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 2

안정적 한일관계 통해
한반도 비핵화 지지 확보

5월 1일 나루히토 신 천황 즉위로 일본은 새로운 ‘레이와(令和)’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일본은 레이와라는 연호를 처음으로 중국 고전이 아닌 8세기경 일본의 전통 시가집인 『만요슈(萬葉集)』 한자에서 따와 만들었다. 무려 202년 만에 이루어진 아키히토 전 천황의 생전 퇴위에 따라 젊은 천황이 취임한데다 10여 일의 황금연휴가 맞물리며 일본사회는 즐거운 축하 무드에 젖어들었다. 나루히토 신 천황은 2015년 황태자 시절 기자회견에서 “전쟁의 비참한 체험이나 역사를 젊은세대에게 정확하게 전달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신 천황에게 축하메시지를 보내면서 한일관계의 큰 발전을 위해 관심과 애정을 가져달라고 당부했다.

레이와 시대 일본 외교의 현주소

아베 신조 총리는 금년 1월 제198회 국회에서 ‘지구본 외교’로 자부할 정도로 유럽과 미국, 중국과 인도 등은 물론 아시아와 아프리카 각국을 순방하면서 적극적인 외교활동을 전개해 왔다. 5월 1일 나루히토 신 천황의 즉위와 5월 25일~28일 트럼프 대통령의 일본 방문, 6월 28~29일 오사카 G20 서밋, 10월 중순 180여 개국 정상이 모이는 천황 즉위 축하연회, 내년 7월 도쿄 하계올림픽 등 일본이 글로벌 외교의 발신지로서 역할을 해나가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는 것이다. 트럼프-아베 미·일 정상 간 유대감을 바탕으로 미·일 동맹 강화, 그리고 작년 10월 대규모 경제사절단을 동행한 7년만의 중국 방문 등 중·일 화해 분위기는 아베 총리의 발언을 뒷받침하고 있다.

그러나 달리 보면, 아베 외교가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한 채 답보상태에 머무르고 있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아베 총리는 지난 1월 22일 모스크바에서 열린 푸틴 대통령과의 러·일 정상회담에도 불구하고 북방영토 문제에서 전혀 양보를 얻어내지 못했다. 아베 총리가 북방 4개섬 일괄 반환에서 2개섬 선반환으로 한 발 물러섰지만, 러시아는 작년 11월 외교장관 회담에서 일본이 먼저 제2차 세계대전의 결과를 수용해야 한다는 강경자세를 보였다. 1월 22일 정상회담에서 러시아는 오히려 영유권 주장을 강화한 채, 북방 4개섬에서 경제협력, 러·일 간 무역액을 수년에 걸쳐 300억 달러로 늘린다는 합의를 재확인하였다. 일본 내에서 아베 총리가 러시아에 경제협력만 제공할 뿐 영토적 실익은 전혀 거두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2018년 10월 중·일 정상회담도 중국 주도의미·중, 미·일 간 무역분쟁에 대비한 위험분산용 헤징(hedging) 전략일 뿐, 중·일 간 전면 협력을 지향하면서 전략적 이익 공유를 약속한 것은 전혀 아니다. 4월 26일 워싱턴에서 열린 미·일 정상회담에서도 일본은 미국과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을 실현하기 위해 미·일 동맹을 더욱 강화할 것에 합의한 바 있다. 지금은 일단 봉합상태이지만, 중국의 해양진출과 일본의 가치관 외교 간 대립, 미·일 동맹과 대만문제, 역사와 영토문제 등에서 중·일 갈등은 언제든지 재점화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아베 정권은 가시적인 외교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한국, 북한, 러시아와 교착상태에 놓여 있다. 3회에 걸친 남북 정상회담과 두 번의 북·미 정상회담에서 아베 외교는 전혀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한 채 ‘재팬 패싱’ 논란에 휘말리기도 하였다. 일본 국내정치에서도 아베 정권은 점차 한계에 봉착하고 있다. 4월 21일 오사카와 오키나와 두 군데 보궐선거에서 여당이 참패하면서 7월 21일 참의원선거를 앞둔 자민당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태이다.

아베 총리가 추진하는 헌법개정은 중의원과 참의원 양원에서 각각 정수의 2/3를 넘어야 하고 국민투표 과반수를 통과해야 한다. 그러나 최근 아사히신문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일본 국민 64%가 헌법 9조 개정에 반대하고 있다. 일본경제는 올해 1분기 들어 마이너스 성장을 간신히 면할 정도로 제자리걸음을 한 데다, 오는 10월 예정된 소비세 증세(현행 8%→10%)는 일본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어려운 정국을 돌파할 수 있는 새로운 탈출구가 필요하다. 아베 수상이 그토록 북·일 관계에 집착하는 이유이다.

외교적 성과 위해 북·미 수교 추진

최근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 발사에도 불구하고, 5월 10일 미국을 방문한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과의 회담에서 아베 총리가 전제 조건 없이 북·일 정상회담을 추진하고 있으며, 미국의 협조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차기 주일 중국대사인 쿵쉬 안유(孔鉉佑) 외교부 차관도 지난 5월 5일 중·일 우호의원 연맹 회담에서 북·일 정상회담을 지지한다고 발언하였다. 일본은 북·일 수교를 동북아 지역에서 외교적 카드로 활용하고, 다가올 참의원 선거에서 외교적 성과로 활용하겠다는 속셈을 가지고 있다. 북한이 북·일 관계 개선에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하자, 주변국의 지지를 얻어내면서 대북 접근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 외무성은 작년 7월 북동아시아 2과를 설치하여 대북 전담과를 배치하고 다양한 루트를 활용하여 북·일 실무자 협의를 지속해 가고 있다.

