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의 길을 묻다

“남북경협은 한국경제의
마지막 남은 도약 기회입니다 ”

꽃샘추위가 찾아온 3월 중순의 어느 날,『통일시대』 인터뷰를 위해 박승 前한국은행 총재와 임강택 석좌연구위원(통일연구원)이 마주 앉았다. 한국경제와 남북관계에 대한 조언을 구하고자 마련된 자리였다. 박승 前총재는 자리에 앉자마자 답변이 빼곡히 적힌 인터뷰 질의서를 테이블 위에 펼쳐두었다. 고심의 흔적이 곳곳에서 엿보였다. 그는 한국경제 저성장의 근본 원인을 진단하면서, 남북경협에서 한국경제의 새로운 동력을 만들어나갈 수 있다고 조언했다.

한국경제 저성장,親시장 親현장으로 이겨내야

Q 국내 경제 상황에 대한 부정적인 관측이 많은데요, 현 상 황을 어떻게 진단하십니까?
세계 경제는 지난 2008년 금융 위기 때 심각한 불황을 맞 이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모든 나라가 현금 유동성 제한을 풀고, 금리 인하 등 경기회복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 결과 지난해까지 9년 동안 세계 경제는 금융완화에 의한 확장국 면을 맞이했어요. 그런데 세계 경제가 회복되자 미국은 재작 년 말부터 금리를 인상하고 유동성을 회수하는 등 긴축정 책으로 선회했습니다. 그 결과로 올해부터 세계 경제는 다시 수축 국면에 들어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미국의 경우 지난해 경제성장률이 2.9%였는데, 올해 는 2.5%, 내년에는 2.0%가 예상됩니다. 올해 일본의 경 제성장률은 0.7%, 유럽은 1.1%, 중국은 6.2%로 예상되 고요. 반면,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올해 2.6%로 예상되 는데 중국, 인도와 같은 신흥개발도상국을 제외하면 양 호한 성장이라고 볼 수 있어요. 게다가 국제수지도 21년 째 흑자를 이어가고 있고, 외화보유도 충분하고 재정 건 전성도 양호해서 기본 체력은 좋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 다. 다만, 국민 체감경기는 좋지 않은데, 고용이 줄어들 고 빈부격차가 심해진 것이 원인이라고 봅니다.

Q 우리정부가 소득주도정책을 포기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는데 어떻게 보십니까?
제조업에서 매년 10만 개씩 일자리가 줄고 비정규직, 아르바이트와 같은 저임금 일자리가 크게 줄었습니다. 게다가 최저소득층(1분위 계층)의 소득은 줄고, 최고소 득층(5분위 계층)의 소득은 늘어 빈부격차가 많이 벌어 진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원인을 정부의 소득주도정책으로 돌리는 것은 오진(誤診)입니다. 근본 원인은 첫 번째로 ‘기업의 국내 투자 감소’입니다. 지난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2.7%인데 반해 기업 투자는 -2%였어요. 과거에는 기업 들이 수익을 국내에 투자하고 고용을 창출해 가계소득 을 늘리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해 왔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국내 투자를 피하고 외국에 투자하거 나 현금으로 유보합니다. 일자리는 기업의 투자에서 비 롯되는데, 결국 기업 투자가 감소하면서 일자리가 줄어 들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정부정책에도 책임이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최저임금 정책을 들 수 있습니다. 최저임금은 지난 2년 동안 29.1%가 올랐지만 유급휴일까지 포함해서 계산하 면 55%가 올랐습니다. 55%라는 급격한 인상은 결국 저 소득층의 일자리에 타격을 주었습니다. 소득주도정책은 저소득층의 가계소득을 올려서 빈부격차를 줄이고, 소 비를 증대시켜서 경제성장을 촉진하자는 것인데, 현 정 부의 최저임금 정책은 결과적으로 저소득층의 고용감 소와 가계소득 감소로 나타났어요. 이것은 약의 선택을 잘못 한 것이 아니고 복용량을 과용토록 처방한 데 잘 못이 있어요. 예컨대 연 7%씩 매년 올리도록 했더라면 문제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소득주도정책의 효과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지난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2.7%였는데, 이 것이 가능했던 힘은 소비가 3% 이상 늘어났기 때문입니 다. 이는 소득주도정책이 작용한 결과로 볼 수 있어요. 이러한 상황을 고려할 때 소득주도정책을 지속하고 강 화하되 추진 방법은 시장과 현장 중심으로 가야 합니다. 親시장, 親현장으로 가고, 親서민, 親기업 정책을 펼쳐야 합니다.

