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포커스
제8기 제7차 노동당 전원회의를 통해 본 북한 식량 상황과 농업정책
北 관개 정비, 농기계 증산, 비료 공급 등 식량 문제 해법 찾는 데 총력
북한은 2월 말 개최한 제8기 제7차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농업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뤘다. 북한이 농업의 중요성을 강조할수록, 역설적으로 북한 식량난
발생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상황이다. 현재 북한 농업 현실과 전망을 살펴봤다.
북한은 올해 농사에 명운을 건 듯 연초부터 농업 부문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2월 말 개최한 제8기 제7차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는 지금 북한 식량 문제가 얼마나 절박한 상황인지를
방증한다. 2년 전인 2021년 6월 열린 제8기 제3차 전원회의에서 김정은은 “식량 형편이 긴장해졌다”고 직접 언급해 이목을 끌었다. 이때 식량 증산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라는
지시를 내렸고, 그 결과로 나온 것이 2021년 12월 제8기 제4차 전원회의에서 채택된 ‘새로운 농촌혁명 강령’이다. 여기서 특히 주목할 사항은 식량 증산을 위해 기존의 벼와 옥수수
중심 알곡 생산 구조를 벼와 밀·보리로 전환한다는 내용이었다. 김일성이 창안한 주체농법의 상징 작물이자 60여 년 동안 북한 주민의 2대 주식이던 옥수수를 버리고 밀을 선택한 것은 엄청난
모험이자 정치적 결단이다. 이후 밀 농사 성패가 김정은 리더십에 상당히 부담을 주는 사안이 됐다.
북한 경제 중점 목표 1순위 ‘알곡 증산’
지난해 12월 말 열린 제8기 제6차 전원회의에서는 2023년 당이 우선 달성해야 할 경제의 12개 중점 목표(‘중요고지’) 중 첫 번째 목표로 알곡 증산을 채택했다. 이후 두 달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 제7차 전원회의를 소집해 농업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뤘다는 사실만으로도, 북한이 지금 식량 문제 해법을 찾는 데 얼마나 골몰해있는지를 알 수 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3월 15일 농업 증산에 대해 “어떤 대가를 치러서라도 반드시 결실을 보아야 할 국가 중대사”라고 규정하는 기사를 실었다. 북한의 대외 안보·경제 환경이
어려운 상황에서 식량의 안정적인 확보는 자립경제 노선을 뒷받침하는 데 필수적이다. 또한 김정은 정권의 안정과도 직결되기 때문에 북한이 식량 증산 총력전을 벌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로
보인다.
그렇다면 현재 북한 식량 상황은 어떠한가? 지난해 말 농촌진흥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2년 북한의 연간 곡물 총생산량은 450만여 톤으로 전년 대비 18만 톤이 감소했다.
<그림 1>에서 알 수 있듯 김정은 정권 10년 동안 곡물 생산량은 늘 목표량에 비해 턱없이 못 미쳤다. 북한 당국은 2021년 유엔에 제출한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2030
의제 이행에 관한 자발적 국가 검토보고서’에서 연간 곡물 생산 목표량이 700만 톤이라고 밝힌 바 있다.
북한은 2월 말 열린 제7차 전원회의에서 농업 생산의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해결해야 할 당면과제 가운데 첫 번째로 ‘관개체계 완비’를 제시했다. 이상기후 현상에 대비해
관개체계를 완비하는 것이 농업의 안정적인 발전을 위해 선차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라면서, 2025년 종료되는 5개년 계획기간에 전국 관개체계를 완비한다는 방침도 정했다. 북한이 이처럼
관개체계 완비를 강조하는 이유가 뭘까.
지난해 전국 단위로 도입한 밀·보리 농사 성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농업진흥청이 발표한 북한의 2022년 곡물 생산 추정 통계를 보면, 밀·보리 생산량이 전년 대비
12.5%(2만 톤) 증가하는 데 그쳤다. 북한 매체를 종합해보면 밀·보리 농사 성과가 크지 못했던 결정적 이유는 가뭄이다. 밀·보리는 봄철에 가장 왕성하게 자라는데, 이때 비가 많이
내리지 않아 농업용수를 충분히 공급하지 못했다. 문제는 봄철 가뭄이 올해도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는 데 있다. 북한 기상수문국은 올 5월 최대 식량 생산지인 황해남·북도에 가뭄이 나타날
것을 일찌감치 예고했다. 북한 당국 역시 “재해성 기후를 기정사실화”하며 봄철 가뭄에 대비해 만반의 준비를 하도록 촉구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 농업이 지속적으로 성장하려면 관개체계를 손봐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당장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다. 관개체계를 완비하려면 상당한 규모의 건설
중장비와 자재가 필요하다. 또 공사를 완료하기까지 상당한 시간도 걸린다. 하지만 농사는 당장 시작해야 한다. 북한 건설 중장비와 노동력이 현재 평양시 화성지구 1만 가구 살림집 건설과
서포지구 4000 가구 살림집 건설, 북한 최대 규모 강동온실농장 건설 등에 투입돼 있는 것도 문제다. 관개사업에 돌릴 여력이 있을지 의문이다. 더욱이 북한이 농업 증산의 또 다른
해법으로 제시한 간석지 개간, 새땅 찾기에도 적지 않은 건설 중장비와 자재, 노동력이 필요하지 않은가.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3월 11일 “백배로 분발하여 밀과 보리농사에서 결정적인 개선을 이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그래서 지금 북한 농촌에서는 농업용수 확보를 위해 과거 사용하던 우물과 졸짱(땅 속 깊이 관을 박아 땅 속의 물을 끌어올리는 설비) 등을 복구하고, 물길 정리 및 저류지 바닥 파기 같은
현실적 대안을 찾는 데 집중하고 있다. 제7차 전원회의 결정을 관철하기 위해 3월 16일 열린 당 전원회의 확대회의에서 ‘관개체계 완비를 위한 실천 방법’이 의제에 포함되지 않은 점은,
현실적으로 관개체계 완비가 쉽지 않음을 보여준다.
