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과학기술에서 안보 , 외교 , 국방까지 ...
미 · 중의 기술 패권경쟁 가속화와
한국의 미래전략



정보통신기술, 우주개발 등 첨단기술을 둘러싼 국제사회의 경쟁과 협력을 진단하고, 이러한 흐름 속에서 우리가 나아갈 길을 모색한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표제를 걸고 진행되고 있는 과학기술의 발달이 우리 삶의 많은 부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 영향의 폭과 깊이가 큰 만큼 세계 주요국들의 관심도 커지고 있고, 이에 비례해서 이들 국가가 벌이는 경쟁도 치열해졌다. 그중에서도 미국과 중국, 두 강대국이 벌이는 기술 패권경쟁은 국제정치학 분야의 가장 큰 화두 중의 하나로 떠올랐다. 4차 산업혁명 시대 첨단부문 경쟁의 승패는 글로벌 패권을 놓고 벌이는 미·중 전략경쟁의 향배를 가늠하는 잣대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반도체, 그린테크, 바이오... 경쟁 불붙은 미·중
  최근 미·중 과학기술 경쟁의 불꽃은 반도체 분야에서 붙었다. 미국의 원천기술이 전 세계 거의 모든 반도체에 사용되는 가운데 중국 기업들이 미국 기업들을 추격 중이다. 미국은 ‘기술굴기’를 내세운 중국을 압박하기 위해서 반도체를 카드로 활용하였다. 트럼프 행정부는 5G 통신장비 문제로 논란이 된 화웨이의 공급망을 차단하기 위해서 대만 기업인 TSMC를 압박하고 중국 업체인 SMIC를 제재했다. 바이든 행정부도 기존의 대중 제재를 유지하는 가운데 미국 내 생산 비중이 44%밖에 안되는 반도체 공급망의 복원력을 강화하기 위해 리쇼어링(Reshoring, 해외로 진출한 기업의 본국 회귀)을 추구하는 한편, 미국의 반도체 기술혁신과 생산역량 증대를 위한 포괄적인 계획을 수립했다. 이에 대해 중국도 반도체 기술역량을 강화하는 지원책 확대로 맞섰다.

  반도체와 함께 쟁점이 된 분야는 배터리, 전기차, 친환경 소재 등과 같은, 이른바 그린테크(GreenTech)이다. 반도체와는 달리 배터리 분야는 중국 업체들이 앞서가고 있다. 특히 전기차용 배터리는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고, 미국의 대중 의존도가 큰 분야여서 미·중관계가 악화될 경우 미국의 공급망이 불안해질 수 있다. 바이든 행정부가 ‘친환경차 사업에서 100만 개 일자리 창출’을 공약하는 등 전기차, 배터리, 친환경 소재의 국내 개발 및 생산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면서 한국, 일본, EU 등과 그린테크 공급망 협력을 강화하고 있는 이유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서 바이오·제약 기술경쟁이 세간의 화두로 떠올랐다. 미국의 초고속작전(Operation Warp Speed)에서 드러났듯이, 코로나19 백신은 다른 백신에 비해 10배 빠른 속도로 개발됐다. mRNA 방식과 같은 기술혁신도 유발되었다. 이 분야의 미·중 경쟁도 치열히 전개되어 미국은 화이자 이외에도 모더나, 노바백스, 얀센 등을 개발했고, 중국은 시노백, 시노팜, 칸시노 등을 개발했다. 그러나 중국 백신의 안전성과 그 개발과정, 특히 임상시험의 불투명성은 논란거리다. 미·중 간에는 코로나19 백신외교 경쟁도 전개되고 있다. 코로나19 국면에서 리더십 공백을 드러냈던 미·중이 백신의 전략적 배분을 통해 리더십 회복을 위한 경쟁을 벌이는 것이다.

