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포커스

헌법에 ‘선군’ 삭제, ‘국가’ 강조하며 사회주의 정상국가로 향하는 북한 헌법에 ‘선군’ 삭제, ‘국가’ 강조하며
사회주의 정상국가로 향하는 북한

지난 7월 11일 북한이 최고인민회의 14기 1차 회의(4.11~12)에서 개정한 헌법을 대외 선전 매체 ‘내나라’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했다. 이번 헌법개정은 1948년 「인민민주주의 헌법」 제정 이후 18차, 1972년 「사회주의 헌법」 제정 이후로는 8차 개헌이다. 그리고 2012년 김정은 시대 이후로는 벌써 4번째 개헌이다.

수령제와 당-국가체제로 움직이는 북한에서 지금껏 헌법이 차지하는 비중은 크게 높지 않았다. 북한 주민의 생활을 규율하는 규범은 유일적 영도체계 확립의 10대 원칙, 당규약, 헌법 순으로 그 위상이 정해져 있다. 그러나 사회주의권의 붕괴로 ‘당 대 당’ 외교가 축소되고 자본주의 국가와의 외교 관계가 확대되면서 국가의 역할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그리고 김정은 시대에 ‘우리 국가제일주의’가 핵심담론으로 부상하면서 ‘국가’ 의 중요성이 증가했다. 이러한 변화에 주목한다면 국가의 역할과 권한을 규정하고 있는 북한의 헌법개정에는 상당히 주목할 만한 변화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번에 공개된 북한의 개정헌법은 사실상 ‘김정은 헌법’으로 볼 수 있다. 북한은 헌법의 성격을 1998년 ‘김일성 헌법’에서 2012년 ‘김일성-김정일 헌법’으로 변경했다. 이번 개정헌법 역시 ‘김일성-김정일 헌법’임을 명문화하고 있지만, 김일성과 김정일의 역사적 인물화, 선군시대와의 결별, 사업방식의 대체, 김정은 시대의 새로운 담론·정책·제도 대거 반영 등 실질적으로는 김일성·김정일 시대를 넘어서 김정은 시대로 도래하는 새로운 헌법이라고 볼 수 있다.

과거의 계승을 넘어 미래의 발전을 강조

개정헌법은 김정은 정권 출범 이후 지속해왔던 김일성·김정일 시대 과거 업적에 대한 계승을 넘어, 김정은 시대의 미래지향적 발전을 강조하고 있다. 첫째, 개정헌법은 김일 성·김정일을 ‘과거형’의 역사적 인물로 상징화했으며, 김정은 중심의 혁명전통을 제도적으로 확립했다. 개정헌법 서문의 첫 문장에서 김일성과 김정일의 ‘영도’를 과거 시점의 의미를 담은 ‘업적’으로 변경했다. 그리고 김일성·김정일 시대의 지도이념인 주체사상과 선군사상을 삭제하고 7차 당대회(2016)의 당규약에 이어 헌법상 처음으로 김일성-김정일주의를 명기했다(3조). 또한 선군시대의 흔적 지우기 차원에서 선군혁명노선을 삭제했으며, 국가 무장력의 사명을 ‘혁명의 수뇌부 보위’에서 ‘김정은 동지를 수반으로 하는 당중앙위원회 결사옹위’로 변경했다(59조). 이는 남북/북·미관계에서의 대화 분위기를 반영하고 미래의 평화지향성을 강조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둘째, 북한의 대표적 경제관리지침인 청산 리정신·청산리방법(13조)과 대안의 사업체계·농업지도체계·독립채산제(33조)를 삭제하고 혁명적사업방법과 사회주의기업관리책임관 리제로 각각 대체했다. 그리고 실리보장을 추가(32조)하고 내각의 역할을 강조(33조)하는 등 김정은 집권 이후 이미 취해온 경제개혁 조치들을 헌법에 사후적으로 반영했다. 그러나 공업부문에서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를 제시한 것과 달리 농업부문에서는 농업지도체 계를 대체하는 포전관리담당제 같은 사업방법을 명시하지 않았다. 이는 아마도 포전관리 담당제가 현재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어 향후의 변화 가능성을 시사한 것으로 보인다.

셋째, 김정은 시대에 들어서 북한이 강조하고 있는 미래지향적 정책들이 헌법에 반영됐 다. 정보화(26조), 과학기술력(27조), 전민과학기술인재화(40조), 실리보장(32조), 대외신용·대외무역(36조) 등 과학기술과 교육과 경 제 분야의 변화들이 새로 추가됐다. 이러한 정책의 연장선상에서 과거와는 다른 지식인의 계급적 위상을 반영해 ‘근로인테리’를 ‘지식인’으로(4조), ‘전문학교학생’을 ‘대학생’으로(47조) 수정했다. 이렇게 개정헌법에 반영된 내용들은 김정은 집권 이후 과학기술강국, 경제강국을 건설하기 위해 강조해온 북한의 대 표적 정책을 반영한 것이다.

국무위원장의 ‘국가수반’ 명문화, ‘우리 국가제일주의’를 통한 국가성 강조

개정헌법은 김정은 시대의 핵심담론으로 등장한 ‘우리 국가제일주의’를 반영해 국가성을 강조하고 있다. 북한은 김정은 시대의 새로운 통치이념을 제시하는 대신 김일성·김정일 주의를 지속하면서, 민족성을 의미하는 ‘우리 민족제일주의’보다는 국가성을 의미하는 ‘우리 국가제일주의’를 강조하고 있다. 북한의 ‘국가 강조’는 개정헌법에 다음과 같이 반영됐다.

