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 행복한 통일

Webzine Vol.41 | 20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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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통일 | 느낌 있는 여행

이 계절의 청명함 강원도 화천

신기루처럼 뿌옇게 가라앉은 창밖 풍경을 바라볼 때면 이름 한 줄 남기고 사라져간 수많은 것들처럼 이 계절 역시 ‘멸종’될 것만 같았다. 또각또각 냉정한 얼굴로 제 갈 길을 가는 시곗바늘이 없었다면 도통 하루의 어디쯤 서있는 것인지 조차 가늠조차 어려웠던 날, 부러 깊고 험해 이름조차 생소한 두메마을로 발길을 옮긴다. 그곳에서 만난, 마침내 이 계절. 이젠 이 땅에서 사라진 줄만 알았던 청명한 날들이 옹기종기 머물러있던 강원도 화천의 초여름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길고 느린 숨쉬기를 위한 예행연습

강원도에서도 두메산골로 손꼽히는 비수구미는 깊은 산 중턱에 자리한 ‘섬’ 같은 마을이다. 마을로 향하는 길이 좁은 외길인 데다 긴 장마가 시작되면 파로호의 물이 불어, 그 험한 길마저 물에 잠기기 때문이다. 휴대폰도 인터넷도 쉽게 제 능력을 발휘하기 어려울 만큼 깊은 산중, 하지만 장마철에는 보트를 이용해야만 겨우 오갈 수 있다는 독특한 지역적 특성 덕분에 이 마을에는 자연스럽게 ‘오지’란 단어가 따라붙는다. 물어물어 찾아오는 이를 제외한다면 분명 하루 종일 고요한 침묵에 잠겨있을 마을을 운동화 끈까지 다부지게 여미고 찾은 이유는 단 하나였다. 길고 느린 숨쉬기가 필요했다.

비수구미

제법 길게 굽이굽이 이어진 길에 지루해질 때쯤 해산터널을 끝으로 비수구미 마을 주변에 도착하게 된다. 최북단, 최고봉, 최장터널이라 써진 표지판의 글귀를 설렁설렁 읽으며, 그 주변으로 이어진 트래킹을 눈으로 둘러본다. 6.5km 길이의 이곳의 트레킹 코스는 제법 걸을 줄 안다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입소문 난 명소다. 빽빽하게 우거진 숲 사이로 이어진 작은 오솔길은 불쑥 야생동물이 등장해도 하나 여상하지 않을 듯 야생의 생생함을 간직하고 있다. 실제로 이 지역은 조선시대 왕궁 건축용으로 이용하기 위해 나무를 보호하던 곳으로 지금도 휴식년제를 이용해 출입을 제한하고 있다. 다행히 올해는 오래 보존된 야생숲길을 걸을 수 있다.

이름마저 낯선 산 속의 그 섬, ‘비수구미 마을’

천리포수목원길게 기지개를 펴며 한숨 돌렸다면, 본격적으로 비수구미 마을로 발길을 옮겨본다. 해산터널을 기준으로 비수구미 마을로 들어가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고지대인 해산령쉼터까지 차로 이동해 내리막 산길을 걷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아흔아홉의 굽잇길을 달려 파로호 선착장에서 보트를 타거나 호수를 옆구리에 끼고 걸어가는 방법이다. 비수구미 마을의 자랑거리 중 하나인 비수구미 폭포를 감상하며 걷고 싶다면 내리막길을 이용하는 것이 좋으나, 계절과 날씨에 따라 통행이 제한 될 수 있으므로, 미리 확인해보는 것이 좋다.

편치 않을 여행을 각오하며 걷기 시작한 길. 하지만 비장한 각오가 무색할 만큼 산등성이 옆을 끼고 반짝이는 북한강의 윤슬은 한없이 황홀했으며, 평탄하게 이어진 길이 지루하다 느낄 때 즘엔 너볏너볏 팔랑거리는 바람의 뒤꽁무니를 따라 청푸른 계절이 펼쳐졌다. 계절이 바뀔 때면 야외로 나가고 싶어 눈치 없이 간지러운 발뒤꿈치에 힘을 주어 꼭꼭 흙길을 걷는다. 가슴이 부풀어 오르도록 숨을 내쉬며 도착한 마을은 과연 한적했다.

