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

보건의료 협력은
한반도 질병안전 위한 투자

“북한과 협력 사업을 하고 싶은데 무엇을 하면 좋을까요?”
지난해부터 남북관계가 개선되자 대북사업을 희망하는 사람들이 처음으로 했던 질문이다. 2002년부터 대북 보건의료 지원 사업을 수행한 경험이 있는 대북 전문가들은 아마도 과거 인도적 지원으로 수행된 의약품 지원, 병원 현대화, 의료인 교육 사업이 아닌 새로운 남북협력 방안을 모색하고 있기 때문에 ‘무엇을 하면 좋을까?’라는 고민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10년간 북한과 보건의료 교류·협력이 사실상 끊긴 이후, 북한의 현황이 제대로 파악되지 못한 상황이고 오늘날의 북한이 2000년대와는 다르게 다각적으로 변화한 지금, 어떤 사업을 계획하고 실행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많다.

대북 인도적 지원 사업의 역사

한국정부의 대북 원조는 1995년부터 시작됐다. 북한이 UN에 수해긴급구호 요청을 했고, 이에 한국정부도 동포애 차원에서 식량지원을 한 것이 시작이었다. 남북협력기금을 활용한 보건의료분야 지원이 ‘대북 인도적 지원’ 사업으로 아직까지 분류되고 있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보건의료사업을 바라보는 한국정부의 시각은 ‘원조사업’이다. 북한과 보건의료사업을 하고자 한다면 우선 인도적 지원의 대상이 아닌 협력의 관점에서 남북이 함께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할 시기가 되었다.

인도적 지원을 먼저 거부한 것은 북한이었다. 남북한 보건의료 협력이 활발했던 2005년, 북한이 먼저 의약품, 의료물품, 기자재 지원 등의 인도적 지원을 거부하고 ‘은나는 사업’, ‘통 큰 지원’의 개발지원 전환을 요구했다. 2005년 이전까지는 남북협력 사업이라기보다는 북한 보건의료 체계의 긴급 정상화를 위한 물품공급 지원 위주였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남북협력사업’이라고 단언하기 어렵다. 초기 남북한 보건의료 교류 시 물적자원 지원은 크게 긴급구호(재해 지원, 감염병 약품 및 장비 지원), 의약품 지원, 말라리아 방역 사업, 의료장비 지원, 병원 현대화 및 신축 지원, 기초영양 지원, 식수환경 개선사업, 보건의료체계 개선 사업, 의료인력 교육 사업 등이다. 하지만, 북한에 의료 물품지원을 수행한 한국 정부 및 민간단체들은 모니터링이 원활하지 않아 사업 진행의 어려움이 많았다. 모니터링이 제대로 되지 않으니 사업의 효율성 문제는 계속되었고, 북한에서 발표하는 지표의 신뢰성 문제도 계속 제기됐다. 또한, 대북 민간단체의 보건의료 대북 파트너는 북한 보건성이 아닌 민화협(민족화해협의회), 민경련(민족경제협력연합회) 관계자로 보건의료 비전문가 그룹이기 때문에 사업을 함께 논의하고 추진하는 과정에 여러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대북 보건의료 지원 활동가들의 열정과 노력으로 남북한 보건의료 교류·협력은 점차 개선됐고 북한 주민과도 서로 친근하게 안부를 묻는 등 가슴 뭉클한 동포애가 가득했던 살아있는 현장이었음에는 분명하다.

북한의 개발협력지원 사업의 요구 이후, 한국정부는 장기적인 대북 개발협력 사업의 일환으로 북한의 자립 자활 능력을 제고시키기 위한 중장기적인 사업을 2005년부터 2010년까지 계획하고 시행했다. 한국정부는 3개 이상의 민간단체와 컨소시엄을 구성해 모자보건 복지사업, 보건 식수 환경 개선사업, 종합검진 및 검사센터 개설 등에 해당하는 ‘합동사업(2005~2009년)’을 실시했다. 또한, 단기적인 물품지원을 넘어 사업 파급효과가 클 것으로 예상되는 결핵관리사업, 의료인력 교육사업, 제약공장 의약품 협력사업과 같은 ‘정책사업(2007~2010년)’을 추진했다.

WHO, UNICEF를 통한 북한 취약계층 지원과 더불어 한국정부는 2005년 영유아 지원 기본 계획을 자체적으로 수립해 남포산원, 남포 소아병원, 회령 모자보건센터 신축과 같은 ‘영유아 사업(2007년~2008년)’을 계획해 시행했다. 당시 한국정부의 남북한 보건의료 교류·협력에 대한 의지 그리고 많은 열정과 수고를 아끼지 않았던 대북 보건의료 민간 전문인들의 노력 덕분에 교류·협력의 결과물이 새롭게 진전되는 값진 시간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2009년 초 이명박 정부의 남북관계가 조정 국면에 들어가면서 사실상 실질적인 남북한 보건의료 개발협력 사업은 추진의 발동을 걸었지만 많은 결과물이 빛을 보지 못했다. 그리고 이제 10년간의 닫힌 세계가 열리고 2019년 다시 협력의 발걸음이 시작됐다.