북한 당국, 농기계와 비료 수급 총력
제7차 전원회의에서는 효과적이고 능률적인 농기계를 더 많이 농촌에 보내기 위해 농기계 부문을 혁신적으로 개선하는 사업을 두 번째로 시급한 당면과제로 제시했다. 그리고 기계공업 부문과 농업부문 간 긴밀한 협력을 강조했다.
일찍이 북한 당국은 2016년 개최한 제7차 당대회에서 농업 부문 기계화 비중을 60~70% 수준으로 높인다는 목표를 제시한 바 있다. 하지만 그동안 농촌 기계화 목표 달성은 요원했다.
밀농사를 전면 도입한 지난해 가을 추수가 임박하자 김정은 국무위원장 특별 지시로 군수공업 부문에서 농기계 5500대를 만들어 황해남도에 공급했다. 이것을 계기로 북한 당국은 지난해를 ‘새
시대 농촌기계화 개시’ 원년으로 규정했다.
북한이 당장 농기계화 수준을 높여야 하는 이유 중 하나는 노동력 동원의 어려움 때문이다. 현재 평양시를 비롯해 전국 각지에서 대규모 건설 사업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미
전국에서 10만여 명의 청년이 동원됐고, 80만여 명의 청년이 군 입대 또는 재입대하는 상황이다. 지난해 밀 농사 전면 도입에 따라 긴박해진 영농 일정을 맞추고 부족한 노동력을 보충하려면
농기계화율 제고는 매우 절박한 현안이다. 하지만 연초부터 북한의 미사일 도발이 계속되면서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 환경이 매우 불안정한 상황에서, 군수공업 부문이 농기계 생산에 얼마나 비중을 둘 수 있을지 의문이다.
여러 가지로 어려운 상황이지만 비료가 어느 정도 정상적으로 공급되면 올해 농사에 기대를 걸어볼 수도 있다. 실제로 제7차 전원회의 결정을 관철하기 위해 개최된 내각의 당 전원회의
확대회의에서는 비료 생산을 활성화해 농촌에 비료를 계획대로 공급하는 문제를 중점적으로 논의했다.
북한의 대표적 비료 생산 기지는 흥남비료연합기업소와 남흥청년화학연합기업소다. 그러나 이곳에서 생산한 비료만으로는 필요량을 충족하기 어렵다. 수입을 통해 부족분을 얼마나 메울 수 있느냐가 곡물 생산량에 영향을 미치는데, <그림 2>의 대중국 비료 수입 추이에서 알 수 있듯 북한의 비료 수입량은 최근 감소 추세다. 비료 원료 가격 상승과 외화 부족 등이 원인으로
지적된다. 따라서 충분한 비료 공급 역시 현실적 한계에 부딪힐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의 식량난 발생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북한 당국이 농업 문제를 강조할수록 식량난에 대한 우려가 더 커지는 모양새다. 하지만 아직은 북한의 식량난 발생 여부를 판단할 만한 유의미한 시그널은 발견하기 어렵다.
2020년 북한의 총 곡물생산량은 340만여 톤으로 역대 최저 수준이었으나 식량난은 발생하지 않았다. 북한이 국가 차원에서 총력 대응하는 데다, 식량 및 농산물 수매와 유통·판매를 강력히
통제하며, 더욱 밀접해진 북·중관계를 활용해 무역을 통해 식량 수급을 조절할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는 밀 재배 면적 확대가 새로운 도전 요소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올해 밀 농사가 식량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할지 아니면 오히려 위기에 빠뜨릴지 면밀히 지켜볼 필요가 있다.
김정일 정권은 식량난 대응 방법으로 감자 농사를 장려했지만 감자가 주식을 대체하지는 못했다. 북한 주민의 생활 수준이 향상되고 외식 문화가 늘어나면서 옥수수보다 밀가루를 선호하는 방향으로 식생활 문화가 변했다. 또 옥수수 대량 재배가 토양 산성화를 가속화해 자연 재해를 키우는 등 농업 생태 기반이 위태로워진 상황에서 북한이 옥수수 대신 밀 농사를 선택한 것은 어느 정도 타당한 정책 전환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밀 농사 경험이 짧고, 이상기후에 따른 자연재해 대비책이 마련되지 않은 점, 농촌에 대한 지원 역량이 크게 제고되지 않은 점 등을 감안하며 올해 북한 밀 농사 결과가 북한 식량 문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신중하게 지켜볼 일이다.
정 은 미
통일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