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

한반도 평화, 흔들리지 않는 인내와 노력 필요 한반도 평화,
흔들리지 않는 인내와 노력 필요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이후 임기의 절반 지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정부 출범 초기 한반도 정세는 심각한 위기에 빠져 있었다. 북한의 연이은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로 유엔 안보리 회의가 지속적으로 소집되었고,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화염과 분노를 운운하며 군사적 조치까지 검토했다. 전 세계 최대 화약고인 한반도에서 전쟁이나 무력 충돌이 발생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 몫이 된다. 우리는 과거 역사에서 이를 뼈저리게 느꼈다.

문재인 정부는 북·미 간 대결로 한반도 평화가 훼손되는 상황을 좌시하지 않았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통해 대화를 토대로 평화적 해결책을 모색해나갔다. 출범 이후 곧바로 이뤄진 독일 베를린 방문과 쾨르버 재단 연설을 통해서도 평화적 메시지가 천명되었다. 문재인 정부의 평화공존에 대한 의지와 진정성은 북한이 참가한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드러났다. 작년에 이뤄진 우호적인 남북관계는 한반도에서 전쟁 위협을 없애고 남북 간 신뢰를 만들어나가려는 꾸준한 노력의 결과였다. 불과 1년 만에 남북 정상회담이 3차례 진행되고 남북관계의 회복은 북·미대화로 이어졌다. 현재 한반도 정세와 남북관계는 여전히 유동적이지만 우리 스스로가 이러한 노력을 폄하해서는 안 될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정책은 북핵 해결부터

돌이켜보면 역대 정부 모두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고 통일 여건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다만 동서 냉전구조가 첨예하던 박정희, 전두환 정부 시절에는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한 내외적 여건이 조성되지 못했다. 탈냉전의 역사적 기회 속에 출범한 노태우 정부와 김영삼 정부는 북방정책과 남북기본합의서 체결 등을 위해 노력했으나 북한의 고립과 전환기의 변동 속에서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 이르러서 사실상 한반도 평화공존의 개념이 정립되었다. 북한의 붕괴를 인위적으로 조장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을 평화정착과 화해협력의 파트너로서 인정하고 점진적으로 평화를 증진시키려는 노력을 통해 통일 여건을 조성해나가자는 것이었다. 이러한 평화공존 정책이 동맹국인 미국과 국제사회의 지지 속에 탄력을 받아야 했으나 9·11 뉴욕테러사건 이후 이른바 ‘불량국가’에 대한 미국의 입장은 강경했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북한은 다시 체제 생존을 위한 핵개발에 나서게 되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갑작스런 죽음 이후 불안정한 정통성을 바탕으로 출범한 김정은 정권은 핵보유국을 목표로 상용무기화할 수 있는 본격적인 핵, 미사일 개발에 주력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북한의 대외전략에 대해 유연하지 못했던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정책과 미국의 전략적 인내는 북한의 핵개발을 저지하지 못했다. 문재인 정부가 다시 평화공존을 강조한 것은 대결적 구조와 상호 불신으로는 한반도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그간의 교훈에 따른 것이다. 평화공존을 위해서는 우리만 일방적인 무장해제에 나설 것이 아니라, 북한 역시 핵과 미사일 개발 등 도발 행위를 멈추고 평화와 대화의 길로 나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북한이 핵을 가지고 우리를 비롯한 국제사회를 계속 위협한다면 남과 북이 결코 평화공존의 파트너가 될 수 없음은 분명하다.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정책 1장 1절’, ‘북핵문제의 해결’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 과정에서 체제 안전이 보장되면 핵을 완전히 포기할 것을 여러 차례 공언한 바 있다. 따라서 이번 기회에 비핵화와 함께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 정착을 위한 중요한 진전을 이뤄내야 함은 자명하다.

지금까지의 전개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사반세기 넘게 한반도를 짓눌러온 북한 핵문제다. 그런 면에서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은 매우 중요한 진전이었다. 북·미 간 한반도 비핵화와 체제 보장, 신뢰구축을 위한 첫발을 뗀 것이다. 올해 개최된 하노이 제2차 북·미 정상회담에 거는 기대도 컸다.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 비핵화와 체제 안전을 교환하는 방식에 합의했기 때문에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도 탄력받을 것이라 판단했다. 그러나 회담은 합의 없이 종료되었고, 이후 북·미 양국은 하노이 회담의 결렬을 두고 날선 대립각을 세우며 대화의 부재 상태를 장기화시키고 있다. 그만큼 비핵화 협상의 실타래를 푸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점을 의미한다.

물론 성과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노이 회담에서는 비핵화 협상과 관련된 북한과 미국의 의도와 협상전략이 구체화됐다. 북한은 영변 핵시설 폐쇄와 제재 완화를 토대로 단계적으로 핵을 폐기하는 방식을 선호하고 있으나 미국은 영변 핵폐기와 제재 완화는 등가적이지 못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양자를 만족시킬 수 있는 비핵화 셈법은 존재하는가? 포괄적 합의와 단계적·동시적인 이행이 그것이다. 북한은 모든 핵 프로그램을 공개하고 미국은 합의한 비핵화 일정에 따라 상응조치를 이행하는 방법이다. 어떻게 보면 단순한 구조임에도 합의가 이뤄질 수 없는 것은 북·미 간 신뢰의 문제다. 매우 아쉬운 대목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희망은 있다. 한반도 평화 과정에서 남·북·미 정상 간의 신뢰 구조, 해결 방식으로서의 톱다운 관계는 아직 확고하다는 점이다. 비핵화 협상이 답보 중인 현 국면에서도 결렬되는 대신 모멘텀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던 지난 6월 남·북·미 정상의 판문점 3자 회동은 이러한 정상 간의 관계에 기초한다. 정전협정 이후 67년 만에 남·북·미 정상이 한자리에서 만난 것은 역사적이며 상징적인 사건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의중을 재빨리 낚아챘고 문재인 대통령은 한 발자국 물러서서 북·미 정상 간 만남이 극적으로 전개되도록 뒷받침했다. 남북이 지난 9·19 평양정상선언에서 JSA 비무장화와 자유왕래를 추진하지 않았다면 이러한 극적인 장면은 연출되지 못했을 것이다. 남·북·미 3자 회동으로 북·미 실무협상이 재개되는 길을 연 것은 매우 중요한 진전이다.

