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사업의 역사와 결을 함께한 의약품 지원
1995년 8월 23일, 북측은 공식적으로 유엔에 인도적 지원을 요청했다. 이를 계기로 지원본부를 비롯해 국제사회 및 남측의 대북 관련 민간단체들은 인도적 대북 지원을 시작했고, 이제 그 역사가 20년을 넘어서고 있다. 한 단체가 지속해온 20여 년의 대북 교류협력 사업의 역사는 대북사업의 역사와 같다고 할 수 있다. 당국의 간섭이 적은 제3세계 지원과 달리, 대북사업의 경우 남북 당국의 정책과 입장이 깊게 관여되기 때문이다.
지원본부가 첫 물자를 북송했던 1997년부터 2000년까지는 항생제, 해열진통제 등 완제의약품 및 비타민 등 영양제를 중심으로 기증했다. 그러던 것이 2000년도를 넘어서면서 북측은 의약품 생산설비와 원료의약품을 요청했고 이에 2001년부터는 정제(알약), 시럽제(물약), 환제(한약) 생산설비와 이에 필요한 원료의약품을 북송하기 시작했다. 이 물자들은 북측 전역의 어린이영양관리연구소로 보내졌고, 이 기관에서 우리 측 사무처장 이 기증한 생산설비와 원료의약품을 활용해 직접 의약품을 생산해 어린이들에게 분배했다. 2000년을 전후로 단순한 인도적 지원에서 개발 협력성 교류로 사업의 성격이 전환된 것이다.
두 번째 북측 사업장은 대동강구역인민병원이었다. 북측은 지원 초기 평양을 중심으로 규모가 큰 3, 4차급 중앙병원을 민간단체에 개방해 사업을 추진했다. 하지만 일정 시기가 지나면서 중앙병원급 사업이 완료되고 보건의료 사업을 하고자 하는 민간단체가 많아지면서 그보다 낮은 2차급 단위의 병원으로 사업장이 확대됐다. 이 기조에 따라 지원본부도 2003년 대동 강구역인민병원 사업을 진행했는데, 이 병원은 평양의 23개 구역 중 하나인 대동강구역 주민의 건강을 책임지는 2차급 병원이었다. 2차급 병원은 입원을 요하는 환자가 제일 먼저 찾는 병원이다. 대동강구역인민병원 의 경우 엑스레이, 초음파, 내시경 등 필수적인 의료장비와 의약품, 의료용 소모품 등을 기증했다.
2005년부터는 철도성중앙병원 현대화 사업이 추진 됐다. 북측은 병원에 필요한 의료 관련 물자를 기증하는 것과 함께 병원 건물을 개보수하는 것을 ‘현대화’라 는 개념으로 정의했는데, 이로써 대동강구역인민병원 과 같이 의료물자만 기증하는 것을 넘어 병원 건물을 재건축하는 사업으로까지 확대됐다. 지원본부는 철도 성중앙병원 현대화 사업을 완료한 뒤인 2007년 11월 ‘철도성중앙병원 물자 기증식’ 행사를 진행했다. 이는 김포-순안 간 직항기를 이용한 방북으로, 단체 창립 10년 만에 추진한 첫 대규모 방북이었다. 철도성중앙병원 사업 완료와 동시에 2007년 12월 개성에서 ‘만경대어린이종합병원 건립사업’에 대한 협약서가 체결됐다. 이 사업은 병원 건물을 신축하는 것으로 병원을 새롭게 건립하는 단계까지 이른 것이다. 북측 당국은 기존 병원 체계 내의 병원 현대화 사업을 넘어 안과전문병원을 건립한다거나 평양 인근의 농촌 지역에 진료소를 새롭게 건설하는 등 남측 민간단체와 함께 전문병원이나 모범적인 1차 의료기관 건립까지 추진했다. 하지만 2008년은 만경대어린이종합병원 건립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첫해이자 보수정부인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해로, 대북정책의 방향이 기존에 10여 년 간 추진해오던 포용정책이 아닌 압박정책으로 전환되는 시기였다. 특히 같은 해 7월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건으로 남북관계의 경색은 불가피했고 대북사업도 평탄치 못했다. 