남북한 보건의료 협력 추진 로드맵

남북한 보건의료 교류·협력을 위해서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북한은 남북 간 개발 협력을 통해 그동안 수원국의 이미지를 탈피하고자 한다. 그 과제로 오래전부터 ‘남북한 공동 보건의료 연구 개발(R&D)’ 추진 사업을 지속해 오고 있다. 남북한 보건의료 R&D는 남북한 공동연구개발을 의미한다. 새로운 의료기술 개발, 질병에 대한 새로운 지식 창조, 의료장비 개발, 학술교류 등의 부가가치 창출이 가능한 주제로 새로운 연구주제를 남북이 함께 발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이러한 남북한 R&D 사업은 2000년대 시행된 사례가 있다. 2001년 북한의 조선컴퓨터센타(KCC)와 ㈜에스피메디텍과 함께 뇌혈관지표진단기 장비를 공동개발하기로 합의하여 2006년 국내 특허 출원이 되었고, 완성품 장비 5대를 북한에 제공하여 평양에서 열리는 국제전시회를 통한 판매 기회를 기획하기도 했다. 또한 2006년 중국, 북한과 함께 연합하여 천연물 소재로 뇌신경계 질환 신약 개발을 위한 ‘동북아 신약 연구개발 협력단’이 구성되기도 했다.

당시 북한과의 공동 연구 협력 진행 과정의 가장 큰 문제점은 남북관계와 대북제재로 인한 사업의 지속성이 문제였다. 따라서 지속적인 교류·협력을 추진할 수 있는 연구 환경 조성이 가능하다면, 북한과의 보건의료 공동 R&D는 추진가능하며, 이는 보건의료 분야의 남북한 교류·협력사업의 성과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의학연구 발전에도 기여하는 일이다.

과거 북한과 보건의료 교류사업을 수행했던 많은 전문인의 경험과 북한 질병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바탕으로 남북한이 공동으로 질병 연구와 의료기술 연구 개발을 수행한다면 한반도의 연구는 세계적으로 발전하게 된다. 이를 위해서는 남북한 연구 개발을 위한 학술교류 개최가 꾸준히 필요하고, 지속적인 교류를 위한 법적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

보건의료 협력, 한반도의 질병 안전을 위한 일

북한은 현재 신 의료기술에 대한 관심이 높고, 원격의료를 북한의 최신 의료기술로 선전하고 있다. 또한, 최근 북한 의료 인력의 해외 선진 기술 습득, 연구개발 활동이 증가하는 추세다. 최근 10년간(2007~2017년) 북한 저자가 소속된 의학 및 생명과학 국제 학술지 논문을 검색한 결과, 62편의 논문이 검색되었고 이 중 54편(87%)이 2015년부터 발표된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의약분야에서는 의학과학원, 김일성종합대학 평양의학대학 소속의 연구진들의 해외 교류가 많은 것으로 보인다. 북한과의 보건의료 연구협력을 진행하기 위해 남북한 접경 지역에 공동 연구시설을 구축하거나 장기적인 학술교류로 한반도 질병안전을 위한 자료 공유와 우선적인 질병 문제 해결을 위한 협력의 장이 마련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지난해 통일부는 남북협력기금 725억 원을 전염성 질병 방역 등 보건의료 협력 추진 사업에 사용하도록 배정했다. 한국정부는 남북한 보건의료 협력 추진 로드맵을 구상하고, 실질적인 사업협의와 시행을 앞두고 있지만, 여전히 UN 제재, 북·미회담 등 남북협력을 위해 풀어야 할 숙제와 변수들이 곳곳에 산재되어 있다. 보건의료 분야의 남북협력 과제는 한반도의 질병 안전에 관한 일로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한 영역이다. 따라서 의료계의 남북한 협력을 위한 관심과 목소리를 모아야 한다.

2018년은 남북 만남이 일상이 된 해였다. 세 차례에 걸친 남북 정상의 만남을 비롯하여, 정치, 군사, 경제, 사회문화, 인도 분야 등 총 36회의 남북회담이 열렸다. 2019년은 어떨까? 아직 본격화되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남북의 만남과 협력은 이어지고 있다. 1~2월에 진행된 남북 만남의 현장을 정리했다.

핸드볼 단일팀으로 시작된 남북의 만남

올해 남북의 첫 만남은 독일 베를린에서 전해졌다. 1월 10일~20일까지 베를린에서 열린 제26회 세계 남자핸드볼선수권대회에 남북이 단일팀으로 출전한 것이다. 선수들은 작년 12월 22일부터 1월 9일까지 현지에서 합동훈련을 하고 대회에 참가했다. 1월 30일에는 판문점에서 남북군사실무접촉이 열렸다. 9·19군사합의에 따라 4월 1일부터 민간 선박의 한강하구 자유항행을 시범적으로 허용하기로 했는데, 이를 위해 한강하구 남북공동이용수역 해도(海圖)를 북측에 전달하기 위한 만남이었다. 1월 31일에는 남북도로협력 실무접촉이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에서 열리기도 했다.

금강산에서 열린 민간교류의 물꼬

2월 8일~9일 금강산에서는 ‘현대아산 창립 20주년 기념행사’가 열렸다. 현대아산과 북한 조선아시아 태평양평화위원회 관계자들은 금강산 관광 재개에 대한 협력 방안을 모색했다. 2월 12일~13일에는 1박 2일 일정으로 금강산에서 ‘2019 새해맞이 연대모임’이 개최됐다. 7대 종단 및 시민사회 단체, 기업인 등 250여 명과 북측 인사 100여 명, 해외에서 15명이 참석했다. 남·북·해외가 함께한 공동행사는 2008년 금강산 행사 이후 처음이다.

2월 16일 스위스 로잔에서는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북한의 김일국 체육상,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이 3자회담을 갖고, 2020년 도쿄올림픽 4개 종목 남북 단일팀 구성에 합의했다. 2032년 서울·평양 공동 올림픽 유치 의향도 전달됐다.

2019년, 민간차원에서 다양한 남북협력 사업이 준비되고 북측과의 협의가 진행됐지만 북·미 정상회담 준비가 본격화되면서 1~2월에 성사된 남북의 만남은 제한적이었다. 3월부터는 본격적인 남북의 만남과 협력이 이어질 것을 기대해 본다.

신 희 영 신 희 영
서울대 의과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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