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 Vol 2022023.08.

북한은 1월 17일부터 18일까지 만수대의사당에서 진행한 최고인민회의 회의에서 ‘평양문화어보호법’ 등을 채택했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북한포커스

‘평양문화어보호법’을 통해 본 북한 내 한류 실태

한류에 흔들리는 김정은 정권
‘3대 악법’ 통해 北 주민 언어·사상 통제 나섰다

김정은 정권은 2019년 하노이 회담 결렬 후 ‘통제체제와 계획경제 강화’라는 전통적인 보수정책을 취하고 있다. 무엇보다 주민들의 생활과 문화를 통제하는 데 집중하는 모습이다. 올해 초 제정한 ‘평양문화어보호법’을 중심으로 그 의도와 목적을 분석해봤다.

북한 최고인민회의는 올해 1월 18일 법령 제19호로 ‘평양문화어보호법’을 채택했다. 이 법 제1조 사명 조항에는 ‘괴뢰말투를 쓰는 현상을 근원적으로 없애고 비규범적인 언어요소를 배격하며 온 사회에 사회주의적 언어생활기풍을 확립하여 평양문화어를 보호하고 적극 살려나가는데 이바지한다’고 명시돼 있다. 최근 김정은 정권의 대남 적대정책과 함께 북한 주민의 언어생활에도 깊게 자리 잡은 한류 흐름을 차단하기 위한 고민의 흔적이 엿보인다.

김정은 정권은 이 법을 통과시킴으로써 2020년과 2021년에 각각 제정한 ‘반동사상문화배격법’, ‘청년교양보장법’과 함께 북한 주민의 인권을 침해하고 일상생활을 통제하는 ‘3대 악법’을 완성했다. 앞서 제정한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은 제1조에서 ‘반동적인 사상문화, 반사회주의 사상문화의 류입, 류포 행위를 막기 위한 투쟁을 힘 있게 벌려 우리의 사상진지, 혁명진지, 계급진지를 강화하는데 이바지한다’고 규정했다. 해외에서 유입되는 정보를 차단하고 이미 변화하고 있는 북한 주민들의 사상을 개조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든 법이라는 걸 천명한 것이다.

청년교양보장법 역시 제1조에서 ‘국가(북한)의 청년중시정책을 철저히 관철하여 청년들을 주체혁명위업의 믿음직한 계승자로 튼튼히 준비시키고 청년강국의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해나가는데 이바지한다’고 명시했다. 새로운 흐름에 민감한 청년들의 정신 개조가 목적인 것이다.

북한 정권이 이처럼 3대 악법을 통해 주민들의 생활과 문화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는 이유가 뭘까.

‘오빠’ ‘사장님’ 등 북한 내 한국식 언어 유행 확인
평양문화어보호법 제2조 주요 용어 개념 정의 조항을 보면 이 법의 제정 취지가 더욱 확연히 드러난다. 먼저 ‘괴뢰말’은 ‘어휘, 문법, 억양 등이 서양화, 일본화, 한자화되어 조선어의 근본을 완전히 상실한 잡탕말로서 세상에 없는 너절하고 역스러운 쓰레기말’이라고 정의했다. 이어 ‘비규범적인 언어요소’로는 ‘국가적으로 승인되지 않은 외래어와 일본말찌꺼기, 리해하기 힘든 한자말을 비롯하여 평양문화어규범에 맞지 않는 언어요소’라고 명시했다. 사실상 한국어를 겨냥해 원색적으로 비난한 것이다.

북한 정권이 이처럼 일상 언어를 통제하려는 이유는 언어가 정신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특히 북한의 장마당을 통해 가정 내부로 전파되는 한류 문화를 차단하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 그 이면에는 주민들의 사상과 문화, 특히 청년세대들이 한국 문화에 젖어드는 것에 대한 북한 정권의 불안감이 깔려 있는 듯하다. 실제로 이 법 제2절 ‘괴뢰말찌꺼기의 박멸’ 조항을 보면, 북한 주민들 특히 청년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언어생활에서의 한류 실태를 확인할 수 있다.

첫째, 청년들 사이에서 북한식 동무나 동지가 아니라 한국식 연애문화의 유행에 따른 ‘오빠’라는 호칭의 사용이다. 둘째, 기업과 주민들 사이에 ‘사장님’이나 ‘지배인님’ 등 직책 뒤에 ‘님’자를 붙이는 것이다. 북한에서는 전통적으로 ‘지배인 동지’, ‘000 동무’ 등이 일반적이었다. 북한은 이를 금지하기 위해 ‘제19조 괴뢰식부름말을 본따는 행위 금지’ 조항을 만들었다.