그러나 다행스러웠던 점은 새로운 정부 출범 첫해는 새로운 정책이 추진되기 전, 이전 정부의 정책이 유지되는 기간으로 만경대어린이종합병원은 큰 차질 없이 완공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빨리 사업을 추진하지 못했던 다른 단체들은 이후 사업이 완전히 중단된 경우들이 많았다. 문제는 그다음 해부터 본격화됐다. 병원 건물을 완공하고 가구를 비롯한 병원 집기류와 의료장비, 의료용 소모품, 의약품 등이 순차적으로 북송되어야 했으나 2009년 5월 2차 핵실험으로 인해 의료용 소모품과 의약품을 제외한 건축 물자와 집기류, 의료장비 등의 물자 반출이 전면 불허된 것이다. 민간단체들은 10여 년간 이어온 인도적 지원의 역사가 한순간에 변화될 수 있음에 당황했다. 그러나 그러한 와중에도 10년간 맺은 신뢰가 깨지지 않도록 다양한 활동을 전개했다. 우선, 물자 승인이 가능한 의료용 소모품과 의약품을 먼저 북송하고 언제든 의료장비를 북송할 수 있도록 물자를 구매해 인천항 창고에 보관했다. 결국 2009년 말 남측 정부가 인천항 창고에 물건을 보관하고 있던 몇 개 단체의 물자반출을 승인했고, 만경대 어린이 종합병원에 소아과, 산부인과, 내과 등의 의료장비를 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당국 간 경색은 심해졌고, 2010년 3월 천안함 사태로 취해진 5·24 조치로 평양으로는 어떠한 물자도 북송할 수 없었다.
2013년 박근혜 정부의 집권이 시작되었다. 많은 사람들은 같은 보수정부이지만 대북 정책에서는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견했다. 힘든 5년을 겪은 민간단체들 은 기대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2013년 북측의 3차 핵실험이 단행되었지만, 지원본부는 8월에 방북 승 인을 받아 3년 3개월 만에 평양의 만경대 어린이 종합병원을 방문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희망의 시기는 오래 가지 못했다. 2014년 3월 박근혜 정부가 발표한 대북 정책인 드레스덴 선언을 북측은 흡수통일 정책이라고 일갈하며 반발했다. 4월에는 남측 민간단체들에 서신을 보내 인도적 지원이 불순한 정치적 목적에 농락되고 있다며 인도적 지원 물자를 받지 않겠다고 통보했다. 이러한 가운데 2015년 12월 지원본부는 2007년의 합의서에 약속한 초음파, 내시경, 구급차 등을 승인받아 만경대어린이종합병원에 북송하고 이를 마지막으로 사업을 완료했다. 남측 정부가 그동안 승인하지 않 았던 의료장비와 구급차를 2015년에 북송한 것은 북측의 반응을 보기위한 조치였다. 그러나 2016년 2월 갑작스럽게 개성공단이 폐쇄돼 북측의 반응을 보기도 전에 10여 년간 어렵게 명맥을 유지하던 남북교류는 완전히 중단됐다.
지원본부는 대북사업이 정상적으로 추진되지 않자 2011년부터 연구위원회를 구성해 북측의 보건의료 현실을 이해하기 위한 연구사업을 추진했다. 2012 년 이를 확대 개편해 ‘남북보건의료협력센터’를 개설했다. 센터에서는 연구의 일환으로 북측 노동당 기관지인 『로동신문』을 토대로 2012년부터 매해 『북한 보건 의료 연차 보고서』를 발행하고 있다. 또한 남측 보건의료인들을 대상으로 북측의 보건의료 체계와 현실 등 을 함께 논의하고 공부하는 월례 세미나도 진행했다. 더욱 활발해질 남북의 교류협력을 꿈꾸며 연구사업에 매진하던 시간이었다. 그러던 중 2016년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되고 포용정책 계승을 천명한 문재인 정부가 탄생했다.
