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에서 포럼을 준비한 정종하 시카고협의회장은 개회사를 통해 “이번 포럼으로 한미 전문가들로부터 남북 화해무드의 현재와 향후 전망을 듣고 남북, 북·미관계의 특수성과 한반도 문제에 대한 인사이트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황원균 미주부의장은 축사에서 “각계 저명한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시각과 견해를 공유함으로써 한반도 평화와 번영, 평화통일의 초석이 될 수 있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영석 주시카고총영사는 이번 포럼이 “한반도 평화를 완성하고 번영과 통일을 향해 가는 여정에서 현 좌표와 로드맵을 모색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
포럼은 김덕룡 수석부의장의 기조연설로 시작됐다. 김 수석부의장은 “북한이 하노이 회담 결렬의 충격으로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으나 한미 공조가 튼튼하게 유지되는 한 북한이 성과를 거두기는 어렵다”고 분석했다. 이어 “한미 양국은 비핵화 협상을 후순위로 미루지 않고, 한미 공조를 바탕으로 대화가 조기에 재개될 수 있도록 협상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며 “양국은 원칙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북한의 안보 우려를 해소할 창의적 해법을 모색하여 북한이 협상테이블에 더 적극적으로 나오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착국면의 북·미관계, 협상을 위한 첫걸음 필요
‘한반도 비핵화와 북·미관계’를 주제로 한 첫 번째 세션에서는 크리스토퍼 힐 덴버대 교수가 사회를 맡고 전봉근 국립외교원 교수, 개리 사모어 브랜다이스대 교수,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 조엘 위트 스팀슨센터 수석연구원이 토론자로 나섰다.
전봉근 교수는 북핵협상 중단이 장기화되면 “북한이 핵무기 수를 늘리고 ‘사실상 핵보유국’이 될 가능성이 높으며, 핵 비확산과 핵안보 국제레짐이 위협받고 한국의 대북 전략적 지위가 악화되며 핵폐기의 대가로 북한이 더 많은 보상을 요구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한 “왜 과거 북핵 합의가 번번이 깨어졌는가에 대한 답은 장기적 생존에 대한 북한의 근본적 안보불안에 있다”고 진단하고, “안전보장문제를 직시하고 방안을 제시해야 실질적인 북한 비핵화의 진전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구체적인 방안으로 “향후 ‘통일국민협약’에 북한 붕괴와 흡수통일에 반대하는 원칙 포함, ‘남북기본협정’ 체결을 통한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의 업데이트와 판문점 선언·평양 선언의 법제화, 북·미/북·일 수교협상 진행, 동북아 공동안보체제 구축을 위한 다자 대화와 동북아 비핵지대 모색”을 제시했다.
개리 사모어 교수는 “이론적으로 미국의 ‘빅딜’과 북한의 ‘스몰딜’ 간에는 타협의 여지가 많다”고 분석했다. “북한이 영변 핵 시설을 시작으로 핵분열물질 관련 시설을 단계적으로 동결하고, 미국은 남북 간 무역 및 투자 관련 유엔제재를 일부 해제 후 추후 해제범위를 확대하면 그뒤 추가적 안전보장과 북·미관계의 정상화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중간규모 딜’이 2020년 미국 대선까지 가능할지는 미지수”라고 보았다. 사모어 교수는 “김 위원장이 대선을 앞두고 북한외교 성과가 무너질 상황이 될 경우나 대선 이후 새로운 외교적 기회가 생기길 기다리며 현재 상태를 감내하려 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홍민 실장은 북한과 미국이 3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성과를 얻으려면 “비핵화의 범주와 최종지점은 미국의 입장을 반영하되 대량살상무기가 아닌 전체 핵무기 프로그램으로 한정하고, 비핵화 단계와 상응조치의 시점을 정하기 위한 비가역적 돌입지점을 설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더불어 “비핵화 로드맵을 원자력분야와 비원자력분야의 두 단계 수준으로 일단 합의하고, 첫 단계 비핵화 이행조치는 전체 핵물질 생산시설로 합의하되 영변단지와 영변 이외 농축우라늄 시설의 두 단계로 나눠 순차적으로 폐기”하는 안을 제시했다.
조엘 위트 수석연구원은 양국의 교착국면을 해소하려면 “미국이 지체 없이 첫걸음을 떼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인 선제조치로는 “영변 핵 시설 해체 외에 북측이 제안하는 핵 물질·미사일 관련 조치를 받아들이고 생화학 무기 관련 논의는 차기 회담으로 미루는” 안, “미국이 제재를 기꺼이 해제할 수 있다는 신호를 북측에 보내는” 안, 한미가 “북한과 즉시 평화 협정을 체결하고 한반도 재래식 무기 군축협상을 하겠다며 평화협상 공세를 펼치는” 안을 제시했다.
