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인터뷰

평화가 곧 서울의 경쟁력, 시민이 주도하는 서울-평양교류를 열겠습니다 “우리 스스로 남북관계 주도성 확보하며
통일의 구심력을 키워야 합니다”

통일 문제 전문가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이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에 임명됐다. 그는 어려운 시기에 무거운 직책을 맡게 된 소감을 ‘사명’이라는 말로 대신하며, 한반도 정세와 대북 정책에 대한 국민의 이해와 지지를 높이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또 국민의 힘을 바탕으로 우리가 주도성을 발휘할 때 통일의 구심력도 커진다며 남북관계의 적극적 개선과 협력도 강조했다.

Q│9월 1일 제19기 출범과 함께 수석부의장 직을 수행하고 계십니다. 처음 임명 소식을 들으셨을 때 어떠셨는지요?

그동안 대부분 정치를 하시는 분들이 수석부의장을 맡아 왔기 때문에 이 자리에 제가 임명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쉬운 상황이었으면 저를 보내지 않으셨을 겁니다. 국제 정세가 요동치고 남북관계는 막혀있고 북·미 협상은 진전이 없는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에 정치인보다는 전문가의 역할이 좀 더 필요하다고 판단하신 듯합니다. 군사정권 시대가 끝나고 민주 정부가 들어선 이후 남북의 접촉이 많아지면서 통일 문제를 둘러싼 우리 내부의 관심이 높아지고, 갈등도 커졌습니다. 이러한 남남갈등 문제를 잘 다독이면서 대북 정책에 대한 국민의 이해와 지지를 높이는 것이 제게 주어진 사명이 아닌가 합니다. 이와 함께 세계 곳곳에서 활동하는 자문위원들과 함께 북핵 문제, 남북관계에 대한 관련국의 여론을 우호적으로 만드는 공공외교를 잘 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남북관계의 주도권은 우리가 만드는 것입니다”

Q │ 현재 한반도 질서를 어떻게 보십니까?

통일 문제는 기본적으로 민족 내부 문제이지만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국제 문제의 성격도 가집니다. 민족 내부 문제가 60~70%라면 국제 문제는 30~40% 쯤 될 겁니다. 그런데 통일 문제에 대해 상당한 식견을 가진 분들도 민족 내부적으로 통일의 구심력을 키우는 것보다 국제 정세 속에서 우리의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그러나 일본, 중국, 러시아 등 주변국은 모두 통일의 구심력과는 거리가 먼 통일의 원심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주변 국가의 움직임을 무시하면 안 되지만, 정부는 그것에 휘둘리지 않으면서 정책을 추진해야 하고, 국민은 그것을 지지하고 밀어줘야 합니다.

그런데 통일의 원심력은 우리 내부에도 있습니다. 바로 분단 체제 하에서 구축된 기득권을 누려 온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남남갈등으로 나타납니다. 정부의 통일·대북 정책이 힘을 받으려면 이러한 남남갈등을 극복하면서 민족 내부의 구심력을 키워야합니다. 남북관계 주도권은 우리의 힘으로 만드는 겁니다. 강대국의 협조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한다는 식의 패배주의에 젖어서는 안 됩니다.

“지정학적 위치, 주변국의 협조보다 중요한 것은 결국 국민 의지입니다.
우리가 먼저 밀고 나가면서, 미국이나 중국 등 유관국의 이해관계를 파악하고 협조와 지지를
이끌어내야 합니다”

Q │ 통일의 구심력을 높이기 위해 남북관계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유엔 대북제재에 저촉되는 사업은 대개 현금이 들어 갑니다. 그런데 북한이 돈을 버는 방식은 다양합니다. 관광객도 유치하고 해외로 노동자도 보냅니다. 해킹 등 불법적인 방법도 동원됩니다. 압박과 제재가 북한에게 힘든 일이긴 하지만, 이것으로 굴복시키기는 힘듭니다. 오히려 북한은 경제적으로 압박을 받고 남북협력이 끊기니 해킹 같은 불법적인 방법을 동원하고 있어요. 돈이 북한에 들어가는 것이 불안하다면 돈이 아닌 물자를 보내는 것도 방법입니다. 예를 들어 4·27 선언에서 합의한 남북 철도·도로 연결 사업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한국전쟁 때 끊어진 철도 ·도로 구간은 이미 다 연결됐기 때문에 현대화만 하면 되는데, 작년 말 착공식 이후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철도 ·도로 연결 사업은 군사적으로 전용될 가능성이 낮습니다. 자재를 군사적으로 전용하려면 오히려 배보다 배꼽이 더 클 겁니다. 북한의 입장에서 보면 대부분의 경제특구가 경의선과 동해선 철도와 도로 인근에 자리 잡고 있어 특구개발과 경제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기도 하고요. 그래도 전용될 것이 불안하다면 우리가 직접 자재를 전달하고, 현장에서 제대로 사용하는지 확인하고, 미국이나 유엔이 직접 가서 확인하라고 하는 겁니다. 이렇게 적극적으로 끌고 나가야 해요.

“주변국의 협조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의 의지입니다”

Q │ 대북 정책 추진에서 중요한 것이 남남갈등을 줄이면서 지속성과 안정성을 확보하는 것입니다.