셋째, 부드럽고 애교스러운 말투의 유행이다. 제22조 괴뢰식억양을 본따는 행위 금지 조항은 ‘공민은 비굴하고 간드러지며 역스럽게 말꼬리를 길게 끌어서 올리는 괴뢰 식억양을 본따는 행위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한국 드라마나 방송에서 나오는 부드럽고 상냥한 말투를 ‘괴뢰 식억양’으로 규정하고, 절도 있고 단정적인 ‘군대식 억양’을 사용하라는 것이다.

북한 평양 시내를 걷는 젊은 남녀. 북한 젊은 층 사이에 ‘오빠’, ‘사장님’등
남한식 호칭을 사용하는 경향이 늘고 있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남한 대북전단(삐라와 더러운 물건짝들)을 규탄하는 북한 주민들.
(평양 노동신문=뉴스1)

넷째, 서울 말투와 한국식 이름, 애칭 사용, 줄임말 등의 유행이다. 제23조(괴뢰식이름짓기의 금지) ‘공민은 자녀들의 이름을 괴뢰식으로 너절하게 짓거나 손전화기, 콤퓨터망에서 괴뢰말투를 본딴 가명을 만들어 쓰는 행위를 하지 말아야 한다’, 제43조(비규범적인 준말의 사용 금지) ‘기관, 기업소, 단체와 공민은 일상생활에서 일부 기관 명칭과 부름말을 규범에 맞지 않게 제멋대로 줄이여 사용하는 행위를 하지 말아야 한다’, 제44조(비규범적인 억양의 사용금지) ‘공민은 촌스럽고 별나게 말꼬리를 올리는 것과 같은 비규범적인 억양으로 말을 하는 행위를 하지 말아야 한다’ 등과 같은 규정에서 유행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다섯째, 핸드폰과 컴퓨터 등 전자제품 및 한국 상품을 통한 남한 문화 전파다. 제25조 손전화기, 콤퓨터망을 통한 괴뢰말투 류포 금지 조항은 ‘기관, 기업소, 단체와 공민은 손전화기, 콤퓨터망으로 괴뢰말투로 된 통보문과 전자우편을 주고받는 행위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섯째, 북한 공공기관에서의 한국식 언어생활 양상이다. 제28조 문건 작성에서 괴뢰말투 사용 금지 조항을 보면 ‘기관, 기업소, 단체와 공민은 각종 문건을 작성하면서 괴뢰말투를 쓰지 말아야 한다’고 적시했다. 특히 주목할 점은 대중들을 상대하기에 유행에 민감한 상업 분야 및 과학·기술·정보 분야에서 한국식 언어 유행을 확인할 수 있다. 즉, 제29조 봉사활동을 통한 괴뢰말투 류포 금지 조항에서 ‘기관, 기업소, 단체는 괴뢰말 또는 괴뢰서체로 표기된 가격표, 차림표, 안내표, 광고를 게시하거나 상품을 진렬해놓고 봉사하는 행위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규정한 것과 제30조 괴뢰말투 제거용 프로그람의 설치의무 조항에서 ‘기관, 기업소, 단체와 공민은 손전화기, 콤퓨터, 봉사기에 국가적으로 지정된 괴뢰말투 제거용 프로그람을 의무적으로 설치하여야 한다’고 규정한 것이 그 방증이다.

한편, 제2장 제1절 ‘괴뢰말의 류포 원점 차단’ 내 조항들을 분석해보면 북한 내부로 한국의 드라마, 영상, 음악 등이 어떠한 경로를 통해 유입·배포·거래되는지도 확인이 가능하다.

북한 사회에 다양한 한류 유입 경로 드러나
국경을 통해 뇌물과 결합된 유입(제7조)과 소위 ‘괴뢰들이 들여보낸 삐라와 더러운 물건짝들’(제8조)로 표현한 공중을 통한 유입, 해안지역을 통한 유입(제10조), 대외사업을 통한 유입(제11조), 해외 출장 및 친척 방문을 명분으로 한 사사 여행자를 통한 유입(제12조) 등이 대표적인 유입 경로로 보인다.

