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3

하노이 교훈 얻은 北
경제보다 안전보장 우선
하노이 교훈 얻은 北 경제보다 안전보장 우선

‘자주국방 없이는 국가의 생존도 없다’는 논리 하에 만능의 보검 핵무기 개발을 택한 북한은 이제 선택의 기로에 놓여있다. 북한의 대내외적 상황을 분석하며 북한이 가고자 하는 새로운 길은 무엇인지 진단한다.

‘만능의 보검’인 북한 핵무기

어느 국가나 자국의 완벽한 안보와 풍족한 경제적 번영을 추구한다. 북한도 예외는 아니어서 1960년대부터 ‘자주국방’과 ‘경제자립’을 국가발전 전략으로 채택하였다. 일부 사회주의 국가들의 원조도 있었지만, 순전히 자력으로 국방과 번영을 추진한 북한은 1970년대 초반까지는 ‘강한 정신력’과 ‘내부 예비’의 총동원을 통해 남한보다 잘사는 나라를 만들었다. 그러나 1970년대 중반 이후부터 북한 경제는 세계적인 경제 불황 과 동원경제의 한계로 인해 쇠락의 길을 걸었다. 자력을 통한 남한과의 체제경쟁은 과도한 군사비 지출을 유발하였고 이것은 국민경제의 피폐로 나타났다. 경제의 피폐로 인한 국민적 불만은 강력한 수령체제를 통해 억압되었다. 수령은 ‘신’으로 높아졌고 누구도 이에 반항하지 못하도록 구조화되었다. 즉, 정치가 종교화된 북한은 ‘유사종교’ 국가가 된 것이다.

북한의 정치 종교적 특색은 전통 유교, 구한말의 민족종교, 기독교 등이 혼합된 독특한 것이다. 김일성 신격화에는 유교와 기독교가 동원되었고 김일성 노선으로는 민족종교의 ‘민족자주’가 원용되었다. 김일성은 ‘일제타도’와 ‘미제타도’를 등치시키고 1950년 ‘조국해방전쟁(6·25전쟁)’을 일으켰으며 미국과의 대결구조를 주민통합 기제로 사용하였다. 미국과의 대결은 궁극적으로 미국과의 ‘핵전쟁’으로 귀결될 것이라고 예언한 김일성은 최소한 1958년부터 핵무기 개발에 국력을 집중하였다. 김일성은 자주국방 없이는 국가의 생존도 없다는 논리 하에 민생의 과도한 희생을 감수하면서 국방공업발전에 매진했다.

기본적으로 김정일도 예외는 아니었다. 1989년부터 시작된 사회주의권 붕괴, 1990년대 초부터 시작된 미국의 핵 폐기 압박, 1994년 김일성 사망, 1995년부터 3년간 지속된 최악의 경제상황(고난의 행군) 등으로 인해 체제 붕괴 위기를 느낀 김정일은 ‘선군정치’를 채택했다. 모든 부문을 인민군이 담당하는 정치체제에서 당연히 노동당이나 민간부문은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밖에 없었다. 특히 미국과의 핵 게임에서 승리하기 위해 모든 전략물자를 국방에 투입하는 상황에서 민생경제는 후순위로 밀릴 수밖에 없었다.

1990년대 초반 위기탈출을 위한 북한의 전략적 선택은 ‘핵무기의 고도화’였다. 물론 미국과의 직접 담판, 관련국들과의 6자회담 등이 있었으나 북한은 일련의 회담들을 모두 미국의 ‘북한 붕괴를 위한 속임수’로 규정하고 대화 중에도 계속 핵 고도화를 추진했다. 미국과의 대결에서는 ‘상호확증파괴’ 능력을 보유하는 길만이 살 길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확실한 핵 보유를 통한 대미 억지 전략은 김정은 시대에도 지속되었다. 오히려 그 속도는 김일성·김정일의 그것을 압도하였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3년 2월부터 2017년 9월까지 4차례의 핵실험을 집중한 끝에 수소폭탄급 핵무기는 물론 이를 소형화하는 데 성공했으며 2017년 11월에는 미국 본토까지 공격할 수 있는 ICBM(대륙간탄도미사일)을 개발했다. 북한은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에 대비하라”라고 말하면서 “핵무기는 만능(안보)의 보검”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핵무기 포기는 절대 없다는 뜻이다.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김정은의 입장

김정은은 자신의 권력 기반 확립을 위해 전략적 선택을 했는데, 그것이 바로 2013년 3월 선포된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 병진’이었다. 비록 경제건설이라는 말이 먼저 나왔지만, 경제보다 국방 즉, 핵 개발이 우선이었다. 김정은은 선대 수령들처럼 안보가 없는 경제발전은 무의미하다고 본 것이다. 특히 미국과의 협상을 유리하게 끌고 가기 위해서는 미국을 직접적으로 위협할 수 있는 대량살상무기 개발이 필수라고 보았다. 수많은 UN 안보리 제재를 받으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핵 개발에 집중한 결과 2017년 11월 무렵에는 핵무기 소형화와 미국까지 공격 가능한 ICBM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북한이 ‘사실상’의 핵보유국이 된 것으로 판단한 김정은은 대미 협상에서의 주도권 장악을 위해 판을 바꾸는 선택을 했다. 김정은은 2018년 1월 1일 평창올림픽 참가를 선언하는 한편, 3월에는 핵 문제 해결을 위한 미국과의 대화 의지를 천명하였다.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을 앞둔 시점인 4월 20일에는 ‘병진 노선 승리’를 선포하고 이후부터는 ‘사회주의 경제건설’에 ‘총력 집중’할 것임을 선언했다. 이것은 핵무기 및 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을 통해 안보는 튼튼히 하게 되었으므로 향후에는 민생경제 발전에 국력을 집중하겠다는 의도였다.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미국과의 관계 개선이 필수라는 것을 잘 아는 김정은은 풍계리 핵실험장 파괴, 미군 유해 송환 등 미국과의 정상회담을 위한 정지작업에 착수했다.

