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 Talk, 통일 Talk

민간교류와 종교의 자리
“자기중심적 관점 극복하고 조력자 돼야”

분단 이후 초기 민간교류는 종교인의 몫이었다. 분단체제를 넘어서야만 인권과 민주주의도 발전한다는 인식과 민족적 교류는 인도주의적 측면에서 당연하다는 인식이 공존했다. 1990년대 초부터 범민족대회, 문익환 목사와 임수경, 문규현 신부의 방북부터 2019년까지 크고 작은 변화가 한반도를 휩싸고 있다. 그럼에도 가장 최초의 민간 교류는 1986년 스위스 글리온에서 열린 한국기독교교회 협의회와 조선기독교도련맹의 만남이다. 세계교회협의회의 중재로 만들어진 모임이었지만 본격적인 민간교류가 시작된 것이다.

종교교류로 시작된 민간교류

이 만남의 결실이 1988년에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회에서 채택된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회선언’이다. 이 선언은 7·4선언이 밝힌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의 원칙에 인도, 민간참여의 원칙을 더한 선언이다. 덧붙여 민간 차원의 통일운동은 그 시작과 과정에 국제사회와의 긴밀한 협력이 있었기에 이 선언에는 국제사회의 협력이라는 또 하나의 원칙이 숨어 있다.

지난 2월 12일~13일, 금강산에서 ‘남북공동선언이행을 위한 2019 새해맞이 연대모임’ 행사가 열렸다. 남측 250여 명을 비롯하여, 북측 100여 명, 해외에서도 15명이 참석했다. 2008년 이후 처음으로 성사된 공동행사이다. 금강산으로 가는 과정은 피곤하다. 새벽 6시에 출발하면 금강산 호텔에 오후 1시에 도착한다. 그동안 우리의 의지가 감내한 시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리라. 힘들어도 불평이 없는 사람들의 표정에서 그 마음이 느껴진다.

금강산을 꽤 다녔지만, 업무차였던지라 해맞이 행사를 진행한 해금강에 대한 뚜렷한 기억이 없었다. 일출에 맞춰 평화와 번영을 다진 남측의 연설, 북측의 시 낭독에도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늘 비슷했으니까. 다만 흐릿한 수평선 위로 작고 밝은 것이 그냥 불쑥 솟아오르자 온몸이, 마음이 뭉클하다. 태양은 수천, 수 만년 동안 쉼 없이 뜨고 지기를 반복하며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켰을 텐데, 인생은 그다지 길지 못해서 그간의 세월이 괜히 더 서럽고 힘들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남북교류, 장터의 활기찬 들썩임이 돼야

다른 영역처럼 종교도 하고 싶은 일들이 많다. 불교는복원된 신계사 탬플스테이에 이어 상징적으로 몇몇 사찰을 복원하려고 할 것이고, 천주교는 당장 장충성당 재건축과 성직자 상주 문제가 화두이다. 원불교는 개성교당을 복원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다. 성균관은 세계최초의 대학인 개성 성균관을 복원하고자 한다. 천도교도 협력 사업을 준비 중이다. 민족종교는 개천절 행사를 통해 민족의 얼을 확고히 하는데 관심이 많다. 개신교의 경우는 이미 북측에 두 개의 교회와 500여 곳의 가정교회가 존재함으로 그 네트워크를 활용해 중요한 지역에 사회봉사를 진행하고자 한다.

종단의 관심과 성격에 따라 일일이 언급하지 못할 큰 그림들이 그려지고 있는 듯하다. 다른 모든 영역에서도 그렇겠지만, 종교 영역에서도 남북이 합의한 틀 안에서 북측이 주체가 되고, 남측이 조력자가 되는 구조라면 혼란보다는 장터의 활기찬 들썩임을 충분히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번 대회에 남측에서는 5인의 단장이 대표로 참석했다. 각각 단위는 연설을 통해 공동행사의 의미를 만들어 갔다. 종단 대표로 참석한 천주교 김희중 대주교의 연설은 과거와 현재, 미래를 적시하며 민간통일운동에 의미를 부여했다.

끈질김으로 묵묵히 걷는 평화와 번영의 길

김희중 대주교는 분단의 상처를 언급하며 많은 고난과 좌절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번영과 평화를 향하여 난 길을 묵묵히 걸어가야 함을 피력했다. 3·1독립선언문을 인용하면서, “과거 선조들이 원했고, 지금 우리가 간절히 소망하며, 또한 우리의 후세들의 활로를 열어줄 길이 우리가 가는 길”임을 강조했다. 남북이 함께 3·1절을 기념하지 못할 상황을 염두에 둔 것이고 동시에 3·1운동에 대한 남북의 다른 평가에도 불구하고 공감할만한 내용이다.

이어서 2015년 금강산 남북종교인대회를 언급하며 “종교인들이 큰 성과에 집착하지 않고 남과 북의 민간과 함께 한반도 평화를 염원하는 활동을 이어왔다”는 것을 피력했다. 종교인들은 끈질기다. 남북 관계가 얼어붙었던 10년 동안 종교계는 국제기구를 통한 남북 간 만남과 대화를 이어왔다. 그런 노력의 일환으로 미국 그리스도교의 경우 트럼프의 노선에 반대하지만 한반도 평화와 관련된 일은 여전히 지지와 협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김희중 대주교의 연설 중 가장 인상 깊은 부분은 “국제사회가 우리의 자주적인 평화와 통일, 그리고 공동번영의 의지를 자신들의 문제로 받아들이도록 해야 합니다. … 이것이야 말로 자주적이고 평화적인 통일의 길입니다”는 대목이다. 한반도 평화통일에 대한 국제사회와의 관계 맺기를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종단 연설문은 종교의 역할에만 한정되지 않고 전 지구적 과제로 한반도의 평화를 인식하고 있다. 우리의 통일운동도, 민관협력도 자기중심적 관점에서 벗어나서 폭 넓게 전개되어야 한다. 한 발짝 먼저, 곧 이어질 변화들을 먼저 고민하고 논의해야 한다. 따라서 논의의 장도 재정비되어야 할 것이다. 한반도에 세계사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전쟁과 경쟁, 다툼과 희생으로 점철된 인류사에 커다란 전환점을 이룰 일에 민간교류도 한 몫을 감당할 때이다.

김 태 현 김 태 현
한국기독교회협의회 국장
목사

카카오톡 아이콘 페이스북 아이콘 트위터 아이콘 카카오스토리 아이콘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