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산책

군사지역에서 서핑 천국으로…
심신을 다스리는 양양 여행
군사지역에서 서핑 천국으로… 심신을 다스리는 양양 여행

영동고속도로 남양양 나들목은 양양 여행의 기점이다. 한계령이나 미시령, 서울양양고속도로를 탄다면 코스에 따라 종착지가 되기도 한다. 길 선택은 여행자의 마음이다. 지난 봄 막대한 피해를 입혔던 산불의 아픈 생채기를 딛고 강원도 관광1번지로 거듭나고 있는 양양으로 떠나본다.

남양양 나들목에서 7번 국도를 따라 천천히 올라간다. 오른쪽으로 펼쳐지는 쪽빛 바다는 언제나 그랬듯이 한 폭의 풍경화다.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와 푸른 솔숲, 갈매기들의 날갯짓이 활기차다. 군 경계 철책이 쳐진 해안길은 지경리-남애리-광진리-인구리-죽도리 쪽으로 쭉 이어진다. 철책으로 막혀 있는 바다 풍경이 썩 달갑지 않은 것은 남북 화해 무드와 어울리지 않기 때문일까? ‘경고 군사작전지역 접근금지’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보니 더욱 그런 마음이 든다. 하지만 어쩌랴. 이게 분단의 현실인 것을.

관광객이 몰려드는 곳이라 남애리 갯마을 해변 주민들의 불편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네들은 남은 철책을 철거해 사람들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강원도 환동해본부에 의하면 동해안 6개 시·군 해안에 설치된 군 경계 철책은 총 183.6㎞에 이른다고 한다. 이 중 2017년까지 64.7㎞가 철거됐고 올 연말까지는 추가로 27.3㎞를 철거해 주민들의 불편을 어느 정도 해소할 예정이라 한다. 일각에서는 안보나 역사적 가치를 이유로 보존해야 한다는 의견도 내놓는다. 철책이 생활에 불편을 초래할 순 있지만, 아직 북한과의 관계가 안심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닌 만큼 보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철책이 쳐진 아늑한 갯마을

그렇게 철책을 바라보며 아쉬운 대로 자연을 벗 삼아 북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우리나라 3대 미항의 하나인 남애항에 이른다. 1리에서 4리까지 4개 마을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전형적인 어촌이다. 항아리처럼 생긴 포구를 빙 둘러가며 크고 작은 갯바위가 늘어서 있다. 갯바위에 걸터앉아 바다낚시를 하는 사람들 주위로는 갈매기가 원을 그리며 날아다닌다. 갯바위와 파도, 방파제 끝에 서 있는 두 개의 등대를 카메라 렌즈로 잡아보았다. 보기 드문 절묘한 풍경이다. 아침녘에 가야 더 활기찬 남애항 풍경을 볼 수 있다.

위판장에 나온 팔딱팔딱 몸을 뒤채는 오징어, 문어, 꽁치, 임연수, 넙치, 놀래미, 가자미가 길손을 맞는다. 남애항에서 가장 먼저 하루를 여는 이들은 정치망 배를 타는 어부들이다. 새벽 4시쯤이면 집에서 나와 작업선 시동을 걸고 망망대해로 향한다.

남애항에서 7번 국도를 따라 북쪽으로 5분쯤 가면 언덕배기 밑에 휴휴암(休休庵)이라는 바닷가 암자가 있다.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여 전망이 뛰어나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일반인들이 잘 모르는 한적한 곳이었으나, 바닷물이 들고 나는 너른 암반에 관세음보살이 누워 있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주목받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양양의 명소가 됐다. 암자에서 내려다보면 거대한 바위덩어리가 마치 누워 있는 관세음보살처럼 보인다. 암자 옆으로 난 길을 따라 아래쪽으로 내려가면 야릇하게 생긴 바위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바위는 저마다 이름을 달고 있다. 발가락 바위, 손가락 바위, 발바닥 바위, 여의주 바위, 태아 바위, 장수 바위, 거북 바위, 달마 바위…. 뭔가 특별한 의미가 서려 있을 법한 이 바위들이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서핑장과 오토캠핑장이 있는 죽도해변은 서퍼들이 즐겨 찾는 서핑의 메카다. 이곳 죽도 앞바다를 비롯해 인구, 기사문 바다는 서퍼들에게 천국으로 통한다. 이들 지역에는 자연스럽게 서핑숍이 잇따라 문을 열었고 조형물이 어우러진 쉼터와 포토존, 서핑 테마거리, 선녀탕, 부채바위, 신선바위가 있는 죽도정 바다 둘레길, 프리마켓을 포함한 볼파크 공원 등 다양한 편의시설이 들어섰다. 높이 53m의 섬 죽도 전망대에 오르면 좌우로 죽도해변과 인구해변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일출 감상 명소로도 그만이다.

