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3

신냉전 기회삼아, 안전보장 모색하는 북한 지난 6월 21일 방북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함께 5.1경기장을 찾아 집단체조와 예술공연을 관람했다. ⓒ연합 신냉전 기회삼아,
안전보장 모색하는 북한

2008년 국제 금융위기는 동북아 질서 재편에서 중요한 변곡점이었다. 속도와 위력면에서 ‘글로벌 역사상 최악’이란 평가를 받는다. 이후 10년, 정치적 이단아 트럼프의 등장은 세계 질서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이정표다. 소위 ‘스트롱맨’의 득세다. 트럼프, 아베, 보리스 존슨과 같은 새로운 스트롱맨의 연이은 등장. 그리고 푸틴과 시진핑이라는 기존의 강력한 지도자들이 세계 리더십의 전면에 나타나는 보기 드문 상황이 전개됐다.

2008년 금융위기는 서구 중산층의 붕괴, 신자유주의 속에서 노골화된 지역적·계층적 고립을 자극했다. 스트롱맨들은 추락한 이들 중산층의 정서와 빈곤의 틈을 치고 들어왔다. 이들은 자국우선주의에 입각한 보호무역과 관세장벽, 국경 및 인종적 봉쇄·차단, 고립주의를 내세웠다. 패권주의, 고립주의, 민족주의, 일방주의, 보호주의, 외국인 혐오 등의 분위기가 뒤엉키면서 극우 정파가 세를 불렸고 서구 온건 좌파의 몰락을 가져왔다. 안보 측면에서는 근본주의자들이 회귀했다. 이들은 전세계 경제적 이권 영역과 지정학적 갈등선을 건드리며 군비경쟁을 부추기고 무기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다.

동북아 신냉전 구도, 군비경쟁과 무기거래

한편 동북아에서는 중국의 경제적·군사적 부상, 미국의 견제와 봉쇄라는 ‘투키디데스의 함정’이 2000년대 들어 가시화돼 왔다. 2014년은 미·중 전략 경쟁 구도가 동북아 ‘신냉전’ 구도로 전선을 확장하는 결정적 해였다. 2014년 크림반도 병합과 돈바스 지역 분쟁이 도화선이 됐다. 미국을 주도로 한 국제사회의 대러시아 제재가 이뤄지면서 러시아는 중국과 손을 잡게 된다. 이때부터 러시아와 중국은 ‘동맹’ 단계로 들어서기 시작한다. ‘동맹’은 추상의 영역이 아니라 ‘실물 거래’의 영역이다.

2014년 러시아는 망설임 끝에 중국군에 S-400 지대공 미사일 체계와 Su-35 전투기를 판매하기로 한다. 미국의 아시아 MD망 구축에 대응한 것이지만, 이 무기 거래는 중·러 ‘동맹’을 알리는 서막이었다. 러시아가 개발한 ‘S-400(Triumph: 트리움프, 나토 제식명SA-X-21)’은 군사 전문가들 사이에서 기술 수준에 있어 세계 최고의 지상기반 대공 미사일 요격체계(GBI)로 평가받고 있다. 스웨덴의 한 유력 일간지는 ‘세계를 떨게 하는 러시아 10대 무기’ 중 하나로 S-400을 선정하며 국제 전력 균형에 영향을 미치는 대표적인 무기체계로 꼽은 바 있다.

S-400은 중·단거리 탄도미사일과 저고도로 비행하는 크루즈미사일, 전투기 및 전폭기 등을 가리지 않고 모두 요격할 수 있다. 최대 사거리 400㎞, 요격고도 30~185㎞, 속도 마하 14로 대출력 레이더를 이용해 최대 300개의 표적을 포착할 수 있으며, 한꺼번에 100개의 표적을 추적할 수 있고 24개의 표적을 동시에 공격할 수 있는 성능을 갖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군 PAC-3(요격고도 15㎞)에 비해 월등할 뿐만 아니라 사드보다 사거리 및 요격고도 범위가 넓다. 또한 S-400은 스텔스 탐지능력이 뛰어나 미군 B-2, F-117 폭격기는 물론 5세대기인 F-35 스텔스기 등 미군 전투기를 격추할 수 있는 ‘게임 체인저(Game Changer)’로 평가받는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미국의 토마호크 크루즈미사일(시속 885㎞)을 탐지해 요격할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으로서는 이를 대체할 차세대 초음속 크루즈 미사일 개발이 절실한 상황이다.

