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읽기

평화의 갈림길에 선 한반도,
협상은 계속 되어야 한다

제2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 북한의 행보가 세계인의 관심을 끌고 있다. 더욱이 최근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이 협상 중단의 가능성을 밝히고, 핵-미사일 시험발사 동결 해제를 포함한 중대한 결정을 최고지도자가 공식성명을 통해 발표할 수 있다고 예고하면서, 한반도의 앞날이이 출렁이고 있다. 향후 북한의 행보는 한반도 비핵화는 물론이고, 남북관계에까지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우리에게도 중대한 변수가 아닐 수 없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한반도 평화와 남북관계 발전의 길에서 지금 우리는 갈림길에 서 있는 셈이다.

북한의 어그러진 구상

하노이 이후 북한의 행보를 보면 적잖이 당황한 것처럼 보인다. 김혁철-비건 실무협상을 통해 합의문 초안이 마련되면서 제2차 정상회담에서 좋은 성과를 기대했던 북한이었기에, 회담 결렬은 북한 입장에서 애초의 구상이 어그러진 것일 수밖에 없었다. 물론 협상 실패에 대비한 ‘플랜 B’를 준비했겠지만, 바로 눈앞에서 서명만을 남겨둔 합의문을 뒤로 해야 했던 북한은 당황스러움과 동시에 미국과의 협상에 대한 희망과 기대감을 재평가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결렬된 그 순간까지도 베트남에서의 회담을 낙관적이고 훌륭한 성과로 보도하던 북한 매체의 언급이 더 이상 등장하지 않고, 해외 인터넷 매체인 <우리민족끼리>나 <조선신보> 등을 통해 황금같은 기회를 걷어찬 미국에 대한 비판, 자신들 의 협상안 이상의 양보 불가능성을 언급하고 있는 데에 서도 드러나고 있다. 급기야 최선희 부상은 평양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협상 중단의 가능성’, ‘더 이상의 양보 불 서강대학교 가’, ‘15개월 이상을 지속해왔던 동결에 대한 재검토’, ‘최고지도자 결심’ 등을 언급하면서 본격적으로 미국에 대 한 압박에 들어갔다.

미국은 어떠한가? 하노이 이후 곧바로 회담 결렬의 책 임을 북한에 돌리는가 하면, 볼턴의 입을 통해 자신들 이 주장하는 소위 ‘빅딜’에 대한 무조건적인 수용을 요 구하는 강경한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국내 정치의 불리 함 속에서 ‘북한 때리기’를 통해 지지율을 만회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강경파의 주장에 트럼프 대통령이 손을 들 어주면서 북한과의 협상보다는 압박 정책으로 선회했는 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다만, 지금까지 미국이 보여준 모습은 일시적인 전술적 변화라기보다는 오히려 전략적 인 태도 전환에 가까워 보인다.

현재까지 북한과 미국은 하노이 이후, 상대방에 대 한 강압적 요구와 양보 불가를 사이에 놓고 한 치의 양 보 없는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북 한은 ‘미국과의 협상 타결 – 영변 핵 시설의 해체 – 부분 적인 제재 완화 – 경제건설에 집중’이라는 자신의 구상 을 실현하는 데 커다란 장애물에 부딪히게 되었다. 이미 2018년 ‘경제건설총집중’ 노선에 따라 지금까지의 병진 노선을 마무리하고, 경제건설에 국가적 힘을 쏟고 있는 상황에서 부딪힌 지금의 상황은 일시적이든 그렇지 않든, 북한의 구상에 큰 상처를 내고 말았다는 것은 분명 해 보인다.

북한과 미국의 다른 셈법

그렇다면 하노이 회담 결렬 혹은 합의문에 서명하지 못한 상황은 어떻게 발생했을까? 하노이 회담이 열리기 전까지 북한과 미국은 김혁철-비건 라인을 통해 실무적 인 조율을 해 왔고, 이 과정에서 북한이 주장했던 단계 적-동시적 조치에 합의했다. 이는 비건 특별대표의 지 난 1월 스탠포드 대학 연설에서도 나타났다. 이미 지난 싱가포르 회담에서 합의한 것처럼, 완전한 비핵화로 가 기 위해서는 북·미 간 신뢰 구축, 단계적이고 동시적인 행동을 통해 비핵화 문제가 진전되는 것이 합리적이었다. 협상이 시작된 하노이에서도 관찰되었던 비건 특별대표의 여유 있는 모습은 북 · 미 간 실무협상을 통해 많은 부분 진전을 이루었음을 짐작하게 해주기도 하였다. 그런데 급작스럽게 상황이 변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 아직까지 그 구체적인 이유는 명확하게 밝혀지고 있지 않다 . 중요한 것은 하노이 결렬 이후 그날 자정을 넘겨 북한이 보인 반응이다. 결렬 이후 한동안 움직이지 않던 북한은 리용호 외무상과 최선희 부상의 기자회견을 통해 결렬의 책임을 미국에 두고 비판하였다 . 그러는 와중에 최선희 부상은 “우리의 제안을 미국측이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친 것이나 같다고 생각한다” 며 “ 이번에 제가 수뇌회담을 옆에서 보면서 우리 국무위원장 동지께서 미국식 계산법에 대해서 이해하기 힘들어하지 않는가 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 고 말했다. 간접화법을 사용한 조심스러운 표현이기는 하지만, 북한이 미국식 셈법에 대해 결코 동의하지 않을 것이며, 앞으로도 이 이상의 양보를 하지 않을 것임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미국 역시 북한과는 전혀 다른 셈법을 제시하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결렬 이후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영변 핵시설 해체 준비는 돼 있었지만 전면적 제재 해제 요구를 들어주는 건 계산이 맞지 않는다” 고 밝혔다. 제재가 북한을 협상장으로 나오게 했다고 믿는 미국의 입장에서 제재 해제는 마지막에서야 들어줄 수 있는 것으로 여긴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북한과 미국의 셈법이 충돌하고 있다. 북한은 완전한 제재 해제가 아닌 민생에 직결되는 부분의 제재 완화를 요구하고 있고, 미국은 이를 전면적인 제재 해제로 간주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비핵화에 대해서도 미국은 핵과 미사일을 포함한 재래식 무기까지 즉 , 생화학무기와 탄도미사일까지를 대상으로 하고 있는 반면, 북한은 우선적으로 영변 핵시설의 완전한 동결로부터 시작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비핵화의 정의와 대상, 범위가 서로 다른 것이다. 이 때문에 북한과 미국의 서로 다른 셈법이 단기간에 해결될 가능성은 크지 않고 , 지금 당장 양자를 다시금 협상장에 불러오기도 쉬워 보이지 않는다. 창의적 해법이 요구되고 있는 시점인 것이다.

