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가 심상치 않다. 그렇지 않아도 작년부터 일본은 문재인 정부의 화해와 치유재단 해산 결정 및 한국 대법원의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판결에 불편해 했다. 7월부터는 수출규제를 강화하며 한국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이어서 러시아와 중국의 공군기가 카디즈를 넘나들며 한국의 안보를 흔들었다. 미국도 방위분담비를 늘리고 호르무즈 해협 파병을 요구하는 등 한국에 고액의 동맹청구서를 내밀고 있다. 일본 북한은 연이은 미사일 시험을 이어가며 막말 수준의 말폭탄을 쏟아붓고 있다.
일본이 선두에 섰다. 일본 산업경제성은 지난 7월 1일 대(對)한국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 조치를 발표,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레지스트와 에칭가스 등 3개 품목에 대한 한국 수출 규제를 강화했다. 이어 8월 2일 일본 각료회의는 수출심사 우대 대상인 화이트 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처리했다. 8월 7일에 공포한 수 출규제 시행세칙에 기존 3품목 외에 개별허가 품목을 추가하지는 않았지만, 수출규제 대상이 1,100여 개에 달하기 때문에 그 경제적 파급효과는 예측조차 하기 쉽지 않다.
러시아가 뒤를 이었다. 7월 23일 조기경보통제기가 한국 영공을 무단 침범했다. 중국 이 동조했다. 러시아 공군과 함께 연합 훈련비행을 펼치며 카디즈를 넘나들었다. 미국도 뒤지지 않고 24일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을 파견, 방위비 분담금 증액과 호르무즈 해 협 파병을 수용하라고 압박했다. 북한이 7월의 대미를 장식했다. 23일 신형 잠수함을 공개한 데 이어 25일과 31일에는 연이어 미사일을 시험 발사했다. 한미가 예정대로 8월 초부터 한미연합군사연습을 강행하자 북은 계속해서 미사일 시험을 이어가며 한국 정부에 대해 강한 비난을 쏟아부었다.
2017년 위기상황을 넘기고 평화와 번영의 훈풍이 불던 한반도가 왜 갑자기 안보와 경제 위기의 태풍을 맞게 된 것일까? 가을이 오면 맑은 하늘을 볼 수 있을까?
삼중분단으로 보는 동북아 국제질서의 변화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가 요동치고 있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구축된 동북아시아 국제질서가 중대한 변화를 겪고 있기 때문이다. 이 국제질서를 ‘삼중 분단’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살펴보면 지금의 변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제2차 세계대전에는 두 개의 다른 전쟁이 중첩되어 있었다. 하나는 미국과 소련 등을 중심으로 하는 연합국과 일본·독일·이탈리아를 핵심으로 하는 추축국 사이의 전쟁으로, 1945년 추축국의 패배로 종결됐다. 유럽에서는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에서 독일 전범들의 전쟁범죄를 처벌하고, 아시아에서는 극동 국제군사재판에서 전범을 청산했다. 또 하나의 전쟁은 반식민 독립전쟁으로, 아시아·아프리카·중남미에서 식민지 민중이 제국주의에 저항해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벌인 전쟁이었다. 이 전쟁은 1930년대 말부터 연합국과 추축국 사이의 전쟁과 시기가 중첩되나 그 성격은 매우 달랐고, 1945년에 종결되거나 정리되지도 않았다.
아시아에서 식민지배에 저항한 반식민주의 전쟁이 종결되지 않은 상태로 남게 된 것을 동아시아의 ‘식민분단’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일본을 한편으로, 한반도와 중국 등 피식민 민족을 다른 한편으로 두는 분단이다. 미국과 소련이 체제 경쟁을 하며 세계를 자본주의권과 공산주의권으로 분단시키는 과정에서 아시아도 ‘냉전분단’을 겪게 됐다. 특히 식민지배를 경험했던 한반도와 중국, 베트남이 각각 분단되면서 ‘민족분단’을 경험하게 된다.
1940년대 후반 냉전분단이 강력한 구조적 힘으로 작동하며 식민분단과 민족분단을 재생산·강화하게 된다. 동시에 식민분단과 민족분단이 냉전분단을 받쳐주며 이를 재생 산하는 상호의존적 삼중분단 구조로 완결되는 것이다. 남한과 일본은 식민모순을 해결하지 못한 채 식민분단으로 갈라져 있었지만 냉전 분단에서는 같은 편에 있었기 때문에, 식민지배 문제를 봉합하라는 압박을 받았다. 그 결과가 1965년 한일기본조약과 청구권협약이었다.
이러한 삼중분단 구조는 1990년대 들어 해체되기 시작했다. 유럽에서 시작된 냉전분단의 와해가 동아시아 식민분단과 민족분단의 완화까지 가능하게 한 것이다. 동아시아 냉전분단은 유럽의 ‘철의 장막’보다는 유연한 것이었다. 예를 들어 일본과 중국은 1972년 국교를 수립하고 경제교류를 확대하기 시작했고, 미국은 1972년 중국과 ‘상하이코뮈니케’를 발표한 이후 1979년 수교했다.
베트남은 1986년부터 도이모이(doimoi, 베트남어로 ‘쇄신’을 뜻하는 말)를 시작해 1995년 미국과 수교했고, 중국은 1986년에 GATT 가입을 신청한 후 2001년 WTO에 가입했다. 한국은 1990년 소련과 국교를 수립하고, 1992년에는 중국과 수교했다. 이러한 변화는 아시아 식민분단이 해소될 가능성을 열어주기도 했다. 1990년대 들어 일본은 정부 차원에서 1993년 고노 담화, 1995년 무라야마 성명, 1998년 오부치-김대중 한일 공동선언, 2010년 간 나오토 담화 등을 통해 식민지배에 대한 강제성과 피해를 일정 수준에서 인정하고, 반성적 태도를 표명했다. 시민사회에서는 일본군 위안부, 역사 교과서, 야스쿠니 신사 등 ‘역사문제’를 두고 초국가적 교류와 연대를 활발하게 진행했다. 식민분단을 극복하고 초국가적 아시아 연대의 가능성을 보여주기 시작한 것이다.
