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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9 선언 1년
통일열차는 달리고 싶다!

지금부터 1년 전, 9월 19일 드높은 가을 하늘 아래 평양 5.1경기장에는 ‘하늘 길과 땅 길을 모두 열자’는 의미로 ‘부산-평양 기차’가 카드 섹션으로 연출되었다. 반만 년 단일 민족으로 살아왔던 한민족이 분단된 지 70여 년, 부산에서 출발해 평양에 도착하는 통일열차 덕분에 가슴이 뜨겁던 날이었다. 한반도 철도의 시작점인 부산에서 출발한 통일열차가 대구, 대전, 서울을 거쳐 도라산을 넘고 개성으로, 평양으로 오라는 평양 시민들의 뜨거운 여망이 담긴 카드 섹션을 본 부산 시민들의 감동은 남달랐다.

다가올 평화시대, 시너지 기대되는 부산과 평양

2002년 아시안게임부터 시작된 부산-평양의 관계는 평양 시민들에게 첫사랑처럼 다가왔다. 평양의 많은 시민들은 북측 선수들과 응원단을 따뜻이 환영하며 열렬히 응원하던 수많은 부산 시민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부산이 ‘꼭 가보고 싶은 도시’라는 북측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의 언급처럼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은 평양 시민에게 큰 감동을 주었고, 부산 시민들의 개방성과 포용성은 한민족으로서, 또 친절한 이웃으로서 따뜻함을 주었던 것으로 보인다.

평양 시민들이 가고 싶은 도시 부산, 부산 시민들이 원하는 도시 평양은 좋은 파트너로서 서로 손색이 없다. 부산은 세계 6위의 국제항으로 동북아의 중심항구이며 주변 동남권은 울산과 창원, 거제와 같은 거대한 중공업 산업단지를 갖춘, 한반도 철도교통의 출발지다. 평양은 북한의 수도이자 개성과 신의주를 잊는 대륙철도의 거점도시이며 시베리아 횡단철도(TSR)와 중국횡단철도(TCR)의 분기점이다. 부산과 평양 두 도시는 서로를 매력적인 파트너 도시로 인식하고 있고 협력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한반도 평화 시대를 기다리고 있다.

단지 부산과 평양 두 도시만 철도 연결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지난해 여름, 필자는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출발지인 블라디보스토크역을 방문했다. 블라디보스토크 역사에는 ‘부산-블라디보스토크’라는 표지판이 붙어 있어 마치 한반도 철도의 재결합을 기다리는 듯했다. 러시아와 중국으로서는 동북아 교통의 요지인 부산과 국제물류 네트워크를 구축한다는 매력적인 협업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중국은 신의주-평양 간, 러시아는 라진-동평양 간 열차 노선을 현대화하기 위해 북측에 적극적인 구애를 보내고 있다. 한반도 평화시대가 도래할 때 한반도 철도를 잇는 중심축인 평양과, 그 출발지이자 동북아 최대거점 항구인 부산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지금까지 냉전의 이념은 한민족의 분단과 분열로 이어졌고, 서로를 적대시하는 근거가 됐다. 분단과 분열의 비용은 70여 년을 지나오며 늘어만 갔고 그런 상황을 ‘온탕 속의 개구리’처럼 당연시하는 결과를 낳았다. 남북철도를 연결하는 것은 북측이 공산혁명을 이루고 한국정부를 전복시키기 위해서라는 냉전적 사고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야 할 이념의 산물일 뿐이다.

대한민국 신성장동력이 될 통일열차

흔히 철도를 사람의 혈관에 비유한다. 혈관은 세포에 피를 공급하고 노폐물을 청소하는 기능을 하여 사람의 몸을 이롭게 한다. 이처럼 철도는 사람과 사람, 지역과 지역을 연결하고 물자를 이동시켜 네트워크를 만든다. 철도의 효용 가치는 매우 크고 그 영향은 사회전반에 미치며 지역을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된다. 더구나 경부 축을 중심으로 한반도 철도가 대륙철도와 연 결된다면 대륙 물류와 교통 확대로 인한 파급력이 새로운 대한민국의 신성장동력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 지난해 8·15 문재인 대통령의 기념사에서 구체화된 동아시아 철도공동체 방안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공동번영의 기초가 될 획기적인 아이디어임에 분명하다.

유럽의 평화는 유럽석탄철강공동체에서부터 출발했고, 축적된 신뢰는 상호의존과 협업을 통해 굳어졌으며 종국에는 공동화폐와 공동의회를 구성하기에 이르렀다. 이렇듯 동아시아 철도공동체는 다가오는 한반도 평화시대 남북과 미·중·러·일 주변국의 신뢰를 회복하고 상호 협력과 공생으로 향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작년 9월 19일 평양 5.1경기장에 모인 평양 시민과 방송을 지켜보던 한국 국민은 모두 베를린 장벽처럼 휴전선이 무너지고, 곧 종전 선언이 이어져 남북 화해의 시대가 열릴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쉽게 열릴 것 같던 평양의 빗장은 굳건했고 이듬해 하노이를 향한 김정은 위원장의 특별열차도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됨으로써 기약 없는 기다림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북·미 회담을 재개하려는 노력은 지난 70여 년 동안 이어진 한반도 분단 역사의 종식 과정이며 우리 민족이 수행해야 할 과제다.

블라디보스톡역에 붙어 있는 ‘부산역 –블라디보스톡역’ 표지판

지난해 12 월 27 일 오거돈 부산시장과 참석자들이 부산과 평양 간 철도 연결을 염원하는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 ⓒ 연합

9·19 선언 1년,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대화 의지를 거듭 피력하고 있고 김정은 위원장도 9월 말 회담으로 화답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제3차 북·미 회담의 대화 촉진자로 미국을 방문했다. 상호 불신과 대립의 양상을 보이고 있는 북·미관계를 신뢰와 화합으로 재구성해 평화 공존의 기회로 전환하기 위해 우리 정부가 적극 나서고 있다. 그 결과 제3차 북·미 회담이 개최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11월 25일, 부산에서 한-아세안 정상회담이 열린다. 오거돈 부산시장은 부산에서 개최되는 한-아세안 정상회담에 김정은 위원장을 초대할 예정이다. 평양에서 출발하는 평화열차가 부산에 도착하는 그날을 기대한다. 9·19 선언 1년, 통일열차는 달리고 싶다!

이신욱 이신욱
동아대학교 국제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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