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의 길을 묻다

“경계 짓지 않는 소통으로
평화의 희망을 만들겠습니다”



이미경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서울부의장·여성부의장

  여성운동 20년, 국회의원 20년, 한국국제협력단(KOICA) 이사장까지. 40여 년의 시간 동안 이미경 부의장은 사회 곳곳에 흔적을 남겼다. 보수적인 국회에서 처음 바지정장을 입은 여성 국회의원, 당론에 반대하며 소신을 지켰다 출당당한 국회의원, 남성이 절대다수인 국회에서 배출된 5선 국회의원이라는 기록도 뒤따른다. 이제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의 유일한 겸임 부의장(서울부의장·여성부의장)으로서 평화통일을 위한 활동을 이어나가게 된 이미경 부의장. 제20기 평통에 그는 또 어떤 기록을 남기게 될까.

여성의 목소리 대변해 온 40여 년
  1986년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 당시 여성단체와 연대하면서 여성인권을 위한 활동을 주도한 이미경 부의장은 노동자, 농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등 소외되어 왔던 여성들의 이야기를 드러내는 사람이었다. 국회의원이 된 후에는 호주제 폐지, 영·유아 보육지원제도 확립, 비례대표 50% 여성할당제 등 여성의 권익 신장과 정치 참여 확대를 위해 힘을 쏟았다. 손에 다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활동들은 사회에도 큰 파장을 만들어 냈다. 그런 그가 자신의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성과로 꼽는 것은 무엇일까.

  “성과 있는 일들이 많은데...(웃음),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해방 이후 여성들이 계속해서 요구해 왔던 호주제 폐지예요. 2005년 제17대 국회에서 통과됐죠. 지금은 세월이 많이 흘러서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그때는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어요. 모든 여성계 선배들이 앞장섰고 우리 대에 와서 매듭을 지은 거죠.”

  두 번째 성과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공식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1991년 8월 14일 김학순 할머니가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사무실을 찾았다. 당시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발표하자 이를 바로잡기 위해서였다.

  “점심을 먹고 들어왔더니 할머니가 오셨다가 막 나가셨다는 거예요. 그래서 뛰어나가서 다시 모셔왔죠. 그러면서 내일(8월 15일)이 의미 있는 날인데 혹시 증언해 주실 수 있느냐고 여쭸는데, 할머니는 그 말을 기다리고 계셨어요. 너무나 흔쾌히 ‘하지.’ 그러세요. 부랴부랴 기자회견 준비해서 첫 증언을 했죠.”

  증언은 또 다른 증언을 불러왔고 새로운 연대를 만들었다. 지금까지 이어지는 수요 집회, 1991년 11월 처음 열린 후 남북 여성교류의 시발점이 된 ‘아시아의 평화와 여성의 역할 토론회’ 등 눈에 띄는 결과들을 많이 만들어냈다. 하지만 이미경 부의장이 생각하는 최고의 보람은 따로 있다. 바로 할머니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게된 것이다.

  “처음 할머니들을 만났을 때 신고는 해도 앞에 나서는건 안 하려고 하셨어요. 그러다가 점차 증언대로 나가시고, 전문가들과 만나서 문제를 함께 이야기하고 그러는 과정에서 할머니들의 의식이 점차 성숙해지셨죠. 나중에는 정부 지원금으로 외국의 여성 인권 문제를 지원하는 기금을 만드셨어요. 할머니들이 인권운동가로 변화해가는 모습이 저희에게도 많은 가르침이 됐습니다.”

이미경은 잘 듣고 소통할 줄 안다
  이미경 부의장은 지금도 여성의 권익 신장과 정치 참여 확대를 위한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최근 국회에 제출된 ‘성평등 국회 실현을 위한 실천 결의안’이 그 결과다. 여야 의원 101명이 참여한 결의안에는 지역구 여성 공천 의무화, 국회 상임위원장과 간사의 여성 비율을 30% 이상으로 둘 것, 국회의원 성평등 윤리강령 제정,성평등 입법과 성인지 예산 심의를 위한 여성의원 전원회의 등 6가지 방안이 담겼다. 이미경 부의장은 ‘성평등 국회 자문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결의안을 만드는 일을했다. 여야를 두루 만나고 의견을 조율하며 결의안을 만들기까지는 그가 가진 소통의 힘이 큰 역할을 했다.

  국회의원 시절 지역을 다니며 직접 현장의 소리를 듣고 민생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한 그를 두고 주민들은 ‘이미경은 소통을 잘하고 이야기를 들으려 한다’고 말했다. 이제 이미경 부의장은 대한민국의 중심인 서울지역의 평화통일 활동을 앞장서 이끄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서울부의장이자, 전체의 40%가 넘는 여성 자문위원을 이끌어야 하는 여성부의장으로서 소통 능력을 발휘하게 됐다. 9월 1일 임명된 후 지역회의와 각 지역협의회, 여성운영위원회와 소위원회 등 수많은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두 가지 역할을 어떻게 수행할지 고민이 많다.