제2차 북·미 정상회담 이래 북·미관계가 답보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남북 간 대화국면이 소강상태에 놓이면서, 일본 정부는 북·미 간 중재자 역할을 떠맡고자 하고 있다. 일본은 대북제재를 유지하면서도 북한과의 대화채널 구축을 시도해 왔다. 아베 총리는 1월 28일 일본국회에서 발표한 시정연설에서 김정은 위원장을 직접 만나서 납치문제를 풀고, 북·일 간 국교정상화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일본은 북·미대화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트럼프 정권과 보조를 맞추면서 먼저 북·일 정상회담을 실현하고 그 후 납치문제도 해결하는 방향으로 대북정책을 전환하고 있다. 대북관계가 장기간 교착상태에 빠진 일본이 지금까지 입구전략으로서 납치자 문제 해결을 뒤로하고, 일단 북·일 간 정상회담을 성사시키면서 대화과정에서 납치자 문제 해법을 모색하는 것으로 입장을 바꾼 셈이다.

북한도 미국의 강경자세와 대북제재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일본카드로 미국을 측면 압박하는 수단으로 이용할 수 있다. 또한, 북·일 수교가 달성될 경우 경제협력 방식으로 일본에서 들여올 약 100억 달러는 경제개발에 큰 도움이 된다. 그러나 북한은 아직까지 어떤 긍정적인 대일관계 개선의 신호도 보내지 않고 있다. 북한 노동신문은 연일 대일 비난을 거듭하고 있으며, 납치자 문제가 이미 해결되었고 추가 생존자는 없다는 기본입장을 바꾸지 않고 있다. 일본도 지난 3월 독자적인 대북 제재를 추가로 2년 연장했다. 적어도 북·미 간 대화국면이 본격화되지 않는 한, 북·일관계의 개선은 기대하기 어렵다.

한일관계 개선으로 비핵화 회담 지지 이끌어야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 비전은 한반도 비핵화와 동북아 평화·번영이며, 일본을 당당한 협력외교의 대상이자 동북아 평화체제의 파트너로서 설정하고 있다. 그러나 역사 갈등과 대북 인식의 격차로 한일관계는 악화된 상태에서 출구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2018년 1월 아베 총리는 시정연설과 외교청서에서 중국을 한국보다 우선시 할 뿐만 아니라, 한일 간 전략적 이익을 공유한다는 언급마저 생략하였다. 올해 1월 시정연설에서 북한과의 수교를 추진하겠다고 했지만, 한국은 사실상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한국도 2018년 말 나온 『국방백서』에서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를 공유하는 일본에 대한 기존 표현을 삭제하였다. 한일 양국이 전략적 제휴 관계에서 상호 전략적 방치 상태로 후퇴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일 간 대북인식의 격차도 메워지지 않고 있다. 한국은 북한의 불가역적인 핵과 미사일 포기에 상응한 제재 완화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은 납치자, 핵 무기, 중단거리 포함 미사일에 대한 완전하고 포괄적인 해결을 요구하고 있다. 일본은 북한의 비핵화 약속을 믿지 않고 있으며, 북한 내 모든 핵무기와 생화학무기, 중단거리용을 포함한 모든 미사일의 신고, 검증, 폐기가 완전히 끝나야 하며, 그 시점에서 비로소 비핵화 판단이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본이 북한과의 수교를 추진하더라도 결코 북한이 수용할 수 없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2018년 10월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대법원의 승소 판결 이후, 한일관계가 더욱 냉각되면서 양국은 상호비판과 불신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1965년 한일 청구권체제의 변용으로, 민주화 이후 억압되었던 위안부, 강제징용, 사할린 등의 피해자 구제 요청을 위한 시민적, 사법적 요구가 속출하였고, 이에 따른 한일 관계 관리, 국내 피해자 대책이 요구되고 있다. 사할린 동포 귀환, 원폭피해자 구제가 한일 공동노력으로 진전된 데 비하여 일본군 위안부와 강제징용 피해자는 아직까지 중대한 과제로 남아있는 실정이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65년 체제의 한계를 다시 한 번 부각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강제징용 대법원 판결이후 한국 정부는 총리실 주재로 행안부, 외교부, 법무부, 법제처가 모여서 회의를 거듭하면서 다양한 해법을 검토해 왔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수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 국제사법재판소 또는 청구권 협정 3조 1항에 따른 중재위원회 구성은 바람직하지 않다. 상반기 중 일본기업 자산처분과 한일 간 대립 격화는 우려스럽지만 강제징용 문제를 국제법정으로 가지고 갈 경우 한일관계는 더욱 악화될 수밖에 없다. 국제 쟁점화에 따른 한일 간 외교적 소모전은 장기적으로 한일 양국에 큰 부담이 될 것이다. 따라서 사법부의 민사소송 과정과 판결을 존중하고, 한일 양자 간 문제로 한정하여 해법을 도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5월 1일 나루히토 신 천황 즉위, 6월 28일 오사카 G20 서밋, 연내 제8차 한·중·일 정상회담과 10월 중 즉위 축하식 등을 활용하여 한일관계를 개선할 기회로 삼아야 한다. 강제징용 해법에 대해 한국 정부가 보다 적극적인 대응을 검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한일 간 인식차를 메우기 위한 다양한 채널 구축과 양자 간 대화와 소통이 당장 추진되어야 한다.

한일 간 상호노력은 북·미관계 진전과 비핵화 회담에서 일본의 지지와 협력, 일본 내 한국 이미지의 긍정적인 제고, 일본 기업의 안정적인 한국투자 유도, 방한 일본인 관광객 증가에 기여할 것이다. 한일관계의 안정적인 관리를 통하여,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일본의 지지 확보, 그리고 국내 경제 활성화를 적극 추진해 가야 한다.

양 기 호 양 기 호
성공회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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