 커다란 성과를 이루어 한반도에 평화의 봄이 오고 있다는 희망이 성장했다.

남북 정상회담에서는 “한반도의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노력할 것을 합의하였고, 이를 위해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여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노력할 것을 약속하였다.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의 공동성명에서도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은 “한반도의 항구적이고 안정된 평화체제(a lasting and stable peace regime on the Korean Peninsula)”를 만들어 나가기로 합의하였다. 이로써 2008년 6자회담 중단과 함께 사라졌던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가 다시 전면에 부각되기 시작했다.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에 대한 새로운 논의가 남북한뿐만 아니라 북·미 사이에서도 다시 시작된 것이다.

2019년의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은 한반도 평화에 대한 희망을 지속시킬 수 있는 커다란 기회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했듯 북한은 그동안 새로운 핵실험이나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하지 않았다. 북한에 억류 중이던 한국계 미국인 3명도 집으로 돌아갔다. 이러한 진전은 분명 싱가포르에서의 역사적인 첫 번째 정상회담에 큰 영향을 받은 것이었으며, 하노이의 두 번째 북·미 정상회담을 가능하게 만든 요인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2019년 신년 국정연설에서 밝혔듯이 한반도는 전쟁 위기를 넘겼다. 2017년의 한반도를 돌이켜 보면 싱가포르와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사건이었다. 2017년 연초부터 트럼프 대통령은 연두 국정연설, 국가안보전략보고서, 국방전략보고서, 핵태세검토보고서 등 다양한 대외전략 보고서를 통해 북한에 대한 ‘최대의 압박(Maximum Pressure)’을 강조했었다. 어느 순간 대북 관여정책(Engagement) 논의는 사라졌다. 북한은 2017년 9월의 6차 핵실험 이후 11월 29일 ICBM급으로 평가되는 ‘화성 15형’ 로켓을 발사한 뒤 대미 핵 억지력의 완성을 선언하며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켰다.

2018년의 커다란 성과에도 불구하고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결과와 그 이후의 과정이 결코 만족스러웠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한 긴장과 갈등이 하노이 정상회담을 통해 본격적으로 나타났다. 싱가포르에서 트럼프는 공동성명서에 그가 원했던 CVID(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enuclearization)를 넣지 못했다. 북한 역시 그렇게 원하던 경제제재 해제를 합의문에 포함시키지 못했다. 국제사회는 싱가포르 북·미 공동성명의 짧고 간단한 합의를 보고 당황했던 것이 사실이다. 미국과 북한이 공언한 것을 고려하면 그보다 더 세부적이고 분명한 합의가 이루어지기를 전 세계는 기대했었다. 트럼프는 기자 회견에서 한 시간 이상 합의의 중요성을 설명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싱가포르 정상회담은 큰 틀에서 비핵화 및 평화체제 합의를 이끌어냈고, 과거 어떤 미국과 북한의 지도자들도 연출하지 못한 역사적인 북·미 정상회담을 만들어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승부사로서의 면모를 다시 한 번 보여주었고, 김정은 위원장은 국제 사회에서 정상국가 지도자로서 새로운 이미지를 구축 할 수 있었다.

