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
8·15 광복 78주년
미완의 광복과 분단 극복을 위한 제언
‘바람직한 통일’은 ‘진정한 평화’로만 가능하다
1945년 8월 15일 일제강점기에서 벗어나 광복을 맞은 지 올해로 78주년을 맞았다. 냉엄한 국제사회의 역학관계 속에서 남북으로 갈라진 한반도의 분단 상황은 그대로다. 한반도의 진정한 광복과 통일을 위한 방안을 찾아봤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을 때, 미국 정치철학자 후쿠야마(F. Fukuyama)는 역사가 마침내 종착점에 도달했다고 선언했다. 공산주의 체제가 무너지고,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승리했기 때문이다. 역사가 종언을 고했다는 선언은 헤겔의 역사철학에서 비롯된 인식이다. 헤겔은 역사를 주인과 노예의 인정투쟁(Struggle for recognition)으로 이해했다. 이 투쟁에서 승리한 자는 주인이 되고, 패배한 자는 노예로 전락한다. 군주정이나 귀족정, 또는 독재 체제는 승리한 소수가 다수의 패자들을 지배하는 사회이다. 이에 반해 자유민주주의 체제는 서로를 인정하는 상호인정의 체제이다. 그러므로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공산주의 체제에 승리한 것은 인정투쟁의 종언, 즉 역사의 종언인 것이다. 이제 거대한 역사적 투쟁은 사라지고, 매우 권태로운 삶이 기다리고 있다는 낙관론이었다.
피할 수 없는 ‘투키디데스의 함정’
제1차 세계대전 후에도 윌슨 미국 대통령의 주도하에 비슷한 이상주의(Wilsonian Idealism)가 팽배했다. 하지만 영국의 역사학자 카(E. H. Carr)는 파국의 징후를 예감했다. 당시의 이상주의자들은 국제연맹을 통해 국제사회의 평화와 질서를 유지할 수 있다고 믿었다. 또한 계몽에 의해 인간이 교정될 수 있는 것처럼, 국가들도 계몽에 의해 불의의 전쟁을 일으키지 않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이런 이상주의적 전제는 국제정치의 현실과 거리가 멀었다. 나아가 현실과 괴리된 이상은 역설적으로 이상이 희망하는 현실을 파괴했다. 냉엄한 정치현실은 ‘권력 없는 이상은 무력하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실제 국제연맹은 독일과 이탈리아, 일본의 폭주를 제어할 수 없었다. 카는 1차 세계대전 후 국제적 이상주의가 오히려 무질서를 야기하고, 더 큰 전쟁을 초래할 것으로 우려했다. 그의 예감대로 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불과 20년 만에 더 큰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그때처럼 우크라이나 전쟁이 세계에 던진 메시지는 명료하다. 탈냉전 이후 ‘역사의 휴일(Holiday from History)’은 끝났다는 것이다. 후쿠야마는 가고, 키신저가 돌아왔다. 세계화가 종말을 고하고, 신냉전이 시작됐다. 미국과 유럽은 러시아의 서진을 저지하는 한편, 중국을 ‘체계적, 경제적 경쟁자’로 규정했다. 소련과 중국은 서구에 대항하는 ‘모스크바와 베이징 탠덤(Tandem· 2두 마차)’으로 결속했다. 냉전의 복사판이다. 양 진영의 가치관도 대립적이다. 서구는 인권, 법치, 민주주의를 옹호한다. 모스크바와 베이징은 반자유적이고 반민주적이다. 그대로 가면 신흥 강국이 부상하면 기존의 강대국이 이를 견제하는 과정에서 전쟁이 발생한다는 ‘투키디데스의 함정(Thucydides’s trap)’을 피할 수 없다.
우크라이나 도네츠크주 바흐무트에서 러시아군과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후 건물과 그 주변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바흐무트=AP/뉴시스)
지난 5월,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은 ‘이코노미스트’지(紙)와의 인터뷰에서 미·중 갈등의 격화로 인한 제3차 세계대전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그는 “우리는 지금 1차 세계대전 직전과 유사한 상황에 처해 있다. 어느 쪽도 정치적 양보를 할 수 있는 여지가 많지 않고, 한번 균형이 깨지면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상황이다”라고 진단했다.