Q 한국경제가 새로운 활로를 찾기 위해 필요한 과제는 무엇일까요?
경제성장의 엔진을 교체해야 합니다. ‘수출 주도’ 엔진 에서 ‘소비 주도’ 엔진으로 바꿔야 해요. 그동안 한국의 경제성장을 주도한 것은 수출이었는데 지금은 이 엔진 이 추진력을 상실했습니다. 지난 7년 동안 평균으로 보 면 수출증가율이 제로였어요. 그렇다면 우리 경제를 끌 어갈 새로운 동력은 무엇일까요? 바로 ‘소비( =내수)’입니 다. 대부분의 선진국은 내수 주도 성장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가야합니다. 이를 위해 정부가 해야 할 일 은 소득주도정책을 굳건히 밀고 가서 가계소득과 가계 소비를 늘리는 겁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소득주도정책은 수 요면에서의 성장정책이므로 공급면에서의 성장정책, 즉 국내투자를 늘리고 산업생산성을 높여 공급능력을 확 대하는 정책이 같이 가야 합니다. 지금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혁신성장’이 바로 이것인데 아직은 매우 미흡합니 다. 이를 위해서는 규제개혁과 노동개혁이 훨씬 더 나아 가야 한다고 봅니다.

한국경제 도약의 길, 남북경협

Q 새로운 활로를 남북관계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한국경제의 최대 위협은 남북 분단 상황과 대결 구도 입니다. 북한이 서울에 포탄 하나만 던진다고 해도 한국 경제는 요동치고, 외국자본은 모두 빠져나갈 겁니다. 더 욱이 지금 한국은 구조적인 저성장 단계에 있어요. 그러 면 어떻게 도약의 길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 남북관계 개 선이 핵심적인 문제해결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경제 저성장의 원인은 첫째, 생산인구 감소, 둘째, 투자수요 감소인데, 남북경협은 이 두 가지 문제를 동시 에 해결해 줍니다. 그래서 평화가 경제라는 말이 성립합 니다. 남북평화와 협력이 바로 우리나라 경제성장의 활 로가 되는 겁니다.

Q 남북경협이 남북한 경제에 미치는 효과는 어느 정도 라고 예상하십니까?
얼마 전, 세계적인 투자 귀재 짐 로저스 회장이 지금 의 북한은 1980년대 개방 전야의 중국과 같다고 했어 요. 북한은 큰 성장잠재력을 갖고 있고, 앞으로 개방되면 중국-베트남에 이어 세계 제조공장이 될 겁니다. 북한은 엄청난 지하자원이 있고 무한한 노동력을 갖 고 있어요. 북한의 월 급여는 20만 원 내외로 한국의 10 분의 1, 중국의 3분의 1입니다. 북한의 자원과 노동력, 남쪽의 자본과 기술이 결합한 다면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낼 겁니다. 그럴 경우 북한 은 연 8% 이상의 지속성장을 할 것이고, 이를 통해 한국 도 5% 내외의 성장이 가능할 겁니다. 이점에서 남북경 협은 한국경제의 마지막 남은 도약 기회라고 봅니다. 통 일 비용을 걱정하고 대북지원을 ‘퍼주기’라고 하는 사람 도 있지만, 대북지원은 ‘투자’로 봐야합니다. 국회 예산정 책처의 자료에 따르면 ‘통일에 따르는 비용의 3배가 통일 에서 오는 편익이 될 것’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민간이 투자하기에는 남북경협 사업의 불안정성도 큰 장애 요인입니다.
남북경협의 기본 틀은 정부가 먼저 깔아놔야 합니다. 투자에 대한 안전보장이라든지 교통, 통신, 항만, 항공 등 SOC는 정부가 먼저 또는 함께 만들어나가야 해요. 민간의 경우 제일 중요한 게 투자에 대한 보장입니다. 그 리고 민간의 경제협력은 철저히 시장원리로 해야 해요. 단순히 봉사하는 식으로 하면 실패합니다. 기본적으로 민간도 그곳에서 수익을 낼 수 있어야 합니다. 북한이 문호를 개방하고 투자 보장과 SOC가 마련되면, 민간뿐 아니라 주변국에서도 서로 북한에 들어가려 할 겁니다. 오히려 주변국과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기에, 우리가 그 역할을 선점해야 합니다.

