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예술 최초의 만남-체제 대결장이 된 전통예술교류
남북한의 예술은 해방기를 지나면서 분리되기 시작하여 1948년 북한 정권 수립으로 체제 분리가 시작되면서 급기야 분단의 상황에 접어들었다. 다수의 월북 예술인 이 중심이 되어 ‘사회주의 리얼리즘’이라는 깃발 아래 시 작한 북한의 예술은 1960년대 후반 ‘주체예술’이라는 이 름 아래 형식과 내용, 창작 방법 등에서 새로운 체계를 정립함으로써 남한 예술계와는 매우 다른 예술 세계를 만들어 냈다. 분단 이후 남북한은 전쟁과 체제 대결로 서로의 예술에 대한 접촉은 물론 그를 대상으로 연구하 거나 언급하는 것조차 어려운 단절 상태에 들어갔다.
이러한 상황에서 1985년 9월 20일부터 23일까지 분 단 이후 최초의 남북예술교류가 이루어졌다. 이산가족 고향방문단과 함께 예술단을 조직하여 상호방문하고, 상대지역에서 예술공연을 진행한 이 행사에는 공연예술단 50명을 포함한 151명이 남북 동수로 참여하였다. 남북한의 예술단은 전통 음악과 무용을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구성하여 상대를 비방, 자극하지 않으려 노력하였다. 남북한의 체제 대결과 이념 갈등을 완화하는 데 전통예술이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던 것이다. 그 나 서울과 평양에서의 공연이 끝난 후 남북한의 언론 매체에서는 상대에 대한 비난에 가까운 부정적 평가가 주를 이루었다. 정서적 공감대를 마련하고자 준비했던 첫 예술교류행사마저 체제 대결의 장이 되고 말았다. 남북한은 전통예술 분야에서마저 깊이 파인 분단의 상처를 확인했던 셈이다.
남북기본합의서 체결, 남북예술교류 위한 기반 마련 1985년의 성과는 곧바로 후속 작업으로 이어지지 못 했지만, 1980년대 말 세계사 차원에서 냉전체제의 해체 가 진행되어 한반도에서도 화해와 협력을 향한 새로운 흐름이 시작되었다. 제6공화국 정부의 북방정책은 ‘7·7 선언’(1988),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1989), ‘남북교류 협력에 관한 법률’(1990)로 이어지는 제도적 환경을 마련했다.
이러한 흐름 속에 우리 정부가 1990년 2월 발표한 ‘남북문화교류 5원칙’(①분단 이전의 우리민족 전통문화를 우선 교류한다. ②승부 및 경쟁적 분야는 배제한 다. ③전통문화의 원형을 변형, 훼손하는 표현방식은 지양한다. ④쉽고 작은 일에서부터 시작한다. ⑤공동실행 을 위한 지속적인 노력을 경주한다.)은 1985년 공연이 보여주는 한계를 극복하고 남북예술교류의 지속성을 담보하기 위한 새로운 노력으로 평가할 만하다.
이 시기에 북한과의 고위급회담도 진행하여 1991년 말에는 남북총리회담의 결실로서 ‘남북 사이의 화해 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이하 남북기본합 의서)’가 채택되었다. 한반도에서도 냉전 질서를 해체하고 화해·협력의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장대한 서곡이었 다. 남북한은 이 기본합의서의 제3장 관련 부속합의서 에 “남과 북은 교육, 문학·예술, 보건, 체육과 신문, 라디 오, 텔레비전 및 출판물을 비롯한 출판·보도 등 여러 분 야에서 교류와 협력을 실시한다”고 명시하여 예술분야에서 남북 교류·협력이 본격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 어놓았다.
1. 1990년 10월 14일 평양에서 열린 범민족통일음악회 참가단을 환영하기위해 판문점에 모인 북측 예술인과 시민들
2. 1998년 5월 1일 평양공연을 위해 출국하는 리틀엔젤스예술단
3. 2000년 5월 2일 서울에서 공연중인 평양학생소년예술단원
4. 2002년 8월 15일 서울에서 열린 8 ·15 민족통일대회 예술공연
한반도 정세에 따라 부침을 거듭한 남북예술교류
남북예술교류가 활성화되었던 시기는 1990년대 초 남북기본합의서 체결 전후, 2000년대 남북 정상회담 개최를 전후한 두 시기라 할 수 있다.
1990년 10월 평양에서 진행된 ‘제1회 범민족통일음악회’는 17명의 남한 예술인이 방문하여 북한 예술인, 해외 예술인과 함께 공연하였고, 같은 해 12월에는 33 명의 북한 예술인이 서울을 방문하여 남북 음악인들이 참여한 가운데 ‘90송년 통일전통음악회’를 진행하였다. 1985년 교환공연은 상호 신뢰 기반이 약해서 ‘상호주 의 원칙’에 따라 인원 규모를 동일하게 하고, 행사 일정 도 동시 진행하였으나 1990년대 공연에서는 방북과 방남을 순차로 진행하는 등 유연성을 보였다. 레퍼토리의 구성이나 공연 후 비평에서도 비난보다는 상대의 긍정성을 살피려는 노력이 있었다. 모두 1985년 공연의 학습 효과라 할 수 있다.
