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은 남북통일을 위한 시작, 국민 공감대 먼저 형성해야”
지난 2016년 북한이 4차 핵실험을 단행하자 당시 박근혜 정부는 개성공단을 전면 폐쇄했다. 개성공단 내 기업들은 자산도 제대로 챙기지 못한 채 쫓겨나다시피 일터를 나 와야 했다. 정기섭 회장은 그 후 개성공단 기업인들과 비대위(개성공단기업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해 개성공단 재개의 필요성을 알리기 위해 동분서주 달려왔다.
지난 6월에는 김진향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 이사장을 비롯한 임원진들과 함께 미국을 직접 찾아 국무부 관계자들과 싱크탱크 전문가들, 현지 언론, 동포들에게 개성공단 의 필요성을 호소하기도 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찾은 미국이었지만, 개성공단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져 있는 것은 미국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우리에게 미국이 얼마나 영향력이 큰 존재였는가를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됐다는 정 회장은, 이럴 때일수록 우리의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우리 국민들에게 왜 남북경협이 필요한지, 특히 북한보다 남한을 위해서 남북 경협은 꼭 필요한 과제라는 것을 알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우리 사회 내에서도 남북경 협에 대한 의견이 갈려 있는 상황에서 미국을 설득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왜 남한을 위해 개성공단을 재개해야 하느냐에 대한 충분한 논의와 동의가 먼저 이루어져야만 미국을 설득하는 것도 더 수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그는 개성공단이 한반도의 평화통일과 평화경제 측면에서도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2005년 처음 개성을 방문했던 정기섭 회장은 경제 수준뿐 아니라 의식과 생각, 문화적 측면에서도 엄청난 차이를 보이는 남과 북을 직접 체감했다.
이렇게 서로의 차이가 심한 상황에서 만약 충분한 준비 없이 통일이 이루어진다면 그 결과는 우리에게 엄청난 재앙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는 그는 “통일은 남과 북 이 경제적 수준을 맞추는 것 외에도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 는 데에서부터 시작된다”며 이는 결국 많은 교류와 협력된 시스템에서 함께 움직일 때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개성공단 직접 출입하며 느낀 변화, 북측도 개성공단 재개 희망할 것”
개성공단기업협회장으로서 두 번째 임기를 맞고 있는 정기섭 회장은 개성공단 내에 의류업체를 운영하며 1000여 명의 개성 근로자를 고용했었던 개성공단 1세대 기업인이다. 그런 만큼 그는 누구보다 개성공단 재개에 희망을 걸고 있다.
“2013년에도 5개월 정도 개성공단이 폐쇄됐다가 재개된 적이 있습니다. 그때 남측 주재원들과 북측 근로자들이 다시 만나서 서로 너무 반가운 나머지 눈물을 흘리며 부둥켜안았던 기억이 나요. 그만큼 서로 구성원으로서의 일체감을 느꼈던 거죠.”
개성공단이 폐쇄와 재개를 거치며 공단 내 근로자들 사이에는 유대감이 생겨났다. 처음 개성공단 사업 을 시작할 때는 서로 믿지 못해 적대적이었던 사람들도 시간이 흐를수록 농담을 주고받거나 서로의 개인사를 궁금해할 정도로 돈독해졌다. 정 회장은 당시 개성공단에서 어려움을 겪었던 기업들도 개성공단이 일 시 중단된 이후 재개되자 북측 근로자들의 자발적이 고 적극적인 협조로 좋은 성과를 얻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정기섭 회장은 “역설적이게도 개성공단이 일시 중단으로 고비를 넘겼을 때 제일 보람을 느꼈다. 사업적으로는 어려웠지만 사람의 마음을 얻은 기간이었다”고 소회를 전하며 북측 근로자들에게 “빨리 다시 만나서 함께 일하고 싶다”는 소망을 전했다.
개성공단 폐쇄 기간이 길어지고 있다. 언제쯤 다시재개될 수 있을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정 회장은 김정은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아무런 조건이나 대가 없이 개성공단 사업과 금강산 관광을 재개할 용의가 있다’고 밝힌 것처럼 북측이 개성공단 사업에 대한 긍정적인 의지를 갖고 있으리라는 기대를 나타냈다. 또 현재 비핵화 협상 등과 연계돼 남북 경협 사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상황은 북측도 불만일 것이라며, “북측은 개성공단 사업을 지속 하고 싶어 했고, 그러한 의지도 있었다. 지금도 그럴 것” 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정권이 바뀜에 따라 개성공단 사업이 처음 합의대로 진행되지 못했던 부분에 대해서는 일정 부분 우리 정부의 잘못도 있는 만큼 정부 간 합의는 정권이 바뀌어도 계속 지켜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6월 30일 판문점에서 남·북·미 정상이 회동하며 개성공단 재개에 대한 희망의 불씨가 살아나는 듯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트럼프 대통령과 판문점 공동 경비구역을 찾았을 당시 개성공단을 함께 바라보며 “남북 경제와 화해 분위기 조성에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이런 상황에서 개성공단 기업인들은 우리 정부의 결단을 요구하고 있다. 정기섭 회장도 “대통령께 괴로운 이야기를 해드리는 것 같다”고 조심스러워하면서도 “너무 고민만 하는 것보다 일을 저지를 때는 결단력도 필요하다”며 “개성공단 기업인과 하루아침에 실직자가 된 5만여 명의 북측 근로자들을 생각해 달라”고 호소했다.
정기섭 회장은 국민참여공모제를 통해 19기 민주평통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게 됐다. 그동안 개성공단 등 북한과 관련된 부분에서 많은 국민들이 잘못 알고 있거나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 많아 이를 바로잡고 싶다는 바람에서였다. 특히 남북경협에 대해서는 북한에 대한 ‘퍼주기’라거나 과도한 통일 비용을 걱정하는 여론이 많았다. 이 때문에 정 회장은 19기 자문위원 활동도 여기에 초점을 맞출 계획이다. 북한 사람들과 직접 일을 해본 경험이 있는 만큼 이를 토대로 바람직한 남북관계의 미래와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을 바로잡아 나가는 데 보탬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남북은 상생 가능한 관계, 남북경협으로 만들어가야”
특히 그는 “이번 방미 때에도 워싱턴과 LA협의회에 계신 민주평통 자문위원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며 “국내와 해외 곳곳에 조직을 갖춘 만큼 민주평통 활동을 통해 실질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자문위원 활동과 함께 개성공단기업협회장으로서의 행보도 계속해서 이어나갈 예정이다. 정기섭 회장은 현재 한국경제의 저성장 국면을 풀기 위한 해답은 남북경협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지하자원이나 노동력 등 남과 북은 서로 취약한 부분을 보완하고 도울 수 있는 관계인만큼 우리가 경제적인 면에서 활로를 찾기 위해서는 선택이 아닌 필수로 남북경협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말을 마치며 앞으로 국민들에게 남북경협이 한국경제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를 알리는 토론을 벌이고 활발하게 의견을 개진하며 국민을 대상으로 한 설득 작업을 계속해나갈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2016년 2월 개성공단 폐쇄 이후 개성공단 기업인들은 지속적으로 북한의 문을 두드렸다. 지난 5월 개성공단 입주기업 190여 명과 함께 한 9번째 방북 신청은 마침내 통일부로부터 승인을 받았지만 아직까지 북은 묵묵부답인 상황. 언제까지 답변 없는 기다림을 지속 해야 할까. 개성공단 사업 재개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가 더해져 하루빨리 개성공단의 기계가 다시 돌아가 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개성공단기업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