문제적 무기, S-400과 사드로 본 동북아 질서

중국은 2014년까지 러시아의 S-400 도입을 숙원사업으로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러시아는 전략 균형에 영향을 미치는 무기체계란 점에서 해외 판매에 신중했다. 2014년 5월 상하이에서 개최된 ‘아시아 교류 및 신뢰구축 회의(CICA)’에서 시진핑-푸틴 정상회담을 계기로 판매 논의가 급물살을 탔다. 당시 러시아는 크림반도 사태로 미국과 유럽의 경제제재에 직면해 있었고, 중국은 향후 30년간 4,000억 달러에 이르는 러시아 가스 수입 계약을 체결하면서 S-400 구입의 돌파구를 열었다. 이 계기로 러시아와 중국은 2016년 처음으로 미사일 방어 합동훈련도 진행했고, 이후에도 지속하고 있다.

지난 4월 26일 정상회담을 위해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극동연방대를 방문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러시아 수행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연합/조선중앙통신

중국의 S-400 도입은 미국의 입장에서는 중국과 미·일 동맹 사이의 전략적 균형을 일정 부분 역전시킬 수 있는 ‘사건’으로 볼 수 있다. 그것을 증명하듯 중·러 사이의 S-400 판매 합의 한 달 뒤인 2014년 6월 3일에 당시 주한미군사령관인 커티스 스캐퍼로티(Curtis Scaparrotti)가 갑작스럽게 사드 배치 논의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주한미군의 사드배치 논의는 바로 중국의 S-400 대공 미사일 요격체계 구입이 결정적이었다고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미국 국방부가 매년 의회에 제출하는 ‘중국 군사력 보고서’ 2016년판은 중국의 S-400 체계가 중거리 탄도미사일(MRBM) 요격에 적합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는 한반도는 물론, 대만해협, 남중국해 해역에 진입하는 미군, 일본, 대만의 항공기나 함정이 중국의 대공·방공 사정권에 들게 됨을 의미한다.

러시아와의 긴밀한 군사협력 속에서 중국은 소극적으로 유지했던 핵정책을 점차 공세적인 방어 논리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2016년 1월 중국은 로켓군과 전략지원군을 창설한다. 로켓군은 전략적인 핵·미사일 무기만을 전담하는 독립군종이다. 1966년 6월 소련의 전략로켓군을 본떠 만든 인민해방군 ‘제2포병 부대’를 ‘로켓군’으로 재창설한 것이다. 시진핑의 군사굴기를 보여주는 과감한 확장이다.

중국의 군사굴기와 경제적 확장은 러시아와의 ‘동맹’을 통해 탄력을 받고 있다. 2014년 이후 러시아는 남중국해에 대한 신중한 입장에서 벗어났고, 2016년 중국과 함께 합동해군 훈련을 실시했다. 2017년에는 중국과 러시아 해군이 수년간 NATO와 러시아가 갈등을 빚어 온 발트해에서 합동훈련을 실시했다. 한편 중국 기업들은 러시아의 에너지 자원에 접근할 기회가 증가했고, 중국-유럽을 잇는 기반 시설 건설 프로젝트를 위해 러시아를 활용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의 군사기술 교류도 활발해졌다.

북한의 기회 공간과 안전보장

동북아 군비경쟁 및 신냉전 구도는 북한에게 전략적 기회의 공간이다. 국력 열세와 고립을 지정학적 냉전 구도 속에서 만회하려는 전략의 차원에서 본다면, 동북아의 갈등과 긴장은 북한 정권 유지, 북·미 협상 구도에 유리한 측면이 있다. 최근 일련의 담화를 관통하는 북한 협상전략의 핵심은 ‘안전보장’이다. ‘안전 보장’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들을 동북아 전략 경쟁 구도 속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첫째, ‘안전보장’은 북한식 단계론, 비핵화 속도를 관철시키기 위한 핵심 카드로 볼 수 있다. 북한에게 안전보장은 자신의 제도를 위협하는 미국의 대북적대시 정책 철회다. 특히 최근 북한 외무성 미국담당 국장이 언급한 ‘제도안전’은 자주권과 제도를 위협하는 군사적, 외교적, 경제적 위협이 모두 해당된다. 동북아 군비경쟁 구도 속에서 보면, 대부분 미국이 단번에 들어주기 힘든 것이다. 그래서 북한은 단번에 철회할 수 없다면, 동시행동원칙에 따라 각자 한만큼만 상대에게 요구하는 협상안을 주장하고 있다. 결국 안전보장 요구를 통해 단계론, 비핵화 속도조절을 하겠다는 것이다.