이와 함께 민족분단도 완화되기 시작해 중국과 대만은 인적교류를 점증시켰다. ‘1992년 합의’ 등을 토대로 경제교류도 급증했고, 한반도에서도 남북교류를 비롯한 다양한 합의를 도출했으며, 북·미협상도 진행했다. 1990년대부터는 삼중분단이 서로의 관계를 완화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하며 ‘삼중평화’의 전망을 열어주었다.
한반도와 남북관계 발목 잡는 신냉전
하지만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삼중분단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요동치고 있다. 우선 탈냉전의 흐름을 타던 냉전분단이 21세기형 신냉전으로 퇴화하고 있다. 미국-일본-호주-인 도를 축으로 하는 ‘해양동맹’과 러시아-중국을 축으로 하는 ‘대륙동맹’의 대립이 가시화되기 시작했다. 미국은 인도 -태평양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2017년 11월 ‘자유롭고 열린 인도 -태평양 지역 활성화’를 제시한 후 2018년 미국 국가국방전략은 인 도-태평양 지역에서 동맹 및 파트너십을 확대하며 동맹국을 대중·대러 전선의 전면에 내 세우고 있다. ‘항행의 자유 작전’으로 미군의 작전기동성을 확인하고 다국적 합동군사연습과 한·미·일 미사일방어체계를 상호 운용·통합화하며 중국과 러시아를 압박하고 있다.
이에 대응한 중국과 러시아는 전략적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2016년 정상회담에서 ‘글로벌 전략 안정성’을 강화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한 푸틴과 시진핑은 다면적 전략협력 을 증대하며 중·러 연합군사연습, 양국 해군 합동훈련 등을 진행했다. 연합훈련은 미사일방어 시뮬레이션 합동훈련 및 다국적 육군 훈련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2019년 6월 정상회담에서는 중·러관계가 ‘새시대 전면적 협력동반자 관계’로 격상됐다. 이러한 ‘신냉전’은 남북이 화해와 평화를 이루기 어렵게 하는 원심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편 해결의 방향으로 진전하는 듯하던 식민분단도 첨예한 대립으로 악화되고 있다. 한국과 일본 사회가 반대 방향으로 진화한 결과다. 일본에서는 일본 정부의 사과와 반성에 대한 일본 보수 우익의 ‘반동’이 1997년부터 조직화되기 시작해 이제는 일본회의 같은 조직이 풀뿌리와 정권을 장악했다. 그 반영으로 아베 정부는 ‘전후체제의 탈각’을 추진하고 2019년 신년사에서는 ‘전후 외교 총결산’을 내세웠다. 이와 반대로 한국에서는 시민사회가 더욱 힘을 키우며 ‘촛불혁명’을 통해 정권교체까지 이루는 상황이 됐다. 역사문제에서 피해자 중심주의가 확실하게 자리를 잡았을뿐더러, 사법부도 위안부 및 강제징용 판결에서 배상 요구를 인정하고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확인하기에 이르렀다. 한일 간 식민분단 문제가 첨예하게 대두하게 된 것이다.
갈등의 길과 평화의 길
2018년에 큰 힘을 발휘했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는 두 개의 강고한 분단, 즉 ‘신냉전 분단’ 및 ‘식민분단’과 상충되는 것이었다. 1990년대의 남북관계가 어려운 과정을 거쳐 탈냉전과 탈식민의 흐름에 힘을 받아 개선됐음에도 작금의 평화프로세스는 냉전분단과 식민분단이 첨예화되는 과정을 거스르는 것이어서 더욱 어렵다고 할 수 있다.
이 상황에서 한국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밖에 없다. 하나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포기하고 신냉전과 식민분단에 편승하는 것이다. 갈등의 길이다. 지금 당장은 손쉬운 선택일 수 있으나, 종국에는 20세기 초보다 더 파멸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다른 하나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더욱 발전시켜 동북아시아와 세계 평화의 핵심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평화의 길이다. 쉽지 않을뿐더러 가보지 않은 길이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일본을 끌어들여 ‘탈식민’의 21세기를 열고, 미국, 중국, 러시아를 견인해 동북아시아 평화체제를 만드는 길이다.
지소미아의 체결과 종결 과정은 이러한 삼중분단의 작동방식을 잘 보여준다. 미국 전략의 초점을 중동 및 유럽에서 동아시아로 이전시킨 오바마 행정부는 중국의 부상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 동맹국들간의 협력을 촉구했다. 신냉전분단의 등장은 한일관계에 압력으로 작용, 2015년 일본군 ‘위안부’ 합의와 2016년 사드 배치 결정, 지소미아 체결로 이어졌고 이는 남북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반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진전하며 민족분단이 이완되는 데 불안감을 느낀 아베 총리는 ‘신뢰 훼손’을 이유로 수출규제를 강화했다. 이에 대한 우리 정부의 지소미아 종결 결정은 민족분단 및 식민분단의 해체, 더 나아가 신냉전의 소용돌이에 말려들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이기도 한 것이다.
이제 우리는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다. 한반도는 외부의 원심력에 떠밀려 삼중전쟁의 길로 갈 것인가, 한반도 평화체제를 동심력으로 하여 미·중·일·러와 함께 삼중평화의 길 로 갈 것인가.
일본 국제기독교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