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산책

여름에 만나는 태안반도

바야흐로 여름이 활짝 열렸다. 녹색의 대지와 청푸른 하늘과 바다, 싱그런 솔숲과 화사한 꽃이 어서 오라고 손짓하는 곳, 바로 충남 태안이다. 태안(泰安)은 ‘국태민안(國泰民安)’의 준말로 ‘마음이 크게 편안해지는 땅’이라는 뜻이다. 그래서일까. 한국전쟁 같은 큰 난리를 피해간 땅으로 알려져 있다. 뭍으로부터 비껴난 덕을 보고 있는 섬. 평화와 안식이 깃든 섬이다. 하지만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원유 유출 사고는 이 섬의 지울 수 없는 아픔으로 남아 있다. 태안은 동쪽을 제외하면 3면이 모두 바다로 둘러싸인 길쭉한 반도로 국내 유일의 해안국립공원(해안선 길이 559.3㎞)에 속해 있다.

김초록 문화답사가

태안 여행은 섬 북쪽 끝인 만대포구에서 시작한다. 바다 건너 서산땅(대산항, 벌천포)이 보이는 곳으로, 어촌체험마을이 있고 바다와 소나무를 테마로 만들어진 솔향기길 1코스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제1코스는 만대항에서 꾸지나무골 해변에 이르는 총 10.2km의 길이다. 바다와 숲을 벗 삼아 쉬엄쉬엄 걷다보면 보는 위치에 따라 하나로 보이기도 하고 둘로도 보이는 삼형제바위, 용이 승천했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용난굴 등을 만나게 된다. 만대어촌체험마을에서는 갯벌에 돌을 쌓아 밀물 때 바닷물과 함께 밀려온 고기를 손이나 그물로 잡는 독살체험을 해볼 수 있다.

솔향기길에서 만난 이종일 생가와 보훈공원

솔향기길은 섬 동쪽을 횡단해 태안읍으로 이어진다. 가는 길에서 만나는 독립운동가 이종일 생가(원북면 반계리 마을)와 태안읍내 백화산 중턱의 마애삼존불입상은 꼭 둘러보도록 하자. 이종일 선생은 1919년 3·1운동 당시 민족 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서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애국지사다. 1858년 11월 이곳 반계리 마을에서 태어난 선생은 일제강점기를 보내면서 국권회복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생가는 6칸 겹집의 L자형 목조 초가집으로 사당과 기념관이 별도로 마련돼 있다. 이종일 생가 옆에는 보훈공원이 있다. 한국전쟁 때 참전해 산화한 분들을 기리고 순국선열의 희생정신을 되새기기 위해 태안군에서 조성했다. 참전용사 기념탑을 비롯해 자유수호 희생자 위령탑, 호국 영령들의 위패가 모셔진 충령사, 외국 파견부대의 휘장과 국기, 전쟁 당시 활약했던 장갑차, 전차, 미사일 등이 전시돼 있다.

해변길을 따라가면서 보라

솔향기길 탐방을 마쳤다면 이번엔 서쪽 해변길(바라길, 소원길, 파도길, 솔모래길, 노을길, 샛별길, 바람길)을 걸어보자. 학암포 해변에서 시작해 섬 남쪽 끝인 영목항까지 이어지는 총 7코스의 풍치 뛰어난 해안 탐방로다. 학암포는 넓고 고운 백사장과 에메랄드빛 바다가 참으로 이국적이다. 바다 앞에는 학이 날아가는 모습을 닮았다는 학암(鶴岩)이라는 바위가 있는데 물이 빠지면 걸어 들어갈 수 있다. 학암포는 원래 분점(盆店)이란 이름으로 알려졌던 곳이다. 분점이란 조선 중엽 이곳에서 질그릇을 만들어 중국에 수출한 데서 연유한 이름이라고 한다.

학암포에서 조금 떨어진 먼동은 솔숲과 갯바위가 있는 그윽한 해변으로 원래 이름은 안뫼이다. 1993년 드라마 ‘먼동’의 무대가 되면서 지명도 먼동해변으로 바뀌었다. 이후로도 아름다운 해안선과 걸림이 없는 탁 트인 주변 경관 덕분에 여러 드라마의 무대가 됐다.

특히 소나무 두 그루가 뿌리를 내린 거북바위와 왼쪽의 삼각형 바위 사이로 해가 떨어지는 풍경은 감탄을 자아낸다.

갯바위가 깔린 먼동해변을 돌아가면 앞에 꼬깔섬이 있는 해녀마을이 나온다. 해녀마을로 가기 위해서는 썰물 때를 맞춰야 한다. 밀물 때는 빙 둘러가야 하기 때문이다. 해녀마을은 한때 제주도에서 해녀들이 이곳에 와서 해삼과 전복을 채취하면서 만들어졌다. 여름이 끝나는 9월부터 물질하는 해녀들을 볼 수 있다니 그 때를 맞춰 가보는 것도 좋겠다.

희귀 동식물의 천국

먼동을 뒤로 하고 신두리로 간다. 오랜 세월 바닷바람 이 해안가로 모래를 날려 중동의 사막처럼 모래언덕을 만든 곳이다. 나무데크길을 따라 언덕에 오르면 신두리 해안사구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사구에서 살아가는 해당화, 통보리사초, 모래지치, 갯완두, 갯매꽃, 갯방풍, 표범장지뱀, 종다리, 맹꽁이, 쇠똥구리, 아무르산개구리, 금개구리 등 희귀 동식물은 이곳이 보존가치가 뛰어난 땅이란 걸 말해준다.