기회가 좌절되면 다시 과거로 회귀할 수도…

최근 북한은 한미연합훈련을 구실로 협상 재개를 지연시키고 있다. 한미연합훈련과 우리의 F-35A 스텔스기 도입 등을 강력히 비난하면서 단거리 탄도미사일과 방사포 시험을 계속하고 있다. 자신들의 미사일 시험을 정당화하고 내부 결속을 다지는 명분으로 활용하는 포석으로 보인다. 최근에는 수위를 높여 우리 최고지도자와 당국자들을 겨냥한 인신공격성 비난을 하고 있다. 북한 외무성 국장은 담화를 통해 “앞으로 군사연습을 아예 걷어치우든지, 군사연습을 한 데 대하여 하다못해 그럴싸한 변명이나 해명이라도 성의껏 하기 전에는 남북 간 접촉 자체가 어렵다”며 남북관계를 한미연합훈련과 연계시키고 있다. 이처럼 북·미 간 비핵화 협상 테이블로 돌아오기까지 지루하게 긴 시간이 걸리고 있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입각한 정상 간의 문제 해결 의지와 우리 정부의 촉진자 역할이 더욱 긴요한 시점이다.

일부에서는 북한이 여전히 핵과 미사일을 개발하고 있고 남북관계도 변한 것이 없는데 무슨 평화 타령이냐고 비판한다. 평화는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다. 분단이 최종적으로 해결되기까지 한반도의 평화는 불안정한 상태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비핵화 협상이 시작된 지금이 매우 중요하다. 이번 기회가 좌절되면 한반도는 다시 과거로 회귀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비핵화 과정에서 조성된 평화 상태를 항구적인 평화 체제로 연결시키기 위한 전략과 노력을 배가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우리의 의지가 분명하게 드러난 것이 지난 광복절 경축사이다. 가장 주목할 대목은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의 비전이다. 한반도 정세는 늘 주변국의 이해관계에 좌지우지돼 왔다. 지정학적 위치에서 비롯된 반도의 ‘숙명’과 함께 우리 민족을 둘로 갈라놓은 ‘분단’이 그 원인이다. 이러한 분단구조를 극복하지 않고서는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와 번영은 요원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진정한 광복은 통일국가의 완성에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앞으로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에 온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분단의 멍에 극복하고 평화와 번영으로

평화경제는 분단극복과 공동번영을 위한 거대 담론이다. 평화로운 분위기에서는 교류와 협력이 활발해질 수밖에 없고 경제적인 협력이 고양되면 평화의 토양은 굳건해진다. 평화경제의 사례는 유럽연합의 기초가 된 유럽 석탄철강공동체의 경험이 증명한다. 오늘날 양안관계를 보더라도 정치적 대결구조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실질적인 교류협력이 그 공백을 메우고 있다. 물론 북한의 핵문제가 해소되지 않고 남북 간 경제 격차가 큰 지금 상황에서는 이러한 미래 비전이 공허하게 들릴지 모른다.

그러나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달성하기 위해 우리가 품고 나가야 할 미래 비전이 평화경제임에는 틀림이 없다. 우리의 공식 통일 방안인 ‘민족공동체통일방안’에서도 나타나고 있듯이 우리 국민 대다수도 화해 협력을 통한 공동체적 통합과 평화통일을 지지하고 있다. 갑작스럽게 한반도 정세를 불안정하게 하거나 인위적으로 북한을 흡수통일하는 것은 우리의 민생과 경제에 미치는 영향 때문에 바람직한 방법이 아니라고 보고 있다. 결국 평화경제를 통해 북한의 대량살상무기를 들어내고 교류와 협력을 통해 민족공동체를 만들어나가는 것 이외에 다른 방법은 없다. 자체적인 핵무장론, 북한 붕괴론, 강경한 대북정책이 대안이 될 수 없음은 지난 남북관계사에서 우리가 얻은 교훈 중 하나이다. 오히려 우리 사회 내부에서 이러한 이념적 대결을 부추기고 정부의 정책 추진 동력을 약화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북한도 이번 기회를 실기하지 않길 바란다. 북한이 통미봉남을 통해 남쪽을 제쳐놓고 오로지 미국과 협상하려 한다면 이는 오산이다. 하노이 회담의 결렬은 우리 책임이 아니다. 오히려 북한은 우리 정부와 긴밀히 협의하고 미국과 타협을 시도하는 것이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첩경이 될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앞으로 남은 임기 동안 비핵화 프로세스의 큰 틀을 합의하고 우호적인 남북관계를 위해 노력을 기울여 평화로운 한반도를 만드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 국론결집과 정책대안 마련을 위해 이번에 새로 임명되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들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우리 스스로가 흔들리지 않아야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만들수 있다. 미래를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나라와 국민에게 밝은 미래가 있다. 분단의 멍에를 극복해야 할 우리에게는 더욱 더 많은 인내와 노력이 필요하다.

양무진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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