첫째, 개정헌법 서문에서 ‘사회주의 조국’을 ‘사회주의 국가’로 변경하고, 헌법상 최초 로 ‘세계에 유일무이한 국가 실체’라는 표현을 삽입했다. 그리고 우리 국가제일주의와 인민 대중제일주의를 일치시키는 측면에서 기존의 ‘군대와 인민’이란 문구를 ‘인민들과 인민군장병’으로 순위를 변경해 표기했다(60조).

둘째, 국무위원장을 명실상부한 국가수반으로 헌법에 명문화했다(100조). 기존 헌법은 국무위원장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최고영도자’라고 했으나, 개정헌법에서는 ‘국가를 대표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최고 영도자’로 변경했다. 기존 헌법에는 없던 ‘국가를 대표하는’이라는 표현을 국무위원장의 지위에 추가한 것이다. 북한은 최고인민회의 이후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전체 조선인민의 최고대표자’로 칭함으로써 국가의 대표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국가대표’ 위상과 역할에서 김정은과 최룡해의 차별화로 나타나고 있다. 개정헌법을 통해 볼 때 김정은은 국가 전 반을 대표하고 최룡해는 외교사업의 일부(신 임장·소환장)를 대표하는 것으로 보인다. 비록 둘 다 국가대표권을 가지고 있지만, 김정은과 최룡해의 국무위원회 내부에서의 위상은 국무위원장과 제1부위원장으로 분명하게 차별화되고 있다. 과거 1990년대 김정일과 리을설 모두 ‘원수’ 칭호를 받았으나, 김정일은 ‘공화국 원수’, 리을설은 ‘조선인민군 원수’로 해석 한 것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앞으로 김정은은 주요국과의 정상회담 등에 나서 실질적·핵심적 역할을 담당하고 최룡해는 형식적·의례적인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국무위원장’을 ‘국가수반’으로 명문화한 것은 향후 김정은 위원장의 대미·대유엔 외교에서 역할을 확장할 것을 고려한 포석으로 보인다.

셋째, ‘국가의 대표자’로서 김정은 위원장의 위상 강화와 연계해 ‘공화국 전반적 무력의 최고사령관’을 ‘공화국 전반무력의 총사령관’으로 변경했다(102조). 최근 북한이 탈선군 및 평화지향성을 강조하는 추세를 감안할 때, 전시 호칭인 ‘최고사령관’보다는 평시 호칭의 의미가 담긴 ‘총사령관’을 명시하고 ‘전반적 무력의 최고사령관’을 ‘무력총사령관’으로 간소화하는 동시에 고유명사화한 것으로 보인다. 헌법개정 이후 현재까지 북한은 ‘최고사령관’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으나, 일정한 조정기를 거쳐 점차 ‘총사령관’이라는 호칭을 사용할 가능성이 있다.

‘선군’에서 ‘선당’으로, 이제는 ‘선경’을 향해 전진

북한은 2019년 헌법개정을 통해 선군시대의 비상통치체제인 ‘당-군-정’ 체제를 ‘당-국가’ 체제로 전환함으로써 사회주의 정상국가의 입구에 들어섰다고 볼 수 있다. 현재 북한이 당면한 과제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대내적으로는 7차 당대회에서 제시했던 ‘경제발전 5개년 전략’을 성공시킴으로써 내년에 예정된 당 창건 75주년을 성대히 경축하는 것이다. 이를 기반으로 경제발전을 추동해 사회주의 경제강국을 달성하고 사회주의 강국을 완성하는 것이다.

둘째, 대외적으로는 비핵화와 북·미관계 정상화를 통해 체제 안전을 보장받고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진입하는 것이다. 북한이 구상하고 있는 이러한 두 가지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이 이번 개정헌법에 담겼다. 개정헌법은, 전통적 경제관리 방식인 당우위의 ‘대안의 사업체계’를 삭제하고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로 변경했다.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는 경영활동에 대한 기업의 자율성과 재량권을 확대한 정책으로, 시장경제 요소가 가미돼 있다. 또한 대외무역에서 ‘신용을 지키고 무역구조를 개선’하겠다는 의지를 밝힘으로써 대북제재로 위축된 교역과 무역을 확대하는 방안에 대한 고민도 담겨 있다. 이러한 변화는 북한이 경제정책에서 개혁적 기조를 유지·강화함으로써 실리를 확보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된다.

한편, 북한은 헌법개정을 통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국가대표권’을 부여함으로써 향후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 및 대중·대러 정상외교를 향한 의지를 내비쳤다. 북한에서 국가성을 강조하는 우리 국가제일주의는 2017년 11월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 15형의 시험발사가 성공한 이후 처음 등장했으며, 다음 해인 2018년 남북/북·미/북·중/북·러 등 김정은 위원장의 정상외교가 전개되면서 본격화됐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김정은은 국가수반의 지위를 통해 향후 전방위적 정상외교를 활발히 전개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경제발전과 북·미 국교정상화라는 두 과제는 서로 독립되어 있기보다는 상호 연계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북한의 비핵화가 이뤄져야 북·미 국교정상화가 가능하다. 이 과정에서 대북제재 완화 및 해제와 함께 경제 발전을 위한 ‘기회의 창’이 열릴 것이다. 나아가 우리 정부가 추진하는 ‘평화경제를 통한 한반도의 공동번영’에 남북이 함께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은 김정은 위원장 집권 이후 ‘선군’을 ‘선당’으로 전환하면서 사회주의 정상국가로 변화하고 있다. 이제는 국가와 경제를 강조하며 ‘선경’을 향한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번 개정헌법에도 ‘핵보유국’이라는 표현을 남겨둠으로써 비핵화 협상이 진전되지 않는 한 핵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향후 북한 비핵화를 비롯해 북·미관계 정상화와 남북관계에 진전이 이뤄져 ‘핵’이라는 단어가 사라진 북한 헌법이 등장하기를 기대해본다.

김일기 김일기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북한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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