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에두르고 휘돌아 멀리 흘러온 물이,
마침내 황해(黃海) 바다에다가 깨어진 꿈이고 무엇이고
탁류째 얼러 좌르르 쏟아져 버리면서 강은 다하고,
강이 다하는 남쪽 언덕으로 대처(大處) 하나가 올라앉았다.
이것이 군산(群山)이라는 항구요, 이야기는 예서부터 실마리가 풀린다.
탁류처럼 흐릿한 시대, 작가의 손끝에서 탄생한 도시
1930년대 모함과 사기·살인 등 부조리로 얽힌 채만식의 소설 『탁류』의 배경 군산은 조선시대부터 호남평야의 세곡이 모이는 경제의 요충지였다. 그래서 일제는 이곳을 물자수탈의 기지로 삼았고, 아이러니하게도 이 때문에 군산은 근대화 시대 산업과 상업의 중심지가 되었다. 군산항을 기점으로 일본인들이 이주해왔고, 일본인들이 이주해온 곳에 일본식 가옥, 관공서, 은행, 회사가 들어섰다. 돈과 사람이 몰리자 식민지 수탈로 몰락한 충청, 전라, 경상도의 농민과 지식인들은 군산으로 와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탁류만큼이나 흐릿하고 혼란한 시대, 군산은 그렇게 근대화의 물결에 올라탔다.
소설 『탁류』의 작가 채만식은 군산에서 태어났다. 군산을 대표하는 작가는 여럿 있지만, 군산의 채만식 사랑은 조금 특별한 것 같다. 군산 시내 곳곳에 소설비, 문학비 등이 세워져 있고, 소설 탁류를 테마로 한 걷는 길도 조성되어 있을 정도니 말이다. 본격적으로 군산의 근대문화를 체험하기에 앞서 채만식 문학관을 먼저 들러보기로 했다. 멀리서부터 흘러온 금강이 황해와 만나는 금강 하구에는 그를 기리는 문학관이 세워져 있다. 정박한 배 모양을 하고 있는 채만식 문학관은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채만식의 생애와 작품을 보기 좋게 정리해 두었고, 문학관 주변에는 호남평야에서 거두어들인 쌀을 실어오던 기찻길과 문학광장 등이 조성되어 있어 그가 거쳐 온 삶의 여정을 따라가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거리에서 만나는 근대문화의 향기
근대문화를 경험하기 위해 군산에 왔다면 빼놓지 말아야 할 곳이 군산 근대역사박물관이다. 이곳에서는 군산의 역사와 현재를 한눈에 볼 수 있는데, 3층 근대생활관에는 1930년대 군산 거리에 존재했던 11채의 건물을 재현해 놓아 남녀노소 모두에게 특히 인기가 좋다. 최고 번화가였던 영동상가, 「미워도 다시 한번」, 「심청전」 등의 영화와 연극이 상영되었던 군산좌(영화관), 당시 군산에 거주했던 화교들이 운영했던 홍풍행 잡화점은 물론 미곡 취인소, 도시의 빈민들이 거주했던 토막집 등을 볼 수 있고, 당시의 복장을 입고 인력거에 탑승해 보거나 탁본 체험을 하는 등 체험할 거리도 많으니 아이들과 함께 군산을 찾았다면 이곳을 꼭 방문해 보기를 추천한다. 근대생활관 외에도 근대역사박물관에는 군산의 독립운동가를 소개한 독립영웅관과 해양물류역사관 등 폭넓은 전시가 이어지고 있다.
