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1

판문점 회동 이후의 평화프로세스 SPECIAL 01
역사적 판문점 회동,
담대한 남북관계 접근 필요

지난 6월 30일에 있었던 판문점 북·미/남·북·미 정상회동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중대 변곡점이 아닐 수 없다. 북·미 정상이 정전협정의 현장인 판문점에서 만나고 사상 처음으로 남·북·미 정상이 얼굴을 맞댔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역사적 의미가 있지만 좀 더 깊이 보면 판문점 회동은 세 가지 측면에서 그 의미가 심대하다.

첫째, 판문점 회동은 동북아의 냉전이 명실상부 해체의 길에 들어서고 있음을 말해 준다.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유럽의 냉전은 붕괴되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유럽의 탈냉전이었다. 동북아는 여전히 냉전 속에 있었다. 남북 군사분계선과 판문점은 동북아 냉전의 상징으로 남아 있었다. 지난해 1, 2차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은 판문점이 냉전의 상징에서 벗어나 평화의 중핵으로 변신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남북 정상회담만으론 부족했다. 동북아 냉전의 핵심 당사국인 북·미가 군사분계선에서 서로의 손을 잡아주는 모습이 필요했다. 판문점 회동은 이를 실현하는 것이었다. ‘약식 종전선언’과 같았고, 중국이 참여하는 실질적인 종전선언과 그에 따른 동북아 냉전의 완전한 종식과 평화협정의 희망도 보여줬다.

둘째, 북·미의 구조적 불신이 극복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북한과 미국은 전쟁, 서로에 대한 다양한 상징 조작과 악마화, 평화협정 및 협상을 둘러싼 갈등, 북·미 제네바합의 이행 과정에서의 승강이 등을 통해 불신을 심화시켜왔다.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은 그 구조화된 불신을 잘 보여주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갑작스런 트윗 회동 제안과 그에 대한 북한의 선선한 수용은 북·미가 불신을 딛고 상호 인정의 단계로 나아갈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국제사회론이 강조하는 것처럼 협상의 진전은 상호인정에서 시작된다. 판문점 회동은 그런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셋째, 북한의 비핵화 추진에 대한 진정성을 새삼 확인해주었다. 트럼프의 회동 제안에 최선희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이 즉각 나서 공식 회담을 독촉했다. 그 직후 판문점에서 양국이 직접 논의해 세기적 회동을 성사시켰다. 북한이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 어느 때보다 적극적임을 잘 보여주었다. 미국과 북한 관계 개선의 전제는 물론 비핵화이다. 북한은 이를 잘 알고 있다. 그런 점에서 북한이 ‘비핵화 → 북·미관계 개선’의 로드맵을 그려놓고 있음은 더욱 분명해졌다고 하겠다.

이처럼 중차대한 의미를 지닌 판문점 회동이 실현됐지만, 이후 비핵화 협상까지 일사천리로 끌고 가기는 쉽지 않다. 미국은 빅딜을 선호한다. 핵시설과 핵물질, 핵무기, 그 밖의 대량살상무기(WMD)를 모두 폐기시키고 이후에 대북제재를 해제하는 방안이 북한의 비핵화를 달성하는 가장 확실한 길이라고 믿고 있다. 반면 북한은 단계적 비핵화를 원한다. ‘핵시설 폐기-1단계 제재해제’, ‘핵물질·핵무기 폐기-2단계 제재해제’의 방식으로 하나씩 주고받자는 입장인 것이다.

북·미 협상 타결까지는 긴 시간 필요

양측의 간극은 여전히 좁히기 어렵지만, 조금씩 맞춰나가려는 노력도 보였다. 최근 미국은 ‘동결 입구론’을 제시했다. 시작점은 핵동결, 종착점은 WMD의 완전 폐기로 비핵화의 로드맵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는 WMD 완전 폐기만을 주장하던 종래의 입장에서 조금 후퇴한 것인데, 단계적 협상의 가능성도 어느 정도 보여준다. 게다가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는 ‘유연한 접근’을 말하고 있어 협상의 가능성을 좀 더 높여주고 있다. 북한이 핵프로그램의 완전 동결과 영변 핵시설 전면 폐기에 동의하면, 북한의 석탄·섬유 등의 수출 제제를 일부 해제하는 방안도 미국 정부 내에서 검토되고 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이런 것들이 구체적으로 검토되고 있다면 환영할 일이다. 북한도 충분히 수용할 만한 방안들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영변 핵시설 폐기와 수출 제재에 대한 일부 해제를 교환할 것을 미국에 제시했다가 결실을 보지 못했다. 이후 내부적으로 다양한 방안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래핵(핵시설)을 통째로 내준 뒤 1단계 제재해제를 받고 이후 현재핵(핵시설·핵무기)을 내주고 2단계 제재해제를 받는 방안 등을 고려하고 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판문점 회동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이 방안을 직접 전했을 수도 있다.