신두사구 앞에 펼쳐진 신두해변은 한마디로 광활하다. 바닷물이 쓸고 내려간 모래바닥은 다양한 무늬의 잔 주름이 끝없이 나 있고, 발에 와 닿는 모래 감촉이 참으로 좋다. 신두 사구 안쪽 깊숙한 곳에는 람사르 협약 습지로 등록된 두웅습지가 있다. 금개구리, 맹꽁이, 포범장지뱀, 무자치, 갯방풍, 갯메꽃, 수련, 애기마름, 부들 같은 희귀 양서류와 수서곤충들이 살아가는 터전이다.

신두리에서 해안길은 구름포-의항-백리포-천리포만리포로 이어진다. 하나같이 풍광이 아름다운 곳들이다. 백리포 아래의 천리포항은 바로 앞에 2개의 닭섬이 있어 눈길을 끄는데 뭍에 붙어있는 섬을 뭍닭섬, 바다에 떠 있는 섬을 섬닭섬이라 부른다. 그중 섬닭섬은 썰물 때 뭍과 연결되는 장관을 보여준다. 1만 2천여 종의 다양한 식물이 자라고 있는 천리포식물원은 국내 최초의 민간 수목원으로 국제수목학회에서 ‘세계의 아름다운 수목원’으로 지정했을 정도로 잘 가꿔져 있다. 탐방로를 따라가다 보면 온갖 나무들이 반갑게 인사한다. ‘똑딱선 기적소리 고운 꿈을 싣고서 갈매기 노래하는 만리포라 내 사랑…’이란 유행가로 더 잘 알려진 만리포는 서해안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으로 꼽힌다.

길은 계속 이어져 모항을 지나면 지명이 예쁜 어은 돌-파도리-통개해변이 차례로 나오고 움푹 들어간 조개 모양의 해안길을 돌면 안흥항이 있는 근흥면소재지에 이른다. 파도리와 어은돌은 이웃한 만리포에 비해 덜 알려져 한결 호젓하게 풍광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이름이 예쁜 해변

태안은 해수욕장(해변)이 유난히 많다. 지명도 무척 이나 독특하다. 바람아래, 장돌, 장삼, 운여, 샛별, 꽃지, 두여, 몽산포, 청포대, 기지포, 백사장 등등 이름만 들어도 신비한 기운이 몰려오는 듯 한데 이들 해변은 풍광도 아름다워 여행자들의 호기심을 자아낸다. 영목항에서 자동차로 10여 분 거리에 있는 운여(雲礖)해변은 몇 년 전부터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해변에 일렬로 늘어선 해송이 사진작가들의 관심을 받으면서 출사지로 각광받고 있는 것이다. 운여는 바위에 부딪치는 파도가 만들어 내는 포말이 마치 구름 같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물때에 따라 독특한 모습을 연출한다.

태안반도의 해변 중 꽃지는 단연 눈길을 끈다. 잘 단장된 해변공원은 아기자기해서 산책 코스로 좋고, 두 개 (할미바위, 할배바위)의 바위 사이로 지는 수평선의 낙조는 보는 이로 하여금 잔잔한 감동을 선사한다. 인근에 미끈한 소나무(일명 안면송)들이 맑은 기운을 내뿜 는 안면자연휴양림이 있어 같이 둘러보면 좋다. 자연휴양림에 조성된 수령 100년 내외의 안면송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혈통 좋은 소나무들로 알려져 있다. 2㎞에 달하는 소나무숲 산책로는 솔향을 맡으며 삼림욕을 즐길 수 있는 최적의 장소다.

안면자연휴양림에서 나와 77번 도로를 따라 조금 올라가면 안면암 입구다. 조붓한 길을 따라 10여 분 가면 바다와 마주한 암자가 나오는데 암자 앞은 푸른 천수만을 둔 천혜의 갯벌 지대다. 두 개의 작은 새끼섬(여우섬과 조구널)을 연결한 나무데크길을 따라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안면암에서 자동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황도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황도는 서산땅 천수만과 이어져 있다. 그냥 보면 평범한 어촌마을이지만 이곳에 와본 사람들은 우리 나라에 이런 곳이 있다는데 대해 자부심을 느끼게 된다.

황도에서 나오면 길은 안면대교로 이어진다. 안면대교를 건너기 전, 백사장해변과 항구에 들러본다. 백사장해변은 사막을 연상케 할 정도로 모래밭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해변과 붙어 있는 백사장항은 활기 넘치는 태안의 대표적인 항구로 예전엔 위쪽의 판목나루터와 아래쪽 백사장 나루터를 연결하는 나룻배로 건너다녔으나 1970년 안면도를 잇는 다리가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백사장항과 드르니항을 연결하는 해상 인도교는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남북으로 길게 뻗어 볼 것이 많은 태안은 당일로 모두 둘러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전망 좋고 깨끗한 해안 의 숙소에 짐을 풀고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여유롭게 둘러본다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여행지로 손색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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