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칼럼

서보혁 평화 다원주의

서보혁 통일연구원 인도협력연구실장

하노이에서 북·미 두 정상이 회담장을 박차고 나온 것은 아니지만, 비핵화 범위와 타 문제와의 연계 등에 관한 이견이 정상회담에서 확인된 것은 분명 좋은 징조는 아니다. 그동안 남북 간에 해결할 일들이 많았지만 비핵화가 본격화 될 때까지 유보돼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인도주의, 경제, 사회문화 등과 같은 남북협력은 더 유보해야 하는지, 나아가 비핵평화 외에 항구적인 평화를 위한 다른 영역은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도 향후 논의 주제로 부상할 것이다.

물론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비핵화 대 미국의 대북 안전보장 및 경제협력이 완전히 합의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고도화된 북핵 프로그램을 일부 유인 조치로 완전히 폐기하기 어렵고 북·미 간 불신도 간단치 않다. 그런데도 2018년 이래 남·북·미 간 비핵평화를 향한 과정은 돌이킬 수 없는 단계에 들어섰다. 이 과정을 파기하고 다시 핵전쟁 위험으로 되돌아가는 것은 관련 지도자의 정치적 운명은 물론 세계적인 핵 확산을 초래할 수 있다. 특히, 트럼프와 김정은의 정치적 이익에도 비핵평화 프로세스의 파기는 조금도 유익하지 않다. 여기에 한국과 중국의 지지가 비핵평화를 촉진하고 있다. 단순한 전진은 아니겠지만 비핵평화의 길이 돌이킬 수 없는 대세가 되고 있다는 판단이다.

비핵평화체제의 수립 가능성에 대한 회의보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국민들의 평화의식이 이 문제로 한정되어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언론과 전문가집단의 책임도 적지 않다. 핵전쟁 위험으로 여러 평화를 상상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비핵평화 이후 보다 온전하고 풍부한 평화를 상상하고 대비하는 논의가 일어나야 하는 시점에 들어선 것은 더 큰 사실이다.

비핵평화는 안정적이고 지속가능한 평화의 일부이자 그 필요조건이다. 평화의 내용과 달성 방법은 다양하다. 평화를 위협하는 폭력은 물리적 폭력만이 아니라 증오와 적대, 우월의식을 재생산하고 정당화하는 구조적, 문화적 폭력도 포함한다. 마찬가지로 평화 역시 물리적 평화만으로 온전하게 달성되지 않는다.

서로를 적대시하는 군사태세는 물론 법제도와 의식도바꾸어가야 한다. 비민주적이고 반인권적인 잘못을 규명하고 성찰하고 화해하는 노력이 정부와 시민사회에서 함께 일어나야 한다. 북한 주민들의 삶의 질을 끌어올리기 위해 남북협력과 국제협력을 조화롭게 전개해나가야 한다. 이때 삶의 질은 경제적 측면만이 아니라 사회문화적 측면을 포함해 존엄한 삶을 영위하는 수준을 말한다. 그리고 남북 간 통합 과정은 생태보존 등 오늘날 세계적인 문제들을 끌어안아야 한다.

연대평화, 민주평화, 평화경제, 생태평화는 비핵평화 이후에 추진할 성질인가? 물리적, 문화적, 구조적 평화를 아우르는 노력은 단지 통일을 위한 국내외 지지를 결집하기 위해서만 필요하지 않다. 우리가 추구하는 통일은 백범(白凡)이 꿈꾸던 평화를 사랑하는 문화를 형성해 세계 다른 민족들과 더불어 평화를 영위하기 위함이다. 통일평화론이 바로 여기서 일어나는 것이고 그것은 평화 다원주의에 기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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