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칼럼

이희옥 한·중의 이중적 중재자
역할이 필요하다

이희옥 성균관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북·미 정상회담은 서로의 입장 차이를 확인한 채 의미 있는 결실을 맺지 못했다. 미국은 한반도 비핵화에 의표를 찌르는 일괄타결 방식으로 접근했고 북한은 영변 핵시설 폐지를 시작으로 비핵화 로드맵을 진행하는 단계적, 동시적 해법을 고수했다. 좋은 분위기에서 출발했지만 북·미 간 오랜 신뢰적자를 극복하지는 못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의도된 실망감 속에서 국제제재의 고삐를 쥐고 북한이 해답을 들고 찾아올 것을 요구하고 있고, 김정은 위원장도 미국보다 북한이 먼저 움직이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결기를 세웠다.

그러나 지금 당장의 문제는 침묵 속에서 고조되는 한반도의 위기상황이다. 북한은 ‘빈손 귀국’ 이후 참모들은 미국에 대한 비난게임을 시도하면서 긴장을 통해 국면을 전환시킬 수도 있다. 특히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협상중단을 선언하고 스스로의 퇴로를 막는다면 어렵게 만든 한반도 평화의 기회가 날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어느 때보다 적극적 중재가 필요하고 시급하다. 그러나 북한에게 일방적 양보를 요구하거나 북·미 중간에서 이견을 조율하는 소극적 역할로는 문제를 풀기 어렵다. 분명한 한국적 프로세스 대안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한국은 중재자가 아니라 당사국이라는 북한의 인식 그리고 한미동맹 등의 현실적 제약이 크다면 한중 양국은 이중적 중재자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

중국은 김정은 위원장의 첫 중국 방문 직후 어떠한 환경에서도 사회주의 북한을 지지할 것이라고 밝혔고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의지도 강하다. 특히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와 종전선언 논란과정에서 불거진 차이나 패싱을 넘어 한반도 문제에서 건설적인 역할을 하기 위해서라도 어려울 때 위기관리 능력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중국 외교부도 북·미 정상회담 직후 ‘좋은 일에는 마가 낀다(好事多魔)’라는 비유를 들어 대화의 모멘텀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특히 금년은 북·중수교 70주년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북한 방문 의사를 밝히고 이를 실행하는 것도 중요하다. 불행 중 다행은 북한과 미국 모두 말 폭탄을 주고받고 책임을 전가하면서 위기를 고조시킨 과거 패턴을 벗어나 신중한 모드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도 되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왔고 한반도 비핵화를 거둬들이기에는 정치적, 외교적 부담을 크게 느끼고 있다. 또한 이번 북·미 정상회담이 의도하지 않은 결과가 있다면 상호 정책과 목표를 분명하게 확인하면서 향후 협상 방향을 명확히 해준 점이다. 사실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과정은 큰 거래(Big Deal)를 통해 단번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또한 전부가 아니면 전무라거나, 거래를 하지 않는 것이 차라리 나쁜 거래 보다는 낫다는 대화무용론이나 제재환원론은 역사가 내재된(History Embedded) 북·미관계에 대한 오독(誤讀)이다. 더 어려워진 한반도 비핵화 환경을 있는 그대로 보는 현실인식이 중요하지만, 작은 가능성만 있어도 외교적 해법을 모색하는 노력을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다. 우선 한반도의 긴장도를 낮추고 작은 거래를 축적하는 한편 빅딜과 스몰딜 사이의 단계를 압축하면서 한반도 비핵화의 역진을 막는 데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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