  코로나19 사태로 바이오·제약 산업의 공급망 취약성도 불거졌다. 미국은 의료장비와 의약품 생산을 해외에 의존하고 있다. 특히 중국산 의료장비나 부품이 미국의 수입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초음파 진단기기의 경우 2018년 기준 22%가 중국산이다. 코로나19로 인한 원료의약품 공급 지연이 발생하자 미국은 이를 국가안보 위협으로 인식하기 시작했으며, 결국 바이든 행정부는 ‘100일 공급망 검토’에 제약 산업을 포함시켰다. 미국은 대중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서 다양한 노력을 펼치고 있지만, 중국의 공격적 R&D 투자, 자체적 신약 파이프라인 구축, 규제철폐 정책 등으로 인해서 미·중 간의 바이오·제약 분야 기술격차는 점차 줄어들고 있다.

5G는 미·중 양국의 갈등을 여실히 보여주는 분야다.
사진은 지난해 10월 27일 서울에서 열린 제3회 국제인공지능대전에 마련된 화웨이 부스 ⓒ연합
국가안보를 중심에 둔 미·중 경쟁
  이러한 맥락에서 미국과 중국이 벌이는 기술경쟁은 최근 부쩍 국가안보의 렌즈를 통해서 해석되고 있다. 5G는 통신인프라와 산업 및 서비스뿐만 아니라, 국가안보에 미치는 잠재적 영향을 놓고 양국이 벌인 갈등을 여실히 보여준 분야이다. 중국 기업인 화웨이가 5G 기술의 선두주자인데, 2017년 기준으로 화웨이의 세계 통신장비 시장 점유율은 28%로 세계 1위를 차지했다. 이러한 화웨이의 기술적 공세에 대해서 미국은 사이버 안보 또는 데이터 안보 문제를 빌미로 제재를 가했다. 오랜 역사를 갖는 미국과 화웨이의 갈등은 2018년에 재점화되고 그해 12월 멍완저우 화웨이 부회장의 체포로 절정에 달했다. 2019~2020년에는 화웨이 공급망을 차단하기 위한 미국 정부의 제재가 이어졌다.

  화웨이 사태의 특징은 사이버 안보 분야의 동맹외교와 밀접히 연계되었다는 점이다. 미국의 화웨이 제재 전선에 ‘파이브 아이즈(Five Eyes)’로 알려진 미국의 동맹국들이 동참했다가 분열되고 다시 결집하는 행보를 반복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인도·태평양 전략의 일환으로 화웨이에 대한 제재를 추진했으며,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다차원적인 국제협력을 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한 중국의 대응은 일대일로 구상의 대상인 파트너 국가들과의 연대외교 추진이다. 중국은 일대일로 참여국들을 대상으로 5G 네트워크 장비를 수출하는 방식으로 미국의 공세에 대응하였다. 화웨이는 사업 분야를 AI, 사물인터넷(IoT), 자율주행차 등으로 다변화했으며, 중국 정부는 중장기적으로 5G 경쟁의 충격을 완화하는 구조적 대응책도 모색하고 있다.

  우주 분야의 미·중 경쟁도 큰 쟁점이다. 2000년대 들어서 중국의 도전적 행보가 이어졌는데, 중국 최초 유인우주선 선저우5호 발사(2003), ASAT실험 성공(2007), 우주-사이버-전자 통합 ‘전략지원군’ 창설(2016), 양자 통신위성 발사(2016), 우주정거장 텐궁2호의 궤도 진입(2016), 창어4호 달뒷면 탐사(2019), 베이더우 위성항법시스템 마무리(2020), 텐원1호 화성 착륙(2021), 중국 로켓 창정5B호 추락(2021) 등이 그 사례들이다. 우주굴기로 알려진 중국의 행보에 대응하여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우주군 창설(2019)을 포함한 우주정책을 가속했다. 특히 2025년까지 인류 최초의 달기지 건설(5년 이내에 유인화)을 목표로 중국과 경쟁하며, 유인 달 탐사와 달 연구기지 건설을 포함한 아르테미스 프로젝트(2024년까지)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미국의 화성우주 헬기(인저뉴어티) 비행에서도 나타났듯이 최근에는 화성 탐사 경쟁도 벌이고 있다.