1990년의 두 행사는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체결과 발효로 그 성과가 이어지면서 이후 남북예술교류가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핵문제가 발생하면서 남북예술교류도 중단되고, 남북기본합의서마저 사문화되는 양상을 보였다.
남북예술교류가 다시 활성화된 것은 국민의 정부에 서 햇볕정책을 펼치면서부터이다. 1998년 5월 리틀엔젤스예술단의 평양공연을 시작으로 제1회 윤이상통일 음악회(1998.11), 2000년 평화친선음악회(1999.12), 제 1회 민족통일음악회(1999.12), 평양학생소년예술단 서울공연(2000.5), 평양교예단 서울공연(2000.5), 남북교향악단합동연주회(2000.8) 등 공연예술교류가 연이어 진행되었다. 공연예술 장르가 전통음악은 물론 클래식 에서 대중음악, 그리고 서커스 분야까지 확대되었으며, 서울과 평양을 방문하여 진행하는 답방 형식의 공연이 지속되었다.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 개최와 6·15공동선언 발표를 계기로 남북예술교류는 본격적인 활성화 단계에 들어섰다.
문학분야에서는 남북한이 함께 참여하는 문학단체 를 결성하고 공동으로 문학잡지를 발행했다는 점에서 가장 고도화한 협력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공연예술 분야에서는 남한 대중예술의 평양공연이 큰 흐름을 형성한 가운데 남한에서 진행된 대규모 남북공동행사의 부대행사로 예술공연이 진행된 것도 주목할 부분이다. 시각예술분야에서는 남한에서 소장하고 있는 북한 미술작품을 전시하는 행사가 주를 이루었고, 더불어 지역 에서 진행된 전시회가 많은 것도 특징이다. 사진분야에 서 남북공동전시, 전통공예분야에서 남북교류전은 행사의 지속가능성을 보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처럼 활성화 양상을 보이던 남북예술교류는 2006년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등으로 불안정한 정세 속에서 맥을 이어가다 2008년 이명박 정부에서 급감하 기 시작하여 박근혜 정부에서는 사실상 중단되는 상황 에 이른다. 남북관계가 경색되었던 2017년까지 북한은 핵개발과 미사일 실험을 계속하면서 마침내 ‘핵보유국’ 을 선언함으로써 보다 강화된 유엔대북제재가 실시되 는 상황을 맞이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 남북예술교류 현황과 전망
그동안의 남북예술교류는 화해·협력의 분위기를 조 성하여 남북관계를 개선하는 데 직접적인 기여를 해 왔 다. 그러나 남북예술교류는 핵 위기를 비롯한 정세의 긴장으로 인해 독자적인 동력을 형성하지 못하고 일회성 이벤트에 머무르는 한계를 노정하기도 하였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한반도 평화번영에 대한 일관 된 메시지를 제시함으로써 2018년 남북관계는 2000년대에 이어 다시 화해협력의 새로운 단계에 들어섰다. 평화올릭픽으로 진행된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북예술교류도 다시 시작되었다.
2018년 2월 북한의 삼지연관현악단이 남한 대중가요 등을 주요 종목으로 서울과 강릉에서 공연을 진행 한 데 이어, 4월에는 남한의 대중예술인들이 평양에서 공연을 이어갔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4월 남북 정상 회담과 판문점 선언, 6월 북·미 정상회담과 싱가포르 공동성명, 9월 평양공동선언 등 남북미 정상 간의 릴레이 회담과 핵문제 해결 및 관계 개선을 위한 공동선언의 발표가 이어졌다. 이러한 선언들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을 위한 커다란 방향성을 제시했다는 점만으로도 그 의의가 결코 작지 않다.
그렇지만 현재의 상황에서 남북예술교류가 지속성 을 가지고 전개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기는 어렵다. 현재의 북한 핵 위기는 역설적으로 핵문제의 해결 없이 남·북·미 관계 개선이나 남북예술교류 활성화를 기대하기 어렵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핵문제가 일단락될 때까지 남북예술교류 를 멈추어야 하는 것일까. 북·미관계가 개선되고 한반도 평화체제가 구축되는 상황이 온다면 과거와 확연히 구 분되는 새로운 방식의 남북예술교류가 전면화, 지속화 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한편으로 핵 위기 해소를 위한 노력과 함께 다른 한편으로 남북예술교류의 전 면화, 지속화 상황을 준비해 나가는 노력을 병행해야 할 것이다. 민간에서는 새로운 상황에서의 예술교류를 준비하고, 정부에서는 민간부문 예술교류가 지속성을 가지고 추진될 수 있는 제도적·사회적 환경을 만드는 데 우선 노력을 집중해야 할 것이다.
5. 2004년 6월 15일 인천에서 열린 우리민족대회에서 선보인 남북 예술단 합동공연
6. 2004년 6월 26일 평양시 평양문화전시관에서 열린 남북공동사진전
7. 2008년 2월 11일 남북 공동 문학잡지 ‘통일문학’ 창간 기념행사
8. 2018년 2월 11일 서울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열린 북한 삼지연관현악단 공연
박 영 정한국문화관광연구원 선임연구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