미국은 중국이 세계 지배를 원한다고 믿는다. 중국은 서구가 강조하는 ‘규칙에 기반한 글로벌 질서’란 단지 미국의 질서일 뿐이라고 분개한다. 눈앞의 시험대는 대만 문제다. 1972년 닉슨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모택동은 모든 현안을 실무진에게 맡겼다. 그러나 대만 문제가 제기되자, 닉슨에게 “대만은 반혁명 무리”라고 명백히 선언했다. 타협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모택동은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100년은 기다릴 수 있다고 유보했다. 원칙은 비타협이지만, 외교적으로 타협의 길을 찾은 것이다. 그 합의가 트럼프 대통령에 의해 50년 만에 뒤집혔다. 키신저는 전쟁이 일어난다면, 과거의 전쟁과 전혀 다른 파국을 맞을 것으로 예상했다. “지금은 일반적인 상황이 아니다. 상호확증파괴와 인공지능이 있기 때문”이라는 이유다. 인류는 전례 없는 파괴력의 시대에 살고 있고, 쌍방의 완전한 파괴를 초래할 것이다.
미국과 중국의 군사적 충돌이 발생하면, 한국 역시 이 소용돌이를 비껴가기 어렵다. 중국이 한국에 주둔하는 미군을 공격할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가 발표한 중국의 대만 침공 워 게임(전쟁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중국은 한국을 공격해 한반도에 제2전선을 만들 것이다. 그래야 한국의 군사력을 한반도에 묶어두고, 미군의 전력을 양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도 이 전략에 따를 가능성이 크다.
정치적 양극화 심화와 안보관 대립
이 엄중한 시기에 한국의 정치적 양극화는 점점 심화되고 있다. 특히 안보관의 대립이 심각하다. 지난 7월 4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아무리 더러운 평화라도 이기는 전쟁보다는 낫다”고 주장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도 “좋은 전쟁보다는 나쁜 평화에 가치를 더 부여한다”고 말한 바 있다. 평화 일방주의, 또는 무조건적 반전주의다.
물론 보수와 진보는 모두 한반도 평화를 주장한다. 그런데 여야 정당의 당헌 2조(목적)를 보면 더불어민주당은 그냥 ‘평화’고, 국민의힘은 ‘진정한 평화’다. 그게 그거 같지만 그렇지 않다. 더불어민주당은 단지 ‘평화’만 말하고, 그 구체적 조건은 밝히지 않았다. ‘통일’이란 말도 없다. 국민의힘은 평화의 구체적 조건으로 한미동맹, 북핵 위협의 제거를 명시했다. 또한 ‘바람직한 통일’, 즉 자유민주주의 통일을 지향한다. 여야는 한미동맹, 북핵, 통일에서 의견이 다르다.
진보 진영의 ‘평화 일방주의’는 실패했다. 특히 북한 핵에 대한 진보 진영의 현실 인식과 대처는 완전히 틀렸다. 첫째, 북한의 핵무장 의지와 능력을 과소평가하거나 눈감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01년 “북은 핵을 개발한 적도 없고, 개발할 능력도 없다”면서 “북이 핵을 개발했다거나 개발하고 있다는 거짓 유언비어를 퍼트리지 마라, (만약 북에 핵이 개발된다면) 내가 책임지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에 망명한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의 증언은 이와 달랐다. 1997년 7월 10일 기자회견에서 그는 “이미 북한 내부에서 핵무기 보유는 상식화돼 있다”고 밝혔다. 그가 북한의 핵 개발을 알게 된 시기는 1984년 국제비서를 할 때였다. 당시 소련대사가 그에게 “지금 핵무기를 만들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그것을 중지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그 사실을 김정일에게 보고하자 “그냥 묵살하라”는 지시를 들었다. 황장엽의 명백한 진술에도 불구하고, 역대 진보정부는 이를 무시했다.
