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1

경축사에 담은 한반도의 운명 비핵·평화 구축 계기 만들어야 SPECIAL 01
경축사에 담은 한반도의 운명
비핵·평화 구축 계기 만들어야

올해는 독립 만세를 외치며 일제에 항의했던 3·1 독립운동이 일어나고 상하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된 지 100년이 되는 해이다. 광복을 맞이한 지도 74년째가 되었지만 일본은 과거사를 반성하기는커녕 우리 경제의 미래를 훼손하는 수출규제를 가해 왔다. 몇 차례의 정상회담에서 북한은 비핵화를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에 새로운 셈법을 요구하며 저강도 군사도발을 재개했다. 그런 이유에서 올해 광복절 대통령 경축사에 어떤 내용이 담길지 이목이 집중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경축사에서 광복 직후 김기림 시인이 노래한 ‘새 나라 송(頌)’을 인용하며 “아무도 흔들 수 없는 새 나라”의 꿈을 떠올렸다. 문 대통령은 광복 후 지난 74년 동안 우리나라가 세계 6대 제조강국 및 수출강국이 되었고, 국민소득 3만 불 시대를 열었으며 문화국가의 꿈도 이루고 있다고 높게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아직은 충분히 강하지 않고 분단돼있기 때문에 ‘아무도 흔들 수 없는 새 나라’가 되기에는 앞으로도 해결해나가야 할 과제가 있다고 밝혔다.

광복절 경축사는 아무도 흔들 수 없는 새 나라, 새로운 한반도를 만들기 위한 과제로 다음 세 가지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첫째는 책임 있는 경제강국으로서 자유무역 질서를 지키고 동아시아의 평등한 협력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둘째는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을 아우르며 평화와 번영을 선도하는 교량국가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셋째는 평화와 번영을 이루는 평화경제를 구축하고 통일을 이룩해 광복을 완성하는 것이다.

일본의 수출규제와 한일 갈등

지금 대한민국이 직면한 최대의 위기는 우리 첨단산업에 대한 일본의 수출규제다. 일본 정부는 작년 10월 30일 우리 대법원의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배상 판결에 불만을 품고 이와 직접 관련도 없는 반도체 3개 핵심소재에 대해 수출규제를 가해왔다. 이어서 우리 정부가 일본산 전략물자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는 근거 없는 이유를 들어 안보협력국에 제공하는 전략물자 수출 편의 제도인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시켰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지금까지도 우리 정부의 관리부실에 대한 근거를 대지 못하고 있다.

아베 정권은 우리 대법원 판결이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을 위반한 것이고 이로 인해 한일관계의 법적 토대가 흔들렸다며 이를 방치한 한국은 신뢰할 수 없는 국가라고 비난했다. 일본 정부는 한일합방이 합법이기 때문에 전쟁 시 한국인 강제징용도 합법이라는 논리를 내세운다. 하지만 대법원 판결은 한일청구권 협정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여기서 다루지 않은 ‘불법적인 식민지’ 하에서 소집·알선·징용 등 ‘강제동원’된 피해자에 대한 구제가 이뤄지지 않은 부분에 대해 위로금을 ‘배상’하라는 것이어서 일본 측 주장은 터무니없는 거짓이다.

일본 정부가 어떤 구실을 대든 이번 수출규제가 지닌 본질은 국제 분업체계 속에서 자신들이 비교우위에 있는 첨단 부품·소재·장비 산업을 이용해 4차 산업혁명과 미래산업의 핵심인 비메모리 반도체분야에 제약을 가하는 형태로 한국의 미래산업에 대한 불투명성을 높여 타격을 주기 위한 고의적이고 악의적인 조치라는 데 있다. 이러한 일본의 수출규제조치는 자유무역질서를 흔들고 국제분업체계를 해치는 노골적인 경제도발인 것이다.

