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2

SPECIAL 02
정상외교와 다층위 협상 병행하며
이익의 조화점 만들어야

문재인 정부에서 한반도 정책의 핵심 화두는 평화와 번영이다. 북한의 연이은 핵·미사일 실험 등 전략도발과 미국의 군사적 수단 사용 가능성이 언급되는 등 한반도 위기가 고조된 가운데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전쟁반대 의지를 분명히 하고 ‘평화우선주의’를 천명했다. 문재인 정부는 평화를 최우선의 가치이자 번영을 위한 토대라고 보고 평화우선주의를 실천하여 전쟁의 공포로부터 벗어나 한층 평화로운 ‘신한반도체제’를 구축하고자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평화공존과 공동번영의 한반도 비전을 ‘베를린 구상’을 통해 밝히고 남북 신뢰회복을 위해 노력한 결과 판문점 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을 채택하고 평화·번영의 새 시대를 열어나가고 있다. 9·19 남북군사분야 부속합의서 채택을 통해서 획기적인 군사적 긴장완화 조치를 취해나가는 것은 큰 성과이다. 안보리 대북제재로 ‘한반도 신경제 구상’ 실현과 관련한 남북경협은 제약을 받고 있지만 남북관계 복원과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본격화, 북·미 비핵평화협상 진행, 군사분계선 일대의 긴장완화 조치, 연락사무소 개설 등 베를린 구상은 대부분 현실화되고 있다.

이익의 조화점 찾아 나선 남·북·미 정상

문재인 정부는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대결국면을 대화국면으로 전환하여 남북, 북·중, 북·미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고 비핵화 협상을 본격화할 수 있는 전기를 마련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평화우선의 한반도정책, 김정은 위원장의 경제발전총력집중노선, 트럼프 대통령의 최대의 압박과 관여(maximum pressure and engagement)정책 사이에 ‘이익의 조화점’을 찾아 남·북·미 정상들이 직접 나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비핵화를 위한 협상을 추진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평화 우선의 한반도정책에 따라 남북관계 개선과 비핵화 노력을 병행 추진하여 남북관계를 복원하고 북·미 대화를 촉진함으로써 한반도 비핵평화 프로세스의 밑그림을 그렸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남북 정상회담 3차례, 북·미 정상회담 2차례, 북·중 정상회담 4차례, 북·러 정상회담 1차례 등 남북관계 복원과 한반도 비핵평화 프로세스 가동을 위한 양자 톱다운 방식의 정상외교가 활발히 진행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베를린 구상에서 밝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방안은 4·27 판문점 선언을 통해서 한반도 비핵평화 프로세스로 진화하고 6·12 북·미 공동성명에서 재확인됐다.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합의 도출에 실패하여 한반도 비핵평화 프로세스가 잠시 교착국면에 빠져 있지만 우리 정부는 북·미 핵 협상을 촉진하고 견인하는 적극적 역할을 수행해왔다. 판문점 선언이 북·미 공동성명에서 재확인되고 북·미관계가 교착될 때 남북관계에서 돌파구를 찾았듯이 남북관계가 북·미관계를 견인하는 데 긍정적 역할을 해 왔다.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합의도출에 실패함으로써 우리 정부의 중재자, 촉진자 역할이 시험대에 올랐다. 적극적이고 본격적인 한반도 비핵평화 프로세스를 위한 주변국과의 외교가 절실한 가운데 대북, 대미 중심의 양자 톱다운 중심의 외교를 다변화하고, 특히 대중국, 대러시아외교를 적극화하여 북한의 비핵화를 견인하는 데 두 나라의 지원을 얻어내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확인한 것처럼 상호 신뢰 부족을 극복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북한은 판문점 선언과 북·미 공동성명에서 합의한 한반도에서의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과 완전한 비핵화를 동시행동원칙에 따라 단계적으로 이행할 것을 염두에 둔 안보-안보 교환의 한반도 비핵평화 프로세스를 추진하고자 한다. 북한은 평화체제-비핵화 교환을 단계별 동시행동원칙에 따라 이행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북·미 사이에 신뢰가 없기 때문에 단계별로 동시행동을 추진하면서 신뢰를 쌓아가자는 것이다. 북한은 신뢰를 쌓기 위한 선행조치로 핵과 장거리 미사일 실험을 하지 않기로 약속하고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기했다. 미국은 북한의 선 행동조치에 대한 상응조치로 한미연합군사연습을 중단했다. 하지만 미국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의지를 확신하지 못하고 핵과 미사일에 생화학무기를 포함하여 대량살상무기(WMD) 전반을 비핵화 범주에 넣어 빅딜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은 북한의 모든 위협을 한꺼번에 해소하는 검증 가능한 비핵화를 실현해야 제재를 해제할 수 있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북한은 비핵화를 ‘평화담판’의 범주에 넣어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 차원에서 ‘조선반도 비핵화’를 다뤄야 하며, 미국의 전략자산 전개 등 군사적 위협이 해소되고 체제안전 보장을 위한 종전 선언과 상호 연락사무소를 개설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정상 간 신뢰 바탕으로 다층위 협상 추진

