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

2019 년 2 월 28 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하노이 정상회담을 앞두고 정원을 산책하고 있다. ⓒ연합 비핵화·제재 해제 인식 차이 커...
북·미 간 신뢰구축 선행돼야

서명 거부한 트럼프 대통령 , 배경은 ?

제 2 차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지 한 달이 지나고 있다. 북·미 양측 모두 상대방에 대한 비난을 자제하고 협상 재개 의사를 밝히고 있지만, 과거보다 협상의 문턱이 크게 높아진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왜 결렬되었는지를 분석함으로써 향후 비핵화 협상 및 북 · 미관계 전개를 전망하고 아울러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대북제재 해제와 남북경협 재개 문제도 간략하게 검토해 보고자 한다.

제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유에 대해 아직 정확하게 밝혀진 사실은 없다. 다만 현재로 서는 다양한 시나리오를 추정해볼 수 있을 따름이다. 우선,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듯이 미국의 국내정치 상황이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 것은 분명한 사실로 보인다. 비건-김혁철 간 협상을 통해 이른바 ‘스몰딜’을 골자로 하는 대략적인 합의서가 도출되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코언 청문회 등 미국 내 정치적 상황을 고려하여 서명을 거부했다는 설명이다. 합의 실패가 정치적 곤경을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되지는 않겠지만, 최소한 곤경을 더 악화 책임연구위원 시키지는 않았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나쁜 합의보다는 무합의가 낫다(No deal is better than bad deal)”는 미국 여론이 이를 입증한다. 더불어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장을 ‘걸어 나 옴으로써(walk away)’ 단호한 협상가의 이미지를 선보이는 데도 어느 정도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첫 번째 해석에 자연스럽게 따르는 해석은 비건-김혁철 합의 초안이 정치적으로든, 국익 차원에서든 애초에 미국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합의였다는 해석이다. 북한이 제2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를 주민들에게 대대적으로 선전한 것이나, 김 위원장이 협상 실무자들을 지 휘하는 사진을 공개한 점, 3박 4일 열차 대장정이라는 유례없는 언론 플레이를 한 점, 그리 고 무엇보다 김 위원장 스스로 “좋은 합의가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라고 밝힌 것에 비추어 볼 때 북한이 만족할 수 있는 실무 합의가 있었을 개연성, 혹은 김정은 위원장이 그렇게 믿 었을 개연성이 높다. 하지만 결국 트럼프 대통령은 합의 초안에 서명을 거부했다. 그렇다면 왜 트럼프 대통령은 서명을 거부한 것일까? 미국 내의 정치 상황만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을까? 그리고 김정은 위원장은 왜 합의 도출에 대한 높은 기대감을 갖 고 있었던 것일까? 회담 결렬 이후 미국과 북한 측이 가진 기자간담회 내용을 살펴보면 비 핵화와 제재 해제에 대한 양측의 현저한 인식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영 변 핵시설 폐기의 대가로 2016년에서 2017년 사이에 도입된 5개 유엔제재 중 민생·민수 관련 제재를 풀어달라고 요구하였다. 반면 미국은 북한이 요구하는 제재 해제를 위해서는 영변 핵시설 폐기만으로는 부족하고 ‘+α’를 내놓으라고 요구하였다. 이에 북한은 영변 핵 시설 폐기가 마지노선임을 분명히 했고 결국 트럼프 대통령은 이대로는 협상이 어렵다고 판단하여 회담을 종료했다. 비건-김혁철 합의 초안이 있었다는 것은 거의 분명한 사실로 판단된다. 또한 미국의 국내 정치상황이 합의의 문턱을 높이는 데 영향을 준 것은 분명하지만, 비핵화와 제재 해제에 대 한 양측의 요구가 합리적 타협이 가능한 것이었다면,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외교적 치적 을 내팽개칠 이유가 없다는 것도 분명해 보인다. 결국 가능한 해석은 트럼프 대통령은 정상 회담을 실질적 협상으로 생각한 반면, 김정은 위원장은 마련된 합의문에 서명하는 세리머 니로 인식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았다는 가설이다. 이는 김정은-김영철-최선희-김혁철로 이어지는 북측의 의사결정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3월 15일 워싱턴 D.C. 국무부 청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북한과 협상 지속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연합

조선중앙TV가 3월 6일 기록 영화를 통해 2월 28일 있었던 ‘북·미 정상의 하노이 작별장면’을 공개했다. ⓒ연합

향후 비핵화 협상, 새로운 방식 필요

만일 북측 의사결정 시스템의 문제점이 이번 회담 결렬의 핵심요인이라면, 향후 비핵화 협상의 전망은 그렇게 비관적이지만은 않다. 시스템을 점검하고 보완하면 되기 때문이다. 인 적 경질과 교체는 협상 재개의 명분을 만들어줄 수도 있다. 만일 미국 국내 정치상황이 회 담 결렬의 핵심요인이라면, 현재로서는 비관도 낙관도 어렵다. 북핵문제는 트럼프 대통령 개 인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어젠다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정치적 곤경에서 벗어나는 순간 북· 미 협상은 다시 탄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대선 레이스가 시작되는 내년 초반까지 도 정치적 곤경이 지속된다면 북핵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의 당면 관심사항에서 멀어질 가 능성이 높다. 대선 레이스가 시작되면 북·미 협상은 정치적 동력을 상실하기 때문에 앞으로 북·미 간 대타협이 가능한 시간은 채 1년이 되지 않는다. 협의 교착기간이 길어질수록 북한 이 차기 미국 행정부를 상대로 새로운 판짜기에 나설 가능성, 즉 전략적 도발을 선택할 가 능성도 높아진다.

