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꿈꾸다 │ 또 다른 시선

“한국이 좋아, 한국사람이 됐어요” 구잘 투르수노바

다른 나라 사람이란 뜻을 가지고 있는 우리말 ‘외국인’. 170cm의 늘씬한 키에 동서양의 매력이 공존하는 우즈베키스탄 출신의 미녀 방송인 구잘 투르수노바(29)는 겉으로 보기엔 영락없는 ‘외국인’이 맞다. 하지만 한국생활 10년 차, 한국말을 못하는 척 하는 것이 더 어렵다는 그녀는 보면 볼수록, 알면 알수록 우리가 아는 외국인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알고 보니 이미 국적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귀화했단다. 한국이 좋아, 한국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친구 따라 강남이 아닌 한국 왔어요!

KBS 인기예능프로그램 ‘미녀들의 수다’를 통해 ‘우즈벡의 김태희’란 애칭으로 불릴 만큼 대중적인 인기를 얻은 구잘은 이후 ‘황금물고기’, ‘옥탑방 왕세자’ 등의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연기자로서 변신을 꾀했으며, 최근에는 케이블드라마 ‘황금거탑’에 출연 중이다. 연세대학당과 서울대어학당을 거쳐 고려대학교에서 언어학을 전공한 재원인 그녀의 한국어 실력은 그야말로 ‘흠’ 잡을 데가 없을 정도다. 드라마 '황금거탑'에 출연 중인 구잘물론 그녀가 처음부터 한국어에 능숙했던 것은 아니다. 사실 처음 한국행을 택한 이유도 ‘친구 따라 강남’ 온 격이었다.

“우즈벡에 고려인들이 많이 산다는 거 아시죠? 당연히 고려인들을 만날 일도 많구요. 처음에 한국에 오게 된 이유도 친한 고려인 언니 덕분이었어요.
언니가 한국 유학을 같이 가겠냐고 해서 덥썩 오게 된거죠. 벌써 10년 전인데 당시만 해도 한국이라면 삼성이나 LG같은 회사만 생각했어요. 요새는 한류 열풍이 불어서 한국드라마도 많이 본다고 하더라고요.”

한국 음식 OK, 한국 문화도 OK

그저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 문화를 체험하겠단 생각에 시작된 한국 생활이 쉽지만은 않았지만 특유의 긍정적이고 밝은 성격으로 적응할 수 있었다. 하물며 외국인 유학생들이 통과의례처럼 거친다는 음식으로 인한 향수병을 앓은 적도 없다. 처음에는 냄새 때문에 절대 못 먹을 거라고 생각했던 된장찌개가 몇 달 만에 ‘맛있게’ 느껴질 만큼 평범하게 한국 생활 자체를 즐겼단다. 문화 역시 한국과 우즈벡은 비슷한 부분이 많아 크게 이질감을 느낀 적은 없다고.

“한국과 닮은 점이 많아요. 우즈벡은 이슬람국가라 좀 많이 보수적인데 한국도 원래 보수적인 문화잖아요? 또 어른을 공경하고 결혼 후에도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부분도 같고요. 다만 한국처럼 ‘빨리빨리’란 건 없어요. 좀 느긋한 편이죠.”

사방이 '외국인', 신기했던 '미수다'의 추억

그렇게 한국생활에 익숙해지던 어느 날 외국인 여성들이 패널로 나오는 예능프로그램 ‘미녀들의 수다’(이하 미수다)에 출연을 권유 받으면서 평범한 유학생의 일상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방송에 출연할 때는 이미 한국 생활에 익숙해 있던 때라서 종종 내가 외국 사람이란 사실을 잊을 정도였어요. 주변에도 한국친구들이 훨씬 많았거든요. 심지어 ‘미수다’에 출연했는데 다국적 출신의 친구들 사이에 앉아 있으니, 마치 외국인들을 사이에 앉아 있는 기분마저 들었어요. 신기하기도 하고 재밌기도 했고요.” 구잘 투르수노바 ‘미수다’ 출연 당시 남성 팬들의 폭발적인 관심을 받으면서도 자신을 ‘평범한 얼굴’이라고 발언해 많은 여성들의 지탄 아닌 지탄을 받은 바 있지만, 지금도 그 생각은 같단다. 다만 한국 사람들이 자신을 예쁘게 봐준다는 사실은 감사한 일이라고. 덕분에 연기라는 새로운 일에도 도전해 볼 수 있었단다. 물론 외모만으로 성사 된 일은 아니다.

