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산책

민통선 마을에서 봄을 영접하다

반가운 손님처럼 찾아온 2019년 봄. 계절은 한 치의 오차도 없다. 때가 되면 오고 때가 되면 간다. 봄의 한 가운데를 달리는 4월. 민통선 마을의 봄은 어떤 모습 일까 궁금해 집을 나섰다. 임진각 옆으로 임진강을 건 너는 통일대교가 보인다. 이름 그대로 통일을 염원하 는 다리다. 이번에 찾아가는 통일촌과 해마루촌은 통 일대교를 건너야 갈 수 있다. 물론 이 지역은 민간인 출입통제구역이라 신분 확인 절차가 필수다. 검문소 를 통과해 조금 더 가니 판문점과 개성을 알리는 이정 표가 보인다. 평양까지 200㎞. 서울-대전 간 거리보다 가깝다. 곧바로 달려가면 1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인 데 이곳은 왜 그토록 어려운 것일까.

장단출장소가 있는 통일촌

통일대교를 건너 일직선으로 뚫린 큰길에서 좌회전하 면 바로 통일촌이 나온다. 그런데 자동차 내비게이션이 먹통이다. 민간인 통제선에 바짝 다가섰다는 증거다. 군사분계선에서 불과 4~5㎞ 떨어진 곳, 그야말로 최전방 마을이다. 남쪽에서 민통선 북쪽에 있는 마을은 3곳뿐 이다. 이곳 통일촌과 더 북쪽의 해마루촌, 그리고 유엔 사령부의 관리를 받고 있는 대성동 자유의 마을이 그곳 이다.

통일촌에 들어서니 마을을 알리는 비석과 조형물이 반긴다. 남북관계가 좋아지고 한반도 평화가 좀 더 가깝게 다가와서일까. 마을은 조용했지만 거리를 오가는 주 민들 표정은 활기차 보였다. 학생들을 싣고 온 관광버스도 보였고 군용트럭이 수시로 들락거렸다. 아스팔트로 포장된 마을길과 태극기가 걸린 신식 주택들, 그리고 학교와 보건지소, 휴게소, 식당, 교회, 관공서(장단출장소) 등은 여느 면 소재지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장단출장소는 비무장지대 안에 있는 통일촌, 해마루촌, 대성동마을의 행정 업무를 총괄한다. 드문드문 방공호와 무기고도 보이고 총을 든 군인들과 지뢰를 알리 는 철책이 둘러져 있어 서늘한 기분도 들지만 마을은 대 체로 평온했다. 무엇보다 오염 안 된 수려한 자연은 매연 과 탁한 공기에 질릴 대로 질린 길손에게 크나큰 선물이었다. 간간이 새들은 지저귀며 봄물 든 땅에서는 새싹들이 올라오고 나무들마다 가느다란 새순이 돋아나 싱그러움을 더해주었다.

통일촌은 1973년 박정희 대통령 시절, 정부 주도로 세워졌다. ‘일하면서 싸우고 싸우면서 일한다’라는 이스라엘 집단농장(키부츠·kibbutz)의 형태를 빌려 와 실향민 40가구와 제대 군인 40가구 등 80가구가 힘을 모아 마을을 만들었다. 현재 174세대 434명이 살고 있는데 근래 들어 남북이 화해 무드로 급진전하면서 방문객들의 발길이 부쩍 늘었다는 소식이다. 마을 사람들은 쌀, 콩, 인삼 등을 농사지으며 생계를 꾸려가고 있는데 초기에 정착한 1세대는 대부분 돌아가시고 2세대가 주축을 이루고 있다. 마을에 있는 군내초등학교는 한때 학생 수가 줄어들어 폐교 위기로까지 몰렸지만 다시 살아나 어엿한 마을 교육기관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마을을 먹여 살리는 장단콩

통일촌은 행정구역상으론 군내면 백연리다. 원래 이름 은 ‘장단군(郡)’인데, 이곳에서 나는 콩이 유명세를 타면 서 ‘장단콩 마을’로 더 알려져 있다. 청정 자연에 일교차 가 크고 물이 잘 빠지는 마사토(화강토)가 대부분인 민통선 지역은 콩이 자라기에 좋은 여건을 가지고 있다. 덕분에 마을의 특산물이 된 장단콩은 통일촌을 먹여 살리 는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마을 안에는 장단콩 전문 식당을 비롯해 두부나 청국 장, 된장 등을 만드는 장류 가공공장이 있으며 장단콩전 시관과 체험 시설도 마련되어 있었다. 매년 늦가을에는 ‘장단콩 축제’를 열고, DMZ투어와 연계한 프로그램을 개발해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길손이 찾은 그날 도 학생들이 단체로 찾아와 장단콩 음식 만들기 체험을 하고 있었다.