  그는 서울부의장으로서는 대한민국의 중심인 서울에 서 한반도의 평화와 교류협력을 위해, 더 나아가 통일을 이루기 위해 자문위원의 의견을 들으며 참여를 높이는 일에 주력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여성부의장으로서는 유엔 안보리 결의안 1325호를 실천하는 활동을 포함하여 평통 안에서 여성의 역할 강화, 성 주류화 등 제19기에 만들어진 틀을 더욱 발전시켜나가겠다고 말했다. 책임이 크고 부담도 되지만 “의견을 모으고 참여를 이끌어 내는 것은 늘 해왔던 일이기에 의욕이 생긴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지난 10월 15일 제1차 여성운영위원회가 열렸다.
성 주류화 기반 확대하며 서울식 평화통일 준비할 것
  이미경 부의장은 무엇보다 평통에 나타난 변화에 주목했다. 제19기부터 늘어나기 시작한 여성 자문위원의 수, 그와 비례해 늘어나는 여성 중심 사업, 그리고 그 사업의 성과들이다. 생명을 존중하고 포용할 줄 알며, 소통을 잘하는 강점을 가진 여성들이 평화와 통일의 과정에 참여해 그 힘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그의 소신이다.

  제20기에는 25명의 부의장 중 7명이 여성이고 여성자문위원의 수도 2만 명 중 6,929명으로 제19기에 비해 증가했다. 올해부터는 평통이 유엔 안보리 1325 국가행동계획 이행기관으로 참여하며 성 주류화를 위한 활동에 한 발 더 내디뎠다. 하지만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많다. 구성의 변화를 활동의 변화로 만들고 지역협의회 단위에서 여성의 주도성과 여성 간부위원의 비율을 높이는 것도 과제다. 이에 이미경 부의장은 그동안의 노력을 토대로 여성의 활동을 내실화하는 일에 주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제19기 평통에서 신낙균 여성부의장님이 성 주류화를 위한 기반을 상당히 만들어주셨어요. 제20기는 이것을 잘 발전시켜 나가려고 합니다. 새롭게 하는 것이 있다면 전체 여성활동을 총괄해 나가는 여성운영위원회를 만들고 유엔 안보리 결의안 1325호 및 여성 평화네트워크 확대를 위한 소위원회를 만든 것입니다. 소위원회는 여성 자문위원들이 평통의 이름으로 어떻게 활동할지 구체적으로 논의하고 방향을 세우는 기능을 합니다.”

  이미경 부의장은 이를 통해 여성 자문위원들이 보조적인 차원의 역할이 아닌, 평화통일 활동을 이끄는 주도자로 활동하는 토대를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두 번째 과제는 방대한 서울지역의 자문위원들을 한데 묶어 평화통일 운동의 구심을 만드는 것이다. 서울은 자문위원의 수도 많고 협의회마다 다양한 활동을 활발하게 하지만, 이들을 하나로 묶어내는 구심은 부족했다. 이미경 부의장은 “서울식 사업을 어떻게 만들어낼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협의회별로 지역의 특성에 맞게 추진해 온 사업은 지속해 나가되, 지역회의 차원에서 25개의 협의회가 함께할 수 있는 사업을 만드는 것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자문위원과 평화통일에 대한 비전을 나누면서 시민들도 참여할 수 있는 참여형 교육 프로그램이 있으면 좋겠다며, 지역협의회와 함께 구체적인 활동을 만들어 나가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지난 11월 16일 제1차 서울지역회의 청년위원회가 열렸다
“평통은 독특한 조직” 평통에서 소통을 키우자
  여성운동가, 정치인, KOICA 이사장. 삶의 대부분을 타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해 온 이미경 부의장은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이 세계를 향한 새로운 ‘희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KOICA 이사장 시절 전 세계 개발도상국을 다녔던 그는 많은 나라에서 ‘코리안 드림’을 말하는 것을 목격했다. 과거 가장 가난했던 대한민국이 이제는 세계적 선진국이라고 할 정도로 발전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타의에 의해 이루어진 분단을 우리 스스로 평화롭게 끝낸다면 내전을 겪고 있는 수많은 나라에게 희망을 줄 수 있을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러한 이유로 전 세계를 향해 우리가 계속해서 종전선언을 이야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반도를 평화롭게 만들어가는 첫걸음은 종전선언입니다. 사람들은 종전선언만 하면 끝나는 줄 알지만 종전선언 후 평화협정과 평화체제 구축 등 가야할 길이 멉니다. 종전선언은 겨우 한 발짝 내딛는 거예요. 이제는 한발짝이라도 내딛을 때가 됐어요.”

  이를 위해서는 국민의 힘과 마음을 모으는 일이 중요하다. 이미경 부의장은 그 과정에서 평통이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평통은 굉장히 독특한 조직입니다. 권위주의 정부 하에서 만들어졌지만 시대를 거치면서 자기 역할을 찾고 변화해 왔죠. 새로운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받아들이고 그들의 목소리를 반영했어요. 여성과 청년들에게도 문을 활짝 열었습니다. 서로 다른 입장의 사람들이 섞이고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고 있습니다. 내부에서 소통을 하는 거예요. 저는 여기에서 희망을 봅니다.”

  배척하거나 경계 짓지 않는 것. ‘우리’가 아닌 ‘모두’의 이야기를 듣는 것. 그래서 하나의 총의를 만들어가는 것. 이미경 부의장이 평통에서 봤다는 희망은 그가 가진 소통의 힘과 같은 결을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