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 아카이브

1988년 ‘화해 올림픽’ 넘어서는
서울·평양의 ‘평화 올림픽’ 준비해야

남북 체육교류는 다른 영역에 비해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다. 1929년 10월 8일 서울 휘문고등학교 운동장에서 조선일보 주최로 진행된 첫 번째 ‘경평대항축구전’은 일제치하에서 민족의 화합을 이끌어낸 체육교류이자 해방 직후부터 분단 전까지 면면히 유지되던 남북 체육교류의 전통이다. ‘경평대항축구전’은 지금의 프로리그가 있기 전 서울과 평양 각 도시를 대표로 하는 매우 의미 있는 경기였으나, 남북의 정치적 상황으로 인하여 정기적 교류는 지속되지 못했다.

경평대항축구전으로 시작된 남북 체육교류

1947년 대한민국이 IOC 가입을 승인 받고 1948년 런던올림픽에 태극기를 달고 처음 올림픽에 출전하였다. 북한도 1954년 ‘조선체육지도위원회’를 만들어 IOC 가입을 시도하였으나 ‘1국가 1국가올림픽위원회’ 원칙으로 인해 가입을 거절당했다. 그럼에도 북한은 스포츠를 활용한 국제무대에서의 외교활동을 위하여 IOC 가입을 지속적으로 시도했고, 1956년 9월 국제올림픽위원회를 통해 남한에 남북단일팀을 최초로 제안했다. 그러나 당시 남북관계는 휴전으로 상호교류가 불가능한 상황이었기에 단일팀 구성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북한은 재차 IOC 가입을 시도하여 마침내 1963년 서독 바덴바덴에서 개최된 IOC총회에서 회원국으로 정식 가입하였으며, 1972년 뮌헨올림픽에 DPRK라는 명칭으로 참여할 수 있었다.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남과 북의 체육교류는 북한의 ‘체력증진 스포츠 활동 강조’, 7·4 남북공동성명 이후 남북체육공동성명, 남북축구 교환경기, 로스앤젤레스올림픽과 서울올림픽 등을 통해 여러 차례 교류와 회담이 진행되었음에도 이렇다 할 성과는 내지 못했다. 그러나 1989년 ‘북경 아시아 경기대회 단일팀 구성·참가관련 회의’를 계기로 북한은 기존과 달리 남북 체육교류에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 말부터 진행된 동유럽사회주의 국가들의 외채 증가, 정통성 상실, 소련으로부터의 지원감소, 중앙계획경제의 병폐등으로 인해 사회주의체제가 위기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1990년 북경아시아경기대회 기간 중 남북 공동응원과 한반도기가 사용되면서 민족의 화해와 단합의 분위기가 고조되었다. 1990년 9월 23일 체육회담을 통해 남북통일축구대회 개최와 교류, 바르셀로나 올림픽경기대회 및 세계탁구선수권대회, 삼지연 동계아시아경기대회, 기타 주요국제경기대회에 양측이 단일팀을 구성할 것을 상호 협의하기로 합의했다.

이를 계기로 남북통일축구 평양대회(1990.10.09~10.13)와 서울대회(1990.10.21~10.25)를 개최하며 본격적인 체육교류가 이루어졌다. 1991년에는 분단 이후 처음으로 남북단일팀을 구성하여 제41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와 제6회 세계청소년 축구선수권대회에 단일팀으로 참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대회를 앞두고 한국으로 귀순한 유도선수 이창수로 인하여 체육 회담과 남북교류도 중지되는 듯 했다.

2000년대 들어 두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은 남북 간 체육문화교류에도 큰 발전을 가져왔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을 시작으로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2003년 아오모리 동계아시안게임, 2003년 대구유니버시아드, 2004년 아테네 올림픽, 2005년 마카오 동아시안게임,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 2007년 장춘 동계아시안게임까지 남북은 개회식 때 한반도기를 들고 공동입장 했다. 이런 분위기에 편승하여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과 2003년 대구유니버시아드 게임에 북한은 분단 후 처음으로 남한에 대규모 선수단과 응원단을 파견했다. 2012년부터 2017년까지는 인천아시아경기대회 남북 실무접촉을 제외하면 구체적인 남북 체육교류는 이루어지지 못했다. 2010년 3월 천안함 폭침과 11월 연평도포격사건, 김정은 집권 이후 41회의 탄도미사일 발사와 3차례 핵실험 등으로 남북 관계가 경색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정은이 북한을 ‘체육강국’으로 발돋움시키고 스포츠를 활용한 정상국가의 최고지도자가 되기 위해 다양한 변화를 보여주면서 체육교류의 문이 다시 열리기 시작했다. 2013년 북한은 아시안컵 역도선수권대회를 개최하며 체육을 활용해 주변 국가들과 소통하고자 하였다. 이 기간 중 한국이 우승하자 북한에 태극기가 게양되고 애국가가 울려 퍼지기도 했다.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폐막식 직전에 황병서를 대표로 최룡해와 김양건이 김정은 전용기(참매 1호)를 타고 남한에 도착하여 북측 선수들을 격려하였으며, 짧게나마 남북 고위관계자들 간에 대화가 진행됐다.

