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 2

북·미 양자대화 한계 극복하는
접근법 모색

6·25전쟁 이후 70년 적대관계 해소를 위하여 6·12 싱가포르 회담과 4·27 하노이 회담이 열렸다. 싱가포르 회 담은 첫째,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 둘째, 평화로운 북·미 관계 수립, 셋째, 새로운 남북 관계 수립(4·27 판문점 선언을 존중), 넷째, 미군 유해송환 등으로 구성 되어 있다. 실제적으로 판문점 선언과 싱가포르 선언을 통하여 남북, 북·미 정상은 평화회담 개시를 위한 선언을 한 것이다. 이는 실제로 종전선언을 통한 평화협상이 라는 입구로 들어가는 효과를 발휘했다.

싱가포르 선언은 대화를 개시하기 위한 포괄적 합의로써, 부문별로 구체적인 고위급 회담이 본격화되면서 다양한 장애물이 발생하였다. 적과의 대화라는 특성상 같은 단어임에도 서로 다른 개념과 문법이 도출되고, 지향하는 최종적 목표와 달성 과정이 다르다는 것을 재확인했다.

이러한 교착국면을 돌파하기 위하여 문재인 대통령 은 당사자이며 중재자의 입장에서 제3차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하고, 9·19 평양선언을 달성했다.

2·27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합의가 불발이 되자, 톱다운 방식의 정상회담에 대한 회의론이 제기되기도 했다. 일부에서는 ‘회담결렬’이라는 극단적인 평가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이 상황에서 교착국면의 원인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첫째, 70년 적대관계에서 오는 적대와 불신으로 인한 간극이 있다.

둘째, 국내정치적 맥락의 분석이 필요하다. 회담은 양국 사이의 회담과 국내적으로 다양한 이해관계의 대립을 통합하는 과정이 필요하고, 특히 한국 과 미국 같은 민주사회에서는 이러한 투입과 산출과정 이 복잡하다. 미국 볼턴 보좌관과 폼페이오 장관, 비건 특별대표 등의 의견이 상충되는 것을 목격했고, 워싱턴 의 정계, 민주당, 싱크탱크, 군산복합체, 언론 등도 다양 한 의견을 개진하며 정책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셋째, 이상의 두 개의 요소와 결합되는 요인으로, 분단편익 세력과 평화편익 세력의 이해관계도 하나의 변수로 작동하고 있다. 냉전기간 대결을 통하여 이익을 보는 세력과 평창올림픽 이후 대화를 통하여 이익을 보는 세력의 이해관계가 다르다는 점이다. 이는 경제적 이익만이 아니라 선거라는 정치적 이익, 무기 판매와 군 내부의 승진이라는 군사적 이익, 그리고 사회문화적 이익 등 다양한 측면이 있다. 평화편익에 기대는 세력은 최대한 빨리 평화협정을 달성하려고 하고 있고, 분단편익에 기대는 세력은 평화의 위험성을 강조하며 다양한 장애요인을 설명하고 있다.

대화론과 제재론, 두 개의 시선

선제적 비핵화 노력에도 제재국면이 유지되면서 북한 경제의 어려움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하노이 정상회담 합의 불발 이후 상당히 억울해 하는 북한은 얻은 것이 없는지 곰곰이 판단해 볼 필요가 있다.

첫째, 북핵 실험을 하는 동아시아 위기 제공자에서 성실하게 대화를 추구하는 국가로 이미지가 개선되었다. 둘째, 관광객이 증가했다. 제재에 포함되지 않는 관광에서 상당한 수익을 누리고 있다.

지난주 학술교류를 위하여 평양을 방문했던 중국 교수들에 의하면, 여전히 평양으로 가는 기차표, 항공권 구입이 어려웠다고 한다.

필자가 지난해 면담한 기업인들도 동일한 증언을 했다. 수차례의 정상회담 덕분에 웨이하이-남포, 하노이평양 등 다양한 하늘과 바다 길 개설이 논의되고 있다. 셋째, 핵 실험과 군사훈련 중단(종결)에 따른 막대한 군사비용이 경제건설에 투입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1회 한미 연합군사훈련에 1억 달러 이상이 소요된다고 했는데 연간으로 따지면 수천억 달러에 이르고, 북한도 상응하는 훈련을 해왔다.

북한은 신년사에서 군수분야에서 농기계를 생산하고, 「로동신문」에서는 군비행장에서 하우스 농업을 통해 군이 민에 봉사한다고 홍보를 하고 있다. 더불어 장성이 상당규모 감축되고 전투병력이 건설병력으로 전환됐다. 필자가 지난 몇 년간 북·중 국경을 지속적으로 조 사한 결과 건설, 농업, 양식, 목축, 유통, 금융, 운송 등 산업 전 분야에 걸쳐 혁신이 일어나고 있다는 점에서 자력갱생의 가능성이 어느 정도 있다는 점이 실증된다고 분석할 수 있다. 더불어 제재에 따라서 무역수지가 감소한 부분이 상당 부분 상쇄되고 있다.

북한경제에서 차지하는 대외무역 의존이 높지 않은 것도 하나의 요인이다. 물론 제재로 인해 경제성장이 타격을 입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북한 경제는 회복국면에 있다. 지난 1년간 남북과 미·중은 평화편익의 맛을 어느 정도 본 셈이다.