근대역사박물관 주변에는 군산세관으로 사용됐던 호남관세박물관, 일본 제18은행이었던 근대미술관, 조선은행 군산지점으로 사용된 근대건축관, 이제는 카페가 된 미즈상사 등이 늘어서 있다. 지금은 미술관과 박물관, 카페 등으로 활용되고 있지만 1900년대 초 이곳은 일제 수탈의 역사가 담긴 곳으로, 당시의 흔적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군산내항에 만들어진 부잔교(뜬다리, 수출입화물작업을 위해 수위에 따라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다리)와 해망동과 군산 시내를 연결하기 위해 산을 뚫어 만든 터널인 해망굴, 일본인 지주의 가옥이었던 신흥동 일본식 가옥 등이 그것이다. 일제강점기 군산에서 상업으로 부를 쌓은 일본인 포목상 히로쓰가 건축한 신흥동 일본식 가옥은 2층짜리 전통 일본식 목조가옥이다. 이곳은 당시 대규모 일식 주택의 특성이 잘 보존되어 있다는 이유로 2009년 등록문화재 제183호로 지정되었는데, 당시에는 ‘히로쓰 가옥’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붉은 담장 안에 잘 정돈된 정원을 한 바퀴 돌면 흔히 볼 수 없는 구조가 눈길을 끈다. 이처럼 개항기의 문화가 도시 전반에 짙게 깔려 있는 군산은 낯설고 독특한 분위기 때문에 영화와 TV드라마 촬영지로 각광을 받았다. 이곳 신흥동 일본식 가옥과 근대 화교 문화를 잘 보여주는 빈해원, 초원사진관, 임피역 등은 「타짜」, 「장군의 아들」, 「8월의 크리스마스」 같은 영화 의 배경으로 자주 등장하며 그 자체가 가진 문화재적 가치를 제쳐두고라도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곳
도시의 안에서 군산을 바라봤다면 이제 한 발 멀리 떨어져 볼 차례다. 1960~70년대만 해도 최고의 수학여행 코스였다는 군산 월명공원은 몇 개의 낮은 산들이 이어져 군산의 서쪽을 넓게 차지하고 있다. 공원 안에는 군산 시민들의 식수를 공급하기 위해 만들어진 군산 제1수원지(월명호수)가 넓게 들어서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도심의 산 위에 위치한 호수라고 한다. 월명공원에서 최고 높은 곳은 해발 130m에 이를 정도니 천천히 걷더라도 끝까지 돌아보려면 제법 숨이 차다.
월명공원의 상징인 수시탑이 있는 곳까지 오르자 군산 시내와 서해바다가 한 눈에 들어왔다. 군산을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지켜낸 것을 기념하기 위해 건립된 수시탑은 불꽃과 바람에 나부끼는 돛의 형상을 하고 있다. 차가운 바닷바람을 맞으며 수시탑 아래에서 낮은 건물들이 이어진 군산 시내를 바라본다. 100여 년 전 상업과 산업의 중심지였던 군산의 현재는 어떤 모습으 로 이어지고 있을까? 그 답을 찾기 위해 새만금으로 발을 돌렸다.
월명공원을 내려와 버스를 타고 달리면 풍경이 시시각각으로 변한다. 이제 막 모를 심기 시작하는 논을 지나가는 버스는 잠깐 한눈을 판 사이에 거대한 산업단지의 한가운데를 뚫고 달린다. 군산에 조성된 산업단지와 군산항, 군산 공항, 새만금 등은 과거 무역항으로서 해상물류의 중심지였던 군산의 결을 잇고 있다.
1991년 간척사업을 시작해 20여 년이 지난 2010년에야 마무리된 새만금 방조제는 네덜란드의 주다치 방조제보다 1.4㎞나 더 긴 세계 최장의 방조제가 됐다. 바다를 옆에 끼고 길게 쭉 뻗은 도로는 누구라도 속도를 내 달려보고 싶은 에너지를 샘솟게 하는데, 그 덕분인지 새만금 방조제는 전국에서 자전거 라이더들이 찾아오는 곳이 됐다.
버스 시간을 잘 맞춰 가면 비응항에서 2층 버스를 타고 새만금 방조제와 고군산 군도를 한꺼번에 둘러볼 수 있다. 새만금과 이어진 고군산 군도는 군산의 크고 작은 57개의 섬이 모여 있는 곳으로 원래 이름은 ‘군산도’였지만 경치가 아름다워 신선이 놀았던 곳이라는 뜻의 ‘선유도’라 불리게 됐다.
2층 버스를 타고 고군산 군도의 중심 섬인 선유도에 내리자 하루 종일 머리 위에서 뜨겁게 내리던 태양이 서쪽으로 기울며 풍경에도 노란 물이 들었다. 낙조로 유명한 선유도 해수욕장에 앉아 지는 해를 바라보고 있자니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여행자가 된 기분이다. 군산 시내를 뒤덮었던 개항기 꿈틀대던 산업화의 물결은 거대한 산업단지와 새만금으로, 금강하구에서 바라봤던 탁류는 고군산 군도의 넓은 바다로 이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