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예능프로그램 ‘개그콘서트’의 한 코너인 ‘정여사’를 패러디한 학생들의 능청스러운 연기에 객석에서는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의미 없이 웃음만 남발하는 것도 아니다. 사실 ‘정여사’와 그의 딸 ‘소피’는 각각 몽골과 이란에서, 그들의 억지를 받아줘야 하는 여행사 직원은 중국에서 온 유학생들이다. 그리고 이들이 여장까지 마다하지 않고 무대에 오른 이유는 단 하나, ‘우리 땅, 독도’에 대해 알리기 위해서다. 올해로 4회째를 맞이한 ‘2014 유학생 독도사랑 한국어 말하기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한 ‘독도 지킴이’팀의 정여사, 볼간 타미르(26)씨를 만나 그의 한국 생활에 대해 들어봤다.
‘제13회 세계 외국인 한국어 말하기 대회’, ‘제7회 전국 외국인 한국어 말하기·글짓기 대회’등 다수의 화려한 한국어 대회 수상경력이 대변하듯 유창한 한국어 실력을 자랑하는 타미르 씨. 서글서글한 외모로 자신을 대뜸 뱀띠라 소개하는 청년에게 한국어 실력을 칭찬하자, 엉뚱하게 K-pop 예찬론이 시작된다.
“우리 엄마는 무용수인데요. 어렸을 때 엄마가 오랫동안 한국에서 일하셨거든요. 그래서 저에게 한국은 언제나 동경의 나라였어요. 더욱이 몽골은 한류가 굉장해서 채널만 돌리면 한국 드라마, 예능, 가요까지 다 나왔어요.
부모님 끼를 물려받아서 인지 그중에서도 K-pop에 꽂혔죠. 그런데 노래를 따라 부르고 춤추다 보니까 가사가 궁금해지더라고요. 그래서 한국어를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나 넉넉지 않은 가정형편에 한국어 학원을 다닐 수도 없어 무작정 유학생들이 많이 다니는 대학 앞에서 기다리다, 한국인처럼 보이는 학생이 지나가면 한국어 책이나 교재 같은 것을 얻을 수 없는지 부탁했다. 그렇게 얻은 책으로 독학한 한국어는 타미르 씨의 한국에 대한 동경을 더욱 크게 만들었다. 그리고 운명처럼 정부 초청 장학생으로 선발돼 처음 한국 땅을 밟게 됐다. 그게 2010년 초 봄의 이야기다.
마냥 꿈만 같은 한국생활. 경험해 보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아 약속된 5년이란 시간(정부장학생은 어학연수 1년, 대학 정기과정 4년 간 지원받게 된다)이 짧게만 느껴졌다는 타미르 씨가 한국에서 처음 한 식사는 떡볶이였다고.
“배가 고픈 상태에서 뭘 먹을지 고민하는데 길거리 포장마차가 보이더라고요. 떡볶이는 한국 드라마나 방송에 자주 나온 음식이라 진짜 궁금했었거든요. 눈물 찡하게 맵고, 달짝지근한 양념에 부드러운 떡! 지금도 한국 음식 중에 가장 좋아하는 게 떡볶이에요.”
그 특별한 맛을 잊지 못해 한국 생활 3개월 만에 ‘한국의 미-한국음식’이란 주제로 출전한 외국인 말하기 대회에서 대상의 영애도 얻었다. 떡볶이 외에도 된장, 청국장 등 한국전통 음식은 가리는 것 없이 잘 먹는다는 타미르 씨. 요즘은 오히려 한국음식은 괜찮은데 가끔 양갈비 등 몽골 음식을 먹을 때면 배탈이 날 정도다.
그렇게 한국 생활에 익숙해질수록 당연하게 한국역사와 문화에 대한 관심도 함께 커졌다는 타미르 씨. 가장 관심이 큰 부분은 통일과 독도문제다. 지난 6월 말에 개최된 ‘2014 유학생 독도사랑 한국어 말하기 대회’에 참가한 이유 역시 자신의 넘치는 끼를 활용해 독도에 대해 알리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었다고.
“독도 가보셨어요? 저는 작년에 유학생들이 독도를 방문할 수 있게 해주는 프로그램이 있어서 참가했었거든요. 그 전에도 공부를 좀 했기 때문에 독도의 역사적 가치나 중요성, 아름다움 같은 것에 대해서는 좀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런 이론적인 것 말고요. 울릉도에서 독도까지 가는 길에 진짜 고생했거든요? 사람들이 배 멀미로 좀비처럼 다 쓰러져 있을 정도였어요. 그런데 딱 도착해서 독도를 밟는데 그냥 알겠더라고요. ‘아 이건 누가 봐도 한국땅 이구나’라고요. 그래서 주변 한국인 친구들에게 언제나 하는 말이 있어요. 독도 가보라고. 책이나 그림보지 말고 한번만 가보라고. 가보면 알게 된다고요.”
외국인인 자신도 경험한 그 감동을 한국친구들이 알게 되길, 그래서 독도에 대해 더 많은 관심과 애정을 갖기를 바란다는 것이 타미르 씨가 독도방문을 권하는 이유란다. 통일문제도 마찬가지다.
“안타깝죠. 남북한이 분단됐다는 건 정말 안타까운 상황인데 사람들은 좀 무심한 것 같아요. 물론 통일이 된다면 남한이 아무것도 없는 북한을 도와야 하기 때문에 부담이 되겠지만, 대신 한국은 ‘섬’이 아니라 ‘대륙’이 되잖아요. 몽골까지도 기차로 갈 수 있어요. 통일만 된다면 하나의 가족이 같이 살 수 있고, 국가적으로도 정말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생기는 일인데, 어째서 한국 사람들은 관심이 없을까요?”
타미르 씨는 통일이 된다면 한국을 사랑하는 외국인으로서 북한의 경제발전을 돕는데 한 역할을 담당하고 싶다고 말한다. 마치 낯설고 외로웠던 자신의 한국생활을 도와줬던 고마운 이들처럼 말이다.
“식상할 수도 있지만 전 한국의 정이 참 좋아요. 몽골은 유목민족이라 그런 정서가 없거든요. 물론 한국에도 쌀쌀맞고, 차가운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아직까지 함께 나누고 살아간다는 생각이 많은 것 같아요. 기숙사 앞에 편의점 아주머니는 저만 보면 김치는 있냐고, 반찬 없으면 우리 집에 와서 같이 먹자고 말해주세요. 그 한마디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어요.”
한 때는 어린 마음에 한국 사람이 되고 싶었을 만큼 한국을 동경했다는 타미르 씨. 요즘은 졸업 전 학교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어 외국인 신입생 유치를 위해 힘을 보태고 있다. 자신처럼 한국을 동경하지만 쉽사리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는 몽골의 학생들에게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그의 주 업무다. 또 얼마 전까지는 한국의 전통 춤을 배워, 교도소, 교회 등을 다니며 공연도 했었다. 내가 받은 고마움을 다시 누군가와 함께 나누는 즐거움 역시 그가 ‘무지개의 나라’ 한국에서 배운 것 중에 하나다.
<글. 권혜리 / 사진. 나병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