하노이 노딜 이후 대화가 중단되고 북한이 단거리 미사일 등 발사체를 시험 발사하는 무력시위를 강행하자, 일부에서는 합의 이후 사문화의 길을 걸었던 전철을 다시 밟는 것이 아닌지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비관할 단계가 아니다. 남·북·미 정상들이 신뢰를 바탕으로 톱다운 방식으로 협상을 추진해 오다가 미국의 국내정치 변수가 작동하면서 잠시 교착국면에 빠져있지만 판이 깨진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북한은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볼턴 국가안보보좌관 등 미국 관료들의 반대로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합의도출에 실패했다고 주장하면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 사이의 “개인적 관계는 여전히 훌륭하다”고 신뢰를 나타냈다. 트럼프 대통령도 “김정은 위원장과 관계는 훌륭하고 3차 북·미 정상회담을 개최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정은 위원장이 4월 11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남측 당국에 대한 당사자 역할 주문, 미국에 대한 빅딜안 거부와 새로운 계산법 요구, 북한의 안보-경제교환 요구에서 안보-안보교환 요구로 회귀, 바텀업(bottom up) 방식의 연내 접수 가능한 공정한 내용의 합의문 도출 등을 요구함으로써 기존 협상 방식과 틀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4월 11일 열린 한미 정상회담의 결과를 공유하기 전에 김정은 위원장이 북·미 쌍방이 일방적인 요구조건을 내려놓고 건설적인 해법을 찾자고 함으로써 한미 정상의 협상재개 노력은 무위로 돌아갔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하겠다고 했지만 김정은 위원장이 민족공조를 위한 남측의 ‘당사자’ 역할 요구와 새로운 계산법을 마련하기 위한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용단’을 촉구한 터라 당장 남북 정상회담 제안을 받아들일 가능성은 높지 않다. 남·북·미 최고지도자들 사이의 신뢰가 여전하여 톱다운 방식으로 한반도 비핵평화 프로세스 가동을 위한 노력을 지속해나가야 하지만, ‘서로에게 접수 가능한 공정한 합의문’을 만들기 위한 양자 또는 다자 실무협상, 고위급회담, 정상회담 등 다층위의 협상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서두르지 않고 단계를 거쳐(step by step) 다층위의 협상을 추진하겠다고 했고, 김정은 위원장도 올해 말까지 합의안이 만들어지면 서명하겠다고 하면서 다층위의 협상을 통해서 합의문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점을 인정했다.

이제부터 한국은 본격적으로 당사자로 나서 2005년 6자회담의 ‘9·19 공동성명’을 만들 때 처럼 한반도 비핵평화 프로세스를 만드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전부 아니면 전무(all or nothing) 방식과 일방주의적 요구를 할 경우 협상은 이뤄질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수석협상가’로서 남·북·미 사이의 이익의 조화점을 찾아 한반도 비핵평화 프로세스의 이행 로드맵을 만들고 이행해 나가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적극적 정상외교로 비핵평화 프로세스 본격 가동

2차 북·미 정상회담 합의가 결렬됨으로써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답방도 당분간 쉽지 않아 보인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의지가 행동으로 본격화하지 않으면 서울 답방을 둘러싼 남남갈등이 심화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이 지금까지 나타난 쟁점을 분석하여 중재안을 만들어 남북, 북·미, 한미 또는 남·북·미 고위급회담을 추진하고, 일괄타결식 포괄적 합의와 단계별 이행에 합의할 경우 3차 북·미 정상회담과 4차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양 정상의 입을 통해서 나올 수 있는 의제가 모두 나왔다. 앞으로 는 실무협상을 통해서 이행 로드맵을 만들고 단계별 이행방안에 합의해야 할 것이다. 쟁점 이 드러나고 우려수준과 요구수준이 높아져 작은 타협으로 만족하기 어렵게 됐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지금부터는 포괄적 합의와 단계별 이행을 모색해야 한다. 제재해제가 핵심쟁점 으로 떠올랐기 때문에 제재를 부가한 유엔 안보리와 상임이사국들도 관심을 가지고 중재안 을 내는 데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톱다운 방식의 양자협상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남·북· 미, 남·북·미·중 등 다자협상도 추진해야 할 것이다. 이제부터는 한국이 평화 프로세스와 비핵화 프로세스를 결합하여 ‘촉진자’ 역할을 넘어 당사자의 위치에서 창의적인 비핵평화 프로세스의 이행 로드맵을 만드는 노력을 적극화해야 할 것이다.

하노이 노딜 이후 교착국면이 장기화하면 한반도 비핵평화 프로세스의 추진 동력이 떨어질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6월 말 일본 오사카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반도 비핵평화 프로세스의 본격 가동을 위한 적극적인 정상외교를 펼쳐야 할 것이다. 6월 말 서울에서 열릴 예정인 한미 정상회담에서 북한이 수용 가능한 ‘새로운 셈법’에 의한 북핵 해법을 마련하고, 이를 설명하기 위한 4차 남북 정상회담을 판문점에서 개최하는 문제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고 유 환 고 유 환
동국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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