그녀의 스크린 데뷔작인 ‘결혼전야’의 홍지영 감독은 그녀를 ‘똑똑하고 욕심 많은 가능성 있는 배우’라고 칭찬했으며, 함께 출연한 배우 윤여정은 연기선생을 자처하기도 했다. 그러니 예쁘기만 한 배우란 선입견은 조금 억울한 부분도 있지만 조급하게 굴지는 않겠단다. 그저 한국이 자신에게 준 많은 가능성과 기회에 고맙기만 하다고.

'내 나라'가 아닌 '우리나라'

좋은사람들이 사는 고마운 나라 한국. 결국 그녀는 귀화를 결심하게 됐다. 단순히 방송활동만을 염두에 둔 결정은 아니었다. 어느새 한국을 사랑해서 한국사람이 되고 싶어졌던 것.
“한국에 오래 살아서 정도 많이 들었고요. 무엇보다 한국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한국사람들은 ‘나의 나라’가 아니라 ‘우리나라’라고 표현하잖아요. 엄마도 우리엄마, 집도 우리 집. 처음에는 ‘아니 우리 엄마를 왜 공유해야 하지?’란 생각을 했는데 차츰 그 단어가 좋아졌어요. 한 가족 같은 느낌이랄까. 그래서 나도 우리나라, 우리나라사람이란 말을 쓰고 싶어졌던 것 같아요.”

결국 2012년 한국사람들도 헷갈려 한다는 필기시험과 면접을 거쳐 정식으로 대한민국 국민이 되었다. 당연히 주민등록증도 생겼다. 다만 이국적인 외모로 인해 연기하는 배역은 외국인 역이 대부분이다. 그래도 ‘한국말 잘 하는’ 외국인이라서 다행이란다.

한국어 못하는 '척' 보다 잘하는 역할이 오히려 쉬워

구잘 투르수노바“첫 영화를 촬영할 때는 한국어를 못하는 역할이라 그게 더 어려웠어요. 어색하게 보이지 않도록 못하는 척을 열심히 연기했죠. 근데 요즘은 오히려 한국말을 너~무 잘하는 역할이라 어렵기도 해요. 하하”

그도 그럴 것이 요즘 케이블드라마 ‘황금거탑’에서 농촌에 시집 온 외국인 아내 역으로 출연 중인데 ‘한국어 능력시험 1등급에 사자성어까지 능통한’ 역할이란다. 한국어는 자신 있지만 한자와 사자성어나 속담만큼은 정말 난공불락이었다. 결국 ‘친구 찬스’와 인터넷 검색 등을 통해 연습하고 있다고.

“제 대사에 ‘여름 감기는 개도 안 걸린다’ 같은 속담이나 ‘비명횡사’같은 말이 자주 나오거든요. 근데 처음에는 무슨 뜻인지 전혀 몰랐어요. 결국 한국친구한테 도움을 요청했는데 한국사람들도 무슨 뜻인지 모를 거라고 하더라고요. 그래도 주변에서 도와줘서 즐겁게 일하고 있어요.” 농촌생활을 담은 드라마답게 주 촬영지 역시 농촌지역이라 한국의 농촌생활을 간접 체험할 수 있다는 것도, 촬영장을 오가는 시간마저 여행가는 것처럼 즐겁기만 하단다.

통일되면 북한도 '우리나라', 여행가보고 싶어요

그렇다면 이제는 진짜 ‘한국사람’이 된 구잘이 생각하는 통일은 어떤 모습일까?
“솔직히 말하자면 평소에는 진지하게 고민한 적은 별로 없었어요. 주변에서도 통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일이 별로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된다면 좋을 것 같아요. ‘우리’ 나라가 되는 거니까요. 또 통일이 된다면 책이나 방송을 통해서만 보던 백두산이나 금강산을 꼭 가보고 싶어요.” 또 유독 한국음식을 좋아하기 때문에 평양이나 개성 지방에서 북한 토속음식도 먹어보고 싶다고. 벌써부터 북한에는 어떤 음식과 문화가 있을지 궁금하단다.

조급하게 욕심내기보다 기회가 닿는 한 자신의 역량을 마음껏 발산하고 싶다는 구잘. 언젠가는 북한을 시작으로 전 세계 여행을 하고 싶다는 그녀의 ‘즐거운 한국생활’은 앞으로도 계속된다. 쭈~욱.

<글. 권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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