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 1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와
주변국의 전략적 상호관계

2017년 5월 이후 지난 2년간,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문재인 정부의 노력은 롤러코스터를 탔다. 위기로 치닫던 정세는 2018년 초 대화국면으로 급전환했다. 1월 1일 김정은 위원장은 핵무력 완성이 강력한 억제력을 주었다면서 “우리 민족끼리 북남관계 개선 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하고 “(평창올림픽) 대표단 파견을 포함하여 필요한 조치를 취할 용의”가 있다고 했다.

대화 과정은 빠르게 움직였다. 위기와 긴장은 평화와 타협의 분위기로 바뀌었다. 3월초 특사단 방북과 방미에 이어, 4월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고, “한반도에 더 이상 전쟁은 없을 것”을 선언했다. 5월 2차 남북 정상회담에 이어 6월 싱가포르에서 최초의 북·미 정상 회담이 열렸고, 북·미 양측은 ‘새로운 관계’를 수립해 나가기로 했다. 9월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했고, 능라도 5.1경기장에서 북한 주민 15만 명을 앞에 두고 특별연설을 했다.

한반도 정세는 금년 2월말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또 한 번 반전했다. 중국 대륙을 가로질러 3일을 달려간 김정은 위원장과 22시간을 날아간 트럼프 대통령 모두 거래 조건을 맞추지 못하고 빈손으로 돌아갔다. 미국은 제재해제를 유보한 채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원했고, 북한은 완전한 비핵화를 유보한 채 제재해제를 요구 했다. 지금 미국은 완전한 비핵화까지 제재를 유지할 것이라 하고, 북한은 미국에게 연말까지 시간을 줄 테니 계산법을 바꾸라고 한다. 현재 상황은 교착국면이다. 지금까지의 성과를 지키고 한 걸음 더 나가기 위해, 냉정한 상황 평가와 구상이 필요하다.

남·북·미 3자 협의와 북·중 협의

2018년 초부터 톱다운 방식으로 진행된 정상외교는 북·미대화가 중심에 서고 남북대화가 촉진하는 모양새로 움직여 왔다. 남북, 한미, 북·미가 따로 만난 만큼, 엄밀한 의미의 3자회담은 아니다. 맥락을 보면 1984년 북한이 제의한 3자회담과 비슷하다. 당시 북한은 ‘북·미 회담에 남한이 참여하는 3자회담’을 제의했다. 북한은 미국을 방문하는 자오쯔양(趙紫陽) 중국 총리를 통해 이 제안을 전달하면서, ‘한반도에 무력을 유지하고 있는 남북한과 미국만이 직접당사자’라면서 중국을 배제했다. 한미 양국은 남북한과 미국, 중국이 참여하는 4자회담을 제의했고, 북한은 거절했다.

이번에도 모양새로만 보면, 중국은 한 발 물러나 있다. 그러나 중국은 남·북·미 3자 협의가 진행되는 동안 ‘방 안의 코끼리(elephant in the room)’로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중국과 북한은 4월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 전, 6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전과 후, 금년 2월 2차 북·미 정상회담 전 등 결정적 계기마다 정상회담을 가졌다. 김 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하는 형식이었지만, 북한의 이니셔티브라고만 할 수는 없다. 중국은 싱가포르에 가는 김 위원장을 위해 특별기를 제공했고, 춘절 연휴의 불편을 감수하면서 6일간의 하노이 왕복 열차 이동을 지원했다. 이러한 협의와 협조는 양국이 ‘하나의 참모부를 둔 동맹’이라는 말이 수사(修辭)가 아님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중국은 이미 1990년대 초 1차 핵위기 과정을 통해, 한반도, 특히 북한에 대한 자신의 이익을 확인한 바 있다. 1차 핵위기는 1993년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선언에서 시작하여 1994년 10월 북·미 제네바합의로 끝났다. 북한이 북·미관계 개선을 요구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 수용을 거부한 데서 시작되었다. 미국은 핵확산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북한과 직접대화에 나섰다. 핵사찰이 우선이라는 미국과, 관계개선이 먼저라는 북한의 입장이 충돌하면서 한반도에 전쟁위기가 고조되었다. 중국은 지정학적 고려에서 북한에 대한 국제적인 압박을 견제했다. 위기상황에서 북한을 감싸고 나섬으로써 한·중 수교 이후 형해(形骸)가 된 북·중동맹을 복원하고 전략적인 이익을 지켰다.

중국은 한반도 비핵화를 지지하면서도 그 실현 방법은 어디까지나 대화와 협상이 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함으로써 북한에 대한 국제적 대응 조치의 상한선을 결정했다.

북·중관계는 이보다 복잡하고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에 대해서도 평가가 다양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북·미관계와 북·중관계가 상호작용하는 것을 알고 활용했다. 북한은 미국의 핵심이익인 핵확산 문제를 제기하여 미국을 끌어들였고, 위기를 조성하여 중국의 지정학적 이익을 자극했다. 북·중동맹 복원과 북·미관계 개선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데 성공했다. 2017년의 위기와 2018년의 대화 과정은 4반세기 전, 1차 핵 위기에서 한반도 상황을 규정한 북·미·중의 전략적 삼각관계가 지금도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2017년 유엔안보리가 결의 2371호, 2375호, 2397호를 채택했지만, 중국은 ‘대화를 통한 해결’, ‘제재는 대화를 위한 수단’을 주장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안보리의 움직임에 일정한 방향성과 한계를 설정했다. ‘쌍중단, 쌍궤병행’도 중국과 북한의 이익에 들어맞는 구상이었다.

