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읽기

경제건설에 유리한 국제환경
조성에 주력할 듯

조선노동당 위원장 김정은이 매년 1월 1일 발표하는 신년사는 자신과 ‘북한 당국’이한 해 동안 어떤 일들에 주력하고 ‘북한 사회’를 어떻게 이끌어갈지 밝히는, 일종의 계획서다. 그렇다면 김정은 위원장은 북한 사회 구성원들에게 올해 어떤 일들에 주력하겠다고 밝혔을까? 김정은은 올해 북한 사회를 어떻게 이끌어가려는 걸까?

국내외 언론이 주목한 김정은의 행보는 바로 지난 1월 7일 ~10일 있었던 방중이다. 그동안 김정은은 신년사 발표 뒤 신년사에서 언급한 핵심 과제와 관련된 현장을 가장 먼저 찾았다. 예를 들어 류경수 제105탱크사단(2012년), 대성산종합병원(2013년), 제534군부대 수산물 냉동시설(2014년), 육아원· 애육원(2015년), 대연합부대 포사격 경기(2016년), 가방공장 (2017년), 국가과학원(2018년) 등이 지난 몇 년 동안 김정은의 새해 첫 공개 활동 장소였다. 그런데 올해는 매년 정초에 관례 적으로 찾던 금수산태양궁전을 일찌감치(1일 0시 전후로 추 정) 참배한 뒤1 전격적으로 중국 방문에 나섰다.

이례적 행보로 시작된 새해… ‘다자협상’ 언급한 김정은

이처럼 김정은 위원장이 새해 벽두부터 국외로 간 ‘이례적 행보’의 배경에는 올해 대외관계를 획기적으로 개선해보려는 의지가 놓여 있다는 게 필자의 판단이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이 라는 당면 현안을 대비하는 차원의 방중으로 읽는 것도 틀리지는 않지만, 그보다 좀 더 거시적인 맥락에서 김정은의 방중을 읽을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김정은은 올해 신년사에서 2018년 성과 중 가장 첫머리에 대외관계 개선을 내세웠다. “우리의 주동적이면서도 적극적인 노력에 의하여 조선반도에서 평화에로 향한 기류가 형성되고 공화국의 국제적 권위가 계속 높아갔다”는 것이다. 그가 말한 ‘주동적이면서도 적극적인 노력’의 출발점은 2018년 4월 조선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3차 전원회의 결정이다. 조선노동당은 이 회의에서 ‘사회주의 경제건설에 총력을 집중하는 것’ 을 ‘새로운 전략적 노선’으로 천명하고, 핵시험과 대륙간탄도 미사일 시험발사 중지, 북부 핵시험장 폐기, 핵위협·핵도발이 없는 한 핵무기 불(不)사용, 핵무기·핵기술 불(不)이전을 결정했다. 이와 함께 ‘사회주의 경제건설을 위한 유리한 국제적 환경을 마련’하기 위해 ‘주변국들과 국제사회와의 긴밀한 연계와 대화를 적극화’하기로 했다. 요컨대, 조선노동당은 지난 2018년 봄에 비핵화의 대가로 경제건설에 유리한 국제환경을 마련하기로 결정했고, 이후 부지런히 움직이며 남북관계 정상화, 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 핵개발로 소원해졌던 중국과의 관계 복원 같은 ‘초석’을 쌓았다.

2019년 1월 8일, 중국 인민대회장에서 북한 김정은 위원장과 중국 시진핑 국가 주석이 회담을 하고 있다. ⓒ연합

2019년 신년사와 연초 방중으로 미뤄볼 때, 김정은은 작년에 쌓은 초석을 토대로 올해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을 위한 ‘다자협상’까지 나아가려는 것 같다. 김정은은 신년사에서 “조선반도의 현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기 위한 다자협상도 추진하여 항구적인 평화 보장 토대를 실질적으로 마련하자”고 남한 당국에 제안하고, 이를 위한 방안으로 “정전협정 당사자들과의 긴밀한 연계”를 제시했다. 풀어 말하면 남북한이 함께 정전협정 당사국인 미국, 중국에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을 위한 다자협상의 필요성을 설득하자는 것이고, 김정은의 1월 방중 역시 이런 맥락에서 이뤄졌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올해 북한 당국의 대외 행보 또는 한반도 정세의 관전 포인트는 바로 ‘4자회담 재개’ 여부다. 지금 은 기억하는 이가 많지 않지만 4자회담은 1954년 제네바회담 이후 무려 43년 만에 한반도 평화정착을 목표 로 개최된 다자회담으로서, 역사적 의의가 결코 작지 않은 회담이었다. 남북한과 미국, 중국이 참여한 4자회담은 스위스 제네바에서 1997년 12월부터 1999년 8월까지 총 6차례 열렸지만 아쉽게도 한반도 평화정착 이라는 목표에는 도달하지 못한 채 중단됐고, 이후 비슷한 역할을 러시아, 일본까지 참여한 6자회담에 넘겨줬다.

