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화장을 하다
이제 우리에게 화장품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필수품이 됐다. 북한에서도 화장문화가 달라지고 있다. 기초화장이 화장의 전부라고 생각했던 것에서 ‘사람의 얼굴을 아름답고 문화적으로 가꾸기 위한 색채예술의 한 분야’(길수미, 『화장과 우리 생활 : 누구나 아름다워질 수 있다』(조선출판물수출입사, 2017))로써 개인의 아름다움을 과감하게 드러내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 ‘화장 잘하는 법’을 소개한 책자도 나왔고, 주름을 펴고 노화를 방지하는 기능성 화장품도 속속 출시되고 있다.
당의 은덕에서 상품으로
북한에서 화장품은 3·8부녀절 같은 명절에 내려지는 선물로 당의 은덕이자 인민을 향한 최고지도자의 더없는 사랑의 상징이었다. 여류시인 렴형미는 ‘위대한 선군령장 김정일장군님께서 / 그 많은 일, 그 먼 전선길 다 미루시고 / 녀성근로자들의 친아버지가 되시여 / 명절경축공연을 함께 보아주셨나니 / 봄향기화장품까지 한아름 안겨주셨어라’(<선군시대 녀성의 노래>, 『조선문학』 2009년 8호)고 노래했다. 김윤걸·박정철은 장시 <백일낮, 백일밤>에서 ‘3·8절 그날 / 녀성들의 노래가 울려퍼지는 극장에서 / 장군님 정이 어린 / 봄향기 화장품’을 받으면서 ‘온 나라 딸들’이 목메어 ‘아버지!’를 불렀다고 노래했다. 이처럼 북한에서 화장품은 3·8부녀절에 내려주는 사랑의 선물이거나 경애하는 장군님의 더 없는 인민 사랑의 징표였다.
‘3·8부녀절’같이 특별한 날에 받았던 화장품 선물은 더는 위인 칭송의 상징이 아니다. 김정은 체제에서 화장품은 사회주의 문명국에 사는 인민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하는 문명한 생활 중의 하나가 되었다. ‘사회의 꽃으로 불리는 여성들이 몸단장을 아름답고 고상하게 하는 것과 그에 어울리게 화장을 세련되고 우아하게 하는 것’은 높은 문화 수준을 지니고 최상의 문명을 향유하는 상징이 되었다.
한편, 북한의 화장품은 김정은 체제의 경제 정책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기도 하다. 김정은 체제의 경제발전 전략은 ‘선택과 집중’이다. 중공업 중심에서 소비재산업과 서비스 산업으로 전환하고, 북한의 자원과 기술로써 경쟁할 수 있는 분야를 전략적으로 육성하고 있다.
화장품도 전략적 육성 분야로 개발되고 있다. 화장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화장품 종류도 많아졌고, 기능성 제품도 속속 출시되고 있다. 김정은 시대의 경제전략인 ‘원료, 재료의 국산화’, ‘현대화·정보화’의 교시에 맞춰 세포 줄기나 천연재료 등을 통해 원료의 국산화를 도모하면서, 생산 공정의 현대화, 무인화도 추진하고 있다. 김정은의 적극적인 관심과 후원을 등에 업은 과감한 설비 개선, 품질관리체계인 ISO 9001 인증을 통한 제품관리 체계화, 디자인 혁신을 통한 상품성 제고, 적극적인 대외홍보와 합작을 통한 판매 네트워크 강화를 꾀하면서, 대외 수출 품목으로써 가능성을 넘보고 있다.
북한 화장품 브랜드와 종류
화장품 시장도 독점에서 경쟁체제로 전환되었다. 북한 화장품을 대표하는 브랜드는 신의주화장품 공장에서 생산하는 화장품인 ‘봄향기’다. 다른 브랜드는 몰라도 봄향기를 모르는 여성은 없을 정도로 북한의 화장품 브랜드 중에서는 압도적인 브랜드 파워를 갖고 있다. ‘봄향기’는 개성고려인삼을 비롯하여 천연 약재를 이용한 화장품을 주로 생산한다. 개성고려인삼을 주 원료로 살결물(수렴성, 보습성), 미백영양물, 크림, 밤크림, 분크림, 물크림, 영양크림, 미백크림 등을 만든다. 화장품은 낱개로도 판매하지만 3종, 5종, 7종 세트로 판매하기도 한다. 이외에도 제품은 기초원료, 가공기술, 기능에 따라 구분하는데, 954세트, 1102세트, 984세트, 744세트, 754세트, 734세트, 654세트 등을 생산하고 있다. 북한 화장품을 대표하는 신의주화장품 공장의 ‘봄향기’만 알고 있는 인민들에게 평양화장품 공장의 ‘은하수’가 첨단 시설로 생산 설비를 현대화면서, 브랜드 경쟁을 선언했다. ‘은하수’는 평양화장품 공장의 브랜드로 ‘봄향기’에 밀리기도 했지만 김정은 체제에서 첨단 시설을 갖추고 자동화 시설을 도입하면서 다시 도전장을 내놓았다. 평양화장품 공장은 최근 들어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는 공장으로 김정은이 제시한 ‘인민경제의 현대화·정보화’를 잘 실천한 본보기다. 최신 시설을 갖추고 소량·다품종 생산 체계를 구축한 것은 물론, 일반 화장품에서 부터 기능성 화장품, 치료용 화장품까지 개발하고 있다. 전통 브랜드인 봄향기와 은하수 외에 새로운 브랜드도 속속 생겼다. 금강산합작회사의 ‘금강산’ 브랜드가 노화 방지와 주름살 제거 등의 기능성 화장품을 출시하면서 여심을 흔들었고, 신생 브랜드인 묘향천호합작회사의 ‘미래’ 화장품은 “래일의 아름다움을 약속해주는 미래화장품”이라는 카피를 내세우면서, 기능성 화장품을 중심으로 한 제품과 원색의 파격적인 색채와 고급이미지를 강조한 디자인으로 젊은 여성을 공략하고 있다.
건국대학교 통일인문학연구단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