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칼럼

광장의 정치, 시민의 힘

오늘도 광화문은 소란스럽다. 서울 중심부의 그 공간은 광장 정치의 상징이 된 지 오래다. 2016-2017년 촛불집회에서는 6개월 동안 총 23차례에 걸쳐 1,700 만여 명에 이르는 시민들이 그곳에 모인 바 있다. 이것만이 아니다. 촛불집회에 대항해 2017년 초반부터 본격적으로 정치활동을 시작한 일명 ‘태극기’ 집회에도 수백만이 참여하고 있으며, 지금까지도 그 세가 줄어들지 않고 있다. 이 정도면 어떤 정치적 입장에 있건 간에 한국인이라면 한 번쯤은 광화문에서 구호를 외쳤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광장 정치가 활발하다는 것은 긍정적인 일이다. 광장이라는 공간에서 시민들이 자유로운 의사를 표현 하는 것으로 대의민주주의의 맹점을 보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광장 정치를 통해 시민의 힘으로 세상을 바꿔본 몇 안 되는 국가 중에 하나가 바로 한국이다. 자랑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최근 광화문 광장의 상황을 보면 다소 걱정스럽기도 하다. 시민들의 집회가 많아서가 아니다. 분 단적인 의제와 시위에서 사용하는 폭력적인 언어와 몸짓 때문이다. 특히 한반도 평화를 둘러싼 주변국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히고, 비핵화 프로세스 또한 교착상태에 봉착하게 되면서 극단적인 목소리가 광장을 점거하기에 이르렀다.

이는 비단 한국만의 상황은 아닐 것이다. 세계 곳곳에서 극우 세력은 맹렬한 속도로 부상하고 있으며, 그만큼 정치의 양극화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이주자, 난민, 복지제도, 세대 등을 두고 편을 갈라 싸운다. 자 본만을 추종해온 세계가 더이상 사람들에게 살만한 곳이 아니게 되면서, 극단적인 대립과 적대의 정치가 등장한 것이다. 사회 근본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없 을 때 정치는 언제나 시민의 눈을 가려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시민을 호도하며 극단으로 몰아넣음으로써, 누구의 권력이 유지되는지를 찬찬히 따져볼 일이다.

광장 정치의 핵심은 소통에 있다. 가려진 목소리로 말하는 데 있고, 듣지 못한 목소리를 듣는 데 있다. 모두가 힘겨운 일상을 살아가는 소시민이라는 것을 확인하며 연대하는 데 있다. 이런 측면에서 정치의 양극화가 가시화되는 곳도 광장이지만, 동시에 그것에 대항 할 수 있는 힘 또한 그곳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제라도 진영을 나눠 소리치는 것이 아니라, 손을 내밀어 이야기를 시작했으면 한다.

김성경 김성경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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