한반도 평화체제와 한미동맹 양립 방안 찾아야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는 분단이라는 현상(status quo)의 변경을 뜻하며, 한반도의 전략적 위치 때문에 주변국들의 민감한 반응을 유발한다. 냉전구조 해체를 위해 주변국들의 협력과 지지를 구하는 각별한 노력과 소통이 필요한 이유다. 중국은 주변국들 가운데서 미국 다음으로 한반도에 대한 이익을 주장해 왔다. 김 위원장이 남북 및 북·미 화를 시작하기에 앞서 중국을 방문한 것은 이 점을 감안했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 남·북·미 3자협의와 북·중 협의가 중심이 되는 현재의 소통체제가 구축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핵과 지정학을 매개로 작동하는 한반도와 그 주변의 전략적 이익 구조와는 거리가 있다. 또한, 이러한 소통체제가 한·중 간에도 효율적인 협의가 이루어지도록 하는가에 대해서도 의문이 있다.

특히, 사반세기 전과 비교할 때, 지금의 상황은 몇 가지 차이점이 있다. 그때는 영변에 대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이 문제였으나 지금은 핵무기를 포함한 북한의 핵능력 전체를 폐기하는 것이 과제다. 그때 미국은 유일한 초강대국이고 경제력이 중국의 8배였으나, 지 금은 1.5배다. 그때는 천안문사건 이후 중국의 인권상황이 관심의 대상이었으나 지금은 세계패권의 향배가 핵심이다. 그때 남한의 경제력은 중국의 3/4이었으나 지금은 1/8이다. 4반세기 전에 비해 우리에게 안겨진 과제는 더 벅차고, 여건은 더 어려워졌다. 4자회담으로 가자는 말은 아니다. 그것이 하나의 대안은 될 수 있겠지만, 이익을 반영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일본의 대응도 기민했다. 아베 총리는 4월 판문점 정상회담과 6월 싱가포르 정상회담 직전에 미국을 찾았다. 지난해 초 이후 지난 5월 27일 일본에서 열린 회담을 포함하여 모두 6차례 트럼프 대통령과 회동했다. 한반도를 보는 일본의 시각은 단순하다. 일본은 미·일동맹과 한·미동맹을 축으로 중국의 부상과 북한 핵개발에 대응한다는 간단명료한 전략구도를 갖고 있으며, 미 ·일동맹의 주니어파트너로서 이를 구체화 하고 있다. 한반도의 현상 변경 가능성은 이러한 전략구도를 바꾸어야 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촉발한다. 일본은 한반도 현상의 급격한 변화를 바라지 않으며, 이러한 시각을 굳이 숨기려 하지도 않는다.

남·북·미 3자협의의 동력이 떨어지면서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주변국들이 개입할 여지는 커지고 있다. 애당초 북·미·중 전략적 삼각관계는 한반도문제를 남·북·미 3자가 협의하여 해결하는 데 한계를 설정하는 것이었다. 특히, 2018년 남북대화와 북·미협의가 진행되는 내내 미·중관계는 악화일로에 있었다. 미·중 무역전쟁이 진행 중이지만, 중국이 무역압력에 눌려 북한에 대한 전략적 이 익을 포기할 것 같지는 않다. 중국은 북한이 붕괴하는 것을 바라지 않으며, 미국의 영향권에 들어가는 것도 수용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2월 하노이 회담은 북·미 양측이 아직 타협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북한은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질서를 수용할 자세가 되어 있지 않았고, 미국도 북한이 주장하는 안보수요의 타당성을 인정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앞으로 염두에 둘 것이 몇 가지 있다.

첫째, 당연하지만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손쉽고 올바른 방법은 북한 스스로 핵 없는 국가발전전략을 선택하고 이행하는 것이다. 북한은 서울을 겨누고 있는 방사포와 단거리미사일만으로도 이미 한미동맹에 대한 억지력을 갖추고 있다. 미국과 겨룰 핵 억지력을 추구하는 것은 ‘나의 안보를 절대화하여 남의 안보를 침해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둘째, 한·미 양국은 한반도 평화체제의 내용에 대해 합의할 필요가 있다. 한반도 평화체제와 한·미동맹을 어떻게 양립시킬 것인가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한·미동맹도, 북·중동맹도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미·중경쟁이 격화될수록 한반도에 대한 미·중의 전략적 이해 차이는 더 커지고 비핵화를 위한 협력의 여지는 줄어든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남북관계 개선을 원하는 만큼, 일본과의 관계를 잘 관리할 필요가 있다. 한·일관계가 좋지 않으면 일본이 남북관계 개선을 지원하는 데 소극적일 것이다. 미·일동맹은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다. 미국을 움직이는 역량에서 일본이 우리만 못하다고 볼 아무런 근거가 없다. 한·일관계는 ‘과거 문제’일 뿐 아니라, ‘미래 문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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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국립외교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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