죽도해변에서 10분 거리, 하조대에 못미쳐 기사문항에 들러 모래밭을 거닐어 보는 것도 좋다. 모래를 밟으면 눈을 밟을 때처럼 ‘뽀드득’ 소리가 나는데, 이곳의 자랑거리인 ‘명사(鳴沙)’는 여기서 유래한 것이다. 하조대란 이름은 조선의 개국 공신인 하륜과 조준이 머물던 곳으로 두 사람의 성을 따서 ‘하조대’라 지었다고 한다. 갈매기가 끼룩대는 하조대 해변은 요즘 초가을 빛이 완연하다. 하늘은 더없이 푸르고 밀려오는 파도와 우뚝 솟은 기암절벽은 해송과 어우러져 절경을 빚고 있다. 해안 절벽에는 하얀 등대가 서 있다. 등대 앞 절벽에서 바라보는 코발트색 동해. 아무리 감정이 무딘 사람에게서라도 한 마디 감탄사가 새어 나올 법하다.

하조대에서 북쪽으로 조금 더 올라가면 수산 사거리. 여기서 우회전해 15분 남짓 달리면 요트와 소형 선박들이 정박한 수산항이 나온다. 수산(水山)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아득히 펼쳐진 동해가 앞에 있고 뒤로는 나지막한 산이 병풍을 두른 듯 둘러싸고 있는 아름다운 포구다. 길게 이어진 방파제는 해안 절경을 즐기기에 안성맞춤. 주말이면 각지에서 낚시꾼들이 몰려들어 진풍경을 연출한다.

짙푸른 동해바다가 펼쳐진 관동팔경의 절경

양양읍내를 지나 속초 방면으로 10분쯤 가면 낭만 넘치는 낙산해변이 나온다. 우리나라 3대 관음기도 도량 중의 하나로 유명한 낙산사가 있는 곳이다. 671년(신라 문무왕 11) 의상대사가 세운 낙산사는 몇 차례 중건을 거듭했으나 6·25전쟁으로 소실됐으며, 지금의 건물은 1953년에 다시 창건한 것이다. 2005년 양양해안을 집어삼켰던 산불로 소실되었던 건물은 복원이다 이뤄져 본래 모습을 되찾았다. 절 들머리 해안 절벽에 우뚝 선 의상대(현재 보수 중)는 일찍이 관동팔경(關東八景) 중의 하나로 꼽혔다. 앞으로는 짙푸른 동해바다가, 오른쪽 절벽 아래로는 낙산해수욕장이 펼쳐져 있으며 이곳에서 바라보는 일출이 환상적이다. 의상대에서 북쪽으로 난 길을 따라 끝까지 가면 낙산사에서 수도하던 의상대사가 수정 염주와 여의주를 얻었다는 홍련암이 반긴다. 해안 석굴 위에 지어진 암자 마룻바닥에는 어른 주먹 크기의 구멍이 하나 뚫려 있는데, 바위 사이로 파도가 출렁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낙산사에서 속초 방면으로 올라가다 설악산 쪽으로 접어들어 쭉 올라가면 진전사 터가 나온다. 둔전계곡을 끼고 올라가는 이 길은 시골마을을 여러 개 거쳐 가야 한다. 둔전계곡은 설악산에서 발원해 둔전리를 거쳐 동해로 흘러드는 맑은 물줄기로, 계곡 끝머리 둔전저수지에는 산천어, 은어 같은 각종 민물고기들이 서식하고 있다. 자취 없이 사라진 거개의 절터가 그렇듯이 진전사지도 황량하기 그지없다. 둔전계곡에서 내려오면 양양의 끝자락인 설악해변-정암해변-물치항으로 이어진다. 더위를 피해 설악해변에 잠시 서서 저 멀리 등대 2개가 서 있는 물치항을 바라본다. 한 폭의 수채화처럼 아름다운 모습에 넋을 잃는다.

김초록
문화답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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