외교에서의 초당적 협력은 어렵지 않지만, 남북관계에서 초당적 협력을 기대하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외교는 국익 문제이지만 남북관계는 아직 적대적이기 때문입니다. 화해협력을 추진하다가도 사건이 터지면 단절되기 일쑤였어요. 남북대결의 역사가 긴 만큼 국민들의 인식도 다양합니다. 이것은 결국 이념 문제입니다. 편이 갈릴 수밖에 없는 남북문제에서 국민들의 완전한 지지를 바라는 것은 비현실적입니다. 물론 국민 전체가 합의하고 정권이 교체된다 해도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으면 좋겠지요. 독일은 그렇게 했어요. 정권이 교체된 이후에도 진보정부에서 추진하던 정책을 보수정부가 이어갔습니다. 그래서 결국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통일이 됐죠. 독일의 통일도 이념 문제였지만, 독일 국민들은 전 정부의 정책을 계속 밀어주었기 때문에 통일을 이룰 수 있었던 겁니다. 그런 부분이 우리에겐 부족한 것 같아 아쉽습니다.

Q │ 우리는 독일에 비해 교류가 적고, 주도적이지 않았던 면도 있습니다.

독일의 경우는 운이 좋았는데, 동유럽 경제가 어려움에 빠졌을 때 미국과 서유럽이 돕겠다고 해서 지원이 시작됐습니다. 그것이 1975년 헬싱키 프로세스입니다. 이것이 나중에 군비감축협상으로까지 발전됩니다. 우리도 국제사회의 도움을 받을 때가 있었어요. 지금은 미·중 무역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지정학적 위치, 주변국의 협조보다 중요한 것은 결국 국민의 의지입니다. 우리가 먼저 밀고 나가면서 미국이나 중국 등 유관국의 이해관계를 파악하고 협조와 지지를 이끌어내야 합니다. 대북 정책과 한반도 문제는 ‘선 남북, 후 주변’이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대북 정책과 한반도 문제의 핵심 부처인 통일부가 목소리를 크게 내야 해요. 내부에서는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이야기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라는 논리에 빠지면 아무 것도 못합니다.

19기 민주평통은 ‘변화’를 중심 과제로 삼고 청년과 여성의 구성 비율을 높이는 변화를 이뤘습니다. 이것이 활동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1910년 일본에 국권을 빼앗겼을 때 역사학자인 박은식 선생이 ‘나라를 되찾으려면 남자들만이 아니라 여성들도 깨어나 독립운동을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통일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국민 전체가 힘을 모으고 관심을 가지면서 추진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이번 19기 민주평통에서 여성 비율을 높인 것은 매우 잘한 일입니다. 여성과 청년의 비율이 높아지면서 훨씬 생동감 있게 일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합니다.

대통령께서 지난 광복절 경축사에서 “광복 100년이 되는 2045년까지는 One Korea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하셨는데, 앞으로 26년 남았습니다. 지금 14세인 소년·소녀가 26년 후면 사회의 중심이 됩니다. 한반도에 새로운 환경이 조성되고 남북관계가 변화했을 때 이들이 통일의 주도세력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상대적으로 여성은 아이와 대화하고 접촉하는 시간이 많습니다. 이러한 장점을 살려 전체의 40%를 차지하는 여성 자문위원들이 청소년 자녀들을 위한 평화통일 교육에 힘을 쏟아 주시면 어떨까 합니다.

여성과 청년을 포함하여 많은 국민이 통일 문제와 한반도 정책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높이고, 정책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도록 힘을 모으는 것도 필요합니다. 민주평통은 그러한 일의 중심에 서야 합니다. 남남갈등을 줄이고 국민적 합의를 높이면서 통일의 구심력을 키우는 일에 힘을 쏟아야 합니다.

“평화경제 구상과 한반도 정책이 실현되도록 힘을 보태겠습니다”

Q │ 수석부의장으로 19기 민주평통을 통해 어떤 일을 이루고 싶으십니까?

대통령께서 광복절 경축사에서 평화경제 구상을 내놓았어요. 평화경제 구상은 1차적으로 남북경제공동체를 만들자는 것이고 경제공동체를 발전시켜 나가면 남북연합 단계를 거쳐 마침내 통일, 즉 One Korea를 달성할 수 있다는 비전입니다. 그동안 군인출신 대통령들은 ‘안보가 곧 평화’라는 논리로 군사력 강화에 주력했지만, 문민정부는 경제협력을 통해서 한반도 평화 를 정착시키려고 했어요. 문재인 대통령의 평화경제 구상도 갑자기 나온 것이 아닙니다. 대선 후보 때부터 경제통합 구상을 가지고 있었고, 취임 후 제시한 한반도 신경제지도를 비롯하여 신북방·신남방 정책, 동북아철도공동체 구상도 평화경제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북핵 문제 악화와 동북아 정세가 복잡하게 돌아가는 상황에서 다자간 협력으로 역내 평화를 가져오고 그걸 다시 남북 간 평화경제의 디딤돌로 쓰려는 정책입니다. 이러한 정책이 국내외에서 힘을 받고 지속성을 가지고 추진될 수 있도록 19기 민주평통이 역할을 해야 합니다. 민주평통은 평화통일 관련 정책 구상들을 실현시킬 아이디어를 개발하고 자문하는 역할을 하는 곳인 만큼 이러한 구상이 공허한 것이 아니라 실현 가능한 것이고, 이 방향으로 가야만 통일이 될 수 있다는 흐름을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Q │ 자문위원과 국민에게 전하는 말씀 부탁드립니다.

‘1만 9,000명’이라는 숫자는 통일을 추진하는 데 있어서 대단한 힘이 될 수 있습니다. 1만 9,000명의 자문위원이 주변에 있는 사람 50~60명만 설득할 수 있다면 백만대군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열심히 공부하면서 주변 사람들의 이해와 참여를 높이는 데 앞장서 주십시오. 분단의 질서를 해체하고 평화번영의 새로운 한반도를 만드는 노력이 국민의 지지를 받아 순풍에 돛단배처럼 항해할 수 있도록 자문위원 한 분 한 분이 힘을 실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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