이번 회담의 결렬과정에서 분명해진 사실은 경제제재의 효과가 크다는 것이다. 김정은 위 원장은 “시간이 없다”는 초조함을 여러 번 내비쳤다. 이는 이번 회담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범한 최대의 실책이다. 미국은 최대의 압박, 즉 강력한 경제제재가 북한을 협상장으로 끌어 냈다고 믿고 있다. 따라서 미국은 시간은 자신들의 편이고 제재가 지속되는 기간이 길수록 북한이 ‘굴복’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제재 완화의 문턱이 더욱 높아질 것 이고, 북한에 대한 비핵화 요구수준도 더욱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또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향후 톱다운 방식의 협상이 개최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이번 회담의 결렬은 톱다운 방식 협상의 한계를 명확히 보여주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실무협상 에서 대략적 합의만 도출한 후 핵심쟁점은 정상 간 합의사항으로 남겨둔 채 김정은 위원장 을 만났다. 이제는 이런 방식의 협상은 진행되기가 어렵다. 문제는 실무협상은 시간이 오래 걸리는 관료적 절차라는 점이다. 이는 미국 대선 레이스가 시작되기 전에 북·미 간 대타협이 이루어질 가능성을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점은 북·미 양측이 주고받을 내용이다. 미국은 ‘+α’를 공식화하 였다. 반면 북한은 영변 핵시설 폐기를 마지노선으로 제시하였다. 더욱이 리용호 외무상이 기자 간담회에서 밝혔듯이 북한은 ‘미국 전문가 참관 하의 영변 핵시설 폐기’를 제안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사찰 없는 폐기, 즉 과거 핵의 검증 없이 미래 핵만 포기하겠다는 것, 그것도 영변에 국한해 그렇게 하겠다는 의미이다. 이는 미국으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제안이다. 최근 미국은 대북 협상의 목표로 “모든 핵물질과 핵무기, ICBM의 폐기, 그리고 생화학무기 및 중단거리 미사일의 영구동결”을 제시한 바 있다.

북·미 간 신뢰 구축 위한 협력사업 추진

앞서 지적했듯이, 향후 미국 내에서는 대북제재 강화론이 득세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이 회담 결렬 직후 기자회견에서 제재 강화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는 점에서 당분간 추가 안보리 결의안이나 미국 독자제재를 추진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최근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비건 대표가 유엔을 찾아 대북제재의 성실한 이행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또한 미국 의회 차원에서 인권 이슈를 중심으로 제재 강화 법안(오토 웜비어 금융제재안)이 발의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당분간 남북경협을 재개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현 유엔제재가 유지되는 한, 남북경협 재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은 대북 합작금지, 대북 물자반출 제한이 풀리지 않으면 시작할 수 없다. 특히 개성공단은 유엔제재가 풀려도 미국 독자제재 중 북한 인력 활용에 대한 2차 제재(Secondary Boycott) 조항이 풀리지 않으면 재개가 어렵다. 또한 이상의 제재가 풀린 후, 금융거래 및 벌크 캐시 거래금지 제재도 풀리거나 묵인되어야 한다.

다만, 금강산 관광은 북한이 성의를 보일 경우 현 제재 내에서도 추진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관광 자체는 유엔제재나 미국 독자제재의 명시적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이 성의를 보일 경우 시설 개보수를 위한 물자반출이나 대북 합작 금지에 대한 미국과 유엔 안보리의 예외 인정을 추진해볼 수 있다. 금융제재나 벌크 캐 시 제재의 경우, 현물지급이나 에스크로 방식을 적용해볼 수 있다.

다만, 북한이 먼저 성의를 보임으로써 북·미 간 신뢰를 구축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러한 과정 없이 금강산 관광 재개를 추진하는 것은 좋은 선택이 될 수 없다. 검토할 수 있 는 신뢰구축 방안으로는, 북한이 대규모 미군 유해발굴을 허용하고 이에 대한 대가로 미국 이 한국과 함께 대규모 인도적 지원을 제공하는 것이다. 우리 정부는 비핵화 협상과 별도로 이 사안을 가지고 북한과 미국을 설득한 뒤 시간을 두고 미국과 협의 하에 금강산 관광 재 개를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된다.

임 수 호 임 수 호
국가안보전략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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