김정은이 4자회담이라는 구체적 형태까지 염두에 두고 다자협상을 언급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최근 시진핑 주석의 적극적 태도를 보면 3개 양자협상(남 북-북미-한미)이 한반도 정세를 이끌던 모습과는 조금 다른 양상이 올해 펼쳐질 가능성이 높다. 시진핑은 이미 지난 2018년 5월 북중 정상회담에서 향후 비핵화, 평화정착 과정에서 “건설적 역할을 발휘할 것”이라 고 말했고, 올해 1월 방중 정상회담에서도 같은 발언을 했다. 차이가 있다면 2018년에는 김정은의 ‘다자협상’ 발언이 없었고 올해는 정상회담 전에 나왔다는 점이다. 곧 시진핑이 이번에는 다자협상 참여를 염두에 두고 ‘건설적 역할’을 말했을 수도 있다. 조만간 열릴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의미 있는 성과가 나오고, ‘한반도 비핵화’라는 공동 목표를 가진 한·중·미가 동의한다면 정확히 20년 만에 4자회담이 재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2020년’이 다가오고 있다

2016년 봄부터 유엔 안보리는 북한의 주요 외화수입원인 석탄·철·철광 수출까지 직접 규제하기 시작했다. 사진은 2018년 9월 17일 ‘비확산과 북한’을 주제로 열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 ⓒ연합

한편, 김정은 위원장은 신년사에서 ‘완전한 비핵화’ 라는 목표를 신년사 사상 처음으로 천명하고, 핵무기 불(不)생산도 처음 언급했다. 조선노동당이 2018년 4월 결정했던 ‘3불(不)’, 곧 핵무기 불시험, 불사용, 불이전에 더해 만들지도 않겠다며 ‘4불(不)’ 입장을 밝힌 것 이다. 곧이어 김정은은 “우리의 주동적이며 선제적인 노력에 미국이 신뢰성 있는 조치를 취하며 상응한 실천적 행동으로 화답해 달라”고 요구했다. 김정은이 연초부터 중국을 협상장에 본격적으로 끌어들이려 하고 미국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협상 의지를 밝히며 달성하려는 목표는 ‘경제건설에 유리한 국제환경’이다. 특히 그가 올해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이전보다 더 분주히 움직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바로 ‘2020년’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노동당은 2016년 7차 대회에서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을 제시했다. 이전에 수행했던 ‘3차 7개년 (1987~1993) 계획’처럼 국민소득, 공업총생산, 농업총생산 등의 목표 수치를 구체적으로 제시하지는 않았지만, 2016년부터 2020년까지 에너지문제 해결, 인민경제 선행부문(전력, 석탄, 금속, 철도운수) 및 기초공업 정상화, 농업·경공업 증산 및 식량문제 해결 같은 ‘전략적 목표’를 달성해 경제를 활성화하겠다고 공언한 것이다. 올해 신년사도 경제부문 세부 과제를 전력문제 해결, 석탄·금속·화학·철도운수 정상화, 농업 증산 순서로 배치하면서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 목표 달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2019년 1월 1일, 서울역에서 한 시민이 북한 김정은 위원장의 신년사가 나오는 뉴스를 시청하고 있다. ⓒ연합

하지만, 2016년 봄부터 유엔 안보리가 북한의 주요 외화수입원인 석탄·철·철광 수출까지 직접 규제하기 시작했고, 2017년 가을에는 석유류 수입까지 제한하면서 목표 달성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김정은은 올해 신년사에서 “자체의 기술력과 자원, 전체 인민의 높은 창조정신과 혁명적 열의에 의거하여 국가경제발전의 전략적 목표를 성과적으로 달성하자”고 호소하고, “자립 경제의 잠재력을 남김없이 발양시키고 경제발전의 새로운 요소와 동력을 살리기 위한 전략적 대책들을 강구하자”고 촉구한 것도 바로 이런 사정 때문이다.

