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담 ]
강영식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사무총장
김광길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
황방열 서울특별시 남북협력추진단장
[ 사회 ]
전난경 민주평통 위원활동지원국장
전난경(사회) | 최근 남북관계가 경색되며 교류협력도 요원해졌다. 각자 활동하는 분야의 남북교류협력 사업은 어떤 상황인가?
강영식 | 남북교류에 찬바람이 불고 있다. 북·미 회담 결렬과 비핵화 문제에 모든 것이 집중된 상황에서 남북 간의 영역인 교류와 협력 문제가 실종된 것에 답답함도 느낀다. 대북지원 단체를 비롯해 지자체와 중앙정부가 힘을 합해 식량지원을 통한 남북관계 개선을 모색하고 있지만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지속가능한 대북지원을 할 수 있을지 근본적인 고민을 하고 있다.
김광길 | 지난해 남북 경제협력 사업에 거는 기대가 굉장히 높았다. 모든 기업들이 관련 팀을 만들며 준비했는데, 하노이 회담 실패 이후 관망세로 돌아서고 있다. 다만 최근 개성공단 기업에 대해 자산실사 점검을 위한 방북 승인이 났다. 아직 북한과의 협의 문제가 남아있지만 이것을 시작으로 남과 북이 머리를 맞대고 개성공단 문제를 풀어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황방열 | 지자체 교류도 하노이 회담 결렬의 영향으로 답보상태이다. 지금은 구체적인 사업보다 어떻게 대비할 것인가가 더 중요한 단계인 것 같다. 서울시는 작년 평양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2032년 하계올림픽 남북 공동유치와 관련하여 국내 유치 도시는 서울, 북측은 평 양에서 개최하기 위한 준비를 차근히 하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이 박원순 시장에게 직접 요청한 대동강 수질개선 사업, 그리고 최근 방한한 데이비드 비즐리 세계식량계획(WFP) 사무총장이 요청한 북한 식량지원 등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준비하고 있다.
대북지원, 인도주의 원칙 견지하고 안정성 위한 제도적 틀 마련
사회 | 최근 우리사회에 대북지원에 대한 논란이 다시 뜨거워지고 있다. 현재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강영식 | 북한이 2000년대 들어 국제사회에 식량을 공식적으로 요청한 적이 별로 없었다. 그러나 작년에 자연재해로 식량생산량이 근 15년 만에 가장 낮았고, 제재로 인해 수입도 어려운 상황이라 국제기구나 해외동포 단체를 통해서 긴급하게 식량지원을 요청하고 있다. 고난의 행군 시기에는 생존유지가 중요했기 때문에 하루 필요량을 1500칼로리로 계산하여 450만 톤 정도의 식량이 필요하다고 봤지만, WHO의 권장은 2100칼로리가 넘는다. 그러면 식량 필요량도 늘어난다. 이제 적당히 생명만 유지하는 수준의 식량이면 된다는 인식을 바꿔야 한다. 그동안 북한에서 식량이 부족하다고 하면 지원하는 방식을 고민했지만, 이제는 북한의 농업생산성 향상이나 경제발전을 통해 근본적인 원인을 해소하는 중장기적 개발협력 사업에 집중해야 한다. 이것이 중단된 상황에서 단순한 긴급구호 차원의 식량지원만 하는 것에 대해서는 지원단체에서도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
황방열 | 일부에서는 북한식량 상황에 대한 국제기구의 조사결과를 의심하기도 하는데, 이러한 접근은 이해하기 어렵다. WFP는 95년부터 북한에서 사업을 했고 북한에 11개의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북한당국을 제외하면 북한의 식량사정을 가장 잘 아는 집단인데 이를 부정하는 것은 유엔기구 존재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이라 본다. 한편으로 식량문제를 이야기할 때 인도적 측면이 아니라 남북관계 개선에 집중하는 것은 오히려 북한을 경직시킨다고 본다. 북한이 식량 지원에 대해 명시적으로 ‘받겠다’, ‘안 받겠다’는 말은 안 하지만 ‘시시껄렁’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정치군사적 근본문제가 더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가 지원을 하겠다고 해도 결국은 북한이 받겠다고 해야 가능한 것이다. 순수한 인도주의적 차원의 접근이 필요하다.
