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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하지 않는한 변화는 가능하다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사상 최초의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면서 남북한 모두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중재자로서, 또 북한이 비교적 부담 없이 모방할 수 있는 정치·경제적 롤모델로서 싱가포르의 역할이 주목받았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지난 10여 년간 북한 주민들과 교류해온 싱가포르의 NGO 조선익스체인지가 있다.

싱가포르의 NGO, 북한에서 길을 찾다

2009년 제프리 시(Geoffrey See)가 설립한 조선익스체인지는 북한의 기업가와 관료들을 대상으로 경영·경제·창업 트레이닝을 제공한다. 지금까지 북한과 해외에서 60회 이상의 워크숍, 인턴십, 장학 프로그램 등을 통해 총 2600명 이상의 북한 주민들을 교육해왔다.

2007년 미국 와튼스쿨 재학 중 처음 평양을 방문한 제프리는 자신의 가이드였던 북한 여대생에게 비즈니스우먼이 되어 여성도 사업을 할 수 있음을 증명하고 싶다는 이야기와 다음 방북 때 경제학 서적을 가져다 달라고 요청한 것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예상과 달리 북한에도 더 나은 삶을 위해 경제와 경영을 배우고 싶어 하는 젊은이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이들을 돕고자 하는 열망이 조선익스체인지의 시작이 되었다.

물론 처음에는 순탄치 않았다. 북한에서는 민감한 주제인 경제와 경영보다 농업, 의료, 에너지 관련 분야에서의 교류를 원했기 때문이다. 허나 이에 굴하지 않고 북한과 교류를 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자 북측에서도 관심을 보여 왔고, 조선익스체인지는 2009년 최초의 워크숍을 평양에서 진행하게 됐다.

조선익스체인지의 프로그램은 북한에서 진행하는 국내 프로그램과 북한 밖에서 진행되는 해외 프로그램으로 나뉜다. 평양, 평성, 원산, 라선 등 북한의 주요 도시에서 열리는 국내 프로그램은 세계 각지에서 모인 자원봉사자로 구성된 강사진들과 일주일가량 진행 된다. 강사들은 컨설턴트, 변호사, 회계사, 건축가 같은 전문직 종사자는 물론 창업가, 미스 싱가포르 출신 MC 등 다양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북한 참가자들을 몇 개의 조로 나누어 자신들이 가진 전문성을 바탕으로 경영과 창업에 관련된 강연을 진행하며 참가자들이 다양한 사업 아이디어를 구상하도록 독려한다. 마지막 날에는 강사진들이 심사위원이 되어 참가자들의 사업 아이디어를 듣고 피드백을 주는 발표회가 진행된다.

해외 프로그램은 조금 더 다양한 형태로 운영된다. 도시계획, 회계, 창업 등의 주제로 2주 남짓 진행되는 워크숍, 3개월 동안 경영의 기초를 다지고 창업에 집중하는 미니MBA, 해외 인턴십, 그리고 싱가포르의 명문 리콴유 공공행정대학원, 난양경영대학원과 함께하는 1년 장학 프로그램 등이 있다. 특히 최근 2년 동안에는 광저우와 홍콩에서 열린 ‘퓨처시티 서밋’과 스위스 ‘생갈렌 심포지엄’ 같은 국제회의에 북한 참가자들을 참석시켜 북한이 다자플랫폼을 통해 세계와 교류를 할 수 있도록 장려하고 있다. 다양한 국가에서 진행되는 이런 프로그램들은 북한 참가자들이 배운 것들을 직접 체험하고, 북한에서 접할 수 없는 세계의 트렌드를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처음 시작할 때는 생소한 주제에 대한 거부감, 외국인에 대한 불신도 있었다. 하지만 프로그램을 진행할수록 참가자들의 반응은 호의적으로 변해갔다. 초기에 20~30명씩 소규모로 운용되던 국내 워크숍은 입소문을 타면서 최근에는 80~100명 이상 그리고 20~6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고루 참여하는 대규모 프로그램으로 변모했다. 조를 이루어 프로젝트를 하는 수업 방식에 기겁하고 질문하기를 꺼려했던 북한 주민들은 이제 수업시간에 활발하게 조별활동을 하고 당당하게 새로운 사업 아이디어를 발표한다. 수업이 끝나도 강사들을 붙잡고 하나라도 더 배우기 위해 끊임없이 질문한다. 특히 참가자들은 외국의 창업 사례와 경험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았는데, 이는 지난 몇 년 간 북한 내의 작지만 다양한 변화와 시도들로 이어졌다.

북한 내부에서 시작된 다양한 변화와 시도

북한 주민들의 출퇴근 시간에 맞춰 편의점 운영시간을 조정하여 성공을 거둔 프로그램 참가자의 사례는 이미 한국의 여러 언론에도 소개된 바 있다. 그 외에도 국영 기업을 떠나 평양의 인기 카페를 설립한 여성 참가자, 창업 프로그램을 통해 도움을 받아 서지보호기(전력선에 과도한 전류가 흘러 기계가 오작동하는 것 을 막아주는 장치)를 만들어 초기 대출금을 모두 상 환하고 8명의 직원을 고용한 남성 참가자, 싱가포르에서 미니MBA 과정 참가 후 은정지구로 돌아가 스타트업 멘토링 시스템을 통해 17개가량의 스타트업을 세운 참가자 등 다양한 성공 사례들이 있다. 또한 참가자들에 의하면 북한 정권도 이전보다 재산권을 더 인정하고 사업에 간섭을 덜 하는 등 사업을 위한 환경이 나아지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성공 사례에도 불구하고 아직 갈 길은 멀다. 변화가 있지만 아주 더딘 속도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북한의 내부 통제와 외부로부터의 단절은 더 많은 북한 주민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극복해야 할 과제다. 불안정한 국제 정세 또한 큰 어려움이다. 미사일 발사 등 악재가 터질 때마다 경제제재 등의 이유로 펀딩이 삭감되고 이로 인해 조선익스체인지는 현재 직원 모두 다른 본업을 유지한 채 파트타임 체제로 운영이 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서도 조선익스체인지는 미래를 위한 다양한 구상을 하고 있다. 올해 새로 시도되는 국내 프로그램 포맷(평양 북한 경제 포럼(4월), 평양 도시 혁신의 주(8월), 평성 스타트업 페스티벌(11월))을 통해 더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방식으로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북한 참가자들이 외국인 강사는 물론 다른 참가자들과의 네트워킹을 더욱 강화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한다. 또한 북한의 예비창업가들과 창업가들이 한 자리에 모여 네트워킹과 멘토링을 할 수 있는 창업 인큐베이터인 ‘6.12 싱가포르 센터’ 건립에 필요한 활동도 계속할 예정이다.

하노이 회담 이후 북한과 국제사회의 관계에 먹구름이 드리우고, 북한과의 교류에 대한 열망이 많이 잦아든 상황이다. 하지만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북한과 교류하며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를 이끌어낸 조선익스체인지의 사례를 통해 우리가 포기하지 않는 한 북한의 변화는 가능하다는 희망을 전한다.

배대연
조선익스체인지 애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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