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포커스

北, 적대적 외교 담화 자제
대외 비난은 역할 나눠 소통 대비



2021년 북한이 어떤 문제에 대해 담화를 발표했고, 담화의 주요 내용은 무엇인지 살펴본다.
담화를 통해 남북관계, 대외 관계에 대한 북한의 입장과 전략을 분석한다.


  2012년 김정은 정권이 수립되며 국내외적으로 많은 전문가들이 북한사회의 변화 전망에 대한 의견을 내놓았다. 그 중에서도 중요한 의제는 북한이 그동안 강력하게 유지했던 고립주의 기조를 탈피하고 국제사회에 대한 개방 노선으로 전환할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이었다. 김정은 정권 초기 북한은 국제사회의 강력한 제제 속에 고립상태에 있었다. 대북제재의 원인은 잘 알려져 있듯 북한의 핵전력 강화 때문이었다. 북한은 2013년 2월부터 2017년 9월까지 총 네 차례의 핵실험을 감행했고, 이에 미국을 중심으로 국제사회가 강력한 대북제재 조치에 합의함에 따라 최악의 고립상태에 직면해 있었다.

지난해 6월 7일 김여정 부부장의 대북전단 살포 관련 담화를 읽고 있는 북한 노동자들ⓒ 연합/조선중앙통신
세계로부터 ‘거리두기’ 해 온 북한
  북한의 대외활동이 급전환된 것은 2017년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부터였다. 대내외적으로 유화적 정책기조를 드러낸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북한은 대외관계를 돌파할 기회를 확보하게 됐다. 문재인 정부의 대북 포용 발언에도 불구하고 계속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던 북한은 2018년 신년사를 통해 남북관계 전환에 대한 의지를 나타냈다.

  이후 북한은 2018년 남북 정상회담, 북·미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고, 그간 국제사회와 끊임없이 마찰과 갈등을 일으킨 비핵화 문제에 대해서도 비교적 긍정적인 협조 의사를 밝혔다. 또한 대내의 다양한 사회적 문제들을 세계적 추세에 맞추어 대대적으로 개혁하고 변화시키는 조치들을 취하며 신중하게 세계무대 진출에 대한 의지를 나타내는 듯하였다. 그러나 2020년 3월 북한은 남한 정부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 담화를 발표하며 다시 남한 및 국제사회와 뚜렷하게 간극을 두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북한은 오랜 기간 세계로부터 ‘거리두기’를 계속하며 ‘우리식 사회주의’, ‘주체사상’을 기조로 한 ‘자주’ 국가를 견지해 나갈 것을 주장해 왔다. 대외적으로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제국주의’ 또는 ‘자본주의’ 국가들에게 강력한 적대적 태도를 유지하는 한편, 대내적으로는 북한 주민을 대상으로 끊임없이 ‘우리’와 ‘원쑤(또는 적)’의 담론을 창출하며 이념과 사상을 중심으로 사회공동체를 규범화했다. 이와 같은 외부에 대한 적대적 태도는 사회 내부적인 차원에서는 ‘타자’ 또는 ‘낯선 존재’를 통해 집단 내부 구성원들의 일탈, 충동을 억압하며 구성원들의 일체화(identification)를 이루는 데 사용된다. 사회 외부적인 차원에서는 상대방을 위협함으로써 세계 속에서 자신들의 위치를 규정하는 한편, 필요에 따라 자신들의 의지 및 의견을 상대국가에게 전달하고 제시하는 수단이다.

  대체로 「조선중앙통신」과 「노동신문」을 통해 전달되는 북한의 담화는 북한 정부 차원의 대표적인 외교언어로서 국제사회의 관심을 받아 왔다. 북한의 대외 공식 담화는 사회 내부 구성원에 대한 사상 선전 및 선동, 북한 외부에 대한 담화외교의 역할을 동시에 겸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 내외의 환경을 고려하여 해석해야 한다.

2020년 이후 나타나기 시작한 북한의 대외 비난 담화는 김여정 부부장이 주로 담당하고 김정은 위원장은 직접 담화를 자제하고 있다.
사진은 2018년 9월 18일 열린 남북 정상회담 ⓒ연합
2018년 이후 적대성 완화된 북한의 담화
  2018년 이후 북한의 외부세계에 대한 담화 내용은 과거에 비해 극단적인 적대성을 완화하고 중립적인 태도로 전환하는 노력이 나타난다. 이러한 태도의 변화는 특히 ‘미제’와 관련된 논의에서 찾아볼 수 있다.