둘째, 북한의 핵개발은 체제안전용이고 공격용이 아니며, 체제안전을 보장하면 핵을 포기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4년 남미 순방 시 “북한은 체제 안전을 보장받으면 핵개발을 포기할 것이며, 누구를 공격하거나 테러를 위해 핵개발을 한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북한 김여정은 2022년 “남조선이 우리와 군사적 대결을 선택하는 상황이 온다면 부득이 우리의 핵 전투무력은 자기의 임무를 수행해야 하게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은 미 · 중 갈등의 격화로 인한 제3차 세계대전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워싱턴=AP/뉴시스)
셋째, 북한은 이성적이고 정상적인 국가이며, 대화로써 문제의 해결이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노 전 대통령은 북한의 체제 안보 차원에서 “북한 핵 주장은 일리 있는 측면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고, 문 전 대통령은 2017년 6월 “북한이 아주 비이성적이고 합리적이지 못한 나라라는 사실에 대해 우리가 인식을 새롭게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아사히신문 보도에 따르면, 김정은은 2017년 각국 북한 재외공관에 “문재인 정권이 계속되는 기간이 우리에게 절호의 기회다. 호전 세력이 소란을 피우기 전에 통일 과업을 반드시 실현해야 한다”는 긴급 지령문을 보냈다.
넷째, 북한은 핵을 쓰지 못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노 전 대통령은 2006년 “북한에 핵무기가 있다고 할지라도 한국의 군사력은 충분히 균형을 이루고 있으며, 우월적 균형을 이루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김정은은 2022년 핵을 방어용이 아닌 대남 선제타격용으로도 쓰겠다는 핵 독트린을 천명했다.
다섯째, 북한에 대한 지원이 핵개발에 악용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우리의 대북지원금이 핵개발로 악용된다는 얘기는 터무니없는 유언비어”라고 말했다. 하지만 2010년 미국 의회조사국(CRS)은 1999~2000년 10억 달러 이상의 현금을 북한에 제공했을 때, 북한은 핵개발을 위한 부품과 재료 등을 해외에서 구입하는 데 더 많은 외화를 지불했다고 분석했다.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는 “북한에게 남한은 소리만 지르면 현금을 대주는 ATM이었다”고 꼬집었다.
“평화를 원하면 전쟁을 준비하라”
한국은 6·25전쟁 후 완전히 새로운 안보 상황에 직면했다. 1990년대 탈냉전 후 북한은 군사적으로 실질적 위협이 아니었다. 그러나 란코프 교수는 “이제는 남침, 즉 적화통일의 대상이 됐다. 최근 10여 년간 제로(Zero)였던 ‘남침’ 시나리오 가능성이 지금은 10%로 높아졌다”고 주장했다. 안보에 대한 평화 일방주의가 이런 상황을 악화시켰다는 것이다.
역대 진보정부는 ‘민족’의 관점에서 일방적으로 평화만 강조했다. 그 결과 군대가 누구와 싸워야 하는지, ‘주적’ 개념이 흔들렸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는 2001~2003년 국방백서를 발행하지 않았고, 2004년에는 주적 개념을 삭제했다. 문재인 정부는 2018 국방백서에서 ‘북한군은 우리의 적’이란 문구마저 없앴다. 얼마 전 문 전 대통령은 “아직도 냉전적 사고에서 헤어나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고 비판했다.
“평화를 원하면 전쟁을 준비하라(Si vis pacem, para bellum)”는 말이 있다. 전쟁을 원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평화는 평화만으로 지킬 수 없다는 게 ‘평화의 역설’이다. 1, 2차 세계대전은 물론 수많은 전쟁의 역사에서 입증된 교훈이다. 닉슨 미 대통령은 “평화적 수단으로밖에 평화를 실현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국가는, 머지않아 다른 국가에 흡수될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우리 헌법 전문에는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국가의 사명으로 적시했다. 진정한 평화, 바람직한 통일은 오히려 전쟁의 무서움에 대한 철저한 자각이 있을 때 가능하다고 믿는다.
김 영 수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