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의 길을 묻다

새로운 100년을 여는 출발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의 희망을 만드는 것입니다”

오랜 세월 평화통일을 위해 힘써온법륜스님(평화재단 이사장)은 새롭게 변화하는 한반도 상황을 막힘없이 풀어냈다. 대립과 갈등을 넘어 평화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우리의 역할과 자세는 무엇인지, 그의 명쾌한 ‘즉설’을 들어보자.

오래된 것들은 우리에게 안정감을 준다. 그러나 그 안정감은 세월의 모진 풍파를 견딘 후에야 얻을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20년 가까운 세월을 시절이 좋을 때도, 시절이 나쁠 때도 평화와 통일에 힘써온 법륜스님이 그렇다. 그가 말하는 평화와 통일의 길에는 알 듯 말 듯 한 안정감이 느껴졌다. 최근 그의 가장 큰 관심사는 대북 인도적 지원이다. “평화 문제를 비롯해 북한 주민들의 삶의 곤궁함을 덜어줄 수 있는 지원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가장 큰 관심사죠.”

인도적 지원은 보편성 문제, 정치적 해석 말아야

최근 남북관계가 상당히 개선되었지만, 아직 인도적 지원 등에 관련한 남북협력 사업은 본격화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해 스님은 가능한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한다. “남북관계가 아직 완전히 풀리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첫째는 북한 주민 중에서도 가장 열악한 고아원, 양로원, 장애인 시설 등에 대한 인도적 지원, 둘째는 식량증산과 관련한 지원, 셋째는 황폐한 산림을 복구하는 묘목 지원 등 다른 논쟁에 휘말리지 않으면서도 북한 주민들이 필요로 하는 일을 중심으로 인도적 지원을 시작하면서, 다른 부분들도 논의해 나가려고 합니다.”

그동안 대북지원은 남북관계의 정치 환경에 많은 영향을 받아왔다. 과거 보수정부를 거치면서는 북한에서 지원을 거부하는 흐름도 있었다.

“지난 시기 남한에서 인도적 지원을 거절하니까. 북쪽에서도 ‘그럼 안 받겠다’는 감정적 문제가 있었어요. 우리가 지원하는 것은 북한이 ‘불쌍하니까 도와준다’가 아니라 그것이 어떤 나라, 어떤 정치체제, 어떤 종교냐에 관계없이 인류의 보편적 문제이기 때문에 하는 겁니다. 인간 생존이 위협받을 때 인류의 책임으로서 고통을 함께 나누자는 측면이거든요. 인류의 보편적 정신에 따라 인도적지원을 해야 하고 북한도 그런 측면에서 지원을 수용해야합니다. 다만 지금 북·미가 큰 틀에서 협상을 하는 상황에서 정치적인 고려 사항이 있다보니 어려움이 있는데, 인도적 지원은 제공하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정치적으로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스님은 2차 북·미 정상회담에 희망을 걸었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개최되면, 국제사회나 남측 입장 에서도 지원이 쉬워지고 북측도 요청하기가 수월해질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한 가지에만 집중하는 것도 대단한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데, 스님은 대북지원뿐 아니라 평화통일 운동, 인권운동, 연구활동 등 여러 분야를 넘나들며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그 이유에 대해 그는 ‘보편성’과 ‘특수성’이란 말을 꺼냈다.

“여러 가지를 하고 싶어서 한 건 아니고, 인류의 보편성에 기초해서 하는 겁니다. UN에서 하는 걸 보세요. 사람이 굶어죽는다 하면 인도적 지원을 하고 난민이 생기면 난민을 지원하고, 인권이 열악하면 인권 개선하라고 하잖아요. 저도 마찬가지에요. 그런데 일부 정치적 견해를 가진 사람들은 ‘굶어죽든 말든 그냥 두지 왜 돕느냐’고 합니다. 제가 보기에 그건 ‘정치’지 ‘인도적 지원’이 아닙니다. 인도적 지원은 그 사람의 정치적 이념이 무엇이든 종교가 무엇이든 관계없이 하는 겁니다. 그래서 북한에 나무가 없으면 나무를 심고, 농사를 못 하면 농사를 짓도록 지원하고, 인권이 열악하면 인권을 개선하고, 병들면 약품을 지원하는 겁니다. 어떤 면에서 여러 가지를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하나입니다. 다만 고려해야 할 특수성이 있어요. 예를 들어 인도적 지원도 하고 탈북 난민도 돕는 단체가 있어요. 북한 정부 입장에서 보면 인도적 지원을 할 때는 좋아하지만 탈북 난민을 도우면 ‘왜 민족배신자를 돕느냐?’고 반박할 수 있죠. 그런 특수성을 고려하다 보니, 단체를 여러 개 만들 수밖에 없었죠.”

우리의 관점 지키면서 나섬과 물러섬 조절해야

최근 1년 동안 한반도를 둘러싼 환경은 빠르게 변했다. 지난 한 해 동안 3차례의 남북 정상회담과 역사상 처음으로 북·미 정상회담이 열렸고, 민간 교류도 활발해졌다. ‘한반도의 대전환’, ‘새로운 기회’라는 말이 나오는 가운데, 그는 “대립과 갈등에서 협력과 평화로 가는 큰 틀에서는 합의가 이루어졌지만 넘어야 할 산이 많기에 그 과정이 굉장히 더딜 것”이라며 인내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하나의 구질서가 해체되면 약간의 혼란기를 거쳐서 새로운 질서가 재편되는 것이 일반적인 역사의 과정입니다.