김광길 | 북한에서 그런 표현이 나온 배경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유엔안보리나 미국의 제재강화법 등 국제법을 보면 인도주의 사업은 제재 예외 사항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그동안 지켜지지 않았다. 우리 정부도 남북관계가 어려워도 인도주의적 사업은 꾸 준히 진행하는 자세를 견지했어야 한다. 그렇지 않았기에 북한은 인도적 사업을 인도적 목적으로 보지 않고 정치행위로 느끼는 것이다. 인도주의 사업은 기본적으로 NGO가 중심이 되는 것이 맞지만, 이럴 경우 안정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제도적 틀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정치와 인도주의 문제를 분리하여 사업을 일관되게 추진해야 하고 이런 방침을 명확하게 제도로 만들어 내야 한다. 지원형식에 있어서도 민간이나 지자체에 역할을 맡기는 것이 좋다고 본다.
대북제재 하 식량문제, 전향적으로 접근하며 풀어나가야
사회 | 대북제재가 대북 인도적 지원뿐 아니라 남북교류협력 전반에 미치는 영향도 크다.
강영식 | 쌀 지원 이야기가 나오면서 대북지원 논쟁이 뜨거워졌다. 남북관계 특성상 정부차원의 지원, 특히 쌀 지원은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쌀은 가격이 비싸기 때문에 그동안 민간은 대부분 중국에서 밀가루를 구입해서 지원했다. 그렇지만 정부는 국내가격이 아닌 국제가격으로 저렴하게 쌀을 구매할 수 있다. 정부가 지원하는 것이 부담이라면, 민간이 국제가격으로 국내 쌀을 구매해서 지원하도록 하면 상호 이익이 될 수 있다. 우리 쌀 가격도 안정되고 재고 관리 비용도 절감할 수 있다. 하지만 쌀 지원의 경우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효과를 약화시킨다는 우려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유무상통 원칙을 적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김광길 | 쌀 지원을 유무상통의 관점으로 접근하는 것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지자체나 NGO가 쌀 지원을 할 수 있다고 본다. 호혜적 차원의 교류와 무역은 인도적 지원과 별도로 접근해야 한다. 게다가 쌀은 대북제재 품목도 아니다. 우리가 너무 대북제재를 의식해서 안 될 거라 단정하는 측면도 있는데, 그러한 관점을 극복했으면 좋겠다.
황방열 | 명시적으로 북한의 식량수입은 금지되어 있지 않고, 이것을 금지하면 유엔이라고 말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지자체의 경우도 대북 식량지원에 동참하고자 하는 흐름이 있다. 식량지원은 인도주의 문제이지만 이를 통해 국면을 바꿔보려는 기대도 있다고 본다. 물론, 대북제재가 인도적 지원을 어렵게 하는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북한에 다녀온 배는 인도적 지원을 위한 것이라도 약 6개월은 미국 등 다른 곳에 갈수가 없다. 그래서 국제기구들이 북한으로 가는 배를 구하는 것이 어려운 상황이다. 현재 대북제재가 이런 식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남북관계 고유영역 확보 ·교류하며 북한과 외부의 통로 열어야
사회 | 여러 가지 제재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교류협력은 무엇이고, 이를 위해 개선할 과제는 무엇인가?
전난경 민주평통 위원활동지원국장
김광길 | 제재에도 불구하고 할 수 있는 역할을 왜 찾아야 할까를 근본적으로 따져야 한다. 그동안 ‘제재 만능론’이라 할 만큼 제재를 통해 북한 경제를 쥐고, 북한이 항복하면 비핵화 문제가 해결되고, 그 다음에 교류협력을 한다는 견해가 미국과 우리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제재가 북한의 경제에 영향을 준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으나 오히려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는 근거로 작동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 지금 필요한 것은 교류협력을 통해 북한과 외부의 통로를 열고 그들의 생각을 유연하게 바꾸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신뢰를 확보하지 못한다면 비핵화 협상은 난관에 봉착할 것이다.