접점 찾지 못한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하지만, 하노이에서의 두 번째 북·미 정상회담은 싱가포르 회담만큼의 결과물도 도출하지 못했다. 싱가포르 정상회담이 ‘개최’ 자체만으로도 역사성을 부여받았다면, 하노이 정상회담은 합의 내용을 통해 중요성을 증명할 필요가 있었다. 하노이 회담에서는 싱가포르 회담보다 더 진전되고 세밀한 합의를 이끌어 내는 것이 필요했다. 그러나 그러한 합의에 도달하지 못한 북·미는 결국 공동성명서에 서명하지 못했다. 앞으로 북·미 간 협상이 지연될 가능성이 있고, 그 과정에서 심각한 위기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은 최소한 소위 ‘스몰딜(small deal)’을 만들어 낼 수 있었으나, 그 정도의 합의도 이루지 못했던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싱가포르 공동성명의 합의는 비핵화와 평화체제에 대해 매우 포괄적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하노이 정상회담은 싱가포르 회담의 큰 틀을 구체화해야 하는 자리였다. 비핵화와 평화체제의 다양한 세부 어젠다들이 어떻게 단계적으로 이행될 수 있는지, 그 교환관계와 세부적 어젠다는 어떤 성격일지를 명확히 하는 자리였다. 그러나 북·미는 세부적인 어젠다와 이행순서에 합의하지 못함으로써 회담을 어렵게 만들었다. 북한은 미국이 경제제재를 완전히 해제해 주고 한국전쟁 종전을 선언하여 체제보장을 해주며 평화체제의 기반을 다져주기를 원했다. 그러나 미국은 북한이핵 및 미사일 시설과 물질에 대한 완전한 신고와 검증을 통해 비핵화의 의지를 이행하기를 원했다. 비핵화와 평화체제의 동시적 이행을 위한 과정에서 하노이 정상회담은 세부적인 행동계획을 세우는 과정이었으나 그 교환 관계에서 북한과 미국은 보다 큰 담판을 하려고 했기 때문에 만족할만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던 것이다.

양자 간 딜레마 해소가 문제 해결의 핵심

향후 협상은 실무 차원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싱가포르 정상회담과 그 이후의 과정에서는 실무차원의 세부적 합의를 이루어내지 못했다. 하노이 회담 합의의 실패는 실무차원의 논의를 정상급 차원의 빅딜로 격상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갈등 때문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과 북한의 국내 정치적 상황을 고려할 때 트럼프 대통령이나 김정은 위원장 모두 북·미관계를 또 다른 파국으로 몰아갈 수는 없을 것이다. 국제 사회는 하노이 정상회담 이후에도 여전히 더 자세한 비핵화와 평화체제의 계획표를 보고 싶어 한다. 이를 위해서는 북한과 미국 사이에 비핵화와 평화체제에 대한 공감대를 넓혀가는 것이 필요하다.

향후 협상이 어떤 방향으로 갈지는 아직 불확실한 측면이 많다. 비핵화와 평화체제 관계는 여전히 해결하기 어려운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처럼 북한은 북·미관계가 적대관계에서 새로운 관계로 근본적으로 변화되어 체제보장과 평화협정이 우선적으로 이루어져야 완전한 비핵화가 이행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반면 미국은 여전히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만이 한반도에 진정한 평화를 달성시킬 수 있는 조건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는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어느 한쪽의 진전이 더딜 경우에는 다른 한쪽도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많다. 비핵화와 평화체제의 이 딜레마는 새롭게 발생한 문제가 아니라 과거에도 지속적으로 반복되었던 문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양자 간의 딜레마를 해소하는 것이 문제해결의 핵심적인 부분이 될 것이다. 사실 비핵화와 평화체제의 딜레마는 싱가포르와 하노이의 북·미 정상회담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한반도 평화 가능성에 대해 미국은 단·중기적으로 보고 있는데 반해 북한은 장기적으로 보고 있다. 합의와 이행만 된다면 북한의 비핵화는 단·중기적으로 해결될 수 있지만, 북·미관계의 근본적 변화는 한반도 주변 안보환경이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는 한 실현되기 어려운 장기적 과제이다. 따라서 그러한 북·미 간 차이의 해소가 비핵화와 평화체제 사이의 딜레마를 극복하고 조화를 이루게 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싱가포르 회담과 하노이 회담은 그 오랜 과정을 만들어가는 중요한 기회였다. 도무지 풀리지 않는 상황에 대한 아쉬움이 크지만, 앞으로도 비핵화와 평화체제의 길은 멀고도 험한 행군이 될 것이다.