통일촌이 어떤 역사를 거쳐 왔는지 알고싶다면 장단 출장소 옆에 있는 마을역사관을 들러야 한다. 마을의 역사부터 시작해 현재까지 남아있는 전쟁의 흔적들, 이런 저런 사연이 담긴 생활용구들, 문화유적, DMZ의 자연환경, 마을 주민 한봉호 씨의 농사일지, 최영주 씨의 옛 집 이야기, 정자리 민씨 댁의 일생의례 등을 빛바랜 사진과 함께 소개하고 있다. 통일촌에서 살아온 마을 주 민들의 지난한 삶은 뭉클하고 감동적이다. 전시해 둔 포탄, 지뢰, 탄피, 불발탄과 피난 갈 때 묻어둔 항아리와 그릇들을 보노라면 급박했던 전쟁의 참상이 어떠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장단출장소 앞에는 평화를 염원하는 실향민들의 간절한 뜻을 담은 망향제단과 민족의 평화통일을 위해 힘썼던 일붕 스님의 시비가 세워져 있다. 보건지소 옆에 있는 통일촌교회도 눈길을 끈다. 서울 충현교회에서 북한 선교에 뜻을 두고 설립했다고 한다. 마을 안쪽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면 6·25전쟁 후 미군이 주둔해 오다 반환한 캠프 그리브스 기지가 있다. 장교 숙소, 생활관, 체육관, 막사, 보급소 등 다양한 군 시설이 그대로 보존돼 있는데, 생활관 1개동은 리모델링해 체험형 숙박시설 (DMZ 체험관·유스호스텔)로 쓰고 있다.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드라마 ‘태양의 후예’ 촬영지로 알려지면 서 더 관심을 받는 곳이기도 하다.

높은음자리표 모양의 예쁜 마을

통일촌 탐방을 마치고 해마루촌으로 향한다. 해마루촌은 통일촌에서 꽤 떨어져 있다. 행정구역상으로 진동 면 동파리다. 하늘에서 보면 마을 모습이 높은음자리표 같다 하여 ‘높은음자리표 마을’로도 불린다. 해마루 촌으로 가다 만난 임진강은 유순한 모습으로 길손을 반 겨주었다. 강가에 늘어선 나무들과 구릉마다 봄 색깔이 옅게 퍼져 있고 이따금 농부들이 나와 땅을 일구는 모 습도 보인다. 자연은 저렇듯 평온한 모습인데 내 마음은 왜 이리 무거울까? 편안하고 자유롭게 이 땅을 돌아보는 그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해마루촌은 동파리(東坡里)를 순우리말로 고친 이름 이다. 해를 뜻하는 동(東)에 언덕을 뜻하는 파(坡)를 풀어서 지었다. 2001년에 조성돼 18년의 역사를 지닌 이 마을은 6·25전쟁 때는 개성에서 내려온 인민군 탱크부대가 주둔했던 곳이다. 이곳도 통일촌처럼 곳곳에 감시 초소가 있고 어김없이 군인들이 나와 신분을 확인하고 있다.

맑은 햇살을 머리에 이고 마을 구경에 나선다. 첫 인상 은 산뜻하고 세련된 서울 교외의 전원주택 단지를 보는 느낌이었다. 담이 없고 지번이 없는 집집마다 마당에 산수유며 개나리, 매화가 싹 틔울 준비를 하고 있다. 아무래도 북쪽이다 보니 봄이 늦게 찾아와 이제야 봄꽃들이 얼굴을 내미는 모양이다. 전국 면 단위 중 규모가 가장 작다는 해마루촌에는 현재 80세대 166명이 살고 있다. 사람의 왕래가 적고 자연이 깨끗하게 보존돼 있어 환경부에서 자연생태 우수마을로 지정했다.

마을 입구 휴게소 앞에는 DMZ 해마루촌 평화갤러리가 있다. 이곳은 동서대학 디자인 전공 학생들이 재능 기부의 일환으로 방치된 마을 창고를 갤러리로 재탄생 시킨 곳이다. 학생들은 2010년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봉사 활동을 해 오고 있는데, 평화를 기원하는 숫자 조형물과 고라니를 형상화한 알림판을 만들어 세우는 등 주 민들과 함께 마을을 가꿔가고 있다.

『동의보감』 완성한 허준이 잠든 곳

해마루촌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동의보감』의 저자 허준(1539~1615) 선생의 묘가 있다. 묘역은 잘 단장돼 있었다. 허준 선생을 상세하게 소개한 안내판도 인상적이다. 새소리 바람소리를 들으며 오솔길을 따라가니 재실(묘제를 지내기 위해 지은 건물)이 먼저 나오고 그 뒤에 묘역이 앉아 있었는데, 쌍묘였다. 허준과 부인 안동 김씨가 나란히 잠들어 있는 것이다. 위에는 허준의 어머니 묘가 있었는데 진짜 묘인지는 확실치 않다.

허준 선생의 묘는 1991년에 발견되었다. 발견 당시 봉분은 파헤쳐져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는데, 이 묘가 허준 선생의 묘라는 것을 밝히는 데는 재미 고문헌 연구가 이양재 씨의 공이 컸다. 그는 군부대의 협조를 얻 허씨들이 모여 살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옛 땅을 끈질기게 뒤져 묘를 발견했고 땅속에 묻혀있던 묘비도 찾아냈다. 그리고 마침내 두 쪽으로 갈라진 비문 가운데 ‘양평군 호성공신 허준’이라는 글씨와 양천 허씨 족보에 ‘하포리 광암동 손좌쌍분’이라는 기록을 통해 허준 묘가 확실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해마루촌과 허준 묘소를 둘러보고 나오는데 저 멀리 덕진산성(사적 제537호)이 희미하게 손짓하고 있다. 고구려때 외적의 침입을 막기위해 쌓은 산성이다. 멀리서 보면 표주박 모양을 하고 있다. 이곳 통일촌에 찾아온 봄처럼 남북 관계에도 따뜻한 기운이 스며들고 있다. 언젠가 마침내 평화통일이라는 민족의 염원이 이루어진다 면 이곳 민통선 지역에 완연한 봄이 꽃피우게 될 것이다. 주민들은 오늘도 그런 희망을 품에 안고 살아간다.

김 초 록 김 초 록
문화답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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