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반 정도 한국에 와 있었는데 한국인들은 항상 마음이 열려있고 친절합니다. 또 다이내믹 하지요. 한국사회는 질서정연하고, 전반적인 인프라가 현대적으로 잘 구축돼 있습니다. 전통문화를 보존하기 위한 노력들도 좋고요.
나라 밖에서 보자면, 아시아인들이 한류에 열광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는데, 비단 K-POP 가수들 뿐 아니라 한국 뮤지션들은 실력이 뛰어납니다. 독일 음악대학을 가보면 ‘제일 잘하는 사람들은 거의 다 한국인 유학생’이라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입니다. 한국인들이 이렇게 다양한 분야에서 적극적으로 열심히 노력하기 때문에 독일인들도 한국 사람들의 열정을 보고 배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국 음식도 입에 잘 맞아요. 갈비나 불고기, 탕·찌개류는 물론이고 심지어는 길거리 음식도 아주 다양하고 맛있어요. 품질이나 위생 등에 있어 안심할 수 있고요. 대사 임기가 끝나고 독일에 돌아가게 되면 이런 것들이 많이 그리워질 것 같아요.
통일 이전에 서독과 동독 간에 많은 교류가 있었지만, 통일이 갑자기 찾아왔기 때문에 중요한 정책들을 짧은 시간 내에 결정해야만 했고, 이는 경제에 큰 부담으로 작용했어요. 그래서 첫 15년 동안 어려움을 많이 겪은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현재 독일은 정치적·경제적으로 안정을 누리는 강대국으로 거듭났습니다. 이 같은 변화는 독일 사회분위기에서도 감지돼요. 행복해 하며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 보여요. 심지어 나이 드신 분들은 ‘요즘 젊은이들이 너무 이완돼 있지 않나’ 하는 걱정을 할 정도입니다. 또 한 가지, 서독과 동독이 통일을 이루긴 했지만 진정으로 ‘우리는 하나’라는 것을 마음 속 깊이 느끼기엔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오랜 시간 상이한 환경에서 분단된 채로 살아왔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지난 2006년 독일월드컵 때 새로운 경험을 했습니다. 월드컵은 통일된 독일에서 열린 첫 번째 큰 파티였어요. 함께 독일을 응원하고 월드컵을 즐기면서 ‘우리는 하나’라는 구호가 진정으로 다가온 거죠. 이제 아무도 동독과 서독이 진정한 하나가 되었다는 데 의문을 갖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현재 메르켈 총리뿐 아니라 요아힘 가우크 대통령 모두 동독 출신입니다. 사람들은 동독과 서독이 합쳐졌을 때 더 큰 힘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진정으로 느끼고 있어요.
유포리아(euphoria, 진짜 큰 행복감)를 느꼈어요. 베를린장벽이 무너졌을 때, 그 순간만큼은 원래 통일을 원했던 사람들도, 무관심했던 사람들도, 심지어는 원하지 않았던 사람들도 모두 기뻐했지요. 특히 자유가 없던 동독 주민들에게 자유가 주어졌다는 것, 동서독간에 마음대로 왕래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좋았어요. 또 독일 뿐 만 아니라, 냉전의 장막이 걷히면서 유럽전체가 통일되는 느낌을 받았지요. 양 국가가 보유하고 있던 그 많은 무기들도 사라졌고요.
하지만 통일 직후, 구 동독의 경제사정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1992년부터 2003년까지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어야 했어요. 그래서 통일을 후회하는 사람들이 생겨났지요. 그러나 2003년에 ‘아젠다 2010’이 만들어지면서 통일된 독일에서 대대적인 개혁이 일어났고 이로 인해 현재 경제적 번영을 이룰 수 있었어요. 그래서 독일인들은 통일 당시의 그 행복한 느낌을 다시 느끼게 됐고, 희망의 에너지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남북한과 동서독의 경우 외부에 의해서 분단이 된 것은 같지만 다른 점도 많아요. 가장 큰 차이는 동서독의 경우 전쟁이 없었지만 남북한 간에는 전쟁을 치렀다는 것입니다. 또 동독은 소련의 지배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통일이 소련군의 철수와 맞물려 있어서 동독 주민의 통일에 대한 염원이 상대적으로 컸던 것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동독 주민들은 동유럽 국가를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었고, 서독에 대한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었지만 북한은 아직도 폐쇄된 사회에 살고 있어요. 하지만 한국이 독일의 통일에서 참고할 수 있는 점들이 있고, 통일과정에서 예상되는 문제점들을 미리 예방하는 데도 도움이 될 거라고 봐요. 독일 통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독일이 이니셔티브 쥐고 통일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신념에서 20년 간 일관되게 신동방정책을 펼쳤다는 점입니다. 서독 정부는 정권교체 이후에도 긴장완화 정책, 접근을 통한 변화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갔어요. 쉽지 않은 일이지요. 양대 국민정당, 다른 정치 세력들 간에 찬반 논란이 거셌지만 당시 서독 주민들은 빌리 브란트가 이끄는 사민당에 표를 몰아줘서 압승을 했고 신동방정책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때까지 계속 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독일 통일에 대한 결정이 국민에 의해 이뤄졌다는 점도 중요합니다. 동독 주민들이 ‘우리는 한민족’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거리로 나오지 않았다면 독일 통일은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박근혜 대통령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정책과 드레스덴 선언 등 대북·통일 정책에 대해 적극 찬성하고 있으며, 독일도 이를 조력할 계획입니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통해 남북한 통합을 점진적으로 잘 이루길 바라며, 2015년은 한반도 분단 70주년을 맞이하는 해인만큼, 앞으로도 더욱 창의적인 통일 방안들을 강구해 나가면 좋을 것 같습니다.
또 만약 북한에게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면,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는 언제든지 북한에 손을 내밀고, 북한의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돼 있다’고 이야기해주고 싶어요. 핵무기 등의 문제가 먼저 해결되어야 하겠지만요. 제 주변의 지인들을 보면 개인적으로든 비즈니스적으로든 북한을 향해 마음을 열 준비가 됐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글. 기자희 / 사진. 나병필, 주한 독일연방공화국 대사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