  북한에서 ‘미제’는 전통적으로 북한 최대의 ‘원쑤(적)’로서, 이들과 적대적으로 투쟁하며 북한식 ‘사회주의 강성국가’를 건설하는 것이 최종목표 중 하나로 강조되어 왔다. 그러나 이와 같은 ‘미제’에 대한 적대적 태도는 김정은 위원장이 국제사회 진출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2018년 이후 많은 부분 완화되는 모습을 보였다. 그동안 집단적 투쟁의 대상으로서 ‘미제’와 더불어 꾸준하게 강조되었던 ‘남조선괴뢰’ 역시 마찬가지다. ‘남조선괴뢰’는 대체로 ‘미제’에 편승하여 주민에 대한 약탈을 주동하는 남한 집권정부로, ‘남조선인민’을 해방시키기 위해 척결해야 할 대상으로서 강조되어 왔다.


  북한의 대외 비난 담화는 2020년 다시 나타났다. 특히 2018년 남북 정상회담 당시 ‘평화의 메신저’로서 남한을 직접 방문하여 실무를 수행한 김여정 부부장이 2020년 3월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청와대를 대상으로 원색적인 비난 담화를 발표한 것은 우리 사회에도 많은 충격을 안겨주는 사건이었다. 2020년에 일곱 차례 대남 및 대미 담화를 발표한 김여정 부부장은 2021년에도 적극적인 대외 공식 담화를 발표하며 김정은 위원장을 잇는 대외 소통의 핵심창구 역할을 수행했다. 2021년 1월부터 11월까지 김여정 부부장의 공식 담화는 십여 차례 발표됐는데, 그중 여덟 차례는 대남 및 대미 비난 담화였다.<표1>

  2020년 3월 이후 나타난 주요한 대외 담화는 김여정 부부장의 이름으로 「조선중앙통신」과 「노동신문」을 통해 발표되었다. 반면 김정은 위원장의 경우 대외 공식 담화를 많은 부분 자제하는 모습을 보였다.<표2>



대남 담화에 나타난 김정은과 김여정의 역할 분담
  2021년 9월 최고인민회의 이전까지 주요한 대외 공식 담화는 대체로 김여정 부부장이 주도하였다. 김정은 위원장의 대외 담화가 발표된 것은 2021년 9월 29일 최고인민회의 이후였다. 2021년의 경우 김정은 위원장의 대외 담화는 11월 현재까지 두 차례로 파악할 수 있는데, 김정은 위원장의 대남·대미 담화는 대체로 상호 소통의 가능성을 열어놓는 내용이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남한 또는 미국에 대한 경계의 태도가 나타나기는 하지만, 남북통신연락선 복원의 가능성을 시사한다든지, ‘주적’으로서 ‘남조선이나 미국 특정한 그 어느 국가나 세력’을 상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밝히는 모습은 최고지도자로서 대외활동의 가능성을 시사한다.

  2020년 9월에 벌어진 남한 공무원 피격 사건 당시 김정은 위원장의 발언 역시 동일한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북한의 남한 주민에 대한 피살 및 화장 의혹에 대한 대중적 차원의 비난이 거세게 일어나자, 김정은 위원장이 이에 대한 공식 사과 담화를 전화 통지문 형식으로 전달한 사실은 대외 관계 및 소통에 있어서 긍정적 변화의 가능성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최고지도자 차원의 대외 비난 담화를 자제하고, 그보다는 하위직급을 통해 비난 담화를 유지하는 모습은 대외적으로나 대내적으로 외부와의 적대성을 유지하면서도, 그 무게를 분산시켜 향후 세계와의 소통 창구를 대비 또는 유지하고자 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북한의 대남 담화와 대미 담화의 내용을 비교해 보면, 담화의 태도에서는 차이가 나타남을 확인할 수 있다. 김여정 부부장과 김정은 위원장의 담화내용을 살펴보면, 대미 담화의 경우 경계의 태도가 나타나고 있지만 직접적인 비난 표현은 대체로 나타나지 않는다. 구체적인 사안의 언급도 대체로 회피하거나 자제하는 모습을 보인다. 반면 대남 담화는 많은 경우 남한 정부에 대한 ‘유감’을 비교적 직접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특히 김여정 부부장의 담화에서는 남한 정부의 한미연합훈련 및 대북 논평, 전단살포 관리 등 구체적 사안에 대한 불편함을 직접적으로 표출하며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종합적인 차원에서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이후 북한의 대외 담화를 살펴보면, 북한은 적대적 태도를 견지한 직접적 비난 담화를 과거보다 많은 부분 절제하고 있다. 2020년 이후 김여정 부부장을 중심으로 다시 나타나기 시작한 대외 비난 담화 역시 담화의 주체를 김여정 부부장으로 제한하고, 최고지도자 김정은 위원장의 직접발화는 자제하고 있다. 또한 종전선언을 포함한 대남 및 대미관계 회복의 가능성을 시사하는 담화를 김정은 위원장을 통해서 발표하고 있다는 사실은 북한이 미세하나마 외부와의 소통 창구를 계속해서 열어놓고자 하는 의지의 표출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임수진 보훈교육연구원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