우리 정부는 일본의 부당한 수출규제 조치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를 대화로 풀기 위해 7월에 두 차례 일본에 고위급 특사를 파견한 데 이어 8월 초 주일대사가 일본 측 총리실 고위급을 통해 협의를 시도했으며, 8·15 광복절에도 고위급 인사가 일본을 방문했다. 무엇보다 문재인 대통령의 8·15 광복절 경축사가 발표되기 전에 미리 일본에 내용을 전달해 대화를 타진했으나, 일본 정부는 우리 정부의 선의를 저자세로 착각했는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에 대해 문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일본의 부당한 조치에 대해 “먼저 성장한 나라가 뒤따라 성장하는 나라의 사다리를 걷어차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 대통령은 일본이 대화와 협력의 길로 나온다면 기꺼이 손을 잡을 것이라며 협상의 문을 열어뒀다. 아울러 아베 총리가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악몽을 털어내고 일본 경제부흥의 계기로 삼고자 하는 도쿄 하계올림픽이 내년 7월 말과 8월 초에 성공적으로 개최될 수 있도록 협력할 수 있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이처럼 일본 정부는 강제동원 문제와 경제보복 조치를 해결하기 위한 우리 정부의 외교적 노력에 대해 단순한 대화 거부를 넘어 일방적인 무시로 일관하는 등 외교적 결례를 범했다. 이에 따라 우리 정부는 일본의 무례한 태도가 대한민국의 국격을 훼손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고 판단했다. 그리하여 우리 정부도 비대칭적인 대항조치로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종료를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GSOMIA 종료는 국격을 유지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로서, 이에 따른 한일관계 악화는 관계 회복에 대한 일말의 성의도 보이지 않은 일본 정부에 책임이 있다.

2032년 서울-평양 공동올림픽, 2045년 원코리아의 꿈

문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남북관 계에 대해서는, 최근 북한의 잇단 저강도 군사도발에 대해 단기적인 처방보다는 중장기적인 평화경제의 비전을 제시하는 데 방점을 두었다. 평화경제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위에서 북한이 핵이 아닌 경제와 번영을 선택할 수 있을 때 가능하다는 점에서 남북 대화와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무엇보다 북·미 실무회담을 앞둔 지금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구축을 위한 가장 중대한 고비라고 평가하면서 남·북·미 3자 모두 북·미 실무협상의 조기개최에 힘을 모아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이번 광복절 경축사에서 주목할 부분은 서울-평양 공동올림픽을 공식적으로 거론하고 통일의 목표 연도를 처음으로 밝힌 점이다. 문 대통령은 2032년에 서울-평양 공동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하고 늦어도 광복 100주년이 되는 2045년까지는 평화와 통일로 하나가 된 나라, ‘원 코리아(One Korea)’를 이룩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1981년 9월 국제올림픽 위원회(IOC)에서 서울 하계올림픽 개최를 결정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서울-평양 공동올림픽은 2025년 9월쯤에 결정이 날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6년밖에 남지 않았다.

서울-평양 공동올림픽의 성공을 위해서는 어느 때보다 높은 남북 협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고려해 개최가 결정되는 순간부터 남북 관계는 획기적으로 진전돼 한반도 평화정착에 기여할 것이다. 한국은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준비하고 개최하는 과정을 통해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계기를 마련했고 국제적인 위상도 높였다. 중국도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함으로써 대국굴기를 이룩할 수 있었다. 만약 서울-평양 공동올림픽이 개최된다면 북한도 경제도약의 기회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서울-평양 공동올림픽을 유치하기 위해서는 북한 핵문제의 해결이 돌이킬 수 없는 단계에 진입해야만 한다. 핵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북한 지역에서 올림픽 경기가 열리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2025년 9월 이전까지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과 더불어 남북한이 함께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평화협력공동체와 경제협력공동체의 선순환

문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임기 내에 비핵화와 평화체제를 확고히 할 것을 다짐했다.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 이전에라도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 단계에 도달한다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도 본궤도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여건이 성숙되어 남북 간 경제협력이 속도를 낸다면 평화협력공동체와 경제협력공동체가 선순환을 이루는 평화경제가 시작될 수 있다. 평화경제가 시작되면 통일의 꿈, 원코리아의 꿈도 자연스럽게 현실이 될 수 있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듯이, 민족의 공동비전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북한의 호응이 불가결하다. 그러나 북한 조평통은 이번 광복절 경축사에서 밝힌 북한에 대한 제안이 ‘태산명동에 서일필’이라며 소리만 요란하지 내용이 별로 없다고 폄하하는 성명을 내놓았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비핵화 협상을 이어나가기 위해 ‘새로운 셈법’을 내놓으라고 트럼프 미 대통령에게 제시한 기한인 올해 말까지도 넉 달밖에 남지 않았다.

올해 8·15 광복절부터 내년 8·15 광복절까지 1년간은 한반도의 운명을 가르는 기간이 될 것이다. 미국의 대선 레이스가 내년 2월부터 시작해 11월 3일에 끝나고, 4월 15일에는 한국의 총선, 7월 24일부터 8월 9일까지는 도쿄 올림픽이 열린다. 북한이 내년도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를 악용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도 올해 하반기 중에는 비핵화와 평화구축의 계기를 만들어내야 할 것이다.

조성렬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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