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2

낙관 어려운 미국의 인식,
상호 동의 가능한 접점 찾아야
낙관 어려운 미국의 인식, 상호 동의 가능한 접점 찾아야

높은 기대와 우려가 공존했던 하노이 회담 이후, 미국의 상황 인식은 우리 입장에서 볼때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미국의 인식과 전략, 국내 정치적 상황을 토대로 2019년 하반기, 미국의 선택을 전망한다.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미국과 북한 사이의 협상과 대화가 장기간 열리지 못하고, 남북 간에도 의미있는 대화가 진행되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됐다. 북한은 여러 선전매체를 통해서 미국이 입장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트럼프 대통령은 서두를 것 없다는 입장을 반복했다. 북미의 협상을 재개되기 위해서는 현재의 상황을 냉정하게 살펴 볼 필요가 있다. 냉정한 상황 판단만이 미래에 대한 정확한 접근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사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간의 2차 정상회담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끝난 것이었다. 양국이 아무런 합의문에도 동의하지 못한 채 회담이 끝나는 경우를 예상한 전문가는 없었다. 그 이유는 미국과 북한 모두 협상 과정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존재하기 때문에 협상 자체를 깨는 것은 양측 모두에게 손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당시 우리 언론을 중심으로 미국이 제재를 상당 부분 완화해주고, 북한은 적어도 영변 시설을 폐쇄하는 정도까지는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가 많았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그 기대의 근거를 찾기는 쉽지 않다. 그 이유는 미국이 북한의 핵을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믿고 있는 제재의 구조적 문제 때문이다. 이 제재와 북한의 행동 변화에 대한 미국의 믿음을 생각하면 사실 북한의 변화가 선행되지 않는 협상의 재개는 쉽지 않은 상황으로 볼 수 있다.

평행선 달린 하노이 회담

그런데도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하노이에서 아무런 결론을 내지 못한 이유에 대해 여전히 의견이 분분하다. 현재 상황을 올바르게 읽는 데에 가장 방해가 되는 해석은 스티븐 비건 대북정책 특별대표를 위시한 미국의 협상단이 북한과 단계적이고 동시적인 협상안을 가지고 어느 정도 합의를 이루었는데, 존 볼턴 보좌관 같은 북한과의 협상에 근본적인 불신을 가지고 있는 대북 강경파가 그러한 합의안을 뒤엎으려 하였고, 마침 하노이 회담 기간 워싱턴에서 열린 마이클 코언 변호사의 청문회에 정신이 쏠린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국내 정치적 이유로 볼턴 보좌관의 의견을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약 6개월간의 소강상태에서 벗어나 베트남 하노이에서 2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가 결정되었을 때, 높은 기대도 있었지만, 우리가 염원하는 북한의 비핵화를 이룰 수 있을까에 대한 우려도 존재했다. 하노이에서의 회담에 앞서 미국에서 제기된 우려의 대부분은 트럼프 대통령이 본인의 성과를 과시하기 위해, 혹은 그의 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북한으로부터 낮은 수준의 비핵화 조치를 받고 큰 규모의 제재 완화 혹은 해제를 해줌으로써 결과적으로 북한의 비핵화를 요원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북한이 실질적으로 핵무기 보유국으로 인정받는 상황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북한이 비핵화 합의에 진심으로 임할 리 없다는 근본적인 불신, 지난 1차 협상 이후 아무런 성과가 없는 상황,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정치적 혐오 등이 복합되어 이번에 나올 수 있는 것은 오직 Bad deal(나쁜 합의)이라는 우려가 그만큼 강했던 것이다.

이러한 미국의 인식은 우리의 기대와는 많이 대비되었다. 하노이 협상을 앞두고 우리는 긍정적인 결과, 다시 말해 영변이라는 요소와 제재 완화가 교환되어 북한의 비핵화도 진전되고, 제재 완화가 향후 남북 간의 관계 증진에도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높았다. 이러한 기대에는 미국이 이번 협상에서 북한보다 더 급할 것이기 때문에 진전된 협상 결과를 얻기 위하여 북한이 원하는 정도는 아니더라도 일정 부분 제재를 완화해주고 영변 핵시설과 관련한 북한의 제안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이 바탕에 깔려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국내 정치적으로 불리한 상황에 있는 만큼 그에 대한 타개책으로 북한과의 협상을 이용하려고 할 가능성이 높으며, 자신의 성과를 과시하기 위해 북한과 어떠한 형태로든 지난 싱가포르 회담 당시의 합의문보다 더 진전된 합의를 할 것이라는 논리였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문제는 김정은 위원장이 명시적으로 핵을 포기할 것인가 하는 부분에 있었다. 하노이 이전 8개월 만에 개시된 북한과의 실무협상 과정에서 스티븐 비건 대표가 북한과 아직 비핵화의 정의에 대해 공통된 인식을 하지 못했다고 밝힌 것은 미국이 생각하는 북한의 최종적인 핵 폐기가 북한에서 인식하는 비핵화와는 전혀 다른 개념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개념 인식의 차이를 비건 대표가 확인하게 되면서 최종 목표 지점에 대한 확실한 동의 없이 중간 단계에서 제재를 풀어주는 경우의 위험성을 더욱 강하게 인식했을 것으로 보인다.