강영식 | 북한이 강조하는 것이 안보와 안보의 교환이라면 북한체제를 보장하면서 평화적인 체제 구축에 들어가면 된다. 이것이 바로 우리 정부의 역할이다. 그 과정에서 개성공단이 남북의 평화체제 구축과 북한의 변화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면 개성공단의 제재를 면제 하는 강력한 국제적 협의도 해야 한다. 또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고유한 영역을 만들어야 한다. 정부와 민간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해 나가는 것이다. 그래야 남북 관계와 한반도 비핵화의 이니셔티브를 우리 정부가 다시 가져올 수 있다. 인도적 지원 문제도 북한 당국과 진지하게 협의해야 한다. 특히 중요한 것이 수송 문제인데, 민간 지원이든 정부 지원이든 적어도 인도적 물자 수송에 관해서는 남북 합의를 통해 육로 또는 항로를 다시 복구해야 한다. 제재에 굴하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은 과감히 추진해 나가는 태도의 전환이 필요하다.
강영식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사무총장
김광길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
황방열 서울특별시 남북협력추진단장
황방열 | 작은 부분에서 보면 타미플루를 지원하는 것 이 제재 예외 인정을 받았지만 운송수단 때문에 전달이 안됐다. 또 올해 2월 금강산 신년맞이 행사를 하는데 남측 기자들이 노트북과 카메라를 못 가져가는 일도 있었다. 제재가 현실적 문제이고 준수할 사인이지만 그런 부분들이 교류협력을 제약하는 요인으로 작용해서는 안 된다. 지자체 차원에서 보면 지자체를 교류협력법상에 명실상부한 협력사업의 주체로 명시하는 것도 중요하다. 다양한 교류협력 주체들을 형성하고 이들이 안정적으로 사업을 할 수 있도록 제도적 환경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민주평통, 국민 공감대 모으는 역할 높여야
사회 | 남북관계 발전과 대북지원에 대한 국민의 공감대를 높이기 위해 방안은 무엇이며, 민주평통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보는가?
강영식 | 식량지원이 남북관계 발전에 도움이 되기 위해서는 국민적 공감대를 모아야 한다. 그동안 대북지원에 대해 ‘퍼주기’, ‘안주기’ 논리로 나뉘어 이념갈등을 했다면, 문재인 정부는 민족균형발전에 기여하는 방식으로 인도적 지원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잘 주기’ 위한 제도적 고민을 해야 한다. 이를 통해 지난 20년간 우리 발목을 잡은 소위 퍼주기 논란, 쌀의 정치화 논쟁에서 벗어나야 한다. 민주평통의 경우 자문위원을 대상으로 규모와 관계없이 할 수 있는 대북지원 기구를 만드는 것도 생각해 볼만하다.
황방열 | 사회적 대화를 통해 협약을 만드는 방식이 수준이 낮고 집행력을 담보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논의 를 지속하면서 낮은 수준이라도 사회적 합의를 만든다면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국내외에 조직이 망라되어 있는 민주평통이 그러한 일을 잘 할 수 있다고 본다. 더불어 요즘 다양한 가짜뉴스가 횡행하고 있는데 남북관계와 관련된 가짜뉴스의 폐해를 막는 데도 역할 했으면 좋겠다.
김광길 | 국민적 공감대라는 것은 결국 헌법에 입각한 통일정책, 헌법이 정한 절차를 통한 통일정책이다. ‘헌법이 정한 것’은 국회나 사법적 통제를 실제로 잘 준수하도록 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것이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 중 하나인 ‘남북관계 제도화’라는 표현 안에 들어가 있는 핵심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헌법과 법률에 따른 남북관계를 진전시켜야 한다는 공감대를 민주평통이 형성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