Q 문재인 대통령은 3·1절 기념사를 통해 평화경제시대 로의 이행을 강조했는데, 성공조건은 무엇일까요?
먼저, 우리가 가야 할 남북관계의 방향이 대결 구도 인지, 평화협력 구도인지 확실히 결정해야 해요. 북한이 밉다고 대결 구도로 가는 길은 천안함 폭침이나 연평도 포격 도발과 같은 긴장 사태를 되풀이하는 것이고, 그 길은 양쪽 모두가 잃는 길입니다. 우리는 대화와 협력 그리고 포용을 통해서 평화와 상생으로 가야 합니다. 남북경제협력과 북한의 개방을 통해 남북 간 격차를 줄이는 것이 한반도 통일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북한이 개방해서 시장경제가 정착되면 남북의 동질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통일하려면 남북 간 격차도 줄여야 하는 데, 현 상태로 통일하면 북한주민 700만 명이 남하한 다는 연구결과도 있어요. 그렇게 되면 서로에게 재앙이 되는 겁니다.

남북 모두 민족공동체에 대한 자각 필요

Q 북한은 핵 대신 ‘경제발전에 총력을 집중’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는데, 어떻게 보십니까?
북한 시각에서 핵은 체제 보장을 위해서 필요합니다. 그런데 북한은 재작년에 이미 핵과 장거리 미사일을 모 두 완성했어요. 따라서 그 이상의 개발은 북한의 입장에 서 큰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핵은 실제로 사용할 수도 없고, 그것으로는 먹고 살 수도 없어요. 그래서 핵을 포기하고 경제개발에 전념하기로 한 겁니다. 북한의 이익 을 위해서 결정된 만큼 되돌아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다 만, 북한이 핵보유국 지위를 고집할 우려는 있습니다. 이 는 핵 폐기가 아닌 동결을 의미하는데 바람직하지 않아 요. 북한이 완전히 핵을 포기하도록 국제적인 압박과 외 교적 노력을 함께 기울여야 합니다.

Q 중학교 3학년 때 6·25전쟁을 겪으셨습니다. 이러한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조선시대에 동인, 서인, 남인, 북인 간 당쟁이 있었습 니다. 한말에는 조선 땅에서 일본, 중국, 러시아 간 패권 다툼이 있었어요. 당시 우리 조상들은 그 어느 한편에 줄을 서고, 서로 옳다고 죽기 살기로 싸웠지만 지금 와 서 보면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그런데 이제 다 시 한반도를 둘러싸고 미국, 중국, 러시아가 패권 다툼 을 하고 있습니다. 강대국의 이데올로기 싸움에 남북의 분단과 긴장 상태가 장기화되고 있어요. 앞으로 백 년, 천 년 뒤 우리 후손들이 지금의 우리들을 어떻게 볼 것 인지를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Q 우리가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어떤 관점에서 풀어 나가야 한다고 보십니까?
한반도 문제에 대한 주변국의 입장은 한국의 이익이 아니고, 그들 나라의 이익입니다. 지금 미국은 한반도를 중국에 대한 안보의 전진기지로 여깁니다. 반면에 중국 은 한반도를 미국과 일본에 대한 안보의 완충기지로 여 기고요. 이렇게 되면, 한반도 평화통일은 대단히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한반도가 통일하는 유일한 길은 통일 후 중립국화하면서 주변국가의 동의를 얻는 데 있다고 봅니다. 더불어 북핵문제를 해결하고 한반도 평화체 제로 전환해 통일로 가기 위해서는 남북 모두 민족공동 체적 자각을 해야 합니다. 한미 간 확고한 공조체제를 유지하되 민족공동체적 입장을 바탕으로 해야 해요. 이는 북한도 마찬가지입니다. 민족공동체가 우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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