  우주 분야의 미·중 경쟁은 민간 행위자들이 참여하는 분야에서도 진행되고 있다. 최근 뉴스페이스(New Space)로 알려진 우주개발 패러다임의 변화는 미·중 우주경쟁의 새로운 차원을 엿보게 한다. 또한 4차 산업혁명의 진전으로 인한 위성 활용 서비스, 위성 항법시스템, 우주영상 및 데이터 활용 서비스 등의 활성화 과정에서도 미·중 두 나라는 경쟁을 벌이고 있다. 예를 들어, 중국은 2020년 10월 55번째의 베이더우 위성을 쏘아 올리면서, 미국의 전 지구적 위성항법시스템에 상응하는 자체적인 베이더우 시스템을 완성했다. 이와 더불어 중국은 일대일로 대상국들에 베이더우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우주 분야에서도 영향력을 높여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10월 31일(현지시각)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공급망 관련 글로벌 정상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미·중의 기술경쟁 확장은 한국에게 기회이자 도전이다. ⓒ연합

미·중 경쟁은 좁은 의미에서 본
과학기술 경쟁의 지평을 넘어서
안보와 외교 및 국방까지도 포괄하는
넓은 범위로 확장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전개는
한국에게 기회인 동시에
도전이기도 하다.
과학기술에서 외교·국방으로, 범위 넓어지는 첨단기술
  첨단 군사기술 분야의 미·중 경쟁에도 주목해야 한다. 민간 인공지능(AI) 기술경쟁과 더불어 AI·로봇기술을 적용한 자율무기체계(AWS) 경쟁이 가속화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2014년 11월 이후 미국은 게임체인저(game changer)로서 ‘3차 상쇄전략’을 추진하고 있으며, 중국도 2017년 10월 제19차 당대회 이후 군민융합 차원에서 현대화된 육군, 해군, 공군, 로켓군, 전략군 등의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첨단 무기체계뿐만 아니라 사이버-물리 시스템(CPS)의 구축이나 제조-서비스 융합 등도 미·중 경쟁의 중요한 항목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민군 겸용(dual-use) 기술혁신을 지원하기 위한 양국의 군사혁신 모델 경쟁도 진행 중이다.

  전통적으로 군사안보 분야의 첨단기술은 다자 또는 양자 차원의 수출통제 대상이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그 범위가 점점 더 확대되는 추세이다. 미·중 기술갈등의 맥락에서 미국의 제재는 중국의 민간기업에 대한 제재로까지 확장되었다. 예를 들어, 2021년 6월 바이든 대통령은 중국의 핵, 항공, 석유, 반도체, 감시기술 분야 59개 기업에 대한 미국의 투자를 금지하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첨단분야 민군겸용기술의 수입규제와 연계된 ‘정치화’도 거세지고 있다. 미국은 데이터 유출과 감시를 이유로 중국의 민간기업인 DJI의 드론을 ‘잠재적 위협’이라고 경고하며 군사시설 주변의 사용을 금지했고, 미군 기지에 하이크비전, 다후아 등 중국 기업이 납품한 CCTV를 사용하는 데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최근 미·중 경쟁은 좁은 의미에서 본 과학기술 경쟁의 지평을 넘어서 안보와 외교 및 국방까지도 포괄하는 넓은 범위로 확장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전개는 한국에게 기회인 동시에 도전이기도 하다. 2018~2020년을 달구었던 화웨이 사태는 미·중 패권경쟁에서 첨단기술과 사이버 안보 문제가 지닌 국제정치학적 중요성을 극명하게 보여준 사건이었다. 게다가 한국에도 불똥이 튀면서 5G 통신장비 도입 문제가 단순한 기술·경제적 사안이 아니라 외교·안보적 선택이 될 수도 있음을 보여주었다. 최근 미래 국력을 좌우할 첨단기술 분야의 미·중 갈등은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에도 지속되고 있다. 미래 국가 전략의 차원에서 한국의 고민이 점점 더 깊어가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김상배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