도움과 지원 마감하고 협력과 공존으로
2017년 1월 중국 심양에서 만난 북측 사업 담당자는 그동안 북측이 이룬 많은 변화와 발전에 대해 언급하며 그 변화 기조와 환경에 맞게 남북 모두가 상생, 공영할 수 있는 사업을 전개할 것을 주장했다. 하지만 2017년 북측은 핵무력을 완성하기 위한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에 매진했고 남북교류·협력의 시대는 도래할 수 없었다. 2018년 1월 1일 북측 신년사가 발표되면서부터 한반도의 정세가 급격히 변했다. 지원본부는 2015년 이후 3년 만에 물자 북송을 추진하였고, 5년 3개월 만에 평양에 방문했다. 북측은 인도적 지원 물자를 받지 않겠다던 2014년 기조를 유지하며 남북 모두에게 이익이 돌아갈 수 있는 교류협력을 추진할 것을 명확히 했다. 북측의 한 인사는 그동안의 교류협력은 북측에 무엇이 좋은가를 설명하며 사업을 추진했다면 향후에는 남측에도 이 사업이 왜 필요하고 어떤 이익이 되는가를 설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남측의 인도적 지원으로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이라는 어려움을 극복해온 것은 사실이지만 자신들의 어려움이 부각되고 이것이 정치적으로 활용되는 상황을 사전에 중단시키겠다는 의지가 명확했다. 또한 김정은 위원장 집권 이후 경제적 상황이 호전돼 소소한 인도적 물자를 받지 않아도 큰 문제가 없다는 판단과, 궁극적인 경제 회복을 위해서는 인도적 지원을 넘어 경협을 추진해야 한다는 현실적 이유가 작용한 결정이라고 할 수 있다. 더불어 북·미 핵협상이 장기화됨에 따라 인민들에게 자력갱생과 주체를 강조하는 상황에서 누구에게든 가질 수 있는 의존심을 사전에 차단할 필요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2019년 현재, 다시 남북의 교류협력 사업은 중단된 상태다. 작년부터 이어진 상황들은 향후 남북교류·협력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본질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 2018년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 등을 통해 분단 70년 만에 정전체제에서 평화체제로의 전환이 공론화되었다. 남북의 평화적인 공생공영이라는 역사의 큰 흐름은 멈출 수 없으며 중단되어서도 안 된다. 지원본부는 2017년 20주년을 맞아 ‘남북보건의료협력 선언문’을 발표했다. 이는 20년의 교류협력 역사를 통해 향후 나아갈 바를 제시한 것이다.
“지원본부는 ‘도움과 지원’의 시절을 마감하고 다시 긴 호흡으로 ‘협력과 공존’의 남북 통일시대를 대비하며 아래와 같이 선언합니다. 하나, 남북 주민들이 건강하게 공존할 수 있는 한반도 평화구축을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둘, 남북 주민들의 건강권 확보를 위해 통일시대 보건의료제도를 지속적으로 고민하고 대안을 찾을 것입니다. 셋, 보건의료인뿐만 아니라 다양한 시민들과 함께 남북교류협력사업을 전개할 것입니다….”
2019년 하반기에 시작할 남북 보건의료 교류협력을 통해 누가 더 못 살고, 후진적인가를 드러내는 교류협력이 아닌 누가 더 주민들의 건강권 확보에 기여했는지를 경쟁할 수 있길 바란다. 또한 한반도에서 살아가는 모든사람들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보건의료제도와 정책이 시행되고 있음을 자랑하는 시대가 되길 기대해본다.
어린이의약품지원본부 사무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