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2

판문점 회동 이후의 평화프로세스 SPECIAL 02
비핵화 협상, 모두 승자 되는
실리의 균형점 찾자

지난 6월 말 판문점 정상회동으로 남·북·미 간 상호 불신이 상당히 완화되었고 북·미 정상은 비핵화 실무회담을 재개하는 데 합의했다. 북한은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연합훈련 중단을 재차 약속했다며 8월 초로 예정된 ‘19-2 동맹’ 연습과 북·미 실무회담 개최를 연계할 것을 압박했지만, 이는 정상 간 합의 내용이므로 조만간 실무회담으로 이어질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미국과 북한의 비핵화 접근법을 살펴보고 북·미 협상의 전망과 고려사항을 검토한 뒤, 협상 타결 해법을 제시한다.

2008년 12월 6자회담이 결렬된 후, 당시 미국 오바마 행정부와 한국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북핵 접근법은 대체로 ‘선 비핵화 후 보상’ 기조였다. 북한은 핵과 미사일 개발에 꾸준히 박차를 가했고,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후 최고의 압박 정책을 채택하자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핵과 장거리미사일 개발에 진력했다. 결국 미국 동부까지 보낼 수 있는 핵·미사일을 과시한 뒤, 추가 도발을 자제하면서 협상 태세를 갖췄다. 때마침 등장한 문재인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를 회복하고 북한을 초청해 평창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하고 핵문제가 해결된 한반도 평화의 시대를 도모했다. 이를 위해 한미연합훈련을 연기하고 북한을 올림픽에 초청하는 등 대북 화해와 평화공존 정책을 펼쳐 작년에만 세 차례나 남북 정상회담을 개최하고 북·미 정상회담까지 주선했다.

미국과 북한의 동상이몽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역사적인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는 대북 정책 기조의 대 전환이 명문화되었다. 공동성명 전문에는 ‘상호 신뢰 구축이 비핵화를 추동한다’고 명기했다. 상대국의 안보 우려를 고려하는 상호안보 기조로 북핵문제를 풀 것임을 확인한 것이다. 1-2항에서는 북한의 요구인 북·미관계 정상화와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체제 구축을 미국이 약속하고, 3-4항에서는 미국의 요구인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미군 유해송환을 북한이 약속함으로써 미국이 먼저 북한의 요구를 이행하거나 적어도 동시 행동으로 서로의 요구를 이행할 것을 약속했다.

그러나 이후 미국은 대규모 한미연합훈련의 비용 부담이 과하다는 이유로 이를 유예했을 뿐 종전선언이나 북·미관계 개선에는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핵·미사일 실험을 중단하고 핵 실험장을 폐쇄시켰으며, 억류했던 3명의 미국인을 귀환시켰을 뿐 아니라 유해를 송환하고 동창리 장거리미사일 발사대도 자진 해체한 북한은 반발했다. 이에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해 사실상의 종전선언에 해당하는 남북 간 군사합의서를 체결하고 미국의 상응 조치가 있다면 영변 핵시설을 영구 폐기할 것이라는 김 위원장의 용의를 받아내 협상의 동력을 살렸다.

따라서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에서는 전체 영변 핵시설의 영구 폐기라는 비핵화 1단계 이행에 대해 동시행동으로 상응조치(제재 완화, 종전 선언, 연락사무소 설치)가 교환될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미 의회 코언 청문회로 정치적 곤경에 몰리자 북한과의 낮은 수준의 합의로는 오히려 비난을 받을 것을 우려해 돌연 영변 외 핵시설과 ICBM도 포함시키는 빅딜을 주장했다. 준비가 안 된 김 위원장은 합의를 거부했다. 이후 미국은 빅딜만이 해법이라고 주장했지만 권위가 크게 손상된 김 위원장은 장거리 미사일발사대를 복구하려는 동향을 보이고, 5월 초에는 단거리미사일을 발사함으로써 미국의 빅딜 주장에 반발했다.

지난 6월 북·미 정상 간 친서가 교환되고 판문점에서 정상 간 회동이 성사됨으로써 이제 북·미 실무회담이 재개될 예정이다. 북한의 빅딜 거부와 한국의 포괄적인 합의와 단계적 이행이 해법이라는 설득, 그리고 빅딜을 고수하는 것으로는 협상의 진전이 불가능하다는 트럼프 행정부의 현실적인 판단이 복합적으로 작동해 미국은 실무회담에서 이행은 단계적으로 하더라도 포괄적인 합의를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대해 북한은 그들의 안보딜레마를 명분 삼아 비핵화를 한 단계 합의하고 이행한 뒤, 다음 단계 합의로 나아가는 단계별 합의를 주장할 것이다. 특히 미국은 실질적인 비핵화가 이루어졌을 때 대북제재 해제 또는 제재 완화를 할 수 있다는 입장인 데 반해, 북한은 하노이 회담 이후 제재보다 안전 보장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해왔음에도 막상 협상에 들어가면 1단계 조치 진입 시 제재를 완화해줄 것을 요구할 것이다.