주목할 점은 ‘전략적 목표 달성’과 직결된 경제부문 세부 과제를 나열하기 전에 ‘수단’부터 제시했다는 사실이다. 2018년 신년사에서는 경제부문 세부 과제를 나열 한 뒤 수단을 언급했는데, 올해는 순서가 바뀐 것이다.

김정은이 제시한 첫 번째 수단은 ‘경제관리 방법 혁신’이다. 작년 신년사에서는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가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말하는데 그쳤었다. 이에 비해, 올해 신년사에서는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를 직접 언급하지 않는 대신 좀 더 큰 틀에서 경제관리 방법 혁신을 촉구했고, 그의 신년사 사상 처음으로 ‘경제적 공간 활용’을 명시적으로 강조하기도 했다. “경제적 공간들이 기업체들의 생산 활성화와 확대재생산에 적극적으로 작용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북한 당국이 말하는 ‘경제적 공간(槓杆)’이란 경제 주체의 경제활동을 계산·자극·통제하기 위해 이용하는 수단이다. 경제적 공간은 다시 두 가지로 구분된다. 하나는 인민경제 계획화, 계획의 일원화 및 세부화, 원 자재·자금 공급 같은 사회주의 경제 본성을 반영한 경제적 공간이고, 다른 하나는 원가, 수익성, 생활비 같은 사회주의 사회의 과도적 성격을 반영한 경제적 공간이다. 북한 당국이 2000년대 들어 경제개혁을 본격화한 뒤부터는 원가, 수익성, 생활비 같은 경제적 공간의 기능이 점차 커지고 있다. 김정은 역시 사회주의기업책임 관리제를 제도화해 생산, 판매, 이윤 분배 등 모든 영역 에서 국영기업소의 자율성을 높이고, 종합시장 통제 정 책도 완화함으로써 생산 증대를 도모해왔다. 이런 맥락에서 김정은이 신년사에서까지 ‘경제적 공간’을 언급한 이상 올해에도 경제개혁이 지속될 것이라고 봐도 무리는 없다.

이 밖에도 김정은은 “인재와 과학기술은 사회주의 건설에서 대비약을 일으키기 위한 우리의 전략적 자원 이고 무기”라면서 사회경제발전을 담당할 인재 육성과 과학기술 발전을 또 하나의 전략 목표 달성 수단으로 제시했다. 작년 신년사에서는 과학기술 발전만 수단으로 언급했는데, 올해에는 인재 육성도 국가적 과제로 추가한 것이다. 이에 따라 북한 교육 제도나 내용이 어떻게 달라질지도 흥미로운 관찰 지점이다.

정리하면, 김정은 위원장의 올해 경제 구상은 경제관리 방법의 혁신, 자체의 과학기술과 인재 등 대북제재 아래에서도 동원 가능한 내부 자원을 주요 수단으로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 목표 달성을 향해가겠다는 것이다. 2018년 신년사와 반대로 2019년 신년사에서는 이러한 수단을 세부 경제과제 앞에 배치함으로써 ‘자력갱생’을 더욱 강조했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실제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제시한 2018년 구호는 “혁명적인 총 공세로 사회주의 강국 건설의 모든 전선에서 새로운 승리를 쟁취하자!”인데 비해, 2019년 구호는 “자력갱생의 기치 높이 사회주의 건설의 새로운 진격로를 열어나가자!”이다. 이렇게 김정은 위원장의 신년사와 연초 그의 행보를 종합적으로 살펴봄으로써 우리는 2019년 북한 당국의 행보를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게 됐다. 북한 당국은 올 해에도 일차적으로 자체 기술력과 자원을 동원해 경제 발전을 도모하겠지만, 자신이 북한 인민에게 약속한 희망의 해 ‘2020년’이 다가올수록 경제발전을 위한 대외 관계 획기적 개선 필요성을 더욱 절감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북한 당국이 올해 비핵화 협상을 먼저 깨버리 거나, 의도적으로 협상을 지연시킬 가능성은 많지 않아 보인다.

김 진 환 김 진 환
통일교육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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