김정은의 전략은 ‘과거 핵’은 보유한 채 ‘미래 핵’만 포기하는 대가로 미국으로부터 체제안전 보장과 경제지원을 받아내는 것이었다. ‘시간은 북한 편’이라고 생각한 김정은은 대미 협상의 ‘승리’를 확신한 것 같다. 미국은 북한의 핵무기와 ICBM을 두려워할 것이고 2020년 재선을 노리는 트럼프 대통령은 협상장에 나올 수밖에 없을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북한에게 유리한 협정이었던 1994년 10월 ‘북·미 제네바 합의’ 이후 북한은 늘 미국과의 협상에서 우위를 점유했기 때문에 김정은은 트럼프와의 담판에서도 승리 할 것으로 예상했을 것이다.

2018년 6월 12일 북·미 정상회담 결과는 원론적이었고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은 김정은의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하노이 정상회담을 통해 김정은은 영변 핵 시설 폐기와 미국의 대북 제재 완화를 교환하려 했다. 그러나 김정은의 전략을 알아챈 트럼프는 ‘No deal’을 선택하였고 김정은은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수령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김정은과 그의 협상가들은 트럼프의 행동에 놀랐고 향후 트럼프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트럼프는 역사적으로 북한이 상대했던 어떤 최고지도자보다 강한 상대임이 분명하다. 트럼프와 물러설 수 없는 한판승부를 펼쳐야 하는 김정은은 미국에게 다음 회담에는 ‘새로운 셈법’을 가지고 나오라고 주장하고 그 시한을 2019년 말로 정하였다.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당시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은 김정은이 ‘미국식 계산법’에 대해 이해 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미국식 계산법’은 무엇인가? ‘일괄타결(big deal)’로서 북한의 모든 핵무기, 핵물질, 핵프로그램, ICBM 등을 일시에 제거(FFVD)하는 것이고 그 이후에야 북한체제안전 보장, 경제 제재 해제 등을 하는 것이다. 북한은 이를 거부하고 ‘단계적 해법(small deal)’을 제시하고 있다. 북한의 논리대로라면 미국이 북한의 단계적 해법을 받아들이는 것이 ‘새로운 셈법’이다.

북한이 원하는 미국의 ‘새로운 셈법’

김정은은 4월 12일 최고인민회의 2일차 회의에서 미국이 ‘올바른 자세’를 가지고 북한과 공유할 수 있는 방법론을 찾는다면 제3차 북·미 정상회담이 가능할 것이지만 만일 미국이 ‘기존의 정치적 계산법’을 고집한다면 문제해결의 전망은 어두울 것이며 매우 위험할 것임을 경고했다. 북한은 또한 6월 4일 발표한 외무성 담화를 통해 ‘미국의 셈법 전환’을 촉구했다. 만일 그렇지 않으면 ‘새로운 길’을 가겠다는 것이다. 북한이 주장 한 ‘새로운 길’은 무엇일까?

북한은 2018년 12월 20일 조선중앙통신의 개인 논평을 통해 “미국이 ‘최대의 압박’을 고집하다가는 재앙적 결과와 맞닥트리게 된다는 것을 통절히 깨달을 때에라야 비로소 길이 나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미국의 대북제재로 인한 재앙적 사태가 발생해야만 ‘새길’이 열릴 것이라는 것이 북한의 입장이다.

북한은 올해 말까지 미국의 일방적인 북한 비핵화 요구를 철회시키고, 대북 적대시 정책 및 대북 제재를 포기시키기 위해 어떤 행동을 할 것인가? 전망은 쉽지 않다. 미국의 대응 여부에 따라 북한의 태도가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북한의 요구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미국은 ‘선 핵 폐기’가 아닌 단계적 비핵화 방안을 내놓을 것인가? 현재로서는 기대하기 힘든 일이다. ‘시간은 미국 편’이라는 인식하에 대북제재를 지속하면 북한이 항복을 하든지 북한 내에서 ‘민중혁명’이 일어날 것으로 생각하는 세계 최강 미국이 북한에 굴복할 리는 만무하다.

결국 북한은 유일한 수단인 군사력을 통해 대미 압박을 지속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정도는 ‘재앙적 결과’를 초래하는 수준이 될 수도 있다. 김정은은 하노이에서 손상된 수령의 권위 회복을 위해 강한 드라이브를 걸 것이다. 5월 4일과 9일에는 단거리탄도미사일이 발사되었지만 앞으로는 더 긴 사거리의 미사일이 발사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핵무기를 매개로 북한의 자주와 수령교를 보장받기 위해 ‘벼랑 끝 전술’을 펼칠 수 있다. 물론 미국이 ‘스몰딜’을 받아들여 대북 적대시 정책 및 경제 제재를 일부라도 해제하면 사정은 달라질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전향적 반응이 연말까지 없을 경우 2020년 초부터 북한은 ‘밀리면 끝장이다’라는 인식하에 ‘옥쇄전술’을 구사할지도 모른다. 북한도 경제가 어렵다고 안보를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전현준 전현준
한반도평화포럼 부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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