협상은 계속되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의 향후 행보는 어떻게 될까 ? 아직은 뚜렷한 움직임이 보이지 않지만 다행스러운 것은 협상 결렬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북한 모두 협상 파탄을 선언하지 않고 있고 , 여전히 외교적 해법의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는 점이다 .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북한과 협상을 지속할 의지를 비치고 있고 , 강경파인 볼턴도 협상의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 비건 특별대표도 ‘ 빅딜 ’ 에 의한 문제 해법을 주장하면서도 , 외교적 해법의 가능성이 열려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 북한 역시 최선희 부상의 ‘ 협상 중단 가능성 ’ 언급에도 불구하고 두 나라 최고지도자의 관계가 좋다고 하면서 대화의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 두 나라가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면서도 대화와 협상의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는 것은 과거로의 회귀를 바라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 북한은 내부적으로는 최고인민회의 선거와 회의로 전열을 정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당분간 지속될 제재의 국면 속에서도 자력갱생을 강조하면서 어떻게든 경제발전을 위한 내부 동력을 유지하고자 하고 있다. 경제건설을 최우선적인 목표로 하는 ‘경제건설총집중’ 노선도 변치 않고 있다. 이는 북한이 당분간 협상장을 완전히 떠나지는 않을 것이며 , 자신들의 제안에 대해 미국과의 협상을 당분간 열어놓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의 태도가 관건이 되겠지만, 북한의 입장에서 판을 깨는 행동을 먼저 행동에 옮길지는 미지수이다.

그런 점에서 아직은 협상 국면이 지속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 협상 국면이 지속되고 있는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지난 3월 15일 최선희 부상의 언급에서 보듯 북한은 남한이 어떤 입장에서 중재를 하고 , 창의적인 설계자로서 역할을 할 것인지를 묻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미국 편에 설 것인지 아니면 문 제 해결의 공정한 중재자 역할을 할 것인지, 그도 아니라 면 당사자로서 창의적인 입장에 설 것인지를 묻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 이 숙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당사자는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우리가 될 수밖에 없다. 북·미 간 협상 결렬의 가장 큰 피해자는 바로 우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북한과 미국 사이에서 중재자로서, 아니 창의적 설계도를 가지고 양측을 설득해 야 하는 짐을 지게 되었다. 사실 이번 제2차 북·미 정상 회담에서 우리는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했다. 제1차 북· 미 정상회담 당시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문제를 풀기 위 한 노력이 이번 회담에서는 별로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2019년 3월 15일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이 외신 기자, 외국 외교관들을 대상으로 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

2019년 3월 14일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뉴욕 유엔본부에 도착하고 있다. 그는 이날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의 결과를 설명하고 북한이 다른 길을 가지 않도록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협조해달라는 취지의 언급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연합

협상이 결렬된 지금 상황에서 우리 정부는 북한과 미국의 사이를 좁히고, 창의적인 해법으로 문제 해결의 돌파구를 마련해야 하는 짐을 지게 되었다. 북한이 주장 하는 단계적인 방식과 미국이 주장하는 일괄타결 방식 사이에서 우리 정부의 입장은 협상은 포괄적인 일괄타 결 방식으로, 그러나 실행은 단계적으로 진행한다는 안 을 제시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현재 시점에서 양측의 입장을 조율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안으로 비춰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를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또한 포괄적 협상의 타결을 어떤 지점까지로 할 것인가 등 쉬운 문제는 하나도 없다. 또 하나 우리 정부로서는 한반도 비핵화에 이해관계를 가진 당사자들과의 협력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중국, 러시아는 물론 일본까지도 아우르는 한반도 평화를 위 한 연대를 실현해야 할 것이다. 어쩌면 지금까지 우리 정 부는 한반도 핵문제 해결을 북한과 미국의 핵심 당사자 에게 맡기고 중국, 러시아, 일본과의 관계를 소홀히 하지 않았는지 되돌아보아야 한다. 한반도에 이해관계를 가 진 주변국들과의 협력은 곧 북한과 미국을 다시금 협상 장에 불러올 수 있는 커다란 동력이다.

북·미 간 협상이 결렬되면서 갈림길에 서 있지만, 아직 협상이 완전히 결렬되거나 파탄에 이르지는 않았다. 협 상은 계속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반도 평화의 이해당사자 모두가 이 문제에 발 벗고 나설 수 있도록 해 야 한다. 여기에는 정부만이 아니라 시민사회도 함께 해 야 한다. 한반도 평화의 목소리를 크게 외치고, 그를 위 한 사회적 여론을 만들어가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노력 이다. 평화냐 아니면 다시금 전쟁의 위기냐 하는 중대한 갈림길에서 정부, 시민사회 모두가 평화의 길에 함께 해야 할 것이다.

정 영 철 정 영 철
서강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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