우리는 지금 냉전의 구질서가 완전히 해체되지 않은 상태에서 미·중의 새로운 패권 경쟁의 신질서가 구축되는 과정에 있어요. 구질서의 해체와 종결을 신질서 재편에 어떻게 유리하도록 할 것이냐가 중요합니다. 지금 동아시아에 새로운 안보질서, 새로운 판도가 형성되고 있어요. 대립과 갈등에서 평화로 가는 것은 구질서의 해체입니다. 그러나 신질서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 혼란스러운 상황이니 속도가 더딜 수밖에 없어요. 그런 관점에서 한반도 정세를 봐야 합니다.”

조급해하기 보다는 과정과 흐름을 찬찬히 살펴야 한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스님은 그 과정에서도 우리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드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미국이나 북한이 하자는 대로 따라가거나 상황을 보지도 않고 우리 마음대로 해서는 안 됩니다. 예를 들어 전쟁이 나면 제일 크게 피해를 보는 것은 우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쟁을 막아야 하는 것이 우리의 제일 큰 과제입니다. 다만 전쟁위험의 갈등을 어떤 방식으로 종결할 것이냐 하는 것은 우리가 이래라저래라 하기엔 한계가 있어요. 현재 이 문제는 기본적으로 북한과 미국이 풀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관점을 잘 지키고 이해관계를 고려해 나섬과 물러섬을 적절하게 조절해야 합니다.”

미래 100년을 여는 자세, 결국은 희망

지난 2012년 스님은 『새로운 100년』이란 제목의 책을 발간했다. 이 책은 지난 5년간 공공도서관에서 북한·통일 관련 도서 대출 순위 1위라는 기록을 세웠다. ‘지난 100년의 과거를 거울삼아 앞으로의 100년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그는 세 가지 현답을 제시했다.

“우리는 분단으로 인해 완전한 독립을 이루지 못했어요. 완전한 독립을 위해서는 평화적 통일을 이뤄야 합니다. 그렇다고 평화적 통일만 하면 국가 발전이 될까요? 그것은 과거를 해결하는 것이지 미래를 개척하는 게 아닙니다. 미래 100년을 위해서는 평화적으로 통일된 대한민국이 주변국과 협력하며 공동번영 해야 합니다. 그렇게 아시아 시대를 준비해 나가야죠. 근대 인류 문명이 유럽과 북미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아시아로 올 가능성이 있습니다. 아시아가 세계 문명의 중심일 때 아시아의 중심은 한국이 되어야 합니다. 정리하면 첫째는 평화와 통일, 둘째는 주변국과의 공동 번영, 셋째는 문명의 중심이 되는 그런 희망을 꿈꾸면서 미래 100년을 맞아야 하지 않을까요?”

평화 통일에 대한 젊은 세대의 관심을 모으기 위한 제안도 이어졌다.

“사람이 어려움을 참고 견디는 원천은 희망입니다. 나라를 빼앗긴 일제강점기의 젊은이들에게는 독립이라는 과제와 희망이 있었죠. 1960년대는 가난해도 노력하면 잘 살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고요. 1980년대에는 자유롭게 살아보고 싶은 민주화의 꿈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떤 꿈을 꿀 수 있을까요? 그것은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로 나아가는 일입니다. 통일이 우리 세대의 꿈이라는 것을 젊은이들이 인식해야 해요. 지금처럼 한반도 정세가 변하는 흐름 속에서 이제는 평화통일을 이루자는 꿈이 생겨야죠.”

남북관계를 둘러싼 환경의 변화가 국민들에게 냉소감을 준다는 우려에 대해, 그는 오히려 유쾌하게 받아쳤다. “그럴 수도 있죠. 그런데 자기가 원하는 게 다 이뤄질 수는 없어요. 어떤 일이 이뤄지면 다행이고 아니면 그만이라고 하는 것은 ‘욕망’이죠. 희망은 이뤄질 때까지, 이뤄지도록, 끊임없이 도전하는 것입니다.”(웃음) 그의 얼굴에선 확신이 묻어나왔다.

그렇다면 ‘국민이 중심이 되는 통일’에 대한 그의 생각은 어떨까.

“통일이라는 것은 현실적으로 엄청난 정치적 결단이 있어야 해요. 이것을 뒷받침 하려면 국방, 외교, 경제력뿐 아니라 국민의 의견을 통합해내는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국민들이 민간차원에서 교류한다고 통일이 이뤄지는 것은 아니에요. 실질적으로 통일에 영향을 주려면 국민들이 이념을 떠나 통일을 지향하고 추진하는 정부를 구성해야 합니다. 독일의 경우 대립 상태에 있던 동서독 관계를 화해 국면으로 전환한 것은 진보정부였지만 그것을 지속해서 통일로 나아간 것은 보수정부였습니다. 평화와 통일이 민족과 국가의 과제라면 국민들이 그것을 추진할 수 있는 정부를 지속해서 지원해야 합니다. 그래야 정권이 바뀌어도 이 문제를 지속할 수 있어요.”

올 한 해 많은 변화를 앞두고 우리 정부와 국민의 역할에 대한 즉설도 이어졌다.

“첫째는 우리가 가진 것들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평화가 지켜져야죠. 또 통일의 희망을 절대 놓쳐서는 안 됩니다. 평화는 현재의 이익을 지키기 위함이고 통일은 미래의 이익을 만들기 위함입니다. 문제는 평화를 지키고 통일로 나아가는 데 국민들의 이해관계가 다양하다는 겁니다. 이 과정에서 다수 국민의 의사가 합의점을 찾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정리하면 첫째 평화를 확고히 지킨다. 둘째 통일의 희망을 놓지 않는다. 셋째 평화통일로 가는 데 다양한 국민의 의사를 통합하면서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지금까지 1500회 가까이 ‘즉문즉설’ 강의를 진행한 그에게 가장 중심적으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의 답은 간단명료했다.

“살아있는 사람은 출생과 성장 과정과 현재 조건에 관계없이 행복할 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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