최종 목표를 언제 어떻게 달성할 것인지에 대한 합의가 있어야만 그에 도달하는 과정에 대한 합의가 가능하고, 그 이후에는 미국 역시 단계적으로 제재를 부분 완화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최종 목표에 대한 확실한 합의 없이 중간 단계에서 제재를 약화시키는 합의를 하게 되면 최종 지점에 이를 가능성 자체를 낮추는 것이 되기 때문에 현재 미국은 이를 받아들이기 힘들다. 미국은 최종적으로 북한이 기존에 만들어 놓은 핵무기와 핵물질 등을 완전히 폐기할 때를 대비해 가장 큰 폭의 제재 해제를 남겨 놓아야 북한을 그 지점까지 끌고 갈 수 있다는 입장인 반면, 북한은 초반에 영변 등의 폐쇄와 큰 규모의 제재 해제를 교환하기 원하고 있기 때문에 논리적으로 두 국가의 접점이 생기기 어려운 것이다.

어설픈 합의보다 ‘NO 합의’ 가능성

하노이 회담 이후 다섯 달 정도가 지난 지금 미국의 상황 인식은 우리의 입장에서 볼 때는 낙관적이지 못하다. 그리고 이러한 미국의 상황 인식은 하노이 회담 당시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1차 합의안을 가지고서도 북한이 더 이상 핵과 미사일 실험을 하지 않고 있으며 미군의 유해가 송환되고 있다는 것으로 본인의 업적을 자랑했다. 사실 미국 국내 정치적으로는 그 이상의 성과가 크게 필요하지 않은 상황이기도 하다. 만약 트럼프 대통령이 성공적으로 김정은 위원장을 설득하여 진정한 핵 폐기에 대해 합의를 이루어 미국과 국제사회의 사찰 검증이 실제로 이루어지고, 북한의 미사일 등이 해체되는 장면을 보여준다면 그것은 미국 정치에서 상당한 효과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서에서의 합의로 그치는 것은 미국 정치에 큰 영향을 미치기 힘들다.

오히려 트럼프 대통령에게 매우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워싱턴의 안보 서클에 있는 전문가 그룹과 언론, 그리고 하원을 장악한 민주당 등이 낮은 수준의 합의를 한 트럼프 대통령에게 비판을 가할 가능성 이 커진다.

또, 북한의 인권 문제 등을 전혀 거론하지 않은 채 김정은 위원장과 협상을 계속하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고 있는 상황을 보면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보좌관들은 어설픈 합의보다는 합의를 하지 않는 것이 나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김정은 위원장이 미국에게 올해 말까지 기다려보겠다고 말한 것과 관련하여, 만약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와 같은 도발을 감행할 경우 대선을 앞둔 트럼프 대통령에게 정치적으로 타격이 되기 때문에 그러한 도발을 막기 위해서라도 트럼프 대통령이 모종의 합의를 모색하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의견은 현실적인 분석이라고 보기 어렵다.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발사하는 순간 트럼프 대통령은 협상의 중단을 선언하고 다시 군사력을 동원한 최강의 압박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매우 높다.

또 하나의 의견은 만약 미국의 민주당이 목소리를 더 얻게 되는 상황이 오면 어떠한 변화가 있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다. 그러나 군사적 충돌보다는 외교적 해법을 선호하고, 북한에 대한 의구심이 강하게 존재한다는 측면에서는 공화당과 민주당이 큰 차이가 없다.

민주당이 하원 다수당이 된 것 역시 대북 정책에 그다지 낙관적인 전망을 하기 힘들게 한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하려는 정책에 대한 의회의 견제와 감시가 본격적으로 시작됨을 의미한다. 민주당은 북한 인권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고, 개성공단에 대해서는 매우 강경한 입장을 가지고 있다. 만약 민주당 입장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과 ‘어설픈’ 합의를 하려고 한다면 민주당에서 견제와 감시를 할 수 있는 상황이되는 것이다.

지난 4월 11일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김현종 국가안보실 2차장은 “(비핵화) 엔드 스테이트(최종상태·목적)나 로드맵에 대해서는 한미 간 의견이 일치했다”라고 밝혔다. 미국이 하노이에서 미국이 원하는 엔드 스테이트를 북한에게 명백히 밝힌 상황에서 중요한 점은 우리와 미국이 엔드 스테이트에 동의하느냐 하는 부분뿐만 아니라, 북한도 여기에 동의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미국의 최근 입장을 보면 북·미 대화의 진전은 김정은 위원장이 이러한 약속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할 것인가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엔드 스테이트에 대해 동의했다고 밝힌 우리로서는 북한이 이 개념에 동의하게 할 수 있는가의 여부가 앞으로 우리의 역할을 정립하는 데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우정엽 우정엽
세종연구소 미국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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