주목되는 건 제38조 묵인 조장, 사건 약화행위 금지 조항이다. ‘법기관과 감독통제기관 일군은 돈과 물건을 받거나 직권에 눌리워 또는 정실안면관계에 말려들어 괴뢰말투를 본따는 행위를 묵인조장하거나 경미하게 처리하지 말아야 한다. 괴뢰말투를 따라하는 현상과 적극적인 투쟁을 벌리지 않거나 무원칙하게 싸고도는 행위에 대하여서는 썩어빠진 괴뢰문화를 퍼뜨리는데 동조하는 리적행위로 보고 법적으로 엄하게 처리하여야 한다’고 돼 있다. 이 내용을 보면 북한의 규율·통제기관 종사자들이 뇌물을 받거나 위계관계 또는 안면관계를 통해 주민들로부터 불법·비법이라며 몰수한 한류 아이템들을 유통하는 데 일조하는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 이렇듯 한류의 다양한 북한 내 유입 경로는 우리 정부가 향후 대북정책을 수립하는 데 참고할 필요가 있다.

평양문화어보호법 상당 부분은 한국식 언어생활에 대한 강력한 법적 통제와 다양한 처벌 조항들로 담겨져 있다. 청년들이 이를 어겼을 경우에는 그 부모들에 대해 ‘종업원 총회와 인민반 모임 등 여러 모임들에서 자료를 통보하고 망신을 주어 머리를 쳐들지 못하게 하여야 한다’(제33조, 자녀 교양을 바로 하지 않은 부모에 대한 통보, 비판)고 규정했다. 또 ‘사회안전기관을 비롯한 해당 법기관은 자료 폭로 및 군중투쟁모임, 공개체포, 공개재판, 공개처형 등 공개투쟁을 여러 가지 형식과 규모로 정상적으로 진행하여 썩어빠진 괴뢰문화에 오염된 자들의 기를 꺾어놓고 광범한 군중을 각성시켜야 한다’(제35조, 공개투쟁을 통한 교양)는 내용도 있다.

4월 29일 북한 평양에서 열린 ‘봄철전국상품전시회-2023’. 공업품, 식료품, 가정용품, 전자제품 등 3660여 종의 다양한 상품들이 전시됐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강력한 통제와 처벌 조항, 김정은 정권 불안 드러내
애초 이 법의 목적은 ‘평양문화어를 보호하고 적극 살려나가는 것은 우리 사상, 우리 제도, 우리 문화를 고수하고 빛내이기 위한 중차대한 사업이다. 국가는 언어생활령역에 돌아가고 있는 괴뢰말투를 말끔히 쓸어버리는 것을 주되는 과녁으로 정하고 전사회적인 투쟁을 강도높이 벌려나가도록 한다’(제3조, 평양문화어보호의 기본원칙)는 것이다.

이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방법으로 세 가지를 꼽았다. 첫째, 교육·교양이다. 이 법 제4조(준법교양 강화의 원칙)에는 ‘준법교양을 강화하는 것은 평양문화어를 보호하는데서 나서는 근본방도이다. 국가는 모든 부문, 모든 단위에서 준법교양을 강화하여 공민들이 괴뢰말투를 쓸어버리고 우리의 평양문화어를 고수할 데 대한 법적 요구를 잘 알고 그것을 철저히 준수하도록 한다’고 명시돼 있다.

둘째, 선전·선동이다. 이 법 제5조(괴뢰말찌꺼기를 쓸어버리기 위한 전사회적인 투쟁원칙)에는 ‘괴뢰말찌꺼기를 쓸어버리기 위한 투쟁은 사회주의제도의 운명, 우리 인민과 후대들의 사활이 걸린 심각한 정치투쟁, 계급투쟁이다. 국가는 모든 부문, 모든 단위에서 괴뢰말찌꺼기를 쓸어버리기 위한 투쟁을 강도높이 벌려 전사회적으로 괴뢰말투를 흉내내고 따라하는데 대하여 배척하면서 서로 호상간 최대로 경계하고 항상 각성하도록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셋째, 규율과 통제다. 이 법 제6조(괴뢰말투를 퍼뜨리는 자들에 대한 법적 처벌 원칙)을 보면 ‘국가는 괴뢰말투를 본따거나 류포한 자들에 대하여서는 괴뢰문화에 오염된 쓰레기로, 범죄자로 락인하고 그가 누구이든 경중을 따지지 않고 극형에 이르기까지 엄한 법적제재를 가하도록 한다’고 적시했다. 이 조항들을 보면, 북한 사회에서 시장화와 함께 발전한 ‘아래로부터의 한류’에 대한 김정은 정권의 불안과 초조함이 오롯이 느껴진다.

박 영 자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