이후 북한은 마식령 스키장을 통해 남북 간의 대화를 시도하였다. 2013년에 착공하여 1년 만에 준공한 마식령 스키장은 김정은 집권 이후 최대성과였다. 북한은 2018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마식령 스키장을 자연스럽게 전 세계에 광고하며, 남북 동반 개최 등 이슈를 만들었다. 2018년 1월 남한과 북한은 2018 평창동계올림픽을 교두보로 판문점에서 고위급회담을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남북은 평창동계올림픽을 위한 예술단파견과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 구성에 합의했다. 이후 남북은 세계탁구선수권대회, 코리아오픈 국제탁구대회,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 세계남자핸드볼선수권대회 등 다양한 국제무대에서 단일팀을 구성하여 출전했다. 2018년 한 해 동안 남북은 활발한 체육교류와 단일팀 구성을 통해 전 세계에 남북의 단합을 보여줬다.

정치 차원에서 출발하여 국제 차원의 협력적 교류로

1991년 남북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와 부속합의서는 대부분 이행되지 않고 있으나, 유일하게 체육교류관련 부속합의서만 성실하게 실천되고 있다. 1963년 첫 남북체육회담을 시작으로 지속된 남북체육교류는 반세기를 보내면서 남북교류에 있어 다른 영역에 비해 질적 발전을 가져왔다.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는 국제정세 속에서 정치적 목적 아래 남북체육 교류가 진행되었다면, 1990년대에는 구체화된 남북체육교류가 진행되었으며, 2000년대에는 체계화된 남북 체육교류가 지속되었다. 그리고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이후에는 국제질서 속에서 협력적인 남북체육교류가 진행되고 있다.

북한은 김정은 집권이후 국가체육지도위원회에 주요 권력 핵심인력을 배치하여 체육정책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체육영역의 투자와 개선 그리고 정책 강조를 통해 다양한 스포츠외교를 실시하였으며, 체육 분야의 주요 성과를 최고지도자의 업적으로 강조하였다. 나아가 김정은이 국제사회에서 정상국가 지도자로 인정받게 하기 위해 스포츠 영역에서 국제스포츠 표준규칙을 준수하려는 노력을 보여주었다.

이 같은 북한의 변화 속에서 남북 간의 대립관계가 아닌 동반자로서 민족의식과 공동체 의식을 고취하기 위해서는 향후 현실적인 체육교류가 필요하다.

첫째, 정부와 지자체, 민간 사이 분권형 체육교류이다. 대중적 관심이 많은 체육교류(국제경기대회 단일팀 구성과 유명인 체육친선교류경기 등)는 정치적 국면에 따라 지속과 단절을 반복했지만, 대중적 관심이 적은 체육 교류(지방자치단체 및 민간차원의 체육교류)는 지난 10년간 남북경색 국면에서도 지속되어 왔다.

둘째, 형식적인 교류가 아닌 양측의 필요를 반영한 교류이다. 즉 고전적인 스포츠 종목의 남북체육교류가 아니라 경제발전을 위한 남북체육교류 사업이 필요하다. 북한은 체육을 통한 부가가치 창출을 강조하고 있으며, 주요 도시에서 체육관광 사업을 적극적으로 진행하고 있다(라선시 국제자전거관광축전 개최, 평양 골프관광 사업 진행, 마식령 스키장을 통한 체육관광사업을 강조 등). 이를 위해 주요 지역을 관광특구로 지정하고 다양한 규제를 완화하고 교통인프라를 개선하였다.

셋째, 중재자를 통한 지속적인 남북 체육교류 협력이다. 남북한 체육교류는 잦은 정치적 이슈로 인하여 지속과 단절을 반복하였다. 따라서 양 당사자 모두를 아우르는 국제체육단체(IOC, FIFA 등)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실제로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개최 전 바흐 IOC위원장은 남북 최고지도자를 각각 만나면서 평창동계올림픽에 북한의 참여와 남북관계 개선을 이끌어 내는 중재자 역할을 수행하였다.

남한과 북한은 2019년 현재 ‘2032년 하계올림픽 서울·평양 공동유치’를 위한 의향서를 IOC에 전달하고 이를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러나 최종 확정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2032년 하계올림픽 개최 의사를 밝힌 다수의 국가들과 경쟁해야 하고 국내 정치적 변수(2022년 한국 대통령 선거)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북 간 평화의 지속을 위해서는 반드시 2032년 하계올림픽 공동유치를 실시하고 이를 위한 주요 과정에서 발전된 남북관계를 전 세계에 보여주어야 한다.

1988년 서울올림픽은 동서 냉전 기류 속 ‘화해 올림픽’의 상징이었다면, 2032년 서울·평양하계올림픽은 남북 간 ‘평화 올림픽’의 상징이 될 수 있도록 준비를 해나 가야 할 것이다.

허 정 필 허 정 필
현대북한연구회 총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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