첫 번째 세션 이후에는 브루스 커밍스 시카고대 석좌교수가 특별스피치를 진행했다. 그는 북·미관계가 실질적 진전을 이루려면 미국 지도자들이 북한에 대한 신화에서 벗어나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 지도자들이 북한이 어떤 입장에 있고 어떻게 세계를 인식하는지 알려고 하지 않고, 잘못된 가정과 오류에 근거하여 북한을 바라보았다”고 지적했다. “북한의 핵 프로그램이 한국전쟁이 끝나지 않은 상황과 위협적인 미국의 힘에 기인했음을 인지하지 못하고 북한을 핵확산 방지 레짐의 관점에서만 바라보았기에 한반도의 핵문제가 진척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서로에게 접수가능한 합의문 만들 협상 추진해야
‘한반도 평화정착 로드맵’을 주제로 한 두 번째 세션은 위성락 전 주러시아대사의 사회로, 프랭크 자누지 맨스필드재단 대표,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연구위원, 칼 프리도프 시카고국제문제협의회 연구원, 고유환 동국대 교수, 캐서린 킬로 플라우셰어스재단 연구원이 토론자로 나섰다.
프랭크 자누지 대표는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의 상황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과 달리 트럼프 행정부 전체는 평화 프로세스 와해를 대비해 ‘플랜 B’를 준비하는 모습을 보여 이제 불확실한 휴지기에 접어들었다”고 분석했다. 그는 “북한이 군사적 움직임을 통해 현 상황 에 대한 인내심의 한계와 상황을 다시 진척시키려는 의지를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고 보았다. 한편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이 정상회담 결렬의 보복으로 북한을 응징 지는 않겠지만, 트럼프가 하노이에서의 단호한 입장을 고수하면 연말까지 비핵화와 평화의 진전은 거의 없을 것”이라 진단했다. 이어 시간이 지나면 트럼프는 “국내 정치적 우려의 영향 하에서 제재 완화를 승인하거나 북의 최대 압박에 돌입할 것”이므로 한국은 “남북관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며 포스트 하노이가 어떻게 진행될지 주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성렬 연구위원은 “김 위원장의 비핵화 결단을 가볍게 보면 안 되며, 북한의 위상이 변화했다”고 지적했다. 또 “핵실험과 중장거리·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을 중지하는 당 전원회의 결정사항을 파기하지 않는 한 북한은 마땅한 정책수단이 없어 악자에서 약자로 위상이 변화했다”고 설명했다. 조 연구위원은 약자가 된 북한이 안심하고 비핵화에 나설 수 있는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 했다. “외교조치로서 한반도 평화협정 논의 착수, 경제조치로서 ‘대북 경제개발펀드’ 조성, 군사조치로서 남북 군비통제 진전 및 남·북·미 군사협정 논의 개시를 통해 비핵화 착수부터 완료 이후까지 북한을 안심시킬 수 있는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칼 프리도프 연구원은 “문 대통령이 한미 동맹 의지를 굳건히 하는데도 북한 인권문제, 대북제재 완화를 위한 노력과 유엔제재 위반 가능성으로 미국사회가 문 대통령의 대북정책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한국 일반대중은 북한이 도발을 자제하는 한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지지하므로 북한의 행동에 큰 변화가 없는 한 문 대통령의 대북정책이 실질적 제약에 직면할 가능성은 없다”고 전망했다. 그는 향후 한미관계에 영향을 미칠 변수로 미국 대선, 차기 북·미 정상회담, 한국의 다음 선거 결과를 꼽았다. 그는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하면 방위비 분담 협상 등으로 한미동맹의 미래가 우려되고, 3차 정상회담이 열리더라도 실질적 성과가 없다면 북·미 회담의 필요성에 많은 이들이 의구심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고유환 교수는 “문재인 정부가 북·미 핵협상을 촉진하고 견인하는 적극적 역할을 수행하여 한반도 비핵평화 프로세스의 밑그림을 그렸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트럼프 행정부는 시간은 미국편이라며 북한이 빅딜 안을 받아들이기를 기다릴 태세이고 북한은 저강도 무력시위로 북·미 협상을 촉진하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그는 “남·북·미 최고지도자들 간 신뢰가 여전하여 톱다운 방식으로 한반도 평화비핵 프로세스 가동을 위한 노력을 지속해야 하나, ‘서로에게 접수 가능한 공정한 합의문’을 만들기 위한 양자 또는 다자 실무 협상과 고위급회담 등 다층위의 협상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캐서린 킬로 연구원은 미국의 대북인식이 지닌 문제점을 지적하고, 장기적인 한반도 평화실현을 위해 미국이 취해야 할 조치를 제시했다. 그는 지난 시기 미국이 북한에 대해 “‘선 비핵화, 후 평화구축’,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입장을 공고히 했다”고 분석했다. 그에 따라 북·미 간 상호불신이 지속되고, 불신은 “북한의 핵 야망을 더욱 부추겨 북한이 핵 억지력 개발을 위한 수단을 갖추게 된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그는 “미국이 한반도의 장기적 평화실현을 위해 정전협정을 대체하기 위한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구체적으로는 “역내 긴장고조를 막고 안정 상태를 유지할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한국의 ‘선순환적’ 접근법을 채택해 비핵화와 평화 프로세스를 병행추진하여 관계 정상화 의지에 대한 믿음과 제도화된 안전보장 장치 마련의 계기를 주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센토사 합의 1주년을 앞두고 개최된 이번 포럼은 한반도 평화구축을 위한 한미의 노력을 검토하고,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정착에 대한 양국의 시각과 향후 한반도 정책의 진행 방향을 모색하는 뜻 깊은 자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