다른 한편, 남북 정상회담뿐만 아니라 북·미 정상회담에서도 비핵화의 주체와 대상을 분명하게 설정하지 않아 향후 커다란 논쟁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북한은 수차례의 핵실험 이후 그동안 핵무기 보유국임을 선언해 왔다. 북한은 2012년 4월 이후 ‘조선민주주의공화국 사회주의헌법’에서 ‘핵무기 보유국’임을 명시했고, 또한 2013년 4월 1일 최고인민회의 제12기 7차 회의에서 “자위적 핵보유국의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할 데 대하여”를 핵무력경제 병진노선의 근거 법령으로써 채택하였다. 이 법령과 더불어 여러 가지 문서에서 북한은 핵무기 보유국으로서의 지위를 선언하고 비핵화가 아닌 핵군축을 강조해 왔다. 따라서 ‘한반도 비핵화’라는 용어를 북한이 향후 비핵화 협상에서 남한 내의 미국 핵무기 배치 문제뿐만 아니라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전략자산 전개, 핵우산, 핵군축 등을 포함하는 의미로 사용하며 논쟁할 가능성이 존재한다.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이 폐기되고 북·미 평화협정이 체결되어 관계가 정상화된 이후라야 비핵화를 고려해 볼 수 있다는 북한의 입장은 이러한 관점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 이전에는 핵무기 보유국으로서 핵억지력을 가지고 북한만의 비핵화가 아닌 미국 등 다른 핵보유국들의 비핵화도 상호적으로 이행되어야한다는 주장이다. 중국 역시 한반도 비핵화의 새로운 개념 정의를 통해 쌍궤병행(비핵화와 평화협정)의 다음 단계로 이를 논의할 가능성이 있다.

악순환 끊어내고 새로운 선순환 만들어야

과거에나 현재나 비핵화와 평화체제의 딜레마가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원인은 한반도 위협의 근원에 대해 북·미 사이에 인식차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북한은 핵 문제를 북한의 문제로 보지 않고 한국과 미국을 포함한 한반도 전체의 문제로 인식해 왔다. 김일성 이후 북한은 한반도 핵 문제가 북핵 프로그램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미국이 냉전시기 한반도에 핵무기를 도입함으로써 시작된 것이라고 인식해 왔다. 북한이 ‘북한 핵문제(North Korean nuclear problem)’라는 표현을 비판하고, ‘조선반도의 핵문제(Nuclear issue on the Korean peninsula)’라는 표현을 고집해 온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북한의 핵무기가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보호하고 있다는 것이 북한의 인식이었다.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는 것은 미국이며, 북한이 대미 핵억지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한반도 평화가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북·미 간 의 인식차이는 비핵화와 평화체제에 대한 협상과 합의를 어렵게 만드는 주요한 요인이었다. 미국이 북한에게 CVID를 요구할 때 북한은 CVIG(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Guarantee)를 요구할 것이고, 미국이 FFVD(Final, Fully Verified Denuclearization)을 요구할 때 북한은 FFVG(Final, Fully Verified Guarantee)로 대응할 것이다.

북핵 위기가 처음 발생한 1990년대 초반 이후 사반세기가 넘는 기간 동안 북한과 미국 사이에 합의가 없었던 것이 아니다. 1994년 제네바 합의, 2005년 9·19 공동성명, 2007년 2·13 및 10·3 합의, 2012년의 2·29 합의 등 북한과 미국은 많은 합의를 이끌어 냈다. 문제는 합의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합의 이행이 잘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런 이유 로 북핵문제는 위기 이후 협상, 합의 이후 붕괴, 또 다른 위기라는 악순환 사이클을 만들어 왔다. 이제 이러한 악순환 과정을 끊어내고 선순환 과정을 만들어내야 한다. 하노이 정상회담의 합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선순환 과정을 만들어내길 기대한다.

황 지 환 황 지 환
서울시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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