하노이 정상회담의 합의 불발 이후, 평화편익에 기대는 대화론자와 분단편익에 기대는 제재론자 사이에 의견대립이 대대적으로 표출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미국 내 북한과의 대화 회의론자가 더욱 증가하였고, 내년 대 선과 연계하여 ‘속도조절론’이 대두되었다.

북한판 전략적 인내

이번에 진행된 워싱턴 정상회담의 목적 중 하나는 미국 내부의 회의론을 불식시키는 것이었다. 미국 워싱턴에서 보도된 내용은 주로 우리 정부가 미국에 제공하는 선물만 보도되고 있다. 대화론 입장에 있는 트럼프 대통령의 입지를 확보하고 제3차 북·미 정상회담을 위 한 불씨를 살리는 성과가 있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 이 북한에 주는 메시지는 비밀에 부쳐졌다. 한미 당국 은 이를 비밀외교의 영역으로 판단하고, 향후 우리측 특사가 평양을 방문하여 ‘새로운 접근과 로드맵’을 제안할 것으로 보인다.

평양에서는 4월 10일 당정치국 확대회의, 11일 당중앙 전원회의, 12일 제14기 제1차 최고인민회의가 개최되어 김정은이 국무위원장으로 재추대되고, 헌법이 개정 되어 최고대표자로 추대됐다. 19년 만에 진행된 시정연설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미국과의 협상을 지속할 것이 라고 밝혔다. 또한 27번이나 자력갱생을 강조했고 에너지, 건설 등의 분야를 강조하며, 제재론자들에게 타격을 가하겠다는 거친 표현을 사용하였다. 시한을 두기는 했지만, 현재 상황을 단기적으로 인내하면서 협상을 지속 하겠다는 점도 표현했다.

김 위원장은 제재론자들의 주장을 반박하며 제재에도 불구하고 대화를 지속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이는 올해 신년사에서 밝힌 구상과 일치하며, 이러한 노선은 북한판 전략적 인내라고 볼 수 있다.

북·미의 접근법과 문 대통령의 당사자 외교

워싱턴 회담과 평양의 정치일정에서 나온 향후 협상에 대한 공유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현재의 톱다운 방식을 유지한다. 더불어 특사나 원포인트 정상회담 같은 비밀외교를 지속한다.

둘째, 제3차 북·미 정상회담을 한다. 그러나 서로 조건 을 맞추는 협상이 필요하므로, 단기간에 성사되기는 어렵다. 북·미 모두 서두르지 않겠다는 입장이고, 우리 정부는 남북 특사와 원포인트 정상회담을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개최하여, 북·미(남·북·미) 정상회담을 추동한 다는 입장이다.

셋째, 김 위원장은 연말까지로 협상 시간을 한정하고 있다. 이때까지 절충적인 로드맵이 모색되지 않으면, ‘새로운 길’이 모색될 가능성이 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일정과도 유사한데, 미국은 이미 대선 정국에 들어섰고, 내년 초면 트럼프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협상에 현재와 같은 관심을 기울일 상황이 못 된다. 따라서 시간은 우리 정부의 편이 아니라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넷째, 미·북은 각각 우리 정부에 중재자를 넘어서 당사자로서의 역할을 요청하고 있다. 양자 회담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하여, 올해 안에 3자 정상회담 같은 새로운 접근법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

우리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의 빅딜 요구와 김 위원장의 단계적 주고받기 사이에서 어떤 절충안을 마련할 수 있는지 시험에 오른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25일 러시아를 방문하여 북·러 정상회담을 했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북·중 수교 70주년을 맞이하여 평양 방문을 앞두고 있다. 따라서 김 위원장은 중국, 러시아와 협력을 통한 새로운 길의 모색도 하나의 협상카드로 이용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싱가포르 회담 이후 교착국면은 미국이 리비아 모델 을 고수하며 일괄타결을 주장한 것도 하나의 원인이었다. 2월 스탠포드 대학에서 비건 특별대표가 ‘포괄적 합의와 단계적 이행’ 방안을 제시하며, 하노이의 합의 가능성을 높였다.

그러나 하노이에서 합의 불발 이후 협상파인 폼페이 오장관과 비건 특별대표 등의 입장이 볼턴과 같은 리비 아모델로 재선회한 것이다. 지난 11일 한미 정상회담에 서 트럼프 대통령은 좀 더 유연한 태도를 표명했다. 빅딜 을 지향하지만 스몰러 딜(Smaller Deal)도 가능하다고 입장을 내놓은 것이다. 문 대통령의 굿 이너프 딜(Good Enough Deal)과 트럼프 대통령의 스몰러 딜이 어느 정도 유사한지는 한미 사이에 물밑접촉이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북·미 입장 차이와 체념, 그리고 하노이 합의 불발 등 다양한 요인으로 현재 북·미 협상 재개는 쉽지 않아 보인다. 따라서 문 대통령은 당사자 입장에서 북한에 특사를 파견하고, 판문점에서 실무 형태의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고, 이를 바탕으로 제3차 북·미 정상회담을 성사시켜야 하는 역사적 과업을 안고 있다.

박 종 철 박 종 철
경상대학교 일반사회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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