북·미가 일면 의견 접근을 이뤄가는 듯하면서도 실제로 협상을 열어 타결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무엇보다 미국의 대선은 북·미협상에 장애요소가 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외교적 성과를 위해 북·미협상을 타결시키리라는 전망도 있지만, 미국 유권자들은 타결 자체가 아니라 그 세부 내용에 관심을 갖고있다. 미국 유권자들은 북한 핵프로그램의 일부를 폐기하고 대북제재 일부를 해제해 주는 타결에 반대한다. 미국 시민과 언론은 북한문제에 관한 한 보수적인 입장이 대다수이다. 워싱턴포스트나 월스트리트저널 같은 보수언론뿐만 아니라 뉴욕타임스, LA타임스 등 진보언론이나 CNN같은 중도언론도 북한에 대해서는 아주 부정적인인식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빅딜이 아니면 만족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트럼프 대통령은 줄곧 빅딜을 말해왔다. 그런데 정작 타결된 안이 스몰딜이라면 대선에서 득표가 아니라 감표 요인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상황을 트럼프는 잘 알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협상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트럼프의 ‘시간은 본질적인 게 아니다’라는 말은 이런 상황을 고려해 서두르지 않고 차근차근 계산하면서 협상해나가겠다는 의미일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의 입장도 ‘미국과 협상은 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이 원하는 ‘선 핵 폐기 후 제재해제’는 절대 안 된다는 생각이다. 작년 4월 북한 노동당 중앙위 제7기 3차 전원회의에서 핵·경제병진전략을 대체하는 경제건설 총력 전략을 결정했다. 그러면서 경제 발전과 인민생활 향상에 대한 북한의 집중도는 훨씬 높아졌다. 김정은 위원장 자신의 권력을 공고화하기 위해서도 인민에게 돌아가는 경제적 혜택은 많아져야 한다. 그것이 막스 베버가 말하는 합리적 권위를 확보하는 방안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김정은 위원장이 미국에 끌려가면서 서둘러 협상을 마무리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여전히 ‘주체’와 ‘자주’를 중시하면서 자존심을 굽히는 일을 죽기보다 싫어하는 북한정권의 속성 때문이다. 김정은 위원장입장에서도 자신의 권위를 떨어뜨리는 길을 택할 리는 만무하다.

남북관계는 더 담대하게 다가가야

이렇게 미국도 북한도 양보하기 어려운 상황이니 우리의 중재는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북한이 한국을 두고 중재자 행세하지 말고 민족이익을 옹호하는 당사자가 되라고 주장한 적이 있지만, 북핵문제는 어디까지나 북·미 간 해결해야 할 문제다. 한국은 중재자, 촉진자 역할을 적극적으로 하는 게 옳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중재자로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첫째는 북·미가 대화의 동력을 잃지 않도록 만남 자체를 적극 독려하고 만남의 기회를 더욱 적극적으로 마련하는 것이다. 당국 간 대화는 물론이고, 정부와 민간이 모두 참여하는 1.5트랙 대화, 민간 대화 등 다양한 형태의 북·미 대화를 독려하고 주선해 서로 상대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는 기회를 대폭 확대해야 한다.

둘째,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지속적으로 제공해야 한다. 합의는 빅딜로 하고 실행은 스몰딜로 하는 방안이나 실행의 단계를 나누는 구체적인 아이디어를 계속 창출해 북한과 미국에게 접점을 제안하는 것이다. 이러한 접근법은 북한과 미국의 타협 가능성을 높일 뿐만 아니라 한반도 문제 해결에 우리의 이니셔티브를 강화해 나가는 길이 될 것이다. 북한·미국과 끊임없이 그리고 긴밀하게 협의를 지속해나가는 과정은 북한과 미국에 일종의 협의규범을 형성할 것이다. 북한 비핵화에 관한 한 한국과 협의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최종 결론은 북·미가 내지만, 그 속에는 한국의 의견도 충분히 수용되어 남·북·미가 모두 만족하는 해결책이 제시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이와 같은 북·미 중재자로서의 노력과 함께 우리 정부는 남북관계에 좀 더 담대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북한이 ‘중재자 역할을 그만두라’는 얘기를 하는 것도 나름의 불만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 불만의 핵심은 한국이 미국에 대해 할 말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작년 9월 평양공동선언에서 합의한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재개, 철도·도로 연결 등 3대 남북교류협력 사업에 대해 북측의 기대가 높다. 하지만 미국의 부정적 인식으로 일이 진전되지 못하고 있어 북한의 불만은 커졌다. 이는 북한이 사회, 문화, 스포츠 등 기능적인 분야에서의 가벼운 남북교류마저 거부하는 상황으로 연결되어 왔다.

물론 비핵화가 우선이고 미국의 협력 속에 남북관계를 진전시키려는 우리 정부의 전략도 일리 있다. 하지만 북한의 불만을 잠재우면서 남북관계도 발전시키는 방안이 더 바람직하다. 발상을 전환해 남북관계를 진전시킴으로써 북한의 한미관계에 대한 신뢰를 높이고, 이를 바탕으로 북·미관계를 진전시키는 방안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물론 남북관계를 과감하게 진전시키려 한다면 미국이 반대의사를 보낼 것이다. 하지만 설득 못할 일은 아니다. 과거 미국은 김대중 정부에서 계획한 금강산 관광과 남북 정상회담에 대해 찬성하지 않았다. 하지만 김대중 정부는 적극 추진했고, 그러면서 미국을 설득했다. 한국 정부의 적극적인 조치로 남북관계가 진전되어 가는 상황에서 미국도 더 이상 불만을 제기할 수는 없었다. 우리 정부는 북·미 사이를 부지런히 오가며 협상의 모멘텀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생각을 제시해 양국이 더욱 가까이 접근하게 해야 한다. 동시에 남북관계는 더 대담한 조치로 진전시켜 나가면서 미국에는 합당한 이유를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설득하는 작업을 효율적으로 해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중석몰촉(中石沒鏃). 정신을 집중해 진력하면 돌에 화살도 박을 수 있다 하지 않았는가.

안문석 안문석
전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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