천리포수목원사실 겨우 한 손에 꼽을만한 주민이 모여 사는 마을은 남다른 볼거리가 숨겨진 곳은 아니다. 그저 헐떡이는 공기청정기에 의지하지 않고도 숨을 쉴 수 있고, 빤히 속이 비치는 계곡물에 손끝을 담가볼 수 있으며, 주인장이 직접 산에 올라 따왔다는 산나물로 차려낸 밥상을 받아볼 수 있는 정도. 그럼에도 알음알음 이곳을 찾는 낯선 얼굴의 방문객이 늘어나는 것은 어느새 자연 본연의 모습이 특별해질 정도의 세상 속에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적어도 이곳에서만큼은 이른 아침 창문을 여는 것을 망설이진 않아도 될 테니 말이다.

무엇이든 특별하지 않아, 더 특별한 비수구미 마을의 단점을 딱 하나만 손꼽자면, 쉽게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없이 게을러지는 몸과 마음을 다독여, 다시 길을 나선다.

그날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 ‘파로호’와 ‘평화의 댐’

청정한 자연경관으로 인해 언뜻 연상하기 어렵지만, 화천은 강원도에서도 전쟁의 상흔이 깊게 남아있는 지역이다. 비수구미 마을과 지척인 파로호와 그 파로호 상류의 평화의 댐은 그 전쟁의 흔적을 가장 직접적으로 마주할 수 있는 곳이다.

‘파로호’와 ‘평화의 댐’

부지런한 강태공이 낚싯대를 드리운 사이 멀리 산안개와 아른아른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여름날의 호수는 그야말로 낭만적인 풍경을 자랑한다. 호수의 이름은 파로호로 본래 북한강 협곡을 막아 축조한 화천댐으로 인해 생겨난 인공호수다. 본래 화천호로 불렸던 호수가 ‘오랑캐를 무찌른 호수’란 뜻의 파로호란 이름을 갖게 된 것은 한국전쟁 당시 수만 명의 북한군과 중공군이 이곳에 수장되면서부터다. 8.15 광복 직후엔 38선으로 막혀있었던 이 주변 지역을 거닐 수 있는 것은 당시 전쟁의 승리로 이 지역을 되찾게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화천과 인접 지역인 양구에 걸쳐 있을 만큼 넓은 면적을 자랑하는 호수가 온통 붉게 물들었을 만큼 치열했다는 그날의 전투는 아직도 이곳 주민들이 두고두고 이야기하는 상처이자, 아픔이다. 승리한 전투조차 전쟁의 참혹한 상흔을 가릴 수는 없다는 사실을 알기에 우리는 오늘도 하나가 되기를 소망하는지도 모른다. 호수 위쪽으로는 북한의 임남댐의 수공을 방어하기 위해 축조된 평화의 댐이 있어 함께 둘러보면 좋다.

비목공원

이 땅이 다시 아프지 말아야 할 이유, ‘비목공원’

‘초연이 쓸고 간 깊은 계곡 양지 녘에 비바람 긴 세월로 이름 모를 이름 모를 비목이여’ 교과과정에도 실려 친숙한 가곡, ‘비목’은 한국전쟁 당시 묘비명 하나 쓰지 못한 채 눈을 감은 청춘들을 위한 진혼곡이다. 장교로 군복무를 했다는 작사가는 외진 수풀 사이 돌무덤과 녹슨 철모가 놓여 있는 모습에 곡을 썼는데 그 장소가 바로 비목공원이다. 두 번 다시 이 땅에 젊은 청춘들이 이름 한 줄 남기지 못한 채 사그라들지 않도록 평화와 통일에 대해 이야기해야 할 때다.

<글.권혜리/사진.김규성>

※ 웹진 <e-행복한통일>에 게재된 내용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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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호 전체 기사 보기 기사발행 : 2016-06-08 / 제4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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