둘째, ‘안전보장’은 북한식 비핵화 범주를 제시하는 카드일 수 있다. 최근 북한은 미국의 대량살상무기(WMD)의 동결과 폐기 요구에 대해 ‘무장해제’ 요구를 받아들인 적이 없다고 받아쳤다. 오히려 북·미가 서로 핵으로 상대를 위협하는 ‘안보불안’ 해소를 강조했다. 또한 최근 십여 차례의 미사일 시험발사를 통해 자위적 국방력 차원의 첨단무기개발 지속 의사를 밝혔다. 자위적 차원의 무기 개발은 포기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결국 ‘안전보장’ 카드는 WMD식 비핵화 요구에 대응하는 수단인 것이다. 나아가 상황에 따라 핵군축, 핵 군비통제로 북·미 협상의 성격을 전환하려는 의도도 있다.

셋째, ‘안전보장’은 동북아 군비경쟁 구도를 활용한 협상전략 차원으로 볼 수 있다. 최근 미국의 INF 파기 및 중거리 순항미사일 발사실험, 일본·한국·대만 등의 무기도입을 맹렬하게 비난하고 중국과 러시아의 군사적 연대, 미·중, 미·러, 유럽-러시아 사이의 군비경쟁 구도를 소개하는 북한 보도가 증가하고 있다. 소위 지역의 평화와 안전을 위협하는 지정학적 그림판을 환기시키는 내용들이다. 한마디로 이런 군비경쟁 구도에서 북한의 안전보장이 위협받는 현실, 자신의 안전보장 요구를 정당화하고 합리화하는 지정학의 활용 의도다.

넷째, ‘안전보장’ 협상 프레임에 따른 남한 배제 전략이다. 협상 프레임을 ‘안전보장’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설정한 모드일 수 있다. 한미연합훈련, 한국의 무기도입 및 국방계획 등을 소재로 자신의 자위적 국방력, 재래식 무기개발, 그리고 안전보장 요구의 정당성을 환기시키는 것이다. 대미 협상카드로 안전보장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의도적으로 한국의 군사적 대미 종속성, 한국의 훈련 및 무기도입 등이 갖는 위협을 과장할 필요가 있다.

북한의 ‘새로운 길’

북한의 ‘새로운 길’ 역시 동북아 전략경쟁, 군비경쟁 구도 차원에서 상상해 볼 수 있다. 북·미 협상이 결국 무산되고 대화의 판이 완전히 깨질 경우 북한이 갈 ‘새로운 길’은 중국 및 러시아와의 연대가 될 가능성이 있다. 최근 북·중, 북·러 사이의 군사교류가 활발해지고 있다. 9월 16일부터 21일까지 실시된 러시아, 중국 등 7개국 군대가 참여한 대규모 군사훈련 ‘첸트르(중부)-2019’에 북한의 참관단이 파견된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느슨한 형태로나마 북한이 중·러 군사 동맹에 가담할 여지가 있다.

이런 측면에서 북한의 ‘새로운 길’은 비핵화의 길을 가되 미국이 아닌 중국 및 러시아와 정치·기술적 협력을 통해 가는 길일 수 있다. 북한이 원하는 속도와 방법으로 비핵화를 실천하며 국제 검증을 받는 것이다. 이 길을 통해 비핵화의 구체적 결과가 증명된다면,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 명분도 어느 순간에는 약화될 수밖에 없다. 또한 중국과 러시아의 한반도에서의 레버리지가 높아지고, 비핵화 과정에서 중국과 러시아의 경제협력 공간도 일정 수준 열리게 될 것이다. 북한 입장에서는 미국의 과도한 요구를 수용하는 굴욕적 비핵화가 아닌 대안적 비핵화의 길이다. 북한의 새로운 길은 미국을 향한 신의 한 수가 될 수도 있다. 적어도 미국을 압박하는 카드가 될 것이다.

홍민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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