북·미 정상 간 신뢰를 과시하며 협상 메커니즘에 추동력을 부여한 데다 대북 강경론자인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영향력이 약화되는 등 미국 내 온건한 협상 기류가 형성된 것은 일단 합의 전망에 긍정적이다. 그러나 김정은 위원장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 이어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도 회담을 진행하고, 아베 일본 총리도 북·일 정상회담을 바라고 있는 등 국제적인 위상을 제고하고 협상력을 강화한 점이 변수다. 이를 믿고 포괄적인 합의를 거부하면서 1단계에서는 영변 핵폐기만을 허용하고 매 단계마다 새로운 협상이 필요하다고 고집할 경우 국내 여론에 민감한 미 행정부가 이에 응할 가능성이 희박하기 때문이다.

또한 중단기적으로는 트럼프가 김정은의 추가 도발 우려에서 벗어났으므로 협상을 서두르지 않는 대신 현상 유지에 안주할 가능성도 있다. 이와 함께 미국이 빅딜만을 고집할 경우 또한 협상 진전이 어려울 것이다. 트럼프는 북한과의 협상이 정치적으로 손해라고 판단할 경우에는 언제라도 협상을 중단할 수 있다. 가능성이 큰 시나리오는 트럼프가 대선에 가장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시점을 잡아 북한이 양보하거나 성의를 보이는 모습을 연출하면서 타협하는 것이다. 최근 북한이 우리의 중재 역할을 비판하면서 북·미 간 직거래 협상을 진행함으로써 한국의 중재 및 평화 촉진자 역할이 위축될 수 있다는 것도 도전적인 요인이다.

북·미 간 입장 차가 크고, 미국 내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회의론이 팽배하고, 북한이 한국의 역할을 비판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정부는 합리적이고 지혜로운 전략에 따라 보다 능동적인 정책을 펼쳐 비핵화에 진전을 이루고 남북 경협을 재개하는 등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역동적으로 재가동해야 한다.

양측 실리의 균형점 찾는 것이 우리 역할

먼저 한국이 협상 중재자나 평화 촉진자 역할을 제대로 인정받으려면 새로 북·미 협상을 맡은 북한 외무성과의 소통 채널을 구축해야 한다. 우리의 입장을 현명하게 책정한 뒤 한·미 정책 조율에서 이를 명확히 밝히면서 합리성과 공정성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북한 핵 개발의 다양한 동기를 고려할 때, 미국의 상응 대가 없이는 북한이 핵을 포기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따라서 미국이 북한의 향후 추가 조치를 불가역 지점에 맞추고 이 시점에서는 제재를 완화해주어야 북·미 협상에 진전을 볼 수 있다고 설득해야 한다. 비핵화의 불가역 돌입 지점을 한·미 조율을 통해 정하고 북한이 이를 받아들이면, 상응한 제재 완화를 약속함으로써 합의를 이룰 수 있다. 이때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가 고려될 수 있다.

북한의 대미 신뢰를 증진하는 방안도 시행되어야 한다. 우크라이나와 이란 사례에서 미국이 국제적인 신뢰를 지키지 못했으므로 북한이 미국을 신뢰하여 안심하고 비핵화하도록 하는 조치가 필요하다. 비핵화는 불가역적이지만 상응조치인 평화체제는 가역적이므로, 미국이 비핵화를 원하면 확실한 체제 보장을 제공해야 한다. 비핵화한 북한에 핵우산 제공, 미 의회의 평화협정 비준, 한반도와 일본의 비핵지대 창설 등이 검토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시간이 그의 편이 아닐 수 있다는 것도 상기시켜야 한다. 김정은 위원장이 강화된 북방 3각관계에 기대어 그럭저럭 핵을 보유하면서 파키스탄식 길을 모색하거나 새로운 도발을 감행할 경우 미국 대선에 부정적인 영향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을 트럼프의 정치적 계산에 반영시켜야 한다.

결국 우리 정부는 중재자 및 평화 촉진자 역할을 신속히 회복하고 보다 능동적으로 수행해 협상 동력을 유지해야 한다. 북한과 미국의 체면을 고려해 양측이 얻을 실리의 균형점을 찾아 합의안을 작성한 뒤, 북·미 양측을 계속 설득하면서 의견을 반영·수정해 나가고 결국 우리가 제안한 합의안이 채택되도록 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이번 실무회담에서의 합의 예상안을 제시한다.

북한 전체 핵 프로그램(일단 생화학무기와 중단거리미사일은 제외) 동결, 비핵화 개념 정의, 비핵화의 최종상태(end state), 이행 일정 등을 대략적이나마 합의하고 유해 송환 작업을 재개한다. 연락사무소 설치, 종전선언, 인도주의적인 지원, 교류 증진을 약속한다. 동결된 프로그램에 대한 사찰·검증은 뒤로 미루고 의혹이 생기면 금창리 사찰 방식으로 해결한다. 비핵화의 최종상태로서의 대상은 ‘범주’만 규정하고 개별 품목 리스트는 추후에 제출한다. 1단계 비핵화 행동 조치로 미국이 플루토늄과 우라늄 농축을 포함한 모든 영변 핵시설 영구 폐기로 만족하면 안보리 제재 2개를 해제하고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을 재개한다. 미국이 ‘+α’를 바라면 평남 강선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 폐기를 추가하고 안보리 제재 1개를 추가로 해제한다. 북한의 약속 이행 보장을 위해 스냅백(snap-back) 제도를 적용한다. 합의로 승패가 갈리기보다 는 모두가 승자로 여길 수 있